"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피로사회 - 8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이주일인가 전 쯤 강연으로 조한혜정 교수님을 만났다. 거기에서 추천해 준 책이 이 『피로사회』였다. 평소에 학교를 돌아다니다가 집히는 읽을거리가 있으면 일단 잡고 보는 성격인지라 이런저런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은데, 거기에서도 추천된 책이었어서 한번 읽어는 볼까 생각중이었는데 마침 이렇게도 추천을 받으니 읽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해서 받고보니 웬걸, 매우 얇다.


책 자체는 쉬운 편은 아니다. 현대 철학의 세세한 흐름을 알고 있어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듯 싶은데, 애석하게도 난 후기근대 철학은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어서 저자가 비판하는 그 수많은 철학자들의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세세한 비판을 굳이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든다. 철학자들을 위한 논문집으로서의 성격은 철학자들을 위한 것이고, 나와 같은 일반인들을 위한 에세이집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자세하게 읽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정의하는 질병은 무엇일까? 책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근대 이전에는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들이 그 사회를 뒤흔들었다. 지금은? 우울증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 OECD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오명을 모두들 무심하게 받아들인다. 너무 오래 전부터 그랬으니까. 절규하다 우는 힘도 잃어버렸다. 그 옆에서는 이른바 『시크릿』으로 대표되는, "하면 된다!"의 눈부시도록 찬란한 구호가 귀를 어지럽힌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안되면 되게하라는 이런 무책임한 말들이 언제부터 넘처흐르게 된 것일까.


전염병과 같은 질병들은 나와 다른 이물질에서 기원한다. 이것이 부정성이다. 저자는 이 부정성이 근대까지의 역사를 특징지어왔다고 서술한다. 이민족, 이단, 야만인 등 우리와 이질적인 것들은 우리가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체내에 우리와 다른 것들, 예컨데 바이러스, 박테리아, 독소 따위가 들어오게 되면 면역체계는 그들에 대항하고 배척한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이전은 면역학적이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한가? 우리는 다른 것들을 포용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는 긍정성으로 가득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책 안에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책이 묘사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폭력의 주체가 부정성에서 긍정성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근대 이전의 사회는 해야 한다(Sollen)의 시대였다. 현대 사회는 할 수 있다(Koennen)의 시대이다.[각주:1] 과거가 제한, 금지, 검열과 같은 방식으로 당신을 억눌렀다면, 현재는 가능성, 비전, 독려를 통해 그대를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비틀어 말하면, "칭찬으로 고래를 춤추게 한다"가 된다.


여기에서 우울증이 찾아온다. 우울증이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Nicht-Mehr-Koennen-Koennen)'의 상태로, '아무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외치는 사회에서나 병이 될 수 있는 법이다. 어떤 사회는 몽정을 생기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간주해 중대한 질병으로 보았다. 그들의 무지함이 우스워 보이는가? 그들에게는 조금 드물기는 해도 '태생적으로 우울한 성격인 사람'이 환자가 되는 현대가 희극일 것이다. 실제로 우울증이 정신질환으로 인정된 것은 현대의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들추어내었다고 즐거워하는 듯 하다. 하긴, 이런 책을 읽을 사람이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 혹은 저쪽의 말을 빌리자면 종북 좌빨들 말고 누가 있겠는가. 지금 사회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이런 글은 좋은 자기합리화가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현대 사회의 억압은 자기검열으로 이루어진다는 류의 해석은 그다지 적절한 독해가 아니다. 그것은 현상을 관찰한 것 뿐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부정성이 긍정성으로 바뀌어 사회를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망해야 한다!"식의 해석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긍정-"우리의 희망찬 미래!"-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유토피아는 지금의 디스토피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참고로 내가 군대에 있을 척 처음 자대에 배치받았던 그 우울했던 시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울고싶으면 울어도 괜찮아"였다. 그래, 방 구석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훔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울고 싶으면 울어도 괜찮다. 당신은 당신으로서 빛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건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버거운 긍정성을 자신있게 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까짓 거, 내가 쓸모없는게 어때서?


피로사회 - 8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1. Sollen은 영어의 should, Koennen은 영어의 could와 같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1. 얼마 전 과제로 "대통령 보좌관으로 빙의해 가계부채 대책을 세워와라"는 다소 답이 없는 질문을 떠넘겨받았다. 현대경제의 중요한 문제이긴 한데 나한테 뭘 바라는거야(...)


여튼 그래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그 중 문재인 후보가 내놓은 이자상한제(?)라 할 수 있는     해법이 눈에 들어왔다. 찾아본 자료와는 많이 상충되는 점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랄까. 일단 다음은 한국은행에서 찾아본 통계들을 대충 정리한 것들이다. 한낱 과제로만 쓰기에는 좀 아까워서 여기에 올린다. 그래프는 귀찮으니 생략.


-가계신용은 2004년 이후 계속 증가 추세에 있으며 12’ 2/4분기에는 922.0조원(11’ 국민처분가능소득(개인) 대비 137%)으로 상승하였다. 가계신용 중 가계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06’ 이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한국은행, ECOS)


-2012년 8월 가계대출금액은 649.8조원, 그중 61.4%가 주택대출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415.2조원으로 전채 가계대출액의 63.9%를 차지, 그 중 269.0조원이 주택대출액으로 전체 가계대출금액의 41.4%에 이른다.(한국은행, 2012.10.9. 보도자료) 주택대출액은 07’ 4/4 이후 전체 가계대출금액의 61%선에서 유지되고 있다.(한국은행, ECOS)


-평균 가계대출금리는 5%에 표준편차 1.4%로-여신 중 금리 12%이상은 제외하였다.(12%이상의 비율은 2003년 2/4분기 이후 2%대 내외를 유지)- 08’-09’ 금융위기 이전의 기준금리와 보이던 차이로 수렴하고 있다.(원자료 한국은행, ECOS)


-주택담보대출의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대출액은 예금은행 대출액 대비 21%(07’ 4/4)에서 27%(12’ 2/4)로 증가 추세에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총 주택대출액의 91.6%(07’ 4/4)에서 99.5%(12’ 4/4)로 주택담보대출이 주택대출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다.(한국은행, ECOS)


-가계대출 중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대출액이 2003년 이후 21%에서 29%로 증가 추세이다. 전체 가계대출은 매년 약 45조원씩 상승중이다.(한국은행, ECOS)


-주택매매가격은 08’-09’ 경제위기 이후 다시 상승하는 중이나 서울 아파트매매가격은 안정화되는 추세에 있다.(한국은행, ECOS)


-시간당명목임금상승률은 08’-09’ 경제위기 동안 감소하였다가 회복하였으나 유로존 위기와 맞물리면서 다시 하락하였다.(11’ 신분류 1.20%) 소비자물가등락률과 근원인플레이션률은 2011년 4.00%와 3.20%를 기록하였다.(한국은행, ECOS)


-현 통화금융지표 중 M2는 말잔 1,749,9조원 평잔 1,709.0조원(2011)이다. 가계대출금액의 대 M2 비율은 약 37%이며, 주택대출금액은 약 22%, 수도권의 주택대출금액은 약 15%이다.(한국은행, ECOS)


그렇다. 예상보다 평균가계대출금리는 매우 낮았다. 5%라니...[각주:1] 물론 이 값은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높은 소득분위의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더 적은 금리에 빌리니 당연히 실제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이 견뎌야 하는 금리는 더 높을 것이다. 그런데 금리 표준편차가 1.4%라는 것은 모든 대출액의 약 90%가 7% 이내의 이자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아송 분포임을 감안한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을 듯 싶다. 이 대출액 90%가 전부 고소득층의 대출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이고. 물론 가계신용의 70%만 가계대출이고, 나머지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금리이다. 여기는 신용대출 등이 해당될 듯 싶은데 얘네들의 이자는 대출금리보다는 다소 높을 것이 뻔하고, 따라서 이자를 상한하는 정책이 소용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효용성에 의문이 가는 것은 사실.


다시 과제로 돌아와서, 가계대출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가계부채는 가계신용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멘붕하고는 하루 밤 꼬박 새 가며 통계자료 새로 찾는 수고를 했다. 의외였던 것은 시간당명목임금상승률. 평균적으로 9%를 유지하는 말도 안 되는 성장을 보여주었는데[각주:2], 이건 좀 비틀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위쪽의 임금 많이 나가는 짬찬(...) 직원들을 내보내고 신입사원의 낮은 임금을 바탕으로 높은 임금상승률을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무한야근(...)을 이용한 것이라던가 등 통계를 왜곡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많다. 실제 국민처분가능소득(개인)의 증감률은 6%대에 머물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 신기한 것은 국민처분가능소득(개인)의 경우 경제위기에 영향을 그리 많이 받지 않으며 성장했다는 것. 임금상승률은 경제위기동안 거의 0에 가까웠다. 경제위기동안 사장님들이 월급 대신 개인용돈을 늘이셨던 건가...


참고로 쓸모없어 보이는 M2와의 비교는 부동산 버블로 수도권 집값이 폭락한다면 대공황때처럼 은행 예금에 타격이 생길 것인가를 헤아려보려고 한 짓이다. M1은 너무 작고, M3는 은행 아닌 다른 경제 주체가 끼어드는 경우가 많아서 그나마 순수하게 은행 전체 예금의 크기라 추정해볼 수 있는 M2를 도입한 것. 15%면 작은 것은 아닌듯 싶다. 주식에서는 3%만 흔들려도 대격변이지 않던가.


다음은 대책. 대책을 세우라고 해서 세웠는데 너무 개판으로 세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다음은 분석 및 대책에 해당하는 내용.


-가계대출금리는 5%대로 소비자물가등락률과 근원인플레이션율보다 약 1% 높으며, 시간당명목임금증감률은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현재 매우 낮은 1.20%이다. 경제위기가 해소될 경우 시간당명목임금증감률이 다시 이전 수치를 회복할 것으로 보이나 가계신용이 개인 국민처분가능소득을 상당히 상회하고 있으며(137%)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가계대출이 전체 가계신용의 70% 정도만 차지하고 인플레이션이 4%로 상당히 높아 8%대 이상의 증가율을 회복하더라도 이 상태에서는 가계부채가 줄어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격상승이 거의 멈추어 버블붕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수도권의 주택대출금액이 M2 대비 약 15%이다.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경우 은행 예금의 15%정도가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전도시주택매매가격등락률은 경제성장률과 큰 편차를 보이지 않아 버블 위험성은 적다고 판단된다.


-소비자물가등락률과 근원인플레이션률이 금융위기 동안 일시적으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이는 정책은 가계대출금리를 높이는 상승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부적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04’-06’년 부동산 붐이 불었을 때 가계대출이 급격히 상승하였다.(한국은행, ECOS) 가계신용중 가계대출의 비중이 이 기간에 가장 컸으며 가계부채 해법을 위해서는 버블을 키우지 않으면서 가격의 폭락을 막을 방법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많은 부동산을 가진 경제 주체에게만 구입을 억제하게 할 정책이 주문된다.


