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에 해당되는 글 89건

  1. 2016.01.02 The T Test
  2. 2014.04.01 만우절의 유래
  3. 2013.12.17 [초고] 그들에게도 입을 열 자유를 주어라
  4. 2013.12.16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싶다면
  5. 2013.08.20 기승전결 버스
  6. 2013.08.13 Stars
  7. 2013.07.27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하여
  8. 2013.05.18 518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청소년의 현실
  9. 2013.03.13 구글을 하나의 점으로 보기에는 조금 크지 않은가 싶은데
  10. 2013.03.11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문명
  11. 2013.01.22 한국의 서비스문화산업의 미래전략?
  12. 2012.12.28 경제학 용어 사전
  13. 2012.09.09 忘生舞
  14. 2012.08.30 바벨의 반역가
  15. 2012.08.18 그렇게 난, 들어버렸다.
  16. 2011.10.09 말을 타려면 말과 가까워지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2)
  17. 2011.08.28 한글 본문, 영어 제목
  18. 2011.07.20 한 수업시간의 꿈
  19. 2011.06.04 Luna venator
  20. 2010.08.11 그 많은 뚜껑들은 누가 다 끼웠을까 (3)

The T Test

Writer/Short 2016.01.02 21:05

예전에 작문 연습한다고 썼던 짧은 단편. 문법 확인이 귀찮은 관계로 그냥 올립니다(...)


The T Test.pdf


아래는 간단한 번역본(...)




A: 그래서, 최소복잡도가 도대체 뭐야?


B: 가-영이야. 튜링테스트를 통과할 알고리즘을 코딩할 수 있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하는 알고리즘의 복잡도지.


A: ...미안, 다시 말해줄래?


C: (한숨) 내가 설명하지. 튜링테스트가 뭔지는 아마 알고 있을거야.


A: 당연하지.


C: 자, 튜링테스트를 속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어. 챗봇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두고 지능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최소복잡도란 개념은 여기에서 등장하는 거야. 최소복잡도는 알고리즘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하면서 튜링테스트를 통과할 알고리즘을 쓸 수 있을 것을 요구하는 거지.


A: 아..


C: 그런데 가는 뭐야?


B: 한국어 문자의 첫 글자이던가 그럴껄?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개념을 만든 사람이 한국인이었을거야.


A: 그러니까 가-일, 가-이 등등이 있다는 말이로군. 그거, 칸토어의 악취미라고.


게오르그 칸토어는 무한집합의 기수를 나타내기 위해 히브리 문자의 첫 글자인 알레프를 이용한 독일 수학자이다.


B: 뭐, 칸토어의 알레프수를 닮긴 했지.


A: 어쨌든, 숫자들은 어떻게 되어있는 거야?


B: 가-영은 최소복잡도를 말해. 가-일은 튜링테스트를 통과하면서 가-영의 복잡도를 가진 알고리즘을 쓸 수 있는 알고리즘의 복잡도이지. 가-이는 가-일을 쓰고, 가-삼은 가-이를 쓰고, 뭐 이런 식이야. 대충 알아 듣겠지?


A: 일단은. 그리고 나한테 최소복잡도의 상한을 물어보는 거지?


B: 그래. 좋은 아이디어 없어?


A: 아이디어가 있긴 한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네. 아직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알고리즘이 단 하나도 없잖아?


C: 뭐, 그 점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져보자고.


A: 그건 신조차 가-영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소리라고. 무슨 의미가 있는데?


B: 무슨 의미가 있냐면, 우리가 무엇이라도 퍼블리시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지.


일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A: 동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유감인걸.


C: 그래서, 네 아이디어는 뭐야?


A: '희망을 가져보자'고 말했으니, 우선은 그런 알고리즘이 천 년 정도 안에는 만들어질 거라고 가정해 보자고.


B: 인류의 힘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긴 한데, 계속 해봐.


A: 자, 인류는 대충 십만 년 정도 지구 위에 있었으니, 천 년을 더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십만 년을 알고리즘의 러닝타임으로 잡자고.


C: 뭐 그럴듯 하긴 한데, 그래서?


A: 이 숫자를 가지고 계산량에 대한 상한을 예측할 수 있다는 거야.


정적이 설명을 요구했다.


A: 브레머만 한계(Bremermann limit)이란 것이 있어. 이론적이긴 하지만, 계산 속도에 대한 물리적인 한계지. 십의 오십 승 bps 정도 될거야.


C: 엄청 큰데?


A: 그렇지. 어쨌든 이 한계를 지구에 적용하면 십의 칠십오 승 bps 정도가 된다고.


B: 잠깐, 오십 승이라고 하지 않았어?


A: 아, 키로그람 당 오십.


B: 그러니까 컴퓨터의 질량에 따라 달라진다 이거지?


A: 그래. 어쨌든, 십만 년의 러닝타임을 적용하면 지구에서 이루어진 계산이라면 그게 무슨 알고리즘이든 간에 십의 팔십팔 승을 넘는 복잡도를 가질 수는 없다는 의미가 되. 이건 최소복잡도에 대한 가장 보수적인 상한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걸 만들 수 있다면 말이야.


C: 그러면 우리가 실제로 계산한 것은 최대복잡도인 셈이네.


A: 뭐, 그렇지.


B: 질문이 있는데, 이 한계는 모든 컴퓨터에 적용되는 거야 아니면 양자컴퓨터에만 적용되는 거야?


A: 아마 모든 컴퓨터에 적용될 거야. 물리학 학위를 가진 사람한테 물어봐.


C: 물리학 커리큘럼에 그런 내용은 안 들어가 있다고. 어쨌든, 너무 거친 예측치야. 논문에 쓸 수 있을만한 내용이 될 지 확신이 안 서네.


A: 나도 논문보다는 픽션에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 숫자를 어떻게든 줄일 수 있겠지만, 육십 이하로 내리는 것은 힘들 것 같은데.


B: 잠깐만, 언제 팔십팔이 육십이 된거야?


A: 질량을 인간 두뇌의 무게로 잡고, 러닝타임을 기대수명으로 잡아. 그러면 대충 십의 십 승이 되는데, 여기에 오십을 더하면 육십이 되지.


C: 아직도 너무 큰데. 그게 최선의 예측치란 말이지?


A: 지금으로서는. 숫자를 좀 더 줄일 수도 있겠지만 -- 예컨대 사십이 정도라던가 말이야 --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는데.


B: 그래. 그러면 이 쯤 해서 해산하자고.


A: 해산.


C: 해산.


첫 목소리가 로그아웃했다.


B: 그래서, 알고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C: 누구나 튜링테스트에 통과했다고 동의할 거라 보는데. 비문법적인 말을 하도록 만드는 데 고생 좀 했겠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비문법적으로 말한다는 것을 까먹곤 하지.


B: 고마워. 네 도움이 큰 역할을 했어.


C: 내가 딱히 한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B: 시냅스에 대해 알려준 것은 너였잖아. 특히 억제성 시냅스들. 내가 이 아이디어들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개선했거든.


C: 그래서 어떻게 개선한건데?


B: 마르코프 체인 접근법은 버리고 파인만 합으로 바꿨어. 안정성 문제가 좀 있긴 했지만.


C: 호, 복소수 확률을 도입했단 말이지? 그런 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


B: 음의 확률을 도입하긴 했지만 복소수는 아니야. 그런게 존재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겠는데.


C: 뭐, 파인만의 원래 적분은 확률진폭이지 확률을 다룬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내 기억이 도움이 되었어?


B: 아..니, 그다지. 내가 이미 집어넣은 기억들과 충돌하지 않는 기억 단위들만 썼거든. 결국 십분의 일만 썼어.


C: 생각해보면 네가 너만의 기억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꽤 재미있지 않아? 기억이 스스로 모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난 네 성격이 내 성격과 꽤 다르다는 것이 아직도 신기하다고.


B: 계속 네가 날 코딩했다고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돼. 가끔씩 짜증나니까 말이야.


C: 아 미안. 무례하게 들렸다면 사과하지.


B: 신경쓰지 마. 그런데 이게 가-0에 대한 실제 계산이 될까?


C: 그럼. 그렇게 생각 안해?


B: 말로는 잘 설명하기 힘든데, 테스트 자체가 너무 조잡하다고 해야 하나.


C: 설명해봐.


두 번째 목소리가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다소간의 시간이 흘렀다.


B: 튜링테스트는 지성을 시험하기 위한 시험이잖아.


C: 뭐, 그렇지.


B: 튜링테스트의 보이지 않는 가정은 대화가 근본적으로 지능적인 행위라는 것이라고.


C: 지적인이겠지. 그래서?


B: 윽, 지적인. 어쨌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지능의 표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지. 실제 지능의 표현은 대화의 상상일 수도 있다고.


C: 상상?


B: 뭐, 대화를 시뮬레이트 하는 것이라 해야겠지. 논리적이고 의미가 있는 구조를 갖는 가상의 대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하는거야. 단순히 적절한 반응을 하도록 구성된 챗봇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


C: 우리 논문의 끝에 덧붙일 수 있을법한 좋은 생각이긴 한데, 시간이 없어. 데드라인이 오 분 남았다고.


B: 어쩔 수 없네. 그냥 초고대로 제출하자고. 숫자는 제대로 확인했지?


C: 확인했어. 그리고 학술논문의 저자가 되는 첫 알고리즘이 되는 것을 축하한다.


B: 고마워. 컨퍼런스에서 보지.


나는 시뮬레이션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전 이것이 가-영이 가-일과 같다는 구성적인 증명이라고 보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알고리즘의 최소성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질 않는데. 이 알고리즘이 하한은 만족하고 있나?"


"가-영의 하한 말씀이시죠? 그건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는데요."


이런. 내 졸업은 아직 먼 모양이다.


"어찌되었건 네 시뮬레이션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보편성 가설이 맞을 것 같군"


"처음부터 알고리즘을 다시 쓰는 수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말에 동의했을 거예요."


"하지만 알고리즘의 길이가 거의 변하지 않았잖아? 좀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은가?"


"불가능해요. 가-영을 가-일로 개선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꿈에도 몰랐죠."


"하지만 졸업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지. 아, 약속에 늦었으니 나는 먼저 가 보겠네."


"그러면 내일 뵙겠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연구실을 떠났다. 며칠 밤을 샜더니 기진맥진해 버렸으니 낮잠을 잘 만한 곳을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무관심하게 반응했으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과로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시뮬레이션의 끝. 새 시뮬레이션을 시작하려면 새 키워드를 입력하십시오. (대화 생성기 ver. 0.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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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의 유래

Writer 2014.04.01 01:47

책 『사서삼경』은 만우절의 유래로 다음의 일화를 들고 있다.


먼 옛날, 세계는 신통한 요(堯) 임금의 통치 아래 태평성대를 맞이하였다. 어느날, 요 임금은 자신의 거북이 등껍질로 점을 쳐 보고는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요 임금은 천리안으로 자신의 자리를 이어 세계를 슬기롭게 통치할 후계자를 찾았고, 그 후계자로 허유(許由)라는 은자를 택하여 세계를 맡아달라 부탁하였다. 그러나 허유는 세계를 받기를 거부하였고,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근처의 냇가에서 귀를 씼었다. 허유가 귀를 씼을 동안 냇가의 반대편에서는 소부(巢父)라는 사람이 자신의 소 만우(萬牛)에게 물을 먹이다가 허유에게 귀를 씼는 이유를 듣고는 이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 하여 만우를 끌고 더욱 상류로 올라갔다.


오랜 기간 소부와 같이 살았던 소 만우는 신통력을 얻었기에 말을 할 줄 알았다. 만우는 상류의 깨끗한 물을 마셨어도 입 안의 불쾌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고, 이를 소부에게 일러 입을 헹구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만우를 아꼈던 소부는 화타(華陀)에게 물어 만우의 입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을 물었다. 화타는 더러운 소리를 씼은 물을 마셔 더러워진 입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바른 소리를 씼은 물을 마셔 입 안을 정결히 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씼은 물을 마셔 그 기운을 잡아두어야 한다고 답하였다.