-기준금리와 가계대출금리의 차이가 아직 금융위기 이전의 값으로 완전히 수렴하지는 않아 가계대출이자 부담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금리의 표준편차가 1.4%로 분산이 커 이자가 부담되는 가계의 대출금리가 감소할지는 불확실하며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이 증가 추세에 있어 금리가 금융위기 이전의 차이로 돌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나머지 가계신용의 30%에 해당하는 부문의 금리에 대한 자료와 소득분위별 평균가계대출금리에 대한 통계를 수집해 중산층 이하의 전체금리를 인하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위기 기간을 제외하면 시간당명목임금증감률은 가계대출금리를 상회하나 가계대출의 대국민처분가능소득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중산층 이하 가계소득의 증가로 가계부채가 부실화되지 않도록 하고 소득분위별 전체명목임금증감률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원론적인 대책. 쉽게 정리하자면 첫째, 부동산 버블이 터지지 않도록 받치되 커지지 못하도록 억제해야 함. 둘째, 이자로 인한 부채상승률이 임금상승률보다 크니 이자율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함. 셋째, 임금상승률을 높여 가계에서 스스로 갚을 수 있을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함. 누구는 저걸 해야 하는걸 모르나? 그리고 대책보다는 자료요구가 더 많다는게 함정. 현재 한국은행에서 소득분위별 대출액과 대출금리에 대한 자료는 수집하고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에게 물어보라는 것이 QNA 답변으로 달리는 상황. 기초적인 통계자료 자체가 부족하니 구체적인 대책을 세울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러고보니 '난 그러니 남들 발표하는거 엄청난 통계자료로 까 줘야지!' 생각하고서는 주 내내 잠이 부족했던지라 깔 건 안 까고 헛소리만 신나게 한 듯.




2. 페이스북이 워낙 쓰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무언가를 읽으면 페이스북으로는 공유하기 편한데 정작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내 블로그에도 바리케이트(?)가 쳐 지는 것이려나. 그냥 페이스북에 찌끄린 글 중 일부만 떼 오는 식으로 블로그 땜빵을 해야겠다. 간단하게 다섯 가지만.


느낌상으로는 geek가 덕후에, nerd는 오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타쿠라는 아직도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비해 거기서 파생된 위 두 단어는 그런 색채가 많이 빠졌지요. 특히 덕후의 경우 중립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아져서 딱히 부정적인 인상과 연관되어있다 하기 애매해졌구요. 물론 무슨 글자가 앞에 붙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요(역덕-역사덕후-과 밀덕-밀리터리 덕후-의 느낌은 좀 다르죠)


이번 특집은 geek와 nerd의 어원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Dr. Seuss에서 처음 등장한 nerd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털많은 작은 동물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Dr. Seuss는 Peter Rabbit처럼 엄청 유명한 동화 시리즈입니다. 대충 한국의 태권브이 수준의 인지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전 모든 일러스트가 한 톤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책이었다는 기억밖에 없네요. 푸른 계열의 그림이었죠.


geek란 단어는 그보다 오래 된 단어인데, 닭머리를 물어뜯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묘기를 하던 사람을 지칭했다고 해요. 물론 현대 기준에서야 그렇고, 그 당시 기준은 좀 다르겠죠. 당시 추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지금은 아름답게 여겨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난 물리덕후란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리고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_-;;;


"시험을 보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없는데 왜 우리는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가"

동영상 중간에 나오는 말. 시험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어떤 능력이든 그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평가 기준이 정확해지면 그 능력을 잘 반영하다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오히려 그 능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중간쯤에 최고점이 있는 정규분포 곡선을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다. 그 이유는 평가 기준이 명확할수록 편법이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영어시험 점수는 잘 받아가면서 정작 외국인 앞에서는 벙어리가 되는 사람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예전에는 수능이 고등학교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가'를 측정하는 시험이었다는 말이 기억나서 94년 수리탐구영역2 문제지를 한번 뒤적거려봤는데(2차) 수능 볼 일이 없다 보니 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문제 13번-물 분자가 이산화탄소 분자처럼 직선일 경우 무엇이 변하겠는가-, 19번-주어진 순록 개체수 그래프를 해석하기-, 28번-주어진 지문을 읽고 이를 수식으로 나타내기-, 35번-경제 지표 변화 그래프로 행해진 경제 정책 추론하기(수리탐구영역이 맞다)-, 59번-칸트의 정언명령/가언명령 구분하기-이 눈에 들어오는데 확실히 내가 봤던 수능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네.


교육 이야기가 나와서 그냥 덧붙이는 말이긴 한데, 난 사실 주입식 교육이 그렇게까지 문제가 크다고 보지는 않는 편이다. 주입식 교육이 창의성을 억압한다는 주장은 사실 다른 방법으로 상상해보기 싫은 사람들의 변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야 하려나. 사실 창의적인,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생각은 머리에 들어가 있는 것이 더 많을 때 더 등장하기 쉽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새로운 생각이란 사실 새로운 생각의 '조합'인 경우가 많은데, 이 조합의 수는 기본적으로 조합할 것이 많아야 늘어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머리에 지식을 우겨넣었기 때문에 새로운 조합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물론 문제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문제가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배운 것이 있으면 그걸 이용해서 나름대로 세계를 재단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예전에 돌아다니던 짤방 중 칠판에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그려놓고 당시 한창 유행했던 원더걸즈의 텔미를 국어 교과서에서 고전시 분석하듯 분석해놓은 사진이 있었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사람들 눈에는 그거 할 시간에 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이 더욱 생산적으로 보인다. 사실은 그런 일련의 행위가 문화적 토양이 되고 사고력의 기반이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기회를 박탈당하고 그것이 오래 이어지면서 버릇이 되면 흔히 개탄하는 창의성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난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특목고에 갔기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겁도 없이 마음대로 세계를 재량하는 특권(고등학생 지위를 생각해보면 이건 진짜 특권이다)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운을 다 소진한 덕분에 요즘은 깡통만 차는 것 같지만.


http://quantumfrontiers.com/2012/11/14/the-future-of-education/


참고로 위 글은 나중에 좀 더 긴 글로 정리해서 올릴 생각이다. 교육이 중요하긴 하고, 대한민국이 살아남을 방법도 교육밖에 없기는 한데, 지금은 과잉교육이자 과소교육이 이루어지는 상당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등학생의 80%가 넘는 비율이 대학을 진학하여 쓰지도 않을 지식을 배우는 데 올인하는 것에서 과잉교육이고, 다양한 문화적 토양의 배경이 되어주어야 하는 기본교육이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바람에 거름이 되기는 커녕 시험치고 나면 잊어버리는 것으로 평가절하되는 부분에서 과소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지식을 우겨넣는 교육은 별로 문제가 없지만, 그 교육이 필연적으로 가지고 오는 교육 현장의 구조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 참 애매하다. 상상력을 발휘할 숨통을 트여 주면 주입식 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주입식 교육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생각하지 못하는 기계로 만들어주어야 하고. 적절한 균형이란게 존재하기는 하려나?


빅데이터란 말 그대로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자료를 그대로 다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컴퓨터 계산능력이 발달해서 이제야 그 많은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겠다 싶은거죠. 다만 문제는 데이터들의 형식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그걸 정리해주느라 손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통계를 낼 때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가 표준을 정하는 것이 빅 데이터를 제대로 쓰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겠지요. 이와 관련된 정책이 구상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네요.


THE SCIENCE : [기고/김성태]세상을 바꾸는 신(新)무기, 빅데이터


다음 글도 얼추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듯 싶다. 아이추판다님의 프로젝트인: 

오픈 데이터베이스, 팁포레스트


‎"뒷동네 할아버지가 대통령이래요"

"아가야 그런 이상한 사람 말은 믿는게 아니란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속가능한 발전이 문제가 아니라 초소비(hyperconsumption)가 문제라고. Affluenza라는 단어를 쓰며 소비에 대한 욕망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고 깐 사람이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그런데 인도의 모든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처럼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 대기중에 산소가 남아나겠느냐는 말은 산소를 안 쓰는 자동차를 만들면 된다는 아주 간단한(?) 해법이 있다. 그런 기술이 있는가와 그 기술이 도입될 수 있는가라는 난제가 남아있지만. 분명히 그런 기술이 있으면 석유회사들의 신나는 로비가 시작될거거든.


여튼, 앞으로 기술은 얼마나 깔끔하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맞추어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소비 자체는 줄어들기 힘드니 같은 오염을 두고 얼마나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겠지. 그것보다 누군가가 문명을 에너지 소비량으로 분류했었던 것 같은데(별이 생산하는 에너지를 단위로 썼다) 그게 누구였더라...??


The world's poorest president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대책없는 낙관주의는 대책없는 예비 기술자인(예비 헛소리꾼일수도 있겠다만...) 나도 문제가 있다고 보긴 하는데, 기술은 계속 발전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는 에너지를 더 많이 쓸 것이다. 기술이란 마약과 같아서 한번 쓰면 더 강한 것을 써야만 하는 법이니까. 최악인 것은, 기술을 끊으면 그 금단증상으로 죽는다는 것. 이제서야 '자연으로 귀화하라' 이딴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소로우가 월든에서 자연과 함께 잘 살았다고 하더라도 도시에서 지속적인 수혈을 못 받았더라면 늑대밥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삼시세끼'라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내용입니다. 산업화 이후 오전부터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버틸만 하도록 먹기 시작한 것이 아침이고 점심은 양차대전에 배급이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알려지고 거기에서 영향을 받았다네요. lunch가 nuncheon이라는 끼니 사이에 먹는 간단한 음식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말도 나오는데, 원래 점심은 마음에 점을 찍는 간단한 식사였다는 것도 생각납니다. 그리고 역시 헷깔리는 dinner의 사용법도 언급됩니다. supper라는 저녁식사를 의미하는 단어가 있어서 dinner는 점심을 의미하기도 하고, 저녁을 의미할 땐 lunch가 점심이 되죠. dinner는 만찬에 가까운 의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The myth of breakfast, lunch and dinner


BBC 앱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동일 종류의 앱은 하나만 깐다는 암묵적인 규칙으로 스마트폰을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신문사를 좀 균형있게 보려면 두세가지는 깔아야 할텐데 그건 규칙에서 벗어나니까. 왜 하필 BBC냐 하면 영국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검색하니까 제일 먼저 튀어나와서(...)가 크다. 특집 기사 위주로 보게 되는데 만족할만한 수준의 특집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주기도 하고.