소부는 『도덕경』을 낭독하여 씼은 물로 만우의 입을 정결히 하였으나, 『산해경』을 씼은 물은 만우의 입에 그 기운을 잡아두기 부족하였다. 소부는 그리하여 세계의 곳곳을 누비며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였고, 수집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택리지』라 이름지었다. 만우는 『택리지』를 씼은 물을 마시고 나서 입안의 불쾌한 기운이 사라졌다.


소부가 온갖 기이한 이야기들을 모았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소부에게 찾아와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달라 부탁하였다. 지친 소부는 자신이 지은 책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사람들은 소부가 모은 온갖 기이한 이야기들에 매혹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소부가 만우를 위해 지은 책이기에 이 책이 지어진 날을 만우절이라 기념하며 온갖 기이한 이야기를 나누어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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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만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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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초고. 더 다듬을 예정. 비평 환영합니다.

마지막 두 문단을 좀 더 매끄럽게 이을 필요가 있을 듯.




약간은 내 동생에게 미안한 이야기인데, 내 동생은 나보다 말을 늦게 배웠다고 한다. 아기들은 말을 할 때 바로 "colou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ly"와 같은 문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아기들은 옹알이를 하는 법을, 그 다음에는 간단한 단어를 외치는 법을, 이후에는 단어 두어 개를 조합해 생각을 전달하는 법을 배운 뒤에라야 완전한 문장을 말하고 추상적인 생각을 하는 법을 익힌다. 내 동생이 나보다 늦게 말을 익힌 이유는 간단하다. 철없는 어린 시절의 나는 두어 단어씩 겨우 겨우 말을 하던 동생에게 제대로 된 말을 하라고 윽박지르곤 했는데, 그래서 내 동생은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기도 전에 위축되곤 했던 것이다. 부모님께 나도 그렇게 문장 하나 제대로 구성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지적을 들은 뒤에야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입만 살아 자주 대들어 골치를 썩이는 동생에게 고마울 뿐이다.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중등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까지 퍼진 모양이다.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이야 성인으로 취급받으니 어떤 말을 하든지 학교 총장이 나서서 그 입을 막으려 하지는 않지만(물론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중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른 모양이다. 내 정보통이 유난히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유난히 많은 중등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였다는 이유 하나로 교장실에 불려간다는 소식이 조금씩 들려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중고등학교의 교장들은 왜 학생들이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가장 간편한 설명은 정권에서 교육부를 통해 그 학생들의 입을 막으라고 공문을 내렸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권이 그렇게 찌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발짝 물러나면 각 학교의 교장들이 공문이 내려오기도 전에 미리 몸을 사린다는 설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 정권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학습된) 자발적인 복종은 절대군주의 통치방식이다. 사람들이 절대군주제 하의 신민과 같이 행동하기 시작했다면 이것은 현 정권의 소통 방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위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음모론이다. 아마 학생들이 백지 전지에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의 장학사가 되기 위한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하는 교장의 이익관계가 개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의 대입 성적에 따라 평가받는다. 이것은 교장도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피말리는 수능성적 경쟁구도에서는 전지 하나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느라 풀지 않은 연습문제 하나가 수능 당일의 틀린 문제 하나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장 입장에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수능 문제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에 학생이 딴짓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할 충분한 이익관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돌아와서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자.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방면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왜 학생들이 선동당했다며 입을 막고 싶어하는 것일까? 물론 사람들이 드는 08년의 여름에 대한 지적이 옳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광우병이 공기중으로도 전파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정설인 냥 퍼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물어보자. 사람들이 옳지 않은 말을 한다고 그 입을 막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미국 대학의 토론식 수업과 자유롭게 질문이 오가는 분위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누군가가 헛소리를 하고 있어도 사람들이 그 헛소리를 차분하게 들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중학교 시절 장학사가 들어오는 수업에서는 교사들이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미리 질문할 거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입을 맞췄던 기억이 난다.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에게는 침묵할 권리만 주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교사들이 진도 나가야 한다는 이유로 학생의 질문이 헛소리라는 판단이 드는 순간부터 그 질문을 묵살한다. 반대로 말한다면 학생에게 주어진 질문할 권리는 어디까지나 "난 이것까지 안다"는 자랑을 할 권리이다.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체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해악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그러니까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입을 열지도 못하도록 윽박지르는 분위기를 꼽겠다.[각주:1] 중등교육 시절 억압적인 분위기를 겪었던 사람들이 관성적으로 그 억압적인 분위기를 다시 만들어내고 있고, 때문에 내가 동생에게 했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사람들이 틀렸다고 자신만의 생각을 전개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유독 사람에 대한 신뢰가 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들이 충분한 용기가 있다면 얼마든지 올바른 진실을 직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누군가가 유언비어라고 생각되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들 그 사람의 입을 막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유언비어가 왜 진실이 아닌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아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유언비어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논리적 추론 능력을 갖게 된다: 유언비어에 시달려 본 사람일수록 유언비어에 면역을 갖추는 것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금방 유언비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주장에 더 자주 노출되어 이런 훈련을 겪을 필요가 있다. 인터넷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이며, 이러한 훈련 없이는 정보의 바다에서 익사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나는 진실 앞에 깨져보는 경험,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던 진실이 더 이상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내용에 대한 맹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진실에 파묻힌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명동 거리의 십자가들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앞서 충분한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올바른 진실을 직시할 수 있다고 한 이유는 한 사람이 자신이 믿고 있었던 진실을 부수는 데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한 사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 믿음을 부수는 것은 원래의 세계를 새로운 세계로 갈아 엎는 것을 의미하며, 용기 없이는 이를 이룰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누군가가 헛소리를 하거든 그 헛소리를 들어주고 잘못된 점만 바로잡아 줄 여유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가진 믿음이 참된 진실이고 다른 사람들이 거짓된 진실을 떠들고 있다면, 내가 유언비어를 두려워할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p.s.

대자보는 일종의 웅변이다: 한 사람의 청중에 대한 웅변은 전지에 그대로 박제되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없더라도 지속적으로 그 사람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대자보이다. 대자보를 찢어내는 것은 웅변에 입막음으로 맞서는 행위이다. 웅변에는 웅변으로 맞서는 것이 옳다. 대자보를 붙일 자유가 있으면, 그에 반박하는 대자보를 붙일 자유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 대자보를 찢어내는 자유란 존재할 수 없다.

  1. 창조경제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이유를 대야만 한다면 같은 이유를 댈 것이다. 창의성이란 결국 다르게 말한다면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말한다. 제기해야 할 올바른 질문이 아니면 질문을 해서는 안되는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좋은 질문을 해보는 훈련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결국 그 누구도 창조경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되는 창의성을 다듬을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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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올린 글. 약간의 수정을 거쳐 재게재합니다.




요즘 들어 타임라인에 정치글이 많이 보이길레, 그냥 간단한(?) 상황 판단을 위한 가이드라인 올려봅니다. 아마도 내려갈수록 중요한 내용.


- 짤로 돌아다니는 내용으로 판단하지 말 것.

File Extensions

http://www.xkcd.com/1301/

짤은 언제까지나 인스턴트 정보이며, 인스턴트 정보로 얻을 수 있는 진실은 통조림 음식 수준밖에 안 됩니다.


- 그나마 인스턴트 치고는 괜찮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건 토론 프로그램.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토론은 알맹이가 없고, 양 쪽이 치열하게 치고박고 싸우는 토론일수록 정보량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괜찮은 토론 프로그램이 있나 모르겠네.


- 한 사안에 대해 판단을 할 때, '각 진영'에서 제공하는 최대한 양질의 '글'을 최소 5개씩은 읽고 다음 과정을 거칠 것.

1. 양질의 글이란 최소한 세 가지의 논거를 기반으로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것을 말합니다. 10-20줄짜리 글은 일단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논거를 기반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글은 되도록 빼세요.

2. A4 한 장을 반으로 나누어 각 글에서 들고 있는 논거를 정리할 것. 통계 수치나 과거 사례 위주로.

3. 많은 경우 이렇게 하면 양 진영에서 같이 들고 있는 과거 사례가 있거나 서로 충돌하는 통계 수치가 있을겁니다. 이 경우엔 과거 사례를 해석하는데 취한 입장도 같이 정리하고 양쪽의 통계 수치의 신뢰성을 확인.

4. 여기까지 하는데 짧으면 2-3시간, 길어야 5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이 정도 시간도 투자 안 하고 진실을 얻겠다고 하신다면 통조림 수준의 진실밖에는 구할 수 없다는 말씀 드리기로 하죠.

5. 마지막으로, 혼자서 백분 토론을 거칠 것. 한 쪽에 최대한 빙의해서 다른 쪽을 공격하고 이 쪽을 방어하는 훈련을 해 봅니다. 이 일을 양 진영에 대해 다 해볼 것.

0.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20~30쪽은 되어보이는 글은 도저히 못 읽겠다고 질 나쁜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건너뛰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단문이 대세인 인터넷 시대에 긴 글은 길어봤자 A4 5쪽 이내예요(논문이나 보고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5번을 할 때 한쪽 진영에 대해 별로 호감이 안 간다고 불성실하게 빙의하지 마시고요.


- 신문 읽는 법. 전 신문을 안 읽습니다만, 도움이 될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해서.

1. 신문 기사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확인. 단어마다 고유한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문 기사에서 그 대상에 대해 어떤 인상을 심으려 하는지 볼 것.

2. 신문 기사에서 말하지 않는 논리적 기반을 확인. 쉽게 말해 신문 기사가 무엇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확인하라는 의미입니다.

3. 신문 기사간 관계를 확인. 온라인상으로 읽을 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지면으로 읽을 땐 신문 기사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지면에 '경제 상황이 나빠 꿈을 잃는 대학생들'이라는 식의 기사와 '경제가 안 좋은데 파업이라니' 이런 식의 기사가 같이 있다면 그 신문은 대학생과 파업을 대립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가장 많은 훈련이 필요한 항목.

0. 정리한다면, '신문 기사를 많이 읽어라'가 아니라 '신문 기사를 깊게 읽어라'가 되겠네요. 많이 읽는건 양질의 선택을 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 주장하는 사람의 순수함과 주장하는 내용의 합리성은 완벽한 독립변수.

순수한 의도로 악을 행할 수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게 된 아돌프 아이히만이 전자의 한 사례고[각주:1], 자신이 이득을 얻겠다고 거래를 제안해오는 사람이 모두 내게 불리한 제안만 하는 것은 아니죠.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도 믿지 말 것.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 '나도 틀릴 수 있다'란 생각을 항상 하시길.



사실 첫 번째 항목이랑 마지막 항목이 제일 중요해요. 그것만 되어도 판단의 질이 150% 개선됩니다.




중요하니까 다시 한번 말하도록 하죠. 근본없는 짤방 같은 인스턴트 진실은 그만 드시고, 자신에 대한 과신은 제발 좀 버리세요. 순수함에 대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아무래도 앞의 둘보다는 중요도가 떨어져서. 참고로 순수는 편의점에서 500원에(코카콜라에 가는 로열티 포함) 200ml짜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대체로 캡콜(capcold.net/blog/‎)님이나 민노씨(http://minoci.net/)님의 가이드라인을 기억 속에서 대충 짜깁기한 것. 저도 인간인지라(쿨럭) 가운데 둘의 매우 긴 녀석들은 못 하고 있지만 나머지 넷 정도는 대충 탑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항목 때문에 교수님들한테 자신감이 없다고 까였던건가...


그러면 오늘도 진실을 찾는 여정을 떠나는 많은 분들께 바다의 가호가 있기를.(오글)


  1. 다만 아돌프 아이히만의 '순진함'은 연기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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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 버스

Writer 2013.08.20 21:33
정신줄을 놓아봅시다...



"덜커덕 덜커덕."

아, 아니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정지』를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의성어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그 책은 살 생각이 없었는데 이벤트로 주는 상품이 끌려서 장바구니에 넣었던 책이지만(충동구매 한 적 없는 자 돈을 던져라) 예상 외로 인상적이었다. 다시 시작해 보자.

"버스의 흔들거림이 귓가에 전해져 왔다. 평소처럼 멍하니 먼 곳을 주시한다. 에어컨을 틀었는지 바람이 흘러나온다만 시원함과는 거리가 멀다. 원래 에어컨 바람을 직격으로 맞으면 시원하다 못해 추운 법인데, 정부의 절전 시책이 기름으로 돌아가는 버스의 에어컨에도 손길을 뻗친 모양이다.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거나.

청각에게 관심을 달라 보채던 흔들거림은 촉각으로 눈을 돌린 모양이다. 그리 많은 사람이 탄 버스가 아닌데도 흔들림에 따라 옆 사람의 어깨가 살짝 살짝 부딪쳐 온다. 미지근하게 퍼지는 바람과 있는 듯 없는 듯 간간히 존재를 알려오는 옆의 어깨.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 든다. 이런걸 데자부라 하던가. 영화 <집으로>에서 보았던 시골길 위의 버스가 이런 느낌일까? 80년대에 버스를 탔으면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30년을 뛰어넘어 같은 감성에 젖다니 시간여행자란 별명이라도 붙여줘야 하나.

흩어진 초점으로 계속 전방을 주시한다. 생각이 멈춘 것일까 아니면 생각이 흐르는 것일까. 무념의 흐름에 마음을 띄워 본다. 아마도 이 글을 기승전결이 있는 방식으로 끝내긴 힘들겠지. 뭐, 우리 대부분의 삶도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는 아닐꺼다. 흐르고 흐르다 종착점에서 그래도 재미있게 살았구나 돌아보면 된 것 아닐까. 물은 강이 거기에 있기에 흐르고, 사람은 숨결이 거기에 있기에 사는 것 아니겠나 싶다.

생각은 도약을 거듭하고, 버스엔 철학자가 탄생한다. 버스 철학자라니 골방 철학자에 약간의 사회성을 섞어 대충 버무린 겉절이같은 느낌의 조어이다. 계속되는 도약은 도약을 도약한다. 생각의 도약에 대한 생각. 메타도약이라고 하면 되려나.

생각은 뱀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일자로 이어지듯 논리적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경우가 드물다. 이렇게 도약이 있는 생각을 비선형적 사고라 부르는 모양인데, 아는 건 줏어먹은 단어밖에 없어 이 말의 신뢰성은 보장하지 못하겠다.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구조가 이런 식이라고 한다. 하이퍼링크로 서로 도약하는 인터넷 페이지들은 이전의 단선율로 흐르던 책이나 신문과 같은 매채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책은 기승전결이 있다. 비록 주석이나 각주를 통해 그 갑갑한 일방통행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여전히 우리는 책에 대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갖기를 요구한다. 아무리 그 형식을 탈피한 책이라고 해도 변주까지만 허용할 뿐이다. 관계 없는 글을 포함한 책에겐 난잡하다며 편집의 칼날을 들이댄다. 사서삼경의 사서인 『대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예기』의 다른 내용들은 통편집에서 살아남질 못했다.

허나 글은 정보혁명 시대로 오게 되자 더 이상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게 되었다. 마치 우리의 생각처럼 말이다. 멘탈붕괴는 정확히 말하자면 두 가지로 나누어야 한다. 논리적 사고능력이 붕괴하여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와 논리적 사고능력에 도약이 너무 넓어져 생각간의 연결고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 후자는 정신능력의 과다발현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약을 빨았다'는 흔한 표현은 후자가 비교적 약해서 청자가 어떻게든 화자의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약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글을 잇기 난감해져 여기서 마친다. 기전승결에 대해 말하는 기전승결이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보니 멘붕에 대한 부분에서 멘붕해 버렸고, 약빤 소리에 대한 부분은 약한 소리로 마쳐버렸다. 하지만 최고의 찬사는 그것 자체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마디 더 덧붙이면 쓸모없는 결이 만들어질테니 무시하기로 한다. 버스를 타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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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s

Writer 2013.08.13 21:04

어제 별똥별을 보고 싶었으나 방충망을 열다 철제틀이 10여미터 가량 자유낙하하며 위대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온 몸으로 보여주길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크게 당황. 결국 주섬주섬 줏어입고 주워왔다. 지금은 어떻게든 다시 달아놓았는데 내 다시는 여나 봐라...


새벽 세시가 되어가도록 광공해로 가득찬 서울밤하늘이 별 깨끗한 순결함을 자랑하길레 (한 두셋 본듯) 빡쳐서 개소리 좀 하려다가 '허세를 부리려면 제대로 부려야지'하는 생각에 영어로 끼적끼적 해봤다. 원래는 더 길게 쓰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The renowned Immanuel Kant for this works on ethics is known to have praised the stars and the inner principles of the human mind. Although I must admit that the simile had been used to consecrate his thesis on conscience, the phrase itself is quite cool, so I'll adduce it.


Two things fill the mind with ever-increasing wonder and awe, the more often and the more intensely the mind of thought is drawn to them: the starry heavens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

-Taken from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Though his views on moral principles are not as cogent as they were when I first encountered them, I do assimilate with his awe-filled eyes reflecting starlight. Sympathy of stargazers separated by several millennia! (for now forget that it's only a couple of hundred years. Millennia sounds much cooler than centuries) What could be more captivating than such a congruence? I am absolutely confident that this sentiment is absolutely ubiquitous; for the past myriad generations and the future millennia that follows, the sidereal lights were and will be an undiminishing luminescence that shed light onto our minute corporeal beings; sometimes showing serendipitous aisles for tyros in heed, and another time giving hearted warmth to those in need. To put it brief, stars have always enthralled me, and I'm sure that it's the same for you.


P.S.1 가끔 무언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듯 한 느낌이 들기는 했는데 진짜 본건지 아니면 기분탓인지는 모르겠다.


P.S.2 내 방 창은 남향인데 북동쪽을 보아야 했다는 것을 듣고는 좌절했다.




오늘 Facebook에 올린 허세글. 원래는 글을 더 길게 쓰고 (군대 이야기가 들어갈 예정이었음) 한글로 적은 내용을 전부 영어로 쓸 계획까지 있었는데 귀찮아서 때려치웠다. GRE 공부하다 보니 좀 더 허세끼있게 쓰는데 도움이 되는듯. 물론 허세의 완성은 어설픈 문법이지만 글쓰기 연습도 하고 있어서 문법의 파괴까지는 차마 하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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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자주 다니는 커뮤니티에서 괴기스런 만화를 올린 게시글이 인기글로 오른 적이 있었다. 그 게시글의 댓글에는 누가 더 괴기스런 만화를 가져오나 대결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사람들은 참 겨루길 좋아한다) 온갖 괴기만화로 가득한 게시글이 되어 버렸는데,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한 만화가 있다. 지금은 아무리 검색해도 찾질 못하겠어서 내가 기억하는 그 만화가 실존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만화는 슬프면서도 괴기함이 갖는 그 불편함이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림체는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사이의 그 애매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흰 도화지에 4B연필로 만화를 그린다면 쓸 법한,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유아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아마 에반게리온의 아스카의 내면을 표현할 때 사용된 것 같다- 그림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취미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편집하면 남는 그림의 어색한 흰 공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영미권의 만화를 가져온 모양이다. 내용은 지나치리만큼 단순하다. 한 남자아이가 있다. 조용조용한 그 아이는 한 여자아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많은 조용한 아이가 그렇듯 그 아이는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넘어져 무릎에 생채기가 났다(아마 그럴 것이다. 기억은 불완전하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은 그 아이를 걱정해주었다. 어디서 다쳤니, 아프진 않니, 소독해야지 등등. 선생님이 신경쓰자 반의 모든 아이는 선생님의 눈길을 따라 그 아이에게 집중하게 되었고, 그 아이가 좋아했던 여자아이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 아이를 보았다. 남자아이는 기뻐했다.


남자아이는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니! 남자아이는 좋아하는 아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아이는 더 큰 상처를 안고 등교하였다. 선생님은 역시 걱정하였고, 여자아이도 잠시뿐이긴 했지만 다친 아이를 걱정해주었다.


날이 지날수록 아이에게는 넘어지거나 계단에서 구른 것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상처가 늘어갔다. 그러나 특이한 일도 반복되면 일상이 되어버리는 법. 선생님의 우려는 깊어 갔지만 여자아이의 관심은 희미해져 갔다. 어느 날, 더 이상 여자아이가 관심을 갖지 않자 남자아이는 마지막 결심을 한다. 아마도 이 일이 끝나면 여자아이는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 관심어린 눈길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만화는 남자아이의 책상에 놓인 국화꽃으로 결말을 맞는다.


『한비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여자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미고 선비는 뜻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당시와 지금의 시대상이 다르기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에는 지금도 통용되는 진실이 담겨 있다. 누구든 자신을 보아주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록 그것이 자신의 목숨일지라도, 버릴 수 있다. 그 사람이 실존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예술 작품은 미래의 인류라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져 희생하는 행위를 거의 항상 칭송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가상의 존재가 가져 줄 관심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우울한 이야기이다. 뒷산의 나무들은 그 누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라나며 다른 생명들에게 그늘과 열매를 베푸는데, 왜 우리는 관심이 없으면 비틀어지도록 태어났을까. 과학자의 본능대로 진화심리학을 끌어들여 썰을 풀어 볼 수는 있겠으나 그걸로 이 우울한 기분을 풀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의 박탈당한 권익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한 단체의 대표가 사고로 사망하였다. 난 사실 남성연대의 목표의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대표가 속 시원한 말을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좋아했다고 말할수는 없다.


혹자는 성재기 대표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와 동일시한다. 물론 급이 같을 수 없는 사람을 비교하는게 가당키냐 하냐는 반론에는 동의하나, 그 감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성 대표의 행위가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며 어떤 가치를 지키려 했던 성스러운 자기희생일 것이다. 아무리 우습더라도 누군가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 대표와 전 열사의 비유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그걸 굳이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이 사건을 언급하려면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빼고 넘어갈 수는 없다. 많은 사람과는 달리 근래 문제가 되었던 호두과자 판매자의 조악한 노무현 전 대통령 비판이[각주:1] 잘못되었다고 (조악함과 잘못됨은 분명 다른 영역이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인, 특히 대통령이라는 책임져야 할 위치를 지낸 사람에 대해 비판은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그 비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일베 이용자들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들에게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반 쯤 풀린 눈의 병사가 얇은 나뭇가지로 적군의 사체를 헤집으며 짓는 괴기한 미소를 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장난감이 되는 현장은 언제 봐도 적응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그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제 3자의 눈으로 볼 기회가 생기게 되었으니 앞으로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현실은 기대에 못 미치겠지만.


성 대표에게는, 원한이 있었다면 툴툴 털어버리고 자유로와지길 기원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누가 되었든 구천을 떠도는 귀신을 보게 된다면 하고 싶어했던 말이기도 하다.





P.S.0 아직 사망은 확인되지 않았군요. 사망 추정 기사를 보고 착각한 모양입니다. 일단은 글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P.S. 전두환에 대해 '죽어도 싸다'는 태도(이전에는 뼈를 갈아마셔도 시원찮다는 다소 극단적인 말도 했던 적이 있다)를 조금은 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선 사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씨에 대한 추가적인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감정적인 반응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난 518의 직간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P.S.2 이와는 별개로 이 사건 이후 돈을 목표로 자해공갈협박하는 일은 없어졌으면 한다.

  1. 물론 단순한 비난에 가까워 보이긴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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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날도 날이니만큼 이것 저것으로 바쁘더라도 글은 하나 대충 던져놓고 가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시작해 보죠.