3. 스웨터 사고 싶다. 상의의 80%가 셔츠인데 지금 가진 모자가 스웨터에만 어울려서 겨울에 따뜻하게 다니질 못하고 있다. 원래 추위 잘 안 타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따뜻하게 다니면서 스타일 살릴 수 있으면 더 좋잖아? 그런데 난 돈이 없네. 난 안될꺼야 아마 ㅠㅠ


이렇게 된 이상 모자를 산다!...는 따뜻한 모자도 비쌈 ㅠㅠ

  1. 얼마나 낮은거냐면, 인플레이션이 4%대이다. [본문으로]
  2. 경제위기 기간 동안은 예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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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이전에 쓴 글 중 양자역학의 유래라는 글이 있었다. 현대 양자역학의 근간이 되는 파동방정식 풀이법과 행렬을 이용한 선형대수 연산 및 고유값을 사용하게 된 기원 등을 다룬 글인데,[각주:1] 오랜만에 덧붙일만한 내용이 생각나서 새로운 글을 쓰기로 했다.

 

저번 글에서 양자역학이 형성되어 온 두가지 갈래길을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그 두 갈래길이 남아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묘사(picture)에 대해 살펴보자.

 

수업을 듣던 중 교수님께서 에너지나 운동량 등의 측정값이 양자화되는 이유를 질문하셨다. 누군가가 경계조건(boundary condition)으로 고유값이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했고 교수님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칭찬하시고는 넘어가셨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반만 맞는 답이었다. 하지만 타과생인지라 물리학과에 반기를 들기보다는 조용히 넘어갔다. 어째서 반만 맞는 답일까?

 

양자역학은 두 경로를 통해 발전했다. 하나는 슈뢰딩거(Erwin R. Schrödinger)의 '파동성을 핵심으로 하는 파동역학'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양자성을 핵심으로 하는 행렬역학'이다. 파동역학을 양자역학의 원류로 본다면 물리량이 양자화되는 이유는 경계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 맞다. 하지만 행렬역학을 양자역학의 원류로 본다면 물리량의 양자화는 공리(postulate)가 된다. 실제 양자역학은 두 원류가 합쳐진 형태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그 답은 반만 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관점은 어떻게 남아있을까?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은 전자파(electron wave-electromagnetic wave가 아니다!)와 같이 물체에게 파동성이 존재하므로 이미 존재하는 파동광학 등의 결과를 물질로 확장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때문에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은 물질의 상태(state)가 되고, 이것이 반영되어 측정하는 물리량(operator를 말한다)은 시간에 불변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빛이 화면에 닿아 상을 만들 때 화면의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화면에 그려지는 상이 변화한다고 보기보다는 빛의 상태가 변하기 때문에 상이 변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이 변화한다고 보는 것보다는 그 공간에 놓인 물질이 변화한다고 보는 것이 아무래도 자연스럽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부 양자역학 교재에서는 슈뢰딩거 묘사(Schrödinger picture)를 쓰는 경우가 많다. 슈뢰딩거 묘사를 쓸 경우 운동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잘 보면 고전적인 파동방정식과 닮았다.

 

$$\dot{\left|\psi\right>}=\frac{\mathbf{H}}{i\hbar}\left|\psi\right>$$

 

이번엔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을 따라가 보자.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은 전 글에서 설명했다시피, 물리량을 측정할 경우 그 값이 양자성을 가진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수소원자스펙트럼은 불연속적으로 분포되어있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에게 변화하는 것은 물질의 상태가 아닌 물질의 측정값, 즉 물리량이 변화하게 된다. 같은 물질을 다른 시간에 측정하면 다른 물리량을 내놓는 것이므로 물질은 그대로 있고 물리량이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안을 알 수 없는 기계장치가 들어있는 상자가 있고 그 상자의 벽에 화면이 설치되어 있어 시시각각 변화하는 숫자를 보여준다고 상상해보자. 이 경우 상자 자체가 변화한다기 보다는 상자의 화면에 찍히는 숫자가 변화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이젠베르크 묘사(Heisenberg picture)를 쓸 경우 운동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해밀토니안 역학에서 이런 방정식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dot{\mathbf{A}}=\frac1{i\hbar}\left[\mathbf{A},\mathbf{H}\right]+\frac\partial{\partial{t}}\mathbf{A}$$

 

마지막으로 흔히 상호작용 묘사(interaction picture) 혹은 폴 아드리엔 모리스 디락(Paul Adrien Maurice Dirac)의 이름을 딴 디락 묘사(Dirac picture)를 생각해보자. 이 묘사방법은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이 등장하면서 입자가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니 특정한 상태를 규정짓기가 힘들어지자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리적인 계(system)의 진화를 규정짓는 것이 해밀토니안(Hamiltonian)인데 이 묘사에서는 해밀토니안을 두가지로 나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측정하는 '입자'를 만들어주는 자유장 해밀토니안(free field Hamiltonian)과[각주:2] 이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상호작용 해밀토니안(interaction Hamiltonian)으로 나누고, 각각 H_0와 H_int로 이름붙인다. 우리가 측정하는 모든 물리량은 자유장 해밀토니안에 따라 변화하고, 우리가 측정할 대상이 되는 상태들은 상호작용 해밀토니안에 따라 변화한다. 하이젠베르크 묘사를 설명하면서 쓴 예제를 사용해 본다면 상자의 화면에 등장하는 숫자가 변화하는데, 상자 자체도 조금씩은 모양을 바꾼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상자의 모양에 따라 화면에 등장하는 숫자 또한 영향을 받는다면 1. 상자의 모양마다 숫자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2. 상자의 모양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편리하다. 때문에 상호작용 묘사에서는 운동방정식이 조금 복잡하다.

 

$$\mathbf{H}=\mathbf{H_0}+\mathbf{H_{int}}\\ \dot{\mathbf{A}}=\frac1{i\hbar}\left[\mathbf{A},\mathbf{H_0}\right]+\frac\partial{\partial{t}}\mathbf{A}\\ \dot{\left|\psi\right>}=\frac{\mathbf{H_I}}{i\hbar}\left|\psi\right>\\\\ \text{where }\mathbf{H_I}\text{ is the solution of}\\ \dot{\mathbf{H_I}}=\frac1{i\hbar}\left[\mathbf{H_I},\mathbf{H_0}\right]+\frac\partial{\partial{t}}\mathbf{H_I}\\ \mathbf{H_I}(t=t_0)=\mathbf{H_{int}}$$

 

물리 덕후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곳 저곳 다 파고 들어가며 닥치는대로 공부하다 보니 물리학 개념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에 대해서도 이것 저것 알게 된 것이 많다. 아무래도 이런 이해가 있다 보니까 정리가 좀 잘 되는듯. 다음 학기 학부 졸업논문이나 잘 써야 할텐데...

  1. 엄청나게 많은 깨져있는 수식을 복구하느라 조금 힘들었다. 이런 글 엄청 많을텐데...ㅠㅠ [본문으로]
  2. 이 '입자들'로 상태공간을 확장(span)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알기 쉬운 것들로 공간을 나타내는 것이 더 보기 좋으니까.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2012. 10. 27. 18:55 Daily lives

이런 저런 이야기

화요일에 받은 라미 2000에 잉크를 가득 채우고 닷새 정도 썼는데 그 사이에 잉크를 다 써버렸다. 세척해주고 라미 만년필이니 라미 잉크를 채우자 해서 라미 진청색을 채운 상태. 시험기간이라 공부한다고 펜으로 끄적거린 종이가 두께로 손가락 정도 되는 것 같긴 해도(잡다한 종이라서 A4로만 썼다고 하면 7mm정도 되려나?) 벌써 잉크가 바닥나다니... 일부러 많은 용량이 들어가는 형식으로 한건데 별 소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잉크가 원래 많이 나오는 녀석이라 그런 것일지도.


물리 이야기를 안 쓴지 너무 오래된 듯 싶어서 헛소리나 좀 하려고 끄적거렸는데 중간에 흥미가 떨어져서 쓰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마하의 원리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이것 저것 찾다 보니 내가 왜 이걸 쓰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버린듯. 대략적인 글의 내용은 이런 거였다. 천동설에 홀린 어리석은 대중들에 맞서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으로 산화한 갈릴레이의 명제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소수로서 진리를 지켰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아니란다. 관심이 생기는 사람은 아무래도 없을 듯 싶으니 시험기간이 끝나면 이어서 쓰는 것을 고려해봐야겠다.


경제학자 랩배틀 Keynes vs Hayek. 얼마 전 수업 과제로 이 동영상을 보고 입장을 정리해오라는 것이 나왔는데, 결론적으로는 둘 다 그다지 끌리지 않더라. 둘 다 헛발질을 한게 많아서. 케인즈를 따라서 월스트리트 1%에 돈을 부어주었고, 하약을 따라서 IMF 구제금융때 수많은 사람들이 쪽박찼지(안 차도 됬을 사람들까지).


매일 조금씩이라도 청소를 하는데 이놈의 먼지는 어디에서 날아오는건지 청소를 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먼지가 나온다. 요즘 알레르기가 심해진 이유가 여기 있었나? 재채기를 삼연속 해 주면 정신이 대략 멍해지는데 왜 재채기를 할 때마다 bless you라는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진짜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잖아?


그러고보니 말은 물리블로그라고 해 놓고 정작 물리에 대한 글은 거의 안 적었네. 요즘 그 수많은 입자들의 질량과 스핀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좀 봐주세요. 얼마 전 의심하던 오일러각과 각운동량 사이의 관계식을 증명했으니 시험이 끝나면 그거나 올려야겠다. 뭐 다른거라면 사원수도 있긴 한데, 그건 아직 공부중인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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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반 달 정도 최저가를 찾으며 인터넷을 헤매다 eBay에서 주문한(덕분에 최소 3만원 이상 아꼈더라지요)[각주:1] Lamy 2000이 도착했습니다. 사실 지난주 금요일부터 우체부 아저씨께서 집에 방문하셨으나 전 평일이면 학교에서 사는지라(...) 받질 못했죠. 결국 전화로 연락, 제 3자(?)를 거쳐 수령했습니다. 지름신이 지나고 나면 개봉기부터...


Air mail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나 걸리는구나... 싱가폴이라 그런가?

중량이 200g이 채 안되네요.


편지 보내듯이 보내줍니다. 서류봉투에 들어갈 것을 상자를 구해 택배로 부치면 돈이 배는 깨지니까 그것보다는 낫겠지요. 하지만 덕분에 도착 시간은 꽤 늘어난다는거.

무게는 0.17kg이라고 적혀 있네요. 가격을 20.00USD로 적어놨는데 이건 왜 그런거지...-.-;; 오타로 1을 빼먹었나 봅니다. 어차피 15만원 이하면 관세면제라 세관에 걸릴 이유도 없으니까요.


뜯으니 뽁뽁이로 정성스레 포장된 상자 등장


택배의 감초, 뽁뽁이. 전 하나 하나 터뜨리는 것 보다는 한번에 비틀어 우두둑 터뜨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탕을 깨물어 먹는건 당연하고요.


서류봉투와 뽁뽁이는 집어치우고 상자를 꺼냅니다.


상자가 나옵니다. 테이프로 잘 밀봉해 두어서 뜯기 좀 힘들었죠.


물론 상자도 페이크. 라미는 포장을 공산품스럽게(?) 하는 버릇이 있죠.