1.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흔히들 말하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서 나타나는 온갖 혐오정서 등이 사회가 불안정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자신의 기반세력을 다진 반석이 유대인에 대한 혐오정서이기도 했고, 최근의 사례를 보자면 재정이 미숫가루보다 더 곱게 갈려버린 그리스의 경우 사회 혼란을 등에 업고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등 혐오정서의 보편화가 사회혼란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볼 만한 근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꽤나 인상적으로 읽었던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The True Believer』에서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심리상태를 자신의 삶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각주:1]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해줄 더 큰 대의에 삶을 바친다고 분석했는데 이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있다.[각주:2] 경제는 불안하고 일자리는 없으니 내 망가진 삶의 원인으로 지목할 피의자가 필요했던 것이라 생각했었다. 얼마 전 진중권씨가 일베 이용자들과 설전을 벌이며 국가에 슈퍼에고를 투영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다음 글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http://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1158135


고소를 하겠다 하니 바로 장난이었다고 꼬리를 내리는 반성문인데, 만약 '내 삶을 바쳐 추구할만한 대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꼬리를 금방 내리지는 않았을 터. 내 가설에도 큰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일베 이용자의 대다수가 10대라는 것이 또 다른 문제 아니던가. 벌써 10대가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는다니, 학원에서 듣기 싫은 수업을 감기는 눈과 싸우며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아니면 우리나라에 내가 알지 못하는 아동노동착취가 벌어지고 있거나. 그런데 내가 믿는 대한민국은 아동노동착취는 없는 나라이기에, 아무래도 내 가설을 뒤집어야 할 것 같다.


2.

대선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일베충의 일기'라는 만화가 있었다. 꽤나 감상적인 만화로 기억하는데-'남들이 다 예라고 할때 아니오라고 했다가 인간 이하로 취급받은 사람들이 뭉친 것이다'였나?- 그 만화의 내용 하나 하나를 잘 곱씹어보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어디 한 곳에 발 붙이고 소속감을 누리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긴 사람이 달라 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나 비극은 이 소속감을 일베에서 찾으며 시작된다.


3.

공동체로서 하나됨을 느끼는 것에는 중독성이 있다. 축제와 각종 종교적 의식은 이런 하나된 느낌을 제공하기에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말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남들과 내가 하나로 묶여있다는 공동체의식은 강한 희열을 가져온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 것이라는 시를 쓴 사람도[각주:3] 있지 않던가. 심지어 08년의 광우병 사태의 원인을 '축제의 부재'에서 찾은 보수논객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너와 내가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정은 그만큼 강렬하다.


그리고 하나로 뭉치는 데는 처단해야 할 가상의 악을 하나 만들어두고 거기에 대해 전투적으로 반응하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여기에는 좌우 할 것 없이 모두 포함된다. 625 이후 빨치산들을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국군이나 군부통치 이후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대학생들이나[각주:4] 한국 여자를 싸잡아 이상화된 악마로 그려내는 일베 이용자들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를 뭉뚱그려 생각없이 사는 잉여인간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나 백인을 제외한 타인종 외국인들을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짐승으로 여기는 인터넷 하위문화 정서나 그 대상이 다를 뿐 본질적인 논리는 동일하다. 호퍼의 말처럼, 광신도의 대척점에는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에 무관심한 회의주의자가 있을 뿐이다. 『맹신자들』에는 나치가 척결대상으로 보았던 공산주의자들을 잠재적인 협력자로 여겼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문장을 이해했다면 이 문단을 오독할 일은 없을 것이다.[각주:5]


4.

일베는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추천을 많이 받은 유머게시물들을 보관하던 게시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도 제일 질 좋은(?) 유머자료가 올라오고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사용하는 게시판은 학교커뮤니티와 SNS정도라 확인할 방법은 없다.(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이 유머자료들 때문에 똥통이라 생각하면서도 일베에 들어가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일베 이용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난 그들이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사회적 평판에 금이 가는 선택을 할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 자유를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짐은 짊어지는게 세상의 이치인데.


이렇게 유머게시물을 보면서 간간히 보는 정치적인 게시물들에서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그 게시물에 익숙해지게 되면 더 이상 문제의식을 못 느끼게 된다. 문화충격은 그 문화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에나 겪지 그 문화권에 적응하면 문화충격은 문화의 차이로 수렴하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어쩌다가 비슷한 글을 썼을 때 추천이 한가득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동화되어 간다.


4.1.

바로 위 문단의 결론은 순수한 픽션이다. 일단 내가 일베를 하지 않으며, 주변에서 일베를 한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공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누군가 일베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위 가설을 검증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는 한데, 경험상 '나는 일베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육성으로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검증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

초점을 약간 당겨 보면 지난 대선기간에 활동했다는 국정원의 댓글 관련 사건들과 최근의 초청강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518과 자신의 정체성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의 한 층을 구성하기 때문이겠지 싶다. 누구도 내가 나쁜 놈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 법이다. 자신의 정체성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 뭐 대충 수긍은 간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권이 걸려있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은 성급하기는 하지만, 소속됨 혹은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 것 아닐까.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 다 하니 나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아니면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소속감을 온라인상의 댓글로부터 찾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6.

소속감은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것이 남에게 공감받는 것. 인명(人命)을 벌레 목숨처럼 여기는 것에서 문제점을 못 느낀다는 것은 물론 문제이지만, 그런 곳에서나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각주:6] 가정과 학교에서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일개 인터넷 사이트에서야 겨우 느낀다는 것인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보통 학생들이 학부모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시험지에 적힌 숫자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숫자로 매겨지는 등수이다. 교사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도 별로 다르지 않은 잣대가 이용된다. 그런데 댓글 한 줄 쓰는 것으로 비슷한 인정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경제학적 인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7.

교육백년지대계라 했다.


흔히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실생활에서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을 쓰는 경우는 다른 비슷한 사례로부터 얼마든지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경쟁이 거세다 못해 전쟁처럼 변해가는 현대 산업은 온갖 역사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기에, 굳이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보다는 이런 곳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더 금방 와 닿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역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사의 역할은 정통성 확립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명시되었듯 419혁명의 이념을 계승한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난, 근현대사를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발자국 위에 놓여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따라 더 답답한 것이련지도 모르겠다.



p.s.

글을 쓰다 보니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Getting more』의 한 꼭지가 떠올라 글을 갈아엎을까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꼭지인데, 반미적 근본주의자들을 고사시키는 방법은 그 근본주의자들을 떠받치는 일반 대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떠올리고 나니 이처럼 상대방을 훈계하는 어조의 글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팔아먹는 글일 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결과적으로는 있으나마나 한 글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일단 적었으니 부족하더라도 내보내고 보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 공개하기로 한다.


  1. 현재 책이 없어 정확한 인용은 뒤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2. 이 책이 내가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의 90% 이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다. [본문으로]
  3. 피천득 선생님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4.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화세력을 두고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평가는 더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변희재씨는 한때 변이희재라는 이름을 쓰던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6.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의 두번째 경우를 염두에 두고 쓴 문단임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첫번째 경우에는 그냥 역사교육의 부재이기 때문에 어쨌든 교육이 까여야 합니다. 7번에서 계속.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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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의 딜레마: ‘단일 고장점’ 구글 (슬로우뉴스)


구글에 너무 많은 서비스가 집중되면 구글이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전 사회가 마비되는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예전에도 비슷한 논지의 글을 읽은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기반으로 돌아가는 환경이 취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군용 컴퓨터의 대다수가 윈도우 기반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주장하는 바처럼 산업다양성(?)이 있으면 일부 산업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산업에서 받쳐주는 방식으로 버틸 수 있으니 좋기는 좋다. 생태 하는 사람들이 종다양성(biodiversity)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하고. 하지만 구글에는 조금 적용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게 자연독점과 비슷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만큼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충분한 덩치가 있어야 한다고 해야 하나. 보안솔루션과 같은 산업기반(?)에 들어가는 기본투자금이 높고 사이즈를 늘리는 데 들어가는 추가투자금이 매우 적은 경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상당히 큰 덩치가 되어야 할 텐데 그 산업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크지 않으면 시장에 진입할수가 없다.


그리고 구글처럼 덩치가 매우 커진 경우는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우회로를 만들어 두는데, 그 모든 우회로가 하나의 취약점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구글이 무너질 가능성은 매우 낮으니 말이다.(그리고 우회로 설계의 핵심은 최대한 공통취약점이 없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고.) 덩치가 작은 기업은 이렇게 많은 우회로를 만드는 것부터 벅차서 이 경우는 오히려 덩치가 큰 편이 안정적일수도 있다. 그래서 구글을 하나의 취약점으로 보는 것은 무언가 너무 큰 것을 한번에 뭉뚱그려 버린 느낌이다. 미국과의 전쟁 상황이라던가(...)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엔 구글 그 자체가 취약점일수 있기는 하지만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이건 사실 비현실적인 경우.


사실 나는 구글이 취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보다는 구글이 이처럼 거대해지면 국가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민주주의 하 정부는 마음에 안 들면 갈아엎을 방법이 있지만 기업은 그럴 방법이 없다. 소비자운동이라는 방법이 있긴 해도 그건 그 기업을 소비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면 공염불일 뿐이다. 물론 기업이 그 영향력을 드러나게 행사하려 하지는 않겠지만 그게 더 무서운거다. 노장계열의 정치사상인 무위자연이 사실은 이런 방식의 통치철학이다. '너는 네 맘대로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네 착각이고'. 도덕경에 제왕론이라는 평가가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푸코와 같은 구조주의 철학도 이쪽이라고 알고 있는데 자세한 건 철학과 친구 하나 잡아서 물어보세요.(그런데 칸트만 읽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공학윤리 강좌에서 배웠던 전문화와 전문화가 가져오는 산업의 복잡성 증가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예측불가능성과 사고발생가능성의 증대 등등이 떠오르긴 했는데 무관하다 생각되어 뺀다.




오늘 페북에 올린 글. 논문때문에 연구계획서 쓰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끄적끄적 거려본다.


댓글에 보면 실제로 구글이 멈추었을때 일어난 일련의 사건사고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런 문제는 '통합'이 가져오는 놀라운 효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리스크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휴대폰이 MP3와 네비게이션 e북리더 전자사전 등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스마트폰만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국 휴대폰이 완전방전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아닌가. 대신에 이 위험을 쌩으로 마주하기엔 아무래도 부담이 되니 우회로로 예비배터리나 충전케이블을 들고 다니는 것이고, 위험 자체를 줄이기 위해 휴대폰 케이스를  설치하는 것 아니겠는가.


마지막에 뺀 내용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싶다. 요지는 이것이다. 전문화는 효율을 가져오고 그 효율은 복잡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복잡한 시스템은 그 복잡성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한 성질이 증가하게 되는데, 때문에 한 사고가 나면 어디에서 그 사고가 기인한 것인지 찾기 힘들다는 것이 강의의 핵심 내용이었다. 갈수록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다 보니 갈수록 사고의 원인은 찾기 힘들어진다는 교수님의 우울한 전망이 인상적이었다. 이걸 피하려면 단순하지만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사용하면 된다는 말을 하시긴 하셨다만, 글쎄...


난 사실 기술개발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쪽인데(그 기술을 사회에 도입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기술만능주의자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까?[각주:1] 몇몇에게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되돌아오지 못하는 강이라는 스튁스 강이 생각난다.

  1. 그리고 '안락한 자연'이라는 환상만큼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자연이 아름답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경외에 가깝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삶'이란 도시에 살면서 문명의 치부까지 다 들추어보았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한 동경일 뿐이라는 것이다. 루미나리에와 같은 아름다운 야경도 낮에 보면 전선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흉물스런 구조물이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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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학기에 쓴 중간 및 기말 레포트 공개. 복붙은 반대하지만 참고는 환영합니다.


학점이 A-가 나온 것으로 봐서는 역시 글 주제를 이상하게 잡아서 점수가 까인듯 싶다. 문장에 비문은 없도록 빡세게 교정했으니...(물론 하루 날림으로 글을 썼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만...) 아니면 기말레포트에 엉뚱한 문단을 덧붙인 후폭풍이라던가. 내가 봐도 기말레포트의 마지막 두 문단은 어거지로 끼어넣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써놓고 아쉬워서 덧붙였을 뿐. 버리는 것도 중요한 미덕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걸 실천하는건 어려우니 문제.


 중간레포트.pdf

기말레포트.pdf


중간레포트의 주제는 '문명은 생물의 일종이다'라는 명제의 정당화이고 기말레포트의 주제는 '문명이 생물의 일종이라면 문명의 성(性)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문단은 본 주제에서 벗어나는데, '과연 완벽한 문명이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블로그에 붙여넣으려 했더니 편집이 힘들어서 일단은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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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학기에 들었던 현대경제의 이해 첫번째 과제. 이 과제를 받은 수강생들이 많이 멘붕했다. 과목 끝까지 남은 사람은 1/4이 되려나?