예전에 CP1을 살 때도 이런 상자에 들어있었죠. 공산품스러운 포장입니다. 물론 공장에서 찍어내는 모든 물건이 공산품이긴 하다만, 건물에 비유한다면 외벽에 페인트칠 안하고 내부에 벽지를 안 바른 콘크리트가 다 드러나는 그런 종류의 건물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참, 이런 종류의 디자인에도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꽤 많은 건물이 이 디자인을 채용했죠. 전 아주미술관이 기억에 남네요.) 기억이 안 나네요.


상자 측면에 붙어있는 스티커. CP1을 샀을 때에도 저런 스티커가 붙어있었죠.


EF 닙으로 샀습니다. 그런데 가진 펜 중 제일 두껍다는게 함정(...) 잉크가 많이 나오니까 부드럽게 써지는 것이겠지만...


낯이 익은 라미 포장. 생각해보니 가진 만년필 절반이 라미네요.


저 가운데 LAMY라 써진 은빛 물체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알루미늄인가?


라미의 광고지...-_-;; L2K는[각주:2] 피스톤 방식이라 펜만 넣어 보내줍니다.


저 광고지는 라미 펜 살 때마다 주더군요.


사파리와 CP1은 저 스티커가 펜 본체에 붙어있었던 것 같은데 얜 비닐에 붙어있네요.


사파리나 CP1과는 다르게 비닐에 담고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아무래도 2000부터 라미의 고급라인일테니까요.


개봉은 여기까지, 이제 펜을 살펴봅시다.


CP1처럼 클립에만 간소하게 쓰인 LAMY


CP1과 비슷한 디자인의 클립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CP1의 디자인을 L2K에서 따왔다고 봐야죠. 66년에 L2K가 대박을 치자 그 후속 디자인으로 나온 것이 CP1이니까요. L2K가 남성적인 디자인이어서 CP1(Cylinderical Pen 1에서 따왔다고 합니다...쿨럭;;)은 여성적인 디자인을 목표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얇은 편이죠.


EF촉의 자태


L2K처럼 촉의 대부분이 펜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를 hooded nib이라고 부릅니다. 잉크가 덜 마르는 장점이 있다고 하네요. 사실 별 상관 없는게 잉크가 살짝 말라서 처음 쓰려고 할 때 안 써지면 펜촉에 살짝 힘을 주면 다시 잉크가 잘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힘을 주면 촉이 벌어지면서 잉크가 흘러들어가기 때문이지요. 힘을 준 상태에서 쓰면 촉이 매우 빨리 길들여지는 효과가 있으니 글을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기 전 잠깐 눌러준다는 느낌으로만 하세요. 제 Platinum Standard 14k EF는 길들인다고 신나게 긁어댔더니 굵기가 라미 EF-CP1-의 80%까지 불어났습니다. 덕분에 종이를 '파서' 기록한다는 느낌은 엄청 개선되었지만요.


검은 플라스틱 사이의 경계면이 보이시나요? 저 부분의 경계는 잘 드러나는 편인데, 뒤쪽의 실린더를 조작하는 부분은 경계가 거의 드러나질 않습니다.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마무리가 잘 되어 있어요.


만년필이라면 항상 취하는 자세 1


배럴의 촉감은 나무같은데 무광인지라 지문이 묻질 안아서 참 좋습니다. 광택이 있으면 예쁘긴 한데 손을 타다 보면 지문이 남고 그 지문이 남은 부분에 빛이 비치면 별로 보기 안 좋더군요. 제가 은근히 이런 것들에 민감하다 보니 광이 있는 Standard 14k의 경우 생각날 때마다 손으로 닦아주곤 합니다. 물론 노트필기 정신없일 할 때에는 그런거 신경 쓸 시간이 없지만요.


쓰는 느낌은... 매끄럽습니다. 이전에 학교에서 Lamy 판촉을 벌일 때 카탈로그에서 본 펜촉의 가격이 14만원정도였던걸로 기억하는데, 가격이 절대 헛되게 매겨진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성잉크를 사용하는 볼펜 중 흐름이 좋은 녀석이[각주:3] 굴러갈 때 내는 마찰과 비슷한 마찰을 내는데다가 힘을 살짝만 주어도 벌어지면서 선 두께가 세배는 증가합니다. 원래 라미 촉들은 경성이라 힘 주어 쓰는게 아니라는 건 알긴 하지만 예상외로 유연하네요. 역시 금촉...[각주:4] 비슷한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펜은 파카 벡터 F촉이 있긴 한데 이건 스틸이라 촉을 벌리려면 힘이 꽤 많이 들어갑니다. 종이를 긁는 느낌이 나기 시작하죠.


아, 그리고 저 귀(?)가 신경쓰인다는 사람들이 있던데, 제가 딱 그 꼴이 나 버렸네요. 제가 가장 편하게 잡는 위치가 딱 저 자리입니다.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크진 않지만 인지하면 신경은 쓰이는 그런 위치네요. 제가 펜을 길게 편이니(CP1도 손잡이가 끝나고 본체가 시작되는 그 경계면을 잡습니다) 보통 신경쓰실 일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결론:

1. 부드럽다.(사각이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 소리도 나름대로 쓰는 맛이지만 아무래도 덜 부드럽죠.)

2. 두껍다.(0.5mm정도 됩니다. Platinum의 EF는 0.3mm정도, Lamy 철촉 EF는 0.4mm정도.)

3. 비싸다.(만년필 평균을 생각하면 저렴한 편이지만 만년필 자체가...)


노트필기용으로 쓰기는 힘들고(세필로 많은 것을 우겨넣는 성격이다 보니 얇은 촉들을 무시할 수가 없네요) 아무래도 연습문제 풀이, 답안지 작성, 연습장 낙서할 때 정도 사용할 것 같습니다. 이제 한동안 긴축재정 들어가야죠...ㅠㅠ

  1. 환율도 한창 떨어져 있을때 사서 배송비 및 카드수수료 포함 144천원에 끊었습니다. 주문 당시 국내에서 가장 싼 가격이 183천원 정도로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은 200천원을 넘겼나? 정가는 288천원입니다. [본문으로]
  2. Lamy 2000 = L2K [본문으로]
  3. 한동안 기다려야 잉크가 마를 정도로 흐름이 좋은 볼펜을 말합니다. 보통 두께가 0.7mm정도 되죠. [본문으로]
  4. 14k에 백금(platinum) 도금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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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집 대청소 중 만년필 하나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 만년필 쓰는 사람이 나 혼자라서 자연스럽게 소유권 이전. 일제인거 같다는 아버지의 말에 기대했는데, 받고 나서 잘 보니 옛날 마이크로라는 필기구 회사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의 물건이었다. 만년필-볼펜 세트로 나온 Miko브랜드의 Neo Morbido. 그러면 나 초등학교때 물건이잖아?


펜촉에 선명한 'MICRO'. 하트홀은 장식?


플라스틱 재질인데 의외로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화강암같은 느낌을 구현 잘 한듯. 시가형인데 끝 부분은 사각형으로 처리해서 독특하다. 그래도 뚜껑을 안 꽃으면 책상 위를 데굴데굴 잘만 굴러다니긴 하지만. 그립부는 좀 얇은 편인데 뚜껑 안쪽도 저 그립부에 맞추어 좁아져 있어서 캡의 두께(?)는 좀 두꺼운 편이다. 덕분인지 펜 뒷부분이 캡에 잘 안들어가 글을 쓰다 보면 뚜껑이 날아가는 불상사가 종종 발생하는 편.


뭐, 일단 써보자는 생각에 같이 들어있던 카트리지를 넣고 써봤다. 예상하지 못했던 필기감에 놀랐다.  잉크가 다르긴 하지만 어째서 내 플라티넘 스탠다드 14k와 비슷한 두께의 글씨가 더 부드럽게 나오는거냐 -.-;;[각주:1] 이건 철촉의 반란! 그런데 알아보니 morbido는 이태리어로 '부드럽다'란 뜻 이란다.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가 다 있었구나... 여튼 기대하지조차 않았던 만족스러운 필기감을 제공해주었고 그래서 주력펜이 되려나 싶었는데...


커다란 문제점 발견. 카트리지 외에는 쓸 수가 없다. 저 배럴 안에 스프링이 있어서 조금 큰 컨버터를 넣으려고 하면 들어가지를 않는다. 스프링을 젓가락같은걸로 뽑아내야 하나... 다행인지 카트리지는 국제공용 카트리지라 잉크 구하기는 힘들지 않을 듯 싶지만 난 병잉크를 선호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할 듯.


그보다 세관에 들어섰을 내 라미 2k는 언제 집에 오는거지 ㅠㅠ

  1. 그런데 스탠다드 14k의 사각사각거리는 필기감이 나쁘지는 않다. 연필 사각사각하는 그런 기분좋은 소리를 좋아해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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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얼마 전 Lamy 2000을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진짜 만년필 덕후 되었네요 -_-;;) 신나게 가격비교를 하던 중, eBay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싸게 파는 곳보다 무려 3만원 가까이 싸더군요. 해외배송비 포함해서(...;;). 이야 신난다 하고 페이팔도 가입하고 언제 긁지 행복한 상상을 하며 지냈습니다. 이건 수요일까지의 이야기.


목요일. 결제. 에러.


...-_-;;


페이팔 내부 알고리즘이 이 결제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해서 중간에서 잘랐다고 합니다. 하필 유일하게 해외결제가 되는 s20카드(체크입니다.)가 막혀버리니 답이 없더군요. 그래서 한번 더 긁었습니다. 에러.


아 놔 -_-;;;


페이팔에 문의하니 24에서 48시간 뒤에 다시 결제해보라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24시간이 지나 다시 긁었습니다. 또 에러. 뭐 아직 못 사는 것 정도는 괜찮으니까(진짜 필요한지 고민할 시간도 주고-무조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기다려보자 했지요.


문제는 인터넷뱅킹을 확인하면서 생겼습니다. 제 통장에서 무려 45만원이 지급정지가 걸려버렸더군요. 결제가 취소되었는데 취소된 것이 은행에서 확인이 안 된 겁니다. 내 45만원!! 하며 페이팔에 연락하고(해외전화는 차마 못 해서 이메일만 세통 보냈네요 -_-;;) 은행에 전화하고 난리 부르스를 쳤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30일정도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풀릴겁니다'. 뭐라고요?


덕분에 은행 잔고는 사반토막이 나 버렸습니다. 뭐 결제는 이제 풀릴 것 같긴 한데 당장 다음주가 문제네요. 이베이 경매에서 낙찰될 것 같은 물건이 있어서 그걸 사고 나면 은행잔고는 팔반토막이 납니다. 이번 달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거지 ㅠㅠ 덕분에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생겼네요 ㅠㅠ





10월 7일 13시 20분


페이팔이 결제를 막아준 덕분(?)에 환율이 훨씬 내렸을 때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의 2% 가까이 환율이 내렸는데 이정도면 만원에 가까운 절약이죠. 이제 한국은행이 기준이자율을 늦게 내려주기만 하면 되는데 과연...


17시 00분


다시 한번 결제 시도 후 장렬히 전사. 60만원 묶임. OTL. 다행히 그중 하나는 취소된거 확인했다고 메일이 왔으니 내일 은행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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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라미 CP1을 지른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지갑을 열었습니다.


정말 정말 금촉을 써 보고 싶다! 해서 금촉 중 제일 싼(...) 플래티넘 14k 스탠다드를 골랐습니다. 52천원에 나왔던 것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혜성같이 등장한 2천원 할인쿠폰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결제는 끝난 뒤...-.-;;


화요일에 도착했는데 이틀 정도 써 보고 리뷰를 올리네요.


좀 쓰고 나니 쓸만해진 Platinum 14k Standard


외관은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사은품같은 것으로 많이 주는 조금 고급스러워 보이는 볼펜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래도 싸구려라는 느낌이 나지는 않게 잘 만들었어요. 유광인 것이 조금 불만이기는 한데(지문 묻는걸 싫어해서) 금촉을 쓰게 해준다는데 이 정도는 용인해야죠. 캡은 그냥 넣고 빼는 방식인데 닫을 때 힘이 살짝 걸리고는 빨려들어갑니다. 라미 CP1은 찰칵 이런 느낌이지 빨려들어가는 느낌은 아니거든요. 나사식을 원하긴 했지만 꽤 튼튼합니다.


사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실망했었습니다. 촉에 긁힌 자국이 있는데다가, 종이를 긁어대는 느낌이 불쾌했거든요. 그런데 근 이틀간 미친듯이 촉을 마모시켜 주니 좀 쓸만해 졌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오른손이 아플 정도로 필기를 해 봤네요. 컨버터의 2/3정도가 사라졌으니 얼마나 써 댔는지 감이 오시나요? 얇다는 일본산 EF라 그런지 글씨는 무지 얇게 나옵니다. 그리고 금촉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낄 정도의 연성은 있어서, 누르면 눌립니다(!). 이로서 사파리는 당분간 바이바이...인가;;


이런 종이도 주더군요. 연습장 Get!


왼쪽은 라미 사파리 EF닙이고 오른쪽은 플래티넘 14k 스탠다드 EF닙입니다. 가운데는 잉크가 다르긴 하지만 라미 CP1에 EF닙이죠. 사파리는 아무래도 쓴지 꽤 되어서(첫 만년필이라 필압도 좀 들어갔겠지요) 많이 닳은 편입니다. 엄청 부드럽죠. CP1은 약간의 사각사각한 느낌이 있고 연필로 필기할 때에나 들릴법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납니다. 단점은 잉크가 좀 빠르게 마르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지만 만족합니다. 미니멀리즘 디자인이 간지나거든요. 플래티넘은 이틀만에 좀 쓸만하게 길들여 놓은 상태입니다. 매우 얇죠.


네모낳게 둘러쌓인 부분(힘을 주면)은 펜에 힘을 주고 쓴 부분입니다. 라미는 다 철닙이라 굵기가 변하지는 않죠. 보시다시피 플래티넘만 유일하게 힘을 주면 더 두껍게 나오지요. 밝은 곳에서 펜촉을 보면서 힘을 주고 빼고를 반복해 보면 펜촉이 휘어 반영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프링같은 금촉의 느낌이 참 좋습니다. 이래서 연성 만년필을 쓰는구나...


금촉 맛보기에는 참 좋은 것 같지만 아무래도 EF라서 너무 얇아 생긴 문제인지 펜촉을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나오는 잉크의 양이 다릅니다. 아래로 내리면 잘 나오는데 위로 올리거나 좌우로 움직이면 선이 얇아지고 연해집니다. 잉크가 잘 안 나오는 거죠. 이건 필압을 살짝만 넣어도 해결되긴 하는데, 그러면 EF의 의미가 사라져서요.


현재는 노트에 필기할 때 플래티넘을, 연습장에 필기할 때 라미를 주로 씁니다. 확실히 얇으니 노트에 필기할 때 편하지만 아무래도 잉크 양 때문인지 라미가 부드럽게 써져서 막 쓰는 연습장 필기는 라미 위주로 갑니다. F촉은 꽤 쓸만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EF촉이 '사지 마라'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취향 좀 탈 수 있겠다는 거죠.


현재 인터넷에서 찾은 최저가는 펀샵이었습니다. 링크 걸어둘께요.

http://www.funshop.co.kr/vs/detail.aspx?itemno=13355

Posted by 덱스터

일단은 이벤트 페이지부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aspx?pn=120913_crema#


먼저 킨들터치와의 비교 동영상을 퍼왔다.




분간 안됨 -_-;;; 두개 중 뭐가 뭐인지 알게 뭐야 -_-;; 그것보다도 이벤트 페이지에 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내가 처음 응모할때도 이랬는데 전혀 안 변하는 것으로 봐서는 무언가 심리학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왼쪽을 고르면 나도 왼쪽을 고르고 싶어지니까. 그리고 나도 왼쪽을 골랐다(...). 하지만 답은 오른쪽이라는거.


왼쪽을 고른 이유가 글씨가 약간 더 선명해 보여서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엄청 탐나는 리더이다. 노트북 앞에서 공부하기보다는 이북리더를 옆에 두고 공부하는게 아무래도 효율이 더 높을테니 말이다. 어둠의 경로(...)에서 구한 갖가지 책들(심지어 전공서적까지도 있다)이 있어서 그걸 이런 리더 하나 들고다니면서 공부할때 쓰면 참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컴터로 할 수 있는 갖가지 잡다한 일들이 사라지니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고. 하지만 난 거지잖아? 안될꺼야 아마(...)


감기나 낫도록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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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이전에 알라딘 행사로 싸게 풀린 라미 사파리 만년필을 쓰다가 좀 더 좋아보이는걸로(남자의 생명은 간지다...-_-;;) 갈아타보자 해서 이것 저것 알아보고 있었다. 마침 학교에서 라미 할인행사를 하길레 라미 위주로 알아보던 중 찾은게 이것.

 

 

행사장에 찾아가보니 같은 계열 샤프와 수성펜만 있었고, 원가가 110,000이니 30% 할인행사로 77,000에 판매하겠다고 했다. 샤프를 조금 만지작 해 보니까 만년필은 확실히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일단 재고를 넣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독서실로 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인터넷 최저가 검색을 실행. 찾아보니 제일 싼 것은 6만원 후반대, 무려 만원 가까이 차이나는 가격이었다. 좌절 한번 해 주고 (하던 공부 마저 하고) 다음 날 직접 보고 좀 더 깎아달라고 해 보자 생각하고는 집에 가 씼고 잤다. 만원이면 밥 네끼 = 이틀치 밥값이니까 수입이랄 것이 없는 학생 입장에서는 꽤 큰 돈이다.

 

다음날 수업을 듣고 실험을 기다리던 중 입고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실험까지는 1시간이 남은 상태. 갔다오기에는 너무 멀어서 좀 있다가 갈테니 언제 영업 종료하냐고 물어봤다. 6시에 닫는단다. 그런데 실험도 6시에 끝나는걸 어떡하지 -_-;; 다음 날까지 내 멘탈이 기다려줄 수 있을까?

 

다행히 실험은 5시에 종료. 바로 갔더니 5시 반이었다. 인사를 하고 실물을 만져봤는데 확실히 좋았다. 슬림하고 고풍스런 무광택 블랙이 지갑을 열라고 유혹. 아 안돼... 내 밥값이... 조금이라도 값을 깎아야 해...

 

혹시 펜촉을 바꾸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블랙 크롬 도금된 것으로. 된다고 하더니 바로 바꿔주었다. 돈? 손은 이미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있었다. 카드를 긁고 나니 가격 좀 더 깎아 줄 수 없냐고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이런...-_-;; 뭐 아무리 싸도 12,000원은 하는 검은 펜촉으로 바꾸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어떻게 보면 인터넷보다 싸게 산 편이다.

 

오늘 화보는 새로 오신 CP1님과 모닝글로리 수첩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옷도 블랙으로 입고 다니는 나는 어둠의 자식

 

남들 다 이렇게 찍길레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다. 펜촉 끝에 묻은 잉크는 라미 진청색 잉크인데 오늘 처음 써봤다. 이전에 쓰던 몽블랑 블랙보다는 파란빛이 많이 돌고(진청색이니까 당연하지 -_-;;) 연하다. 눈은 진청색이 더 편안한듯.

 

글은 끄적끄적 펜촉은 사각사각

 

매우 얇은 편이라(거의 플러스펜 수준) 잡기 좋다. 내가 손발이 엄청 작은 편이라(얼마 전 신발을 사는데 남성화 최저사이즈가 커서 여성화를 사야 했던 비극이 있다 ㅠㅠ) 이건 사람 취향을 탈 듯. 얇긴 하지만 금속 재질이라 그런지 묵직한데, 스테들러 샤프 중 금속으로 된 것과 얼추 비슷한 무게감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이미 흑색으로 하던 노트 필기는 사파리로 그대로 하고, 연습장에 필기하던 과목은 이젠 CP1을 사용할 듯 싶다. 삼각형 그립이 없어 쓰기 불편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불편함은 전혀 없어서 다행이다.

 

나를 위한 복학 선물은 이정도면 되었고, 이젠 열심히 공부해야지.

지름신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건 잊어버리자




결국 각인까지 해버리고 말았습니다.(결국 구입가는 \82,000) 미니멀리스트라면 각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클립 위에 해 버렸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각인을 요청한 글이 Lucet stella non videndi causa[각주:1]였는데 각인된 글이 Lucet stella non videndi cause더군요. 뚜껑 표면에 했으면 금색으로 오타가 딱! 생각만 해도 악몽입니다. 마지막 e의 오른쪽을 칼끝으로 파서(지못미 내 커터칼) a로 만들어 버리고 손으로 판 선이 좀 이상해 보였는지라 지나가던 돌(?) 하나 주워서 클립 위를 살짝 살짝 문질러 주었습니다. 덕분에 산지 한달이 안된 만년필의 급작스런 빈티지화(...) 성공, 나만의 만년필이 완성되었습니다. 각인된 글씨도 반 정도 날아가서 진짜 빈티지처럼 되어버렸지요.


주말동안 만년필 세척을 한번 해 주고 펜촉에 잉크가 남아있는 제일 위 사진이 마음에 걸렸던지라 새로 찍었습니다.


이번에도 수고해주신 CP1님과 모닝글로리 수첩님


원래 쓰던 푸딩카메라 앱보다 옵티머스 LTE2 기본카메라 어플이 초점을 더 잘 잡네요 -_-;; 화질은 매우 밀리지만 그래도 초정이 배는 잘 잡히는지라 기본어플로 찍어봤습니다.