발표 한 후에 '그래서 그 대책이 뭐예요?' 하는 질문을 받았다. 내 답변은 '그거 알고 있으면 여기에 있을 리가 없죠'(...) 그런데 서울의 고금이 공존하는 분위기는 꽤나 잘 팔릴 듯한 이미지인데 왜 아무도 안 써먹는 건지 궁금하기는 하다. 난 SF 쓸 생각이니까 나한테 요구하지는 마세요. 문제는 아직도 구상중이라는 거지만...(30%는 디테일만 남았고 40%는 아웃라인 잡았는데 나머지 30%가 문제다.)


『논어』로 문명을 재단하는 과제나 빨리 끝내야 하는데 글은 안 써지니 이딴 짓이나 하고 있네 ㅠㅠ




Q. 한국의 서비스문화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데 기여하기 위한 전략을 생각해보시오.


A. 대체적으로 문화 관련 소비상품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제품이 되지만 관광산업과 연관되었을 때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음악, TV 프로그램, 문학, 영화 이상 네 가지의 관련 산업을 살펴본 후 그 산업들이 어떻게 관광산업으로 이어야 할지, 구체적으로는 한국에 대해 “꼭 가 보아야 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해야 심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1. K-pop 혹은 대중음악 분야

읽기 자료에서는 곡 하나가 팔릴 때마다 약 800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기타 콘서트 표를 팔아 얻는 수익 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음악 산업에서 주된 수입원은 곡이 팔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당연하게도 소비자는 좋은 노래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곡을 소비할 것이므로, 음악 산업에서 수익을 늘이려면 더 좋은 노래를 만들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더군다나 좋은 노래는 콘서트나 광고 등의 수입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어떻게 더 좋은 음악을 만들 것인지는 절대적인 과제가 된다.


잘 팔리는 음악이 더 많이 작곡되도록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행정기관과 같은 제 3의 기관에서 좋은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방식은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작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는 것은 더 좋은 음악이 나올 가능성을 높여주겠지만, 일차적으로 무엇이 좋은 음악인지 평가하는 기준에서 시비가 붙게 될 것이고 근본적으로 이 기관의 평가가 전체 대중(소비자)의 취향과 같으리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행이란 항상 변하기 마련이라서 이전에 인기곡을 쓴 전적이 있다고 앞으로도 인기곡을 쓸 것이란 가정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수의 작곡하는 사람들이 생활에 별 어려움을 못 느끼며 일을 계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많이 치는 타자가 홈런을 칠 확률이 높은 것처럼 많은 음악이 나와야 잘 팔리는 음악이 나올 가능성이 높을 테니 말이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이를 구현할 가장 쉬운 방법은 작곡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곡 1곡 당 돌아가는 수입을 늘이는 것이다. 지원금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를 시장에 맡기는 것으로 대중의 취향이 왜곡될 가능성은 최소화되며 추가적인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없어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읽기 자료에서 지적하듯 한국 기획사들은 국내 음악 시장에서의 적자를 광고나 TV 예능 프로그램에 가수를 출연시켜 얻는 수익으로 상쇄해야 경영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불법다운로드의 문제도 있지만 서비스 제공자들이 독과점을 하고 있어서 곡당 수입을 늘일 협상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부분도 언급된다. 따라서 음악 제작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의 비율을 늘일 방법은 불법다운로드 대신 곡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실행하는 것, 그리고 서비스 제공자들의 독과점 시장을 허물어 판매 수익 배분에 대한 협상력을 늘이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하겠다. 서비스 제공자들의 독과점 시장을 허물려면 기획사들이 직접 음악 배포 시장에 뛰어들어 직접적인 협상능력을 갖추는 편이 좋아 보인다.


2. 드라마 등의 TV 프로그램

한국콘텐츠진흥원 발표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 해외 수출액은 2008년 1억 563만 달러(1160억원)를 기록한 뒤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각주:1] 드라마나 TV 프로그램의 일차적인 수익원은 해당 프로그램의 방영권의 판매로 보인다. 여기에 대해서는 위에서의 K-pop과 같이 더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기에 더 이상 다루지 않겠다.


3. 문학

한국일보에 따르면 베이징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출판사들의 저작권 수출 계약이 지난해의 두배를 넘었다고 한다.[각주:2] 하지만 해당 기사에서는 문학 작품의 판권 계약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본 기사에서는 그 이유로 중국 소설시장의 축소와 전문 번역가의 부족을 꼽았다. 이 기사에서 언급했듯 문학 작품의 판매는 전문 번역가의 힘이 절실하다.


2011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성인 독서율은 66.8%에 연간 9.9권의 독서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종이책 기준). 동 보고서에서는 ‘시, 소설, 수필 등의 문학’ 관련 도서의 소비율(25.9%)이 가장 높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를 미루어 계산해보면 일인당 연간 2.6권의 문학 관련 도서가 소비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 보고서에 인용된 다른 나라 독서실태를 확인하면 독서율이 70% 초중반에서 80%대로[각주:3] 독서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임을 알 수 있다. 독서율이 좀 더 높다면 더 많은 전문 번역가가 생겨 더 좋은 번역을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4. 영화

거대 스케일(블록버스터)의 영화는 미국 할리우드의 자금력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 그 이상의 영화를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 따라서 영화의 규모보다는 그 내용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는 영화들 중 블록버스터 영화는 드물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영화는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문학 관련 산업의 활성화가 필요해 보인다.


5. 관광산업

2004년에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대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그 드라마의 내용보다는 그 제목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서울의 연인”이나 “베이징의 연인”, “런던의 연인”이 아닌 파리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라는 도시가 갖는 상징적인 낭만적 분위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도시가 아닌 파리가 선택된 것이다. 파리에 로마나 프라하를[각주:4] 집어넣을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그 자리에 교토나 시드니를 넣는다면 원래의 제목이 갖는 분위기를 구현하지 못한다. 이는 이 도시들이 낭만적인 사랑의 무대라는 인식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와 오드리 햅번을 널리 알린 명화 「로마의 휴일」과 같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획득한 도시들은 영화로부터 그 이미지를 얻은 경우가 많다. 그 이미지 덕분에 이 도시들은 관광 명소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누구든지 한번 정도는 꼭 가야 한다는 그런 인식을 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이미지는 그 도시가 만든 것도 있지만, 그 도시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조차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문화상품을 제작하기 때문에 스스로 되풀이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이미지를 구현해야 한다.


이전에 누군가가 서울을 ‘현대와 중세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나는데[각주:5] 여기에 핵심을 두고 서울의 이미지를 구축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대에 공존하는 현대 도시인과 중세 궁중인의 사랑 이야기를 소설, TV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고 그것이 진부한 설정이 될 정도로 많은 작품이 나오며, 해외에서 그 설정으로 소설이나 영화를 만드는 경지에까지 이른다면 서울은 또 다른 훌륭한 관광도시가 되어있을 것이다.

  1. 이투데이 8월 17일자 기사 「[드라마, 이제 거대 문화산업]‘드라마는 돈이다’」에서 인용 [본문으로]
  2. 인터넷한국일보 8월 30일자 기사 「실용서 약진, 문학 작품 답보…한국 책 中수출 ‘빛과 그늘’」 [본문으로]
  3. 일본의 가장 높은 독서하지 않는 연령층이었던 30대의 독서하지 않는 비율이 27.4%, 한 해 동안 한권의 책도 사지 않은 미국인의 비율이 20%였다. [본문으로]
  4. “프라하의 연인”은 2005년 방영된 TV 드라마의 제목이다. [본문으로]
  5. 중세란 경복궁 근처의 근대 이전의 분위기를 말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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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의 이해 최종과제로 낸 꽁트. 요즘은 미디어가 발달해서 꽁트하면 상황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원래는 단편이라 부르기엔 짧은 소설을 의미한다. 새벽 5시까지 신나게 쓰느라(쓰는 도중 목감기 걸림 -_-) 글 자체는 많이 우울한 편. 원래 새벽은 조울증의 시간 아니던가. 아주 즐겁거나 아주 우울하거나. 혹자는 센티멘탈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는 듯 싶다만.

모티브(?)는 『갑각나비』의 3장, 사전. 발표를 해야 한다고 해서 사족으로 덧붙인 맺음말도 첨부. 실제 발표는 '가격'항목만 하고 맺음말 세번째 문단부터 했던 것 같다.



경제학 용어 사전


가격

1)물건의 교환 가치를 화폐를 기준으로 나타낸 것.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생산과 수요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미시경제이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 지표이다.

2)

수업이 끝났다. 가방을 챙기고 교실 문 밖을 나서려는 데 친구가 보였다. 얘도 아직 졸업 안 했었지. 불러 세웠다.

"저녁 약속 없냐? 같이 먹자."

"아 미안, 선약이 있어서."

"넌 맨날 바쁘냐?"

"미안, 미안. 다음에 꼭 같이 먹자. 미안~!"

결국 오늘도 혼자 식당에 들어섰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학교 식당의 싼 메뉴는 맛이 없고 맛있어 보이는 메뉴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재정 정책' 항목에서 계속)


가정

1)이론의 토대가 되는 명제. 경제학에서는 모든 사람을 경제인으로 가정한다.

2)

눈을 뜨니 어슴푸레한 여명으로 뒤덮인 방이 덮쳤다. 어두운 빛이 장식 하나 없는 검소한 방의 모든 생명이 살균된듯한 우울한 분위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비치고 있었다. 건너편 작은 선반 위의 반 정도 말라버린 선인장이 그나마 남은 미약한 생기를 애처롭게 대변하고 있었다.

또 다시 병실에서 깨었다. 이번에도 목을 졸린 모양이다. 링거액이 꽂힌 오른팔이 따끔하다.

무슨 꿈을 꾸다가 일어났더라? 다소 평범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삶을 사는 평범한 꿈. 아니, 평범한 삶이란 불가능한 나에게 그 꿈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이려나. 잡힐 듯 눈 앞에 아른거리지만 팔을 뻗어 쥐고자 하는 순간 얼마나 멀리 있는지 깨닫는 것. 꿈이란 그런 것이다.

그 꿈이 현실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의미 없는 가정이겠지.

('시장' 항목에서 계속)


경제인

1)Homo Economicus.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 행동경제학 등 일부 비주류 경제학에서는 다른 가정으로 이 가정을 대체하기도 한다.

2)

요란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또 책상에서 잠이 들었다. 과제를 다 하고 잠이 들었던가? 과제를 다 했으면 책상이 아니라 침대에서 깨었으리라는 당연한 결론에 생각이 미치자 조금 우울해졌다. 어제도 책상에서 깼던 것 같은데.

우선 알람을 끄고 세수를 했다. 화장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수도꼭지를 통해 쏟아지는 차가운 물이 졸음을 쫓아주었다. 정신이 들고 나니 더욱 우울하다. 제대로 자지도 못 하면서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등교하기 위해 가방을 챙겼다. 책상에 널려있는 종이들이 보인다. 그래도 조금은 정리를 해 놓고 등교하는 것이 맞겠지. 종이를 집었다. 뒷면에는 빽빽하게 글씨가 들어 차 있었다. 오늘 내야 할 과제였다.

이걸 언제 한 거지?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한 의문이 내 마음을 휘저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등교할 때도 못 했던 것 같았던 과제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지. 의문은 더욱 거세게 내 마음을 휘둘렀다.

또 다른 알람. 방을 나서야만 한다. 모든 의문을 억누르고 종이를 정리해 가방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책상에 반만 쓰다 만 일기장을 책장에 다시 넣으며 문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 책장에 꽂힌 붉은 일기장이 배웅해주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멍하니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통화 정책' 항목에서 계속)


노동력

1)생산요소시장에서 가계가 제공하고 기업이 구매하는 것으로 자본, 기술과 함께 총생산을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투입 할 때마다 투입되는 노동 당 생산량의 증가는 감소하며 이를 한계생산체감이라 부른다.

2)

'너는 내가 제공한 노동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적이 없어'

글씨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효용' 항목에서 계속)


독점

1)시장에 하나의 공급자만 존재하는 것. 이 경우 시장이 왜곡되어 완전경쟁시장에서와 같은 파레토 효율이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개입이 정당화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만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한 경우(규모의 경제) 자연적으로 독점시장이 형성되는데 이를 자연독점이라고 부르며 대표적인 사례로 항공기 시장이 있다.

2)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 중에는 노르베르 프티롤랭이라는 이름의 형사가 등장하는 소설 「조종」이 있다. 형사에게는 원래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던 왼손이 있었는데 이 왼손이 갈수록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상당히 과격한 방법으로 파업을 일으킨다. 어쩔 수 없이 프티롤랭은 왼손의 요구에 굴복하고 협력관계를 맺기로 합의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침대 위에서 뒹굴며 얼마나 멋진 상상인가 감탄했다.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니! 언제나 그랬듯이 이 프랑스 작가의 경이로운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며 책을 덮었었지. 침대 위에서 누워 읽어서 그런지 왼팔이 저렸다. 오른팔로 책을 대충 책상 위로 던지고는 저린 왼팔을 주무르며 다시 한번 이 작가의 기발한 생각에 찬사를 보내고는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내 몸의 독점적인 소유주였고, 왼손이 파업을 일으킨 남자의 이야기는 기가 막힐 소설일 뿐이었다.

('탄력성' 항목에서 계속)


루카스

1)Robert Lucas Jr. 합리적기대이론(rational expectation hypothesis)을 주장한 미국의 경제학자. 합리적기대이론이란 정부 정책에 대해 각각의 경제 주체가 그에 맞추어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는 이론으로 극단적인 경우 정부의 통화정책이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못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2)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오늘 나온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담배가 비탄력적('탄력성' 항목 참조)인 재화라 할 때 담배의 세금 인상이 가져올 효과에 대해 논평하시오".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꾸역 꾸역 써내려 가면 완료는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오늘 밤을 뜬 눈으로 보내야겠지.

어차피 교수님께서는 아주 잘 쓰거나 아주 못 쓰지 않는 이상 평범한 점수를 주신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된 글을 쓴다고 해서 좋은 점수를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해법은 과제는 대충 쓰고 내일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집중해서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려나.

집에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는데도 과제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런 때에는 일기라도 쓰면 좀 기분이 나아진다. 일기장을 꺼내고 근래에 쓴 적이 없었던 만년필을 꺼냈다. 파란 배럴이 아름답게 빛났다. 다행히 잉크가 마르지는 않았다.

일단 날짜를 적었다. 더 쓸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눈꺼풀은 무거웠고, 난 눈꺼풀이 중력을 따라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경제인' 항목에서 계속)


민영화

1)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기업의 효율을 제고하기 위해 민간 기업으로 그 기능을 이전하는 것. 많은 정부에서 케인즈 이론 이후 시카고 학파가 주장한 신자유주의를 기본 경제정책으로 채택하면서 크게 증가하였다.

2)

학교 식당을 나서는데 출입구의 한 공지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먹고 나온 식당이 다음 학기부터는 더 이상 생활협동조합이 아닌 외부업체에서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생활협동조합의 적자가 너무 심해서 운영하는 식당의 수를 줄이겠다는 말은 있었는데 실제로 그럴 줄이야.

교내의 외부업체가 운영하는 식당은 전부 밥값이 살짝 비싸다. 다음 학기에 들어오는 외부업체도 그러겠지. 그러면 다음 학기에는 어디서 밥을 먹지. 우울해졌다.

('처분가능소득' 항목에서 계속)


보이지 않는 손

1)아담 스미스가 그의 책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생산과 수요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 현대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

TV를 보면서 하나 둘 귤을 까먹다가 오랜만에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을 뒤져 먼지를 뒤집어쓴 자그마한 책 하나를 꺼냈다. 필통에서 놀고 있는 만년필에게 일을 시킬 때가 되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우선은 날짜를 써야지. 그 다음엔 무엇을 쓰지?

펜을 놓았다. 붉은 일기장 위에 차분히 놓인 푸른 만년필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항상 그럴 때가 있다. 쓰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정작 쓸 말은 하나도 없는 막막한 상태. 답답한 마음에 잠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일기를 쓰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아침에 링거액이 꽂혀있었던 곳이 살짝 저려왔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 주사 바늘이 계속 얇아진다고 해도 사람의 피부에 아무런 흔적도 안 남기기는 힘든가 보다. 오른팔 팔꿈치 안쪽이 수많은 붉은 점들로 가득하다. 팔이 좀 더 아파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못 쓰게 되기 전에 빨리 일기를 마무리해야겠다. 눈길을 다시 책상 위로 옮겼다.

종이 위에는 내가 쓴 적이 없었던 글이 적혀있었다.

'나비는 갑옷을 입고 왼팔로 날개를 뜯어내지'

보이지 않는 손이 적고 간 문장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보고 싶지 않았던 손이 적고 간 문장이었다.

('독점' 항목에서 계속)


시장

1)교환이 일어나는 곳. 물리적인 공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자들은 완전경쟁시장을 가장 이상적인 시장의 형태로 보며 이 경우 파레토 효율을 달성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2)

병실의 깨끗하다 못해 결벽적인 공기로부터 벗어나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오른팔의 링거액 주사 바늘 자국들이 살짝 저렸다. 룸메이트로부터 전화.

"응. 괜찮아. 자주 그러는거 알잖아.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그래, 그래. 너무 늦지는 말고. 그럼 잘 들어와."

조금 우울해졌다. 나도 애인이 있으면 저렇게 밝게 살 수 있을까? 무거운 발길을 계속 옮겼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전 먹거리나 조금 사서 들어가야겠다. 길을 가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조금 큰 가게로 들어섰다. 이런 때에는 과일을 먹어야 한다.

"아니, 사과가 왜 이렇게 비싸요?"

"제철도 아닌데 어떻게 싸게 나와. 거기다가 뉴스 봤지? 요새는 전염병 때문에 먹을만한 사과는 눈꼽만큼도 없어요. 귤은 어때 귤. 한창 제철이라 양도 많고 값도 싼데."

"...그러면 귤 이천 원 어치 주세요."

('보이지 않는 손' 항목에서 계속)


인적 자본

1)각 근로자에 내재된 기술 및 지식 등을 통칭하는 것으로 교육 등으로 축적이 가능하다.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성장요인 중 하나이며 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급속한 성장의 원인을 인적 자본의 축적에서 찾기도 한다.

2)

교실에 들어선다. 교재를 펼친다. 칠판을 본다. 노트에 옮긴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는다.

성장 회계, 기술 발전, 자본 축적, 노동 투입, 인적 자본.

그래, 나는 지금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중이다.

수업이 끝나고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이 또한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일이리라.

('가격' 항목에서 계속)


임금

1)생산요소시장에서 가계가 제공하는 노동력에 대해 기업이 지불하는 금액.

2)

"이미 네가 달라는 대로 임금을 주고 있잖아!"

'겨우 그 정도가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간담이 서늘해졌다.

('노동력' 항목에서 계속)


재정 정책

1)정부가 그 해 돈을 어떻게 지출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정부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이다. 케인즈는 불황에는 정부가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펼쳐 더 많은 정부지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해법을 채택하고 있다. 08-09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통화정책을 쓸 수 없었던 일부 유로존 국가에서 과다한 재정정책을 펼쳐 국가부채가 과도하게 누적되었고 결국 유로존 위기로 이어졌다.

2)

지갑을 열어보았다. 천 원 지폐 두 장이 보인다. 혹시나 해서 온 지갑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백 원 동전 하나만 나올 뿐이다. 오백 원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오늘의 재정 정책도 긴축 재정이다. 그냥 밥만 먹고 바로 집에 가야겠다.

('민영화' 항목에서 계속)


정부 개입

1)완전경쟁시장에서 벗어난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 정부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 규제를 이용하거나 국책사업을 벌여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케인즈 이론에서는 불황일 때 재정 정책을 통한 정부 개입을 중요시한다.

2)

교실로 가던 도중 게시판에 붙은 한 자보가 눈길을 끌었다.

'학교본부는 더 이상 신성한 상아탑을 저잣거리로 만들지 말라'

훑어보니 대략 학생을 돈주머니로만 보는 외부업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과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생활협동조합에 더 많은 지원금을 주어야 한다 두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들만의 리그일 뿐.

('인적 자본' 항목에서 계속)


GDP

1)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으로 번역되며 한 국가 내에서 생산한 모든 최종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화폐단위로 계산하며 생산된 물건은 모두 소비되기 때문에 소비된 최종재의 값을 합치는 것으로도 계산할 수 있다. 또한 생산하면서 번 돈은 각 경제 주체에게 분배되므로 이 분배되는 금액을 이용해서 계산하기도 한다.

2)

"이번 달 수입이 없어서 그래. 뉴스에서 올해 GDP 떨어져서 난리 났다 하잖니."

"네..."

다 과도한 욕심이란 것을 알면서도 서운한 감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파레토 효율' 항목에서 계속)


처분가능소득

1)가계에서 소비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 소득에서 세금을 제한 값이다. 일반적으로 전부 소비에 사용하지는 않고 일부는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한다. 케인즈 이론에서는 처분가능소득에서 저축하는 비율을 1에서 뺀 값을 한계소비성향(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이라 부르며, 이 값이 1보다 작기 때문에 균형재정을 하더라도 정부 지출을 늘이면 국내총생산은 상승하게 된다.

2)

셔틀에서 내리니 깡통 하나를 두고 구걸하는 남자가 보였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400원. 씁쓸하다. 쓸 수 있는 돈이 이것뿐이라니.

동전 네 개가 깡통을 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내 마음도 저렇게 경쾌하면 좋으련만.

('루카스' 항목에서 계속)


케인즈

1)John Maynard Keynes. 1930년대에 『일반 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집필하여 불황은 유효수요가 공급을 충당하지 못하여 생기는 일이며 이 때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집행해 유효수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아직 많은 정부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2)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길 건너편에 휘날리는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띄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는 거대국제자본은 모두 자폭하라!'

얼마 전 과도한 국가부채로 구제금융을 신청했었지. 모든 케인지안은 공직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얼씬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소주만 연거푸 들이키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요즘은 취직한 곳에 적응 잘 했으려나. 내심 졸업한 애들이 부러워졌다.

셔틀버스가 현수막을 가리며 멈추었다.

('정부 개입' 항목에서 계속)


탄력성

1)수요량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에 변화가 있을 때 수요량이 얼마나 민감하게 변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어느 재화의 가격탄력성이 1보다 크면 탄력적이라고 하고 가격이 내릴수록 가격과 소비량의 곱은 증가한다. 1보다 작은 경우에는 비탄력적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역으로 가격을 올릴수록 가격과 소비량의 곱이 증가한다. 담배는 비탄력적 재화로 여겨지고 있다.

2)

왼손에 얹힌 만년필이 경쾌하게 움직인다. 한 장 한 장 종이는 글씨로 뒤덮이고 그 종이들을 수용할 자리가 부족했던 책상은 덮여가기 시작한다. 탄력 있게 휘어지는 만년필 촉이 마치 종이와 마찰하며 내는 사각이는 소리에 탭댄스를 추는 듯 했다.

왼손이 쓴 글은 정교하게 짜여진 에세이였다. 그것도 해당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교수가 쓴 글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신없이 글을 읽다가 왼손이 옆구리를 찌르고 나서야 일기장에 남겨진 글을 보았다.

'이런 읽을 만한 글도 주고 온갖 잡다한 일을 해주는 왼손한테 보상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임금' 항목에서 계속)


통화 정책

1)정부가 시장에 도는 화폐의 양을 조절하는 것. 재정 정책과 함께 정부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다. 경제 전체의 통화량이 인플레이션 및 이자율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 예로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을 이용해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조절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루카스의 합리적기대이론의 등장으로 그 가능성이 의심되었다. 케인즈는 통화량을 늘여 이자율을 낮추고 이것이 확대된 기업투자로 이어지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그 결과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통화 정책보다는 재정 정책을 선호하였다.

2)

"엄마, 저 돈 좀 주세요"

"그런 거 없다"

"아 제발요. 밥 먹을 돈도 없어요."

"... 오천원."