약 일주일 정도 사용한 소감은 잉크가 조금 잘 마르는 것 같다(...)입니다. 펜 꺼내놓고 멍때리는 일이 많아서인지 잠시 멈추고 쓰기 시작하려면 잉크가 멈추는 경우가 간혹 있네요. 다만 펜촉 자체가 검은색인지라 잉크가 묻어도 신경이 덜 쓰인다는건 장점입니다. 사파리를 쓸 때 펜에 조금만 충격이 가도 잉크가 은백색의 펜촉 위에 흩뿌려진 충격적인(?) 장면을 자주 봤는데 그런건 없는게 참 좋네요.


요즘은 금촉이 참 땡깁니다. 아아... 내 지갑이... ㅠㅠ

  1. 뜻은 '별은 보이려고 빛나지 않는다' 정도? 번역기보다 못한 라틴어를 손봐 주신 성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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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2012. 9. 9. 09:00 Writer/Short

忘生舞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농부 하나가 살았어요. 농부의 아내는 일찍이 하늘로 떠나버렸지만 농부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 딸은 고운 마음씨와 아름다운 용모로 소문이 자자했어요.

 

시간이 흘러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때만 노리던 수많은 청년들이 백리 밖에서도 모여들었지만, 그 누구도 농부의 눈에는 부족해 보이기만 했지요. 결국 그 청년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원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시무시한 가뭄이 찾아왔어요. 논은 자라 등껍질처럼 갈라졌고 산의 나무들조차 넘치는 햇님의 축복으로 누렇게 시들어 버렸답니다. 가뭄은 끝나고 가을이 왔지만, 논에는 벼가 남아있지 않았어요. 농부는 겨울나기가 막막해 논 언저리에 걸터 앉아 한숨만 쉬곤 했답니다.

 

그렇게 하늘을 원망하던 농부에게 한 부자가 찾아왔어요. 부자는 농부에게 쌀을 빌려줄테니 내년에 동등한 양으로 갚으라고 말했어요. 농부는 망설였답니다. 그 부자에게는 나쁜 소문만 가득했거든요. 하지만 농부에게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답니다. 쌀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밖에 없었거든요.


그리고 다음 해가 되었습니다. 하늘은 작년에 지독했던 가뭄을 가져다 준 것이 미안했었는지 이번에는 엄청난 풍년을 이끌고 돌아왔어요. 농부는 신이 났답니다. 부자에게 빌린 쌀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신이 나 부자에게 갔던 농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부자는 작년에 빌린 쌀이 있었기에 올해 수확을 할 수 있었으니 올해 수확한 쌀을 전부 가져오라고 했어요.

 

농부는 부자의 마당 한 가운데에 멍하니 무너져 내려 있었습니다. 부자는 농부를 잠시 바라보았어요. 그러더니 부자는 마음을 바꾸었는지 이런 제안을 했답니다. 빚을 반으로 줄여줄테니 딸과 결혼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부자는 이제 땅마져도 꺼지는 것 같았지요.

 

절망한 농부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마음씨 고운 딸은 어두운 얼굴의 아버지를 그냥 둘 수 없었답니다. 딸은 농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계속되는 질문에 농부는 부자가 한 말을 전해주곤 한숨만 쉬었어요. 올해 걷은 쌀을 모두 부자에게 주면 겨울동안 먹을 것이 없었으니까요.


딸은 잠시 생각하더니 단호히 말했어요. 결혼을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딸을 농부는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답니다. 결국 결혼식을 하는 날이 되어 딸은 시집을 가 버렸고, 농부는 매일 매일을 눈물만 흘리며 보냈답니다. 이웃이 매일 와서 밥을 해 주며 같이 먹어주지 않았더라면 농부는 굶어 죽고 말았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농부 집 마당 한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가 자랐어요. 농부는 눈물을 마시며 자라난 나무를 보며 딸을 닮은 목상 하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아직 농부는 딸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었지요.


시간이 흘렀어요. 부자는 딸 말고 다른 여자에게 더 눈길이 가기 시작하자 딸을 쫓아버렸답니다. 갈 곳이 없어진 딸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어요. 묘하게 가슴뛰게 만드는 농부의 집 마당을 지나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선 딸은 그대로 굳어버렸어요. 거기에는 자신의 모습을 꼭 닮은 목상이 있었고 그 발치에는 끌을 쥐고 쓰러진 농부가 있었거든요. 딸은 급히 농부를 끌어안았지만 아직 따스한 농부의 몸은 숨이 없었어요. 딸은 울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도록 울고 난 딸은 목상에 입을 맞추곤 농부처럼 쓰러져 버렸지요.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밥을 해 주러 온 이웃의 눈에는 차갑게 식은 농부가 보였어요. 그리고 농부가 만들던 목상도 보았고요. 목상은 아름다웠습니다.


이웃은 농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는 목상을 가지고 장터에 갔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목상을 누군가는 살 테고, 오랜만에 집에서 쌀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확실히 목상을 들고 다닐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한번씩 돌아 볼 정도로 목상은 아름다웠어요. 이웃은 장터 한 가운데에 목상을 내려놓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목상을 두번 두드렸답니다. 장터의 모든 사람들이 돌아보았어요.


목상은 갈라졌어요. 그러더니 갈라진 표면을 따라 나무가 뱀의 허물처럼 허물어 내렸어요. 허물어 내리고 난 목상은 아름다웠어요. 그 찬란한 색에 모든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했답니다.


목상은 눈을 떴어요. 그러고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어요. 그리고 나서 목상은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춤이었어요. 너무도 아름다운 춤이었기에 사람들은 숨 쉬는 것을 잊어버렸지요. 사람들만 홀린 것이 아니었어요. 지나가던 동물들도 그 춤에 홀려 버렸답니다. 심장들은 뛰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뿌리들은 마시는 것을 잊어버렸지요. 모든 것이 고요했습니다.


춤은 부자의 집까지 계속되었어요. 춤이 지나간 자리에는 정적만 남았습니다. 언젠가는 그 정적들도 잊혀지겠지요.


그리고 춤은 영원히 이승을 헤메고 있답니다.




'아름다움이 살인무기가 될 수는 없을까'라는 망상에서 탄생한 설화(?). 미인계와 같이 아름다움이 파탄을 이끄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로 살인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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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마땅한 번역본을 잘 모르겠어서 손 대기 어려웠던 『장자』를 드디어 읽기 위해 구했다. 교수신문에서 발행하는 번역본 비평 칼럼 모음집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각주:1]에서도 추천한 오강남 해설 버전으로. 그리고 제목에 쓴 것과 같이 내용이 비어있는 책이기에(비어있다는 말은 문장 사이가 드넓다는 의미이다. 문단과 문단 사이마다 사막과 바다와 밀림이 있어 길 헤매기 딱 좋다고 표현하겠다.) 길잡이로 쓸 책도 하나 구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도 『장자』를 다루는 것들이 있어 다시 읽어보았고. 이 책이 이번에 구한 책이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 8점
강신주 지음/그린비


하나의 키워드로 『장자』를 관통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이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하여 어떻게 남과 상호작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으로 수렴한다.


이 문제의식이란건 다음과 같다. 이전에 한번 회자된 적이 있었던 『오래된 미래』[각주:2]라는 책이 있었다. 아직 세계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라다크의 삶을 소개하는 책인데, 여기서 책의 제목 '오래된 미래'란 갈수록 공허해지는 도시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그러니까 과거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책에는 다음의 일화가 나온다.


언젠가 나는 열 시간 동안이나 계속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너무 지치고 스트레스가 쌓여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그날 저녁, 내가 머물던 집 식구들에게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도고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웃고 말았다. 내가 농담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책상 앞에 편안하게 앉아서 종이 위에 펜으로 글씨를 썼던 것뿐이었다. 이마에 땀이 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것은 일이 아니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서구사회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스트레스나 지루함, 좌절감 같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후략]


-『오래된 미래』, p.188


사무실에서 문서작업을 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퇴근해 본 사람, 아니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쓰느라 곤혹을 치러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는 것이 일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다크 사람들에게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취미에 불과했다. 그들은 글을 쓰는 것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바탕이 되는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서로 경험하는 것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에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슴아픈 이별을 겪은 사람들이 간혹 하는 "나는 널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라는 말이 이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꽃을 피우고 있고, 노트북으로 이 졸문을 두드리고 있는 타자가 있으며, 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으니 우리는 "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주제가 『장자』의 중심이 됨이 이 책을 쓴 해설자의 생각이다. 남을 이해하기 위해 내면화된 선판단을[각주:3] 최대한 비워내야 하며, 이를 돕기 위해 일부러 정합적인 논리를 분쇄하는 형식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책 자체는 즐겁게 읽었으나 『장자』를 이해하는데 그렇게 많은 다양한 철학자들의 말이 필요했는지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말이란 것은 떼어놓기에 따라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필수적이지 않다면 굳이 이렇게 많은 말들을 끌어올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철학적인 논의에서는 말로 그 핵심을 전달하기 힘드므로 하나의 주제가 다양한 변주로 연주되며 응당 그래야 마땅하지만 소개하지도 않을 다양한 철학자들의 글을 인용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딱 니체나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정도로만 소개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버렸다. 제 아무리 비슷한 음악이라도 한 음악의 일부를 다른 음악에 중첩시켜 버리면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도 부록의 『장자』 연구 동향에 대해 다룬 부분은 좋았다.


다음은 이전에 구했던 책들 중 『장자』를 다룬 또 다른 책이다.


장자 교양강의 - 4점
푸페이룽 지음, 심의용 옮김/돌베개


책의 『장자』 접근은 상당히 파편화되어 있다. 그 점에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 하겠지만, 그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다.[각주:4]


강의 - 10점
신영복 지음/돌베개


이 책은 『장자』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의 한 장에서 해설하고 있기에 포함시켰다.(평점은 책 전체에 대한 것이다.) 이 책 역시 하나의 키워드, '반성'으로 『장자』를 꿰뚫고 있다.


'반성'이라는 핵심어가 선택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 대부분을 사 읽는 사람으로 평한다면 그 분의 주제의식은 '관계의 회복'에 있다. 모든 글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아닌 사회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런 그에게 개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 『장자』는 하나의 온전한 주제라기보다는 반동으로 읽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인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회를 해체시켜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도록 만들자는 것을 주제의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자』는 성경과 같이 따라야 할 책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앞서 소개한 『오래된 미래』와 같이 돌아보도록 만드는 책으로 그려진다.




얼마 전 우화를 하나 올렸었다. 바벨의 반역가. 영역하면 Rebel of Babel이, 살짝 잘못 읽으면 바벨의 번역가가 된다. 신이 바벨의 사람들을 다른 언어로 흩어 버렸으니 다른 언어들을 이어주는 이들은 반역가일 터이다.


이전에 '창조적 오독'이라는 구를 듣고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다. 칸트의 말이 이렇느니 저렇느니 언쟁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 영향인지, 필자는 책은 저자와 독립된 개체로 분류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 권의 책이라도 그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주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책은 저자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전달할 의무가 없다. 장자도 언급했듯, 책은 성인(聖人)이 남긴 찌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독일의 훔볼트대학Humboldt Universität zu Berlin의 본관에는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Die P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aber darauf an, sie zu verändern.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세계)를 바꾸는 것 다음의 일이다.[각주:5]


칼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Thesen über Feuerbach의 마지막 테제이다. 괜찮은 『장자』 번역본을 구하던 중 간혹 "장자가 실제 말한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라며 그 책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경우를 보았다. 내 생각은 그렇다. 중요한 것은 장자가 하고자 했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장자의 말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고. 장자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매달린다면, 성인이 남긴 찌거기에 매달리는 것과 다른 것이 무어란 말인가.