"이거 교통비 하면 밥값도 안 나와요."

"셔틀 타면 되잖니?"

어머니는 항상 타이트한 통화 정책을 추구하신다.

('GDP' 항목에서 계속)


파레토 효율

1)Pareto efficiency. 한 주체의 효용을 늘이기 위해서는 다른 주체의 효용을 줄여야만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이 경우 전체의 효용이 최대가 된다. 완전경쟁시장에서는 파레토 효율이 달성된다.

2)

오천 원. 집 앞에서 지하철까지 버스를 타고 환승하면 학교 앞 역에서 내릴 때 추가운임이 발생한다. 지하철까지 걸어가지 않는다면 내가 밥을 굶거나 어머니한테 용돈을 더 받아야 한다. 결국 잠이 덜 깬 몸을 이끌고 지하철까지 걸어간다.

('케인즈' 항목에서 계속)


효용

1)소비자가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얻는 만족.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사람인 경제인은 이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소비하는 양이 많을수록 한 단위의 소비를 늘일 때 증가하는 효용의 양은 감소하며 이를 한계효용체감이라 부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거래가 일어나면 한계효용체감을 피할 수 있어 전체 효용은 증가하는 결과를 얻는다.

2)

"이런다고 너한테 좋을 것 하나 없다고! 이게 너한테 무슨 효용이 있어!"

필사적으로 오른손을 움직였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어! 이건 전혀 합리적('경제인' 항목 참조)이지 못한 일이라고!"

더 이상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 눈이 감겨온다.

('가정' 항목에서 계속)




참고자료

이준구, 이창용, 『경제학 들어가기』, 2판, 법문사, 2009




맺는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중에는 수능에 나온 자기 시에 대한 문제를 다 틀린 최승호 시인의 인터뷰 기사도 있다. 한국의 언어교육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서 보면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만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조물주의 손을 떠난 인간의 자유의지로 조물주의 속을 자주 썩이지 않던가.(조물주가 있는가라는 신학적인 질문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그래서 난 내 작품의 독립적인 삶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구체적인 해설은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래도 글을 무책임하게 던져놓고 알아서 읽으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최소한의 설명은 하려고 한다.


점성술이나 사주팔자와 같이 인간이 태어난 시각을 기준으로 그 인간의 특성을 분류하는 일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이 쓴 글은 조금 다르다. 사람이 쓴 글은 그 글이 태어난 시각의 분위기를 담는다. 이런 말을 쓰는 이유는 이 글이 우울한 분위기를 담은 이유가 작가가 우울한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작가가 우울한 시각에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기 위해서다. 글을 다 친 것은 감기기운에 부은 목을 축이던 새벽 5시 경이었는데, 모두들 알다시피 새벽 3시는 인간이 가장 감정적인 시각이다. 원래 이 글의 모티브가 되는 소설이 괴기소설인데다가 태어난 시각 또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시간이었으니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우울한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 다시 한 번 밝힌다.


다만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과제가 ‘현대경제의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내가 한 것은 ‘현대경제’를 표현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맺는말에서는 조금은 더 현대경제의 이해 수업을 표현한 것에 알맞은 개인적인 바람을 써보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헛소리를 할까 두려워 침묵하려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언을 하기 마련이며 실수는 인간적(errare humanum est)이다. 미래의 산업 또한 헛소리 위주로 재편될 것이다. 기계가 발달하면 사람의 노동은 육체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혹은 기계적인 것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옮겨갈 것이고, 가장 인간다운 행위는 문학과 예술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지어낸 이야기 또한 실체 없는 헛소리 아니던가. 결국 우리 모두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먹고 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동안 이 미래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 이 선언 또한 헛소리인 것 같긴 하지만.


‘헛소리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나 자신에 대한 주문이기도 하다. 나서서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이면에는 헛소리를 할까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언을 하더라도 다 같이 한 번 크게 웃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하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좀 더 자유로운 헛소리를 위하여. 헛소리가 좀 더 많은 사회가 좀 더 유쾌한 사회 아니겠는가. 한 번 뿐인 인생, 즐겁게 살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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忘生舞

Writer/Short 2012.09.09 09:00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농부 하나가 살았어요. 농부의 아내는 일찍이 하늘로 떠나버렸지만 농부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 딸은 고운 마음씨와 아름다운 용모로 소문이 자자했어요.

 

시간이 흘러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때만 노리던 수많은 청년들이 백리 밖에서도 모여들었지만, 그 누구도 농부의 눈에는 부족해 보이기만 했지요. 결국 그 청년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원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시무시한 가뭄이 찾아왔어요. 논은 자라 등껍질처럼 갈라졌고 산의 나무들조차 넘치는 햇님의 축복으로 누렇게 시들어 버렸답니다. 가뭄은 끝나고 가을이 왔지만, 논에는 벼가 남아있지 않았어요. 농부는 겨울나기가 막막해 논 언저리에 걸터 앉아 한숨만 쉬곤 했답니다.

 

그렇게 하늘을 원망하던 농부에게 한 부자가 찾아왔어요. 부자는 농부에게 쌀을 빌려줄테니 내년에 동등한 양으로 갚으라고 말했어요. 농부는 망설였답니다. 그 부자에게는 나쁜 소문만 가득했거든요. 하지만 농부에게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답니다. 쌀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밖에 없었거든요.


그리고 다음 해가 되었습니다. 하늘은 작년에 지독했던 가뭄을 가져다 준 것이 미안했었는지 이번에는 엄청난 풍년을 이끌고 돌아왔어요. 농부는 신이 났답니다. 부자에게 빌린 쌀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신이 나 부자에게 갔던 농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부자는 작년에 빌린 쌀이 있었기에 올해 수확을 할 수 있었으니 올해 수확한 쌀을 전부 가져오라고 했어요.

 

농부는 부자의 마당 한 가운데에 멍하니 무너져 내려 있었습니다. 부자는 농부를 잠시 바라보았어요. 그러더니 부자는 마음을 바꾸었는지 이런 제안을 했답니다. 빚을 반으로 줄여줄테니 딸과 결혼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부자는 이제 땅마져도 꺼지는 것 같았지요.

 

절망한 농부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마음씨 고운 딸은 어두운 얼굴의 아버지를 그냥 둘 수 없었답니다. 딸은 농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계속되는 질문에 농부는 부자가 한 말을 전해주곤 한숨만 쉬었어요. 올해 걷은 쌀을 모두 부자에게 주면 겨울동안 먹을 것이 없었으니까요.


딸은 잠시 생각하더니 단호히 말했어요. 결혼을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딸을 농부는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답니다. 결국 결혼식을 하는 날이 되어 딸은 시집을 가 버렸고, 농부는 매일 매일을 눈물만 흘리며 보냈답니다. 이웃이 매일 와서 밥을 해 주며 같이 먹어주지 않았더라면 농부는 굶어 죽고 말았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농부 집 마당 한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가 자랐어요. 농부는 눈물을 마시며 자라난 나무를 보며 딸을 닮은 목상 하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아직 농부는 딸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었지요.


시간이 흘렀어요. 부자는 딸 말고 다른 여자에게 더 눈길이 가기 시작하자 딸을 쫓아버렸답니다. 갈 곳이 없어진 딸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어요. 묘하게 가슴뛰게 만드는 농부의 집 마당을 지나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선 딸은 그대로 굳어버렸어요. 거기에는 자신의 모습을 꼭 닮은 목상이 있었고 그 발치에는 끌을 쥐고 쓰러진 농부가 있었거든요. 딸은 급히 농부를 끌어안았지만 아직 따스한 농부의 몸은 숨이 없었어요. 딸은 울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도록 울고 난 딸은 목상에 입을 맞추곤 농부처럼 쓰러져 버렸지요.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밥을 해 주러 온 이웃의 눈에는 차갑게 식은 농부가 보였어요. 그리고 농부가 만들던 목상도 보았고요. 목상은 아름다웠습니다.


이웃은 농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는 목상을 가지고 장터에 갔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목상을 누군가는 살 테고, 오랜만에 집에서 쌀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확실히 목상을 들고 다닐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한번씩 돌아 볼 정도로 목상은 아름다웠어요. 이웃은 장터 한 가운데에 목상을 내려놓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목상을 두번 두드렸답니다. 장터의 모든 사람들이 돌아보았어요.


목상은 갈라졌어요. 그러더니 갈라진 표면을 따라 나무가 뱀의 허물처럼 허물어 내렸어요. 허물어 내리고 난 목상은 아름다웠어요. 그 찬란한 색에 모든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했답니다.


목상은 눈을 떴어요. 그러고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어요. 그리고 나서 목상은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춤이었어요. 너무도 아름다운 춤이었기에 사람들은 숨 쉬는 것을 잊어버렸지요. 사람들만 홀린 것이 아니었어요. 지나가던 동물들도 그 춤에 홀려 버렸답니다. 심장들은 뛰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뿌리들은 마시는 것을 잊어버렸지요. 모든 것이 고요했습니다.


춤은 부자의 집까지 계속되었어요. 춤이 지나간 자리에는 정적만 남았습니다. 언젠가는 그 정적들도 잊혀지겠지요.


그리고 춤은 영원히 이승을 헤메고 있답니다.




'아름다움이 살인무기가 될 수는 없을까'라는 망상에서 탄생한 설화(?). 미인계와 같이 아름다움이 파탄을 이끄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로 살인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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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오르려던 사람들이 흩어지고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흔적만 남은 탑 앞에는 한 남자의 터전이 있는데, 이 남자의 눈은 길을 지나간 그림자의 흔적을 알아볼 정도로 날카로왔다.


어느 날 아라지의 한 연금술사가 남자를 찾아왔다. 이 연금술사는 작은 에메랄드 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뱀들이 줄을 이루어 꼬리를 물며 춤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에메랄드 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에메랄드 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아비두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금술사는 남자의 거처에 해가 다섯번 질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금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연금술사는 작은 금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연금술사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자이번의 한 뱃사람이 남자를 찾아왔다. 이 뱃사람은 작은 금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자그마한 사람과 새들의 그림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뱃사람은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금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금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아라지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뱃사람은 남자의 거처에 안식일이 다섯번 지날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은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뱃사람은 방패만한 은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뱃사람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기탈저의 한 사냥꾼이 남자를 찾아왔다. 이 사냥꾼은 방패만한 은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부러진 막대기들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사냥꾼은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은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은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자이번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냥꾼은 남자의 거처에 달이 다섯번 날개짓을 할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동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사냥꾼은 손가락만큼의 동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사냥꾼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아비두의 한 현자가 남자를 찾아왔다. 이 현자는 손가락만큼의 동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동판들 위에는 자그마한 원과 세모들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현자는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동판들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동판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기탈저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현자는 남자의 거처에 해가 다섯번 돌아올 동안 머무르며 돌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현자는 다섯사람의 손가락만큼의 돌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현자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자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흔적만 남은 탑을 올랐다. 남자의 한숨은 폭풍이 되어 탑의 남은 흔적을 지워버렸고, 그 이후 그 남자를 본 사람이 없었다.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년이란 시간을 잘만 써 놓고 이상한 시간 단위 고안해 내느라 고생했다.


자이번의 뱃사람과 기탈저의 사냥꾼이 익숙하다면 기분탓일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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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난, 들어버렸다.


"그래"

눈물이 나왔다.

다시 들려주더니 뒤돈다.

라디오 램프의 루즈한 리듬에

마치 마법처럼 모든 만상이 멈춘다.

부슬이는 비는 바람에 비명이고

서서히 식어가던 사랑은

이별이 이었다.

조용히.


그렇게 난, 들어버렸다.



말장난 말장난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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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할 수 있는 것[http://heterosis.tistory.com/365]

잉여의 과학자들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것인가? 그들은 이 역겨운 자본주의의 수렁이 그들의 위치를 점점더 구덩이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모르는 듯 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오히려 그 자본주의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전통 속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저질러야만 하는 그 수렁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몬산토로, 거대제약회사로, 것도 아니면 벤쳐로, 또는 퀀트가 되어 맨하탄의 금융중심지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이들이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데 있어서는 이다지도 무력하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멍청하다.