  1. 나에겐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자료집의 성격이 더 강한 편이다. [본문으로]
  2. '아이들은 자라기를 희구하고 어른들은 어릴적을 회구한다'는 제목으로 서평을 쓰다가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도 산업혁명 이후 등장하는 이른바 '자연예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느꼈던지라. 읽을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될 책은 아니나 세계화와 거대도시화에 대한 반발에서 쓰인 책임은 분명하다. [본문으로]
  3.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뜻에 오염된 '선입견'이라는 단어 대신 사용하였다. 책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4. 이 책 역시 서평을 쓰다 말았다. 필자가 신영복 선생님의 영향을 꽤 많이 받은지라 이것 저것 쓰기는 많이 썼는데, 정작 중요한 책 설명이 없어서 아직 비공개이다. 책 자체는 일독을 권한다. [본문으로]
  5. 돌아다니는 번역이 조금씩 마음에 안 들어서 각각을 참고해가며 직접 번역해 보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2012. 8. 30. 23:46 Writer/Short

바벨의 반역가

하늘을 오르려던 사람들이 흩어지고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흔적만 남은 탑 앞에는 한 남자의 터전이 있는데, 이 남자의 눈은 길을 지나간 그림자의 흔적을 알아볼 정도로 날카로왔다.


어느 날 아라지의 한 연금술사가 남자를 찾아왔다. 이 연금술사는 작은 에메랄드 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뱀들이 줄을 이루어 꼬리를 물며 춤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에메랄드 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에메랄드 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아비두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금술사는 남자의 거처에 해가 다섯번 질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금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연금술사는 작은 금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연금술사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자이번의 한 뱃사람이 남자를 찾아왔다. 이 뱃사람은 작은 금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자그마한 사람과 새들의 그림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뱃사람은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금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금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아라지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뱃사람은 남자의 거처에 안식일이 다섯번 지날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은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뱃사람은 방패만한 은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뱃사람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기탈저의 한 사냥꾼이 남자를 찾아왔다. 이 사냥꾼은 방패만한 은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부러진 막대기들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사냥꾼은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은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은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자이번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냥꾼은 남자의 거처에 달이 다섯번 날개짓을 할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동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사냥꾼은 손가락만큼의 동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사냥꾼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아비두의 한 현자가 남자를 찾아왔다. 이 현자는 손가락만큼의 동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동판들 위에는 자그마한 원과 세모들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현자는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동판들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동판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기탈저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현자는 남자의 거처에 해가 다섯번 돌아올 동안 머무르며 돌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현자는 다섯사람의 손가락만큼의 돌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현자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자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흔적만 남은 탑을 올랐다. 남자의 한숨은 폭풍이 되어 탑의 남은 흔적을 지워버렸고, 그 이후 그 남자를 본 사람이 없었다.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년이란 시간을 잘만 써 놓고 이상한 시간 단위 고안해 내느라 고생했다.


자이번의 뱃사람과 기탈저의 사냥꾼이 익숙하다면 기분탓일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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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얼마 전부터 보기 시작한 입자물리 기초서에 페르미 황금률 2번(Fermi's Golden rule 2)이 나오길레 한번 증명해볼까 하다가 계속 한 부분에서 막히길레 Sakurai의 Modern QM을 봤다. 증명 없이 나오는 등식(?) 하나가 있길레 증명해봤다.


$$\int_{-\infty}^\infty \frac{\sin^2(xt)}{x^2} dx=\pi t$$


방법은 당연하게도(?) 복소변수를 이용. 양자물리 시간에 대충 배우고 공학수학 시간에 조금 더 배운 것 밖에 없는데 어떻게든 써 먹고 있다. 복소변수함수론을 한번 듣긴 들어야 할텐데...


먼저 sine 함수를 지수로 바꾼다. 그 유명한(?) 오일러 공식이 필요하다.


$$\sin y = \frac1{2i}\left(e^{iy}-e^{-iy}\right)$$


이러면 대충 다음 값이 나온다.


$$\frac{\sin^2(xt)}{x^2}= \frac{(1-e^{2ixt})+(1-e^{-2ixt})}{4x^2}$$


괄호는 편의상 친 것. 저 괄호를 이용해 분수를 둘로 나눈다. 적분 contour가 서로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작정 나누어도 되는지를 모르겠네. 어쨌든 이러면 답이 나오기는 한다.


$$\frac{\sin^2(xt)}{x^2}= \frac{1-e^{2ixt}}{4x^2}+\frac{1-e^{-2ixt}}{4x^2}$$


x를 z로 바꾸고, 앞의 것은 위쪽으로 닫힌 반원으로, 뒤의 것은 아래로 닫힌 반원으로 적분한다. residue는 원점에 있으니 이 부분은 포함시킨다. 앞의 항을 로랑전개(Laurent series)해보면 residue를 쉽게 구할 수 있다.


$$1-e^{2izt}=-2izt+2z^2t^2+\cdots \\ \therefore \frac{1-e^{2izt}}{4z^2}=-\frac{it}{2z}+\cdots$$


제대로 써 봅시다. C+는 위쪽 반원 반시계 방향, C-는 아래쪽 반원 시계방향.


$$\int_{-\infty}^\infty \frac{\sin^2(xt)}{x^2} dx=\int_{-\infty}^\infty \frac{1-e^{2ixt}}{4x^2}+\frac{1-e^{-2ixt}}{4x^2} dx \\=\int_{\mathbf{C}^+}\frac{1-e^{2izt}}{4z^2}dz+\int_{\mathbf{C}^-}\frac{1-e^{-2izt}}{4z^2} dz\\=2\pi i\left(\frac{-it}2\right) -2\pi i\left(\frac{it}2\right)=2\pi t$$


마지막 줄의 괄호 안은 원점에서의 residue. 값이 두배가 나왔는데 이건 특이점이 적분하는 구간 위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실제 값은 위 값의 절반.[각주:1] QED!


Sakurai 책에서는 맨 처음의 식이 이렇게 나와있다.


$$\lim_{t \to \infty} \frac{\sin^2(xt)}{\pi t x^2}=\delta(x)$$




2012.08.24 수정

찾아보니 절반으로 나누는 이유는 평균내려는 것이 아니라 '반원'을 따라 적분하기 때문. 복소함수 교재 찾아봤더니 조금 다른 이유로 절반으로 만들더라. 그리고 그 책에서는 함수(sine)를 나누기보다는 부분적인 함수(exp.)를 가지고 와서 원래 함수로 만들었다.




  1. 반으로 나누는 것은 특이점을 포함하는 contour와 특이점이 없는 contour 두 적분을 합쳐 평균내기 때문에 그렇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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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그렇게 난, 들어버렸다.


"그래"

눈물이 나왔다.

다시 들려주더니 뒤돈다.

라디오 램프의 루즈한 리듬에

마치 마법처럼 모든 만상이 멈춘다.

부슬이는 비는 바람에 비명이고

서서히 식어가던 사랑은

이별이 이었다.

조용히.


그렇게 난, 들어버렸다.



말장난 말장난 -_-ㅋ

Posted by 덱스터

깨어 꿈을 꾼 기억이 있는가?


간혹 게으름에 굴복해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깨어서 꿈을 꾸게 된다. 정신은 더 없이 멀쩡하지만 육신은 꿈 속을 헤맨다. 육신을 원래의 세계로 돌려놓는 것은 핸드폰 알람이거나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독촉 정도. 그러고 보니 요즘 너무 게을러졌군.[각주:1]


뜬금없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아직은 꼬리가 없는 이 소설이 그와 닮았기 때문이다. '부활의 왼손'이라는 별칭의 신비한 능력을 가진 레이즈와 그와 얽히게 된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면이 점차 융해되어 사라지는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가슴은 그 기묘한 감정의 여운에 한동안 헤맨다.


소설의 독특한 구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는 3장 사전이다. 이미 말한 적 있듯 본인은 구상하기만 하는 소설이 꽤 많다. 그 중 하나가 「어느 역사학자의 책상」이라는 제목을 붙일 예정이었던 글인데, 이 글은 신문기사 스크랩과 녹취록 등 짧은 독립적인 글들로부터 구현되는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만 했었다. 가제처럼 어느 역사학자의 책상을 훔쳐보는 듯 한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갑각 나비』의 3장은 사전의 독립적인 항목들을 첫 장부터 끝까지 읽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필자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글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꽤 커다란 충격이었다.


3장의 경우 그 실험적인 구성으로 소설의 기묘함이 더욱 두드러지나 이 글의 기묘함은 그 구성보다는 그 주제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갑각 나비』의 주제는 원, 정확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소설의 각 장은 크건 작건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각 장에서 그리던 호가 처음 시작한 위치로 돌아올 때가 되었을 때, 그 호는 뒤집혀 원점과 결합한다. 예컨데 이런 것이다. 첫 장에서 알드레는 잃어버린 왼손을 다시 얻으며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원점에서 그는 '솟는 것이 있으면 가라앉는 것도 있다'는 말처럼 무언가 다른 것을 잃어버렸다. 다른 원들은 독자께서 직접 읽으며 찾으시길 바란다.


본인은 이전에 짧은 단상을 적으며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 아는가? 옛 사람들은 원을 완벽한 도형, 즉 가장 아름다운 도형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원의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 소설은 13장까지 나와 있다. 12장과 13장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어서인지 분위기가 다소 다른데, 13장은 설명이 늘어진다는 느낌이다. 13장이 압도적으로 길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 늘어지는 설명이 그 어떤 장들보다도 더욱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었다. 작가의 10년 전의 글을 더럽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기우로 치부해도 좋을 것이다.


http://www.drwk.com/serial/frame.php?idx=12908&bidx=1000024

  1. 물론 헛소리다. 자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개운하게 깨는 것일 뿐.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2012. 8. 10. 08:00 Interests/Music

한판의 circus!

얼마 전 구글링을 하다 이 동영상을 발견했다.




슈스케 3 화제의 인물 김예림 양의 노래. 아직 군 복무중이던 때 일이라 생활관을 왔다갔다 하면서 가끔 봤는데 사이렌이 실존했다면 이런 목소리 아니었을까 싶은 마성의 목소리를 참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원곡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그 당시에 느꼈던 '마성'은 느끼기가 힘드네. 원곡은 W&Whale의 최신 앨범인 EP - Circussss(20110706)에 포함된 노래.[각주:1]


더블유 앤 웨일 (W & Whale) - CIRCUSSSS [EP]
더블유 앤 웨일 (W&Whale) 노래/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개인의 취향차인지는 모르겠는데 원곡이 좀 더 밑으로 깔리면서 빨아들이는 느낌이 더 강한 것 같다. 김예림양이 부른 버전은 무언가 보컬이 뜨는 느낌.


이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가 좋다.

피할 수 없다면 그저 즐길 뿐

언젠가 끝없이 떨어진다 해도

그래. 인생이란 한판의 Circus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우주 속 작은 티끌 위에서 아둥바둥 살고 있는거다. 조금은 힘을 빼고, 조금은 더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한판의 circus처럼.

  1. 이제 1년 지났으니 한 2년은 기다려야 새 앨범 나오려나 ㅠ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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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이전에 꽤나 우울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다. 그 때를 묘사하는데 썼던 표현이 "벚꽃이 흩날리는 무채색의 풍경"이었으니 봄이었나 보다. 세상이 그처럼 대채로울 수 없을 때이지만 이상하게도 흑백영화 속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괴로워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 추천받은 책이 니체였고, 그 이후로 니체 의 책을 자주 찾아 읽게 되었다. 세계에 빛이 돌아온 것은 물론이다.


글을 오래 안 쓴 블로그에 다시 활기를 넣기 위해 내가 읽었던 니체와 관련된 책들에 대한 비교글을 작성하기로 했다. 이미 쓰던 글은 많이 있지만(쓰지 않은 서평이 특히 많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속담과 이 상황이 무슨 상관인지는 제쳐 두고, 책의 바다로 떠나보자.


1.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이진우 지음/책세상


이 책은 니체의 사상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여행기에 가깝다. 니체가 살았던 곳들을 여행하며 니체의 사상이 어떻게 자라났을까 따라가보는 책인데, 니체의 사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깊은 설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담 없이 읽기에 좋다.


2. 『명랑철학』

명랑철학
이수영 지음/동녘


이런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덮어버렸다. 저자가 니체의 사상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설명하고 있는지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책을 표지로 평가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토록 우상을 찾아 헤매는 인간을 비판했던 니체가 이 책에서 우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불편한 느낌 때문에 몇 장을 읽다가 덮어버리고 말았다.


3.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그린비


이 글을 쓸 동기를 마련해준 책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니체의 사상에 제일 가깝기도 하고, 또 책 자체가 매우 쉽게 쓰여진 편이기 때문에 니체를 한번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은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 싶다. 제목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의 새로운 번역본같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을 망설였지만 알고 보니 번역본이 아닌 니체 사상 해설집이었다. 잘 모르고 있던 부분에 대한 설명도 있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내용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해설해 주어서 책 값이 아깝지 않았다.[각주:1]


위의 세 가지가 내가 읽은 책들이다. 사실 책방에 나와 있는 책들 중 니체의 사상에 대해 다룬 책들은 매우 다양하고, 내가 읽은 니체와 관련된 책들은 니체 저작의 번역본을 포함한다 할지라도 매우 소수이다. 니체에 대한 접근은 다들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니체를 반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니체를 민주주의적이었다고 옹호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니체가 실제로 했던 생각을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어디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모두들 그의 책을 어느 정도 오독하고 있다. 그리고 책이 저자의 펜 끝을 떠난 순간 독립적인 삶을 맞이한다고 믿는지라 그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기로 했으면, 어느 사상을 비판하는 책을 읽기보다는 옹호하는 것을 읽어서 자기의 생각을 다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1. 정정. 나는 원래 책 값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아니니 나무가 아깝지 않았다고 해야 맞는듯.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필!승!

신!고!합니다.

병장 김정욱은 2012년 8월 2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전역한지 좀 되었습니다. 무려 사흘이나 되었네요. 이제 군에 있어서 버려두었던 블로그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할 듯 싶습니다. 그런데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인터넷이 많이 변했는지 블로그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네요. 단타로 치고 빠지는 그런 글들에 길들여진 모양입니다. 군대에서 시간은 생명인 것이랑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간 한 것들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체중은 거의 그대로(훈련소때 빠졌다가 엄청 쪘다가[각주:1] 원래대로 돌아왔네요)이지만 근육이 많이 붙었습니다. 요즘은 팔굽혀펴기를 한손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체력이 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공부는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Reif의 Fundamentals of Statistical and Thermal Physics를 간단하게 정독했고, Landau의 Classical Field Theory의 일부분만 공부한 정도였으니까요. 전자기학에서 파동과 방사에 관련된 부분은 못 봤고(결국 입대 전 공부한 것을 복습한 정도), 일반상대론 부분은 빡세게 보긴 했지만 전자기학에서 안 본 파동과 방사 부분 때문에 완전히 보진 못했습니다. 다만 일반상대론 공부하면서 갖가지 전개를 이용해서 수치적으로 풀어보거나 물리량을 직접 미분하여 해답을 구하는 노가다를 해 본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노트 두 권이 이 책 공부하는 동안 빽빽하게 채워졌었네요. 아, 물론 양자장론을 조금 보기는 했지만 그건 강의노트만 본 것이라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기는 힘들죠.


단편소설도 두어 편 정도 써 보고, 장편을 기획해놓은 것이 있기는 한데 이 녀석은 좀 더 놔둘 생각입니다. 지금 구상한 것은 하늘치 유적처럼 군데군데 빈 부분이 많거든요. 단편은 언젠가 공개한다고 단언을 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귀찮음 때문에 어디 굴러다니는 공책에서 발효되고 있는 듯 싶습니다. 제목은 「인큐베이터」로 뫼비우스의 띠에서 영감을 얻은 것과 「플랑크의 상자」로 양자역학의 해석과 관련된 것입니다. 전자는 확실히 쓰긴 했는데 블로그에 옮겨적으며 교정을 보다가 중간에 그만둔 경우이고, 후자는 90% 완성되었는데 쓰다가 말았네요. 어차피 복학할 때 까지 남는게 시간일듯 싶으니 어떻게든 해 보려 합니다.


참, 그러고보니 졸업논문에 쓸 만한 간단한 문제와 해답까지 완성해 놓았네요.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 자기단극자에 관련된 문제인데,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영제국의 대통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것과 차이가 거의 없는 것 같거든요.


제대하고 나니 언젠가 에릭 호퍼의 글에서 읽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나치를 지지했던 청년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하네요. "자유로부터 자유를". 자유가 얹어주는 짐을 견딜 수 없었던 옛 청년들의 절규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흔히 전역을 영원한 휴가라 부르던데, 영원하다는 말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이니까요.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든 스스로 짊어져야만 하겠지요.


자유는 날개입니다. 그것이 비상하는 매의 날개냐, 아니면 달리는 타조의 짐짝이냐는 두고 봐야겠지요.

  1. 자대 전입한 직후 스트레스 때문인지 폭식 좀 했더라지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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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자랑은 아니지만 필기구에 민감한 편이다. 볼펜은 부드럽지 못하게 넘어가는 특징 때문에 노트 필기시 기피하는 편. 물론 부대 안에서는 펜 여러개를 들고 다니느니 다색펜 하나가 더 편하기 때문에 일반상대론 공부할 때에는 zebra clip-on 4색으로 했었다. 샤프는 uni 알파겔. zebra airfit보다 부드러운 손잡이 때문에 좋아한다. 좀 많이 쓰다보면 사람 피부처럼 부들부들(..)해지며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샤프심은 거의 항상 2B를 쓴다. HB만 되어도 너무 딱딱해서 안 좋아한다. 예전에 2H심은 어떻게 썼었는지 미스테리일 정도.


훈련소에서 교육우등으로 만년필을 받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Parker의 벡터인데다가 F촉이라서 이전에 쓰던 펜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두꺼워 좌절했다. 그래서 한 일주일 쓰고 그대로 봉인. 어느 정도로 두꺼운가 하면, 0.7mm 잉크펜으로 쓰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봉인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1주일밖에 안 쓴 카트리지의 잉크가 전부 말라버렸다. OTL


물론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 붉은 계열 색상이라는 것도 안 쓴데 한 몫 했을듯.

"증 기술학교장 교육우등"은 자랑일까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던 라미 만년필이 알라딘 특가로 싸게 올라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 결재완료. 특가는 29,900이었지만 이리저리 하다 보니 결국 결재가는 27,460.


Lamy Safari Special edition 2012 애플그린 만년필(한정판)
/Lamy


그래서 오늘 도착한 펜. 자주 쓰던 펜들과 비교해 봤다.


맨 위는 시그노. 예전엔 제일 선호하는 펜이었지만 근래엔 마하펜을 제일 많이 썼다.

마지막은 이번에 받은 라미 사파리. 악필은 죄송합니다 ㅠㅠ


집에 굴러다니던 A4용지 하나를 집고 자주 쓰던 펜들을 써 봤다. 맨 위는 Uniball 시그노. 개인적으로는 하이텤보다 시그노를 선호하는데, 하이텤은 촉이 너무 약한데다가 무언가 긁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하지만 시그노는 가격이 비슷하면서 양이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 함정(...) 중고등학교때와 대학 1학년때 까지는 시그노를 제일 많이 썼던 것 같다. 아직도 극세필이 필요하면 시그노를 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러스트를 펜으로 마무리할 때. 그래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중간에 있는 것은 모닝글로리의 희대의 역작 마하펜. 최신기종인 Mach 3. 필기감이 엄청 부드러워서 좋아한다. 두께는 물론 시그노보다 두껍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펜. 가격도 싸고 용량도 많아서 좋다. 다만 물에 취약하다는 것이 단점. 필기하다가 잠깐 정줄놓 상태로 있으면 잉크가 번지는 것도 단점이다. 대학 2학년 때 튜터링을 하면서 강의노트 만들 때 이 펜을 자주 썼었다. 노트필기할 때에는 그림그려야 할 일이 많아서 계속 시그노를 쓴 듯(...). 물론 과목에 따라 연습문제를 풀거나 할 때는 얄짤없이 마하펜.


마지막은 라미 사파리. 2012 특별판인 녹색으로 샀다. 이제 명함주머니에 차고 다니면 되겠네(주로 무채색 계열 셔츠를 입으니까 포인트 악세사리가 되는건가) 일단은 들어있던 파란 잉크 카트리지를 박아보았다. 파란색이라 좀 연하게 나오는게 아쉽지만 EF(Extra Fine)촉이라 제법 얇다. 바로 위의 마하펜과 비슷한 수준. 강의노트 만들 일 있으면 많이 쓸 듯. 만년필이 대체적으로 두꺼운 편이라고는 하는데 EF정도 되면 얇은 잉크펜 수준으로 쓸 수 있는 모양이다. 첫 만년필 치고는 만족.


집을 뒤적뒤적 하다 보니 몽블랑(!)도 발견했는데[각주:1], 몽블랑은 아무래도 두껍게 나오는 편이라고 하니 내가 쓸 일은 없을 듯 싶다. 그것보다 학생한테 몽블랑은 사치라고.

  1. 아버지께서 선물받은 것이라고 한다. 마이스터튁이긴 한데 정확한 모델명은 모르겠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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