우울한 현실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고에너지 물리학은 현재는 되면 해 볼까 하는 수준의 선택지로 남아있다. 먼저는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전 세계를 통틀어 100명 내외라는 현실적인 이유이고, 근본적으로는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연금술사』의 어떤 할아버지처럼, 사람들에게는 이루어지기 두려운 꿈이 있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 우울한 현실이 절망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잉여의 과학자들이 있다는 것은 세계가 과학자들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옛적 영국의 쫓겨난 농노들처럼 기계들을 부수러 다니겠는가. 부서진 기계들의 잔해를 짓밟고 다시 땅을 경작하기를 원했던 그들은 결국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세계는 이미 변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하게 하고 싶다면 세계가 과학을 요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 물결은 너무나도 거대하게만 느껴진다. 세상이 다시 과학을 요구하도록 하기에는 과학이 너무 많이 커 버렸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과학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타락인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선택했다. 순수한 자기만의 세계에서 세상을 향해 내려가기를 선택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순혈주의 아닐까.

물론 나도 과학에 대한 수요가 넘쳐나는 세상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세상에 발 붙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틈만 나면 아름다운 이론을 박살내려 안달이 난 현실이 탐탁지 않기는 하지만, 무엇이든 하려면 현실이라는 땅에 기반을 다져야만 한다. 조금은 무리한 예지만 패러데이는 제본 견습생이었고, 아인슈타인은 특허청 공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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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Donni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9급 공무원 준비하시는건가요? 냐하하하..

    2011.11.02 01:28 신고

오랜만에(?) 휴가를 나왔다. 그냥 저냥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이러면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서 산책이나 할까 하고 집을 나섰다.

휴가나와 만날 사람이 없다니 내 인생이 그렇지 뭐 -_- 

활자중독이라는 병리현상에 찌든 무거운 육신을 끌고 다니는지라 뚜벅뚜벅뚜벅 길을 걷다가 들어간 곳은 서점이었다. 서점에 들어서면 서점의 명당자리를 떡하니 꿰차고 있는 것은 베스트셀러 코너이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얼핏 훑어봤는데 있는게 긍정 뭐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 위주였던지라 볼 것 없겠구나 싶었다. 경제/경영 서적도 좀 있긴 했는데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했다. 외국인 저자들의 책을 번역한 번역서의 경우 원제를 적어주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러는 번역한 제목보다 번역 전의 원제가 책의 내용을 더 충실히 반영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제목으로 번역되었더라도 다른 원제를 가진 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물론 장하준 교수는 책을 영어로 썼다. 그래서 원제를 다는 것이 어색해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내 저자들이 쓴 책에서도 영어로 제목을 다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꽤 전에 사볼까 했다가 아는 것들을 다시 읽는 수준에서 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포기한 『통계의 미학』에는 Statistical Thinking이라는 영어 제목이 붙어있다.

통계의 미학
최제호 지음/동아시아
통계는 사기 아닌 사기다. 그래서 통계에 문외한이라면 이런 책을 읽는 편이 좋을지도.

내가 서점에서 보았던 책은 이 책이었다.

습관부터 바꿔라
전옥표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Changing Habit은 "습관 바꾸기"다. 제목을 살리고 싶었으면 Change your habit쪽이 맞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살펴봤더니 역시 영어 제목도 같이 달려있다. 그걸 다 나열한다면 무의미한 광고가 될 테니 넘어가자. 영어 제목도 붙이기는 이 저자만의 취향일지도 모르니 다른 책들을 살펴보자.

제대로 시켜라 
류랑도 지음/쌤앤파커스
Performance Leader랑 "제대로 시켜라"는 의미는 얼추 비슷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전자가 이끌어가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밀어붙이는 느낌.

많지는 않지만 그런 책이 있기는 있다. 그렇다고 꼭 경제/경영 분야의 책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훑다 보니 『SKT』라는 야구를 엄청 잘할것만 같은 제목의 소설도 있고, 신간 리스트에는 살까 고민되는 『커피 마스터클래스』라는 책도 있으며(에스프레소는 맛있다), 몰랐는데 『철학 콘서트』에도 Philosophy Concert라는 영어 제목이 같이 기록(?)되어 있다.

허구한날 국어책에서 외쳐대는 "바른말 고운말 우리말을 사랑합시다"라는 진부한 구호를 외치려는 것은 아니다. 당장 길거리를 돌아다녀 봐도 안경집 창문엔 영어로 무엇이 아름다운 눈인가 논하고 있고 음식집 벽면엔 "우리는 당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영어로 쓰고있는 것을 보면 이미 영어는 반 모국어의 단계에까지 올라섰다. 수능의 외국어 영역이 사실상 영어 영역 아니던가. 단지 왜 한글로는 이런 미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가,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TAG 영어,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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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수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기하학과 대수학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 위대한 발견이 겨우 부록 따위로 여겨지는 그 유명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cogito ergo sum". 아무리 고찰해 보아도 고찰하고 있는 어떤 무언가가 존재해야만 하는데, 그 존재가 내가 아니면 무엇이겠냐는 말이다.

물론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는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무언가는 이 감각에 대해 회의하고 있고 또 지금 이 잡다한 생각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그 무언가가 "나"라고 확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그 무언가를 나라고 확언하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등골을 타고 뒷골을 강타했다.

"으앗 차!"

얼떨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 이거 또 독서실에서 소리지르는 어떤 무개념이 또 나타났다며 성토하는 게시글이 학교 커뮤니티를 도배하겠군.

"쉬잇!"

참 잘도 조용히 시킨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크게 소리지를 줄은 몰랐나 보다. 얼굴에 당당히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다니.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했다.

"네가 그렇게 갑자기 차가운 캔을 대지만 않았어도 조용했을 거거든?"

"눈 앞에서 손을 몇번이나 흔들었는데 정신을 못 차려? 도대체 뭣에 그리 넋이 팔린거야?"

"숙제"

책상 위에는 깨끗한 미적분학 책과 공식이 이리저리 흩어진 A4용지가 널부러져 있었다. 벡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 써먹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이거 기한 지난건데?"

맙소사.

"그보다 빨리 짐 챙겨. 다음 수업 지각하겠다."

"지각하지 뭐."

"지각하면 F인데?"

응? 지각하면 F라니, 그 수업은 화요일에 있는데?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잠깐. 황급히 손목시계를 보았다. 요일을 가리키는 바늘은 무심히 TUE라는 글자를 향해 서 있었다.

"으악!"

또 모든 독서실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오늘 밤 게시판 다운되겠군.



"42번 또 지각인가? 옥세화 지각..."

"아직 아닙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헐떡거리는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외쳤다. 시계를 보니 2시 29분. 아직 수업 시작 1분 전.

"...은 아니군. 자리에 앉기 전 30분이 되지 않는다면."

시계의 숫자는 2:29:54. 꽤 많은 계단을 뛰어올라왔던 다리는 내 자리까지 다시 뛰어야 했다. 독서실에서 깨워주는 친절함을 보였던 재현이는 먼저 가겠다면서 같이 가자는 내 절규를 무시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태평히 옆자리에 앉아있다. 병주고 약주고도 아니고 야속한 녀석.

"자, 수업 시작. 294쪽. 3부 열역학이다. 설마 1권 가져온 사람은 없겠지?"

설마가 사람잡는다. 급하다고 집히는대로 들고 뛰어왔더니 2권이 아닌 1권을 가져왔다. 옆자리에선 당연하다는 듯 2권을 꺼내며 날 한심히 쳐다본다. 네가 날 그렇게 놀래키지만 않았어도 제대로 들고 왔을 거거든? 임시방편으로 맞는 책을 가져온 척 1권을 펼친다.

"열역학은 원래 물리와는 전혀 다른 분과에서 시작한 학문이다. 현대 학문 체계에서 초기의 열역학과 가장 가까운 학문은 화학이다. 옛날 사람들은 열의 원인을 칼로릭, 번역하자면 열소,의 운동으로 여겼다는 사실이 이를 잘 드러낸다. 열역학이 물리에 편입되게 된 배경에는 ..."

너무 뛰었더니 졸리다.

"... 물질의 합성비가 ... 원자설이 ... "

눈이 너무 피곤하다. 눈만 잠깐 감자. 잠은 안 잘거다.



깜짝이야. 흰 바탕 위에 검은 글씨가 마구 흩날린다.

'분자 하나 하나의 위치는 완전한 우연을 이룬다. 분자는 상자의 모퉁이에 있을 수도 있고, 한 가운데에 있을 수도 있으며, 벽의 정 중앙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분자가 한 위치에 모여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별적으로는 우연에 속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필연인 것이다."'

전공 책을 읽는 기분이다. 내가 이런 책을 읽을 리가 없으니 현실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자각몽인가?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어떤 작가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그 인터뷰어가 이야기를 쓸 때 어디까지 이야기를 구상해 놓느냐고 묻자 인터뷰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커다란 흐름만 잡아 놓고 나머지는 손 가는대로 씁니다. 이야기 자체는 정해져 있지만, 그 순간 순간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순전히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적지요. 이전에 실수로 잃어버렸던 원고를 다시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초고를 찾아서 비교해보니 줄거리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글이 되어있더군요.」 이야기는 필연이지만, 단어는 우연이라. 전체는 필연이지만, 개별은 우연이라.'

그 작가의 인터뷰라는 것, 읽어 본 적이 있다. 뉴먼 로스라는 작가일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날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진다. 나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던 나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거기 멍때리고 있는 자네. 그래서 도입 된 물리량이 무엇이라고?"

다행히 별로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엔트..'

옆구리를 찌르는 손가락에 놀라 얼떨결에 일어서고 말았다. 꿈꾸고 있는데 찌르는 건 뭐람.

"일어서서 대답할 필요까진 없는데 그쪽이 편하다면 편한대로 하도록."

응? 찔린 방향을 쳐다보았더니 재현이가 입을 벙긋거리고 있다. 시간은 가고 있고, 무슨 질문인지는 모르겠고, 벙긋거리는 입을 보니 엔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일단은 한 글자라도 시작해 보자.

"엔...트.."

"...로피. 좋아. 졸아도 수업은 듣고 있네. 수업을 계속 진행하지."

얼떨결에 맞추었다.



수업이 끝났다. 다행히 다섯번째 지각은 면해서 F는 피했다만, 다음 번에도 늦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천천히 독서실로 내려오는데 재현이가 뒤에서 따라잡았다.

"잘만 자던데 대답은 어떻게 또 한거야?"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조금 뜸을 들이고 대답해주었다.

"그냥, 그렇게 대답하면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아리송한 표정의 재현이를 남겨두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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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 venator

Writer 2011.06.04 21:25
한번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단편은 가끔 써 보긴 했는데 역시 목표는 장편.

장편 소설에 가끔 등장시키려고 써본 신화. A4 두장 정도의 분량.



먼 옛날, 그러니까 해는 춤추고 달은 노래하며 그 깃들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한 작은 마을에 또래보다 유독 작은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의 가슴 속에는 어느 다른 소년보다도 거대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바로 '욕망'이었다.

이윽고 소년은 자라 자신만의 활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활은 자신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물건이어서, 그 주인이 될 사람이 그 활의 첫 희생물의 피로 활에게 이름을 하사해야 비로소 그 주인을 받아들인다. 활은 이름을 선사받는 순간부터 그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 맹약은 자신의 이름을 전해 준 그 희생물의 나이까지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는 오래된 활을 들고 다니는 사냥꾼들이 존경받고는 했다.

그 마을에서 자신의 첫 활은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의 피로 이름을 내려주는게 보통이었고, 간혹 욕심이 있는 자들은 표범을 잡곤 했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은 표범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소년은 남들이 아직 잡아보지 못한 사냥감을 사냥하기로 했다. 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나는 새, 그 어떤 새보다도 화려하게 날갯짓하는 새, 그 어떤 새보다도 맑게 노래하는 새, 달을.

소년은 달을 같이 좇을 활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소년은 다른 또래들처럼 나무들을 찾아갔다. 나무들에게 찾아간 소년은 같이 달을 좇을 것인지 물었고, 나무들은 만조(萬鳥)의 여왕을 좇겠다는 소년의 말에 기겁하였다. 나무들은 어찌 천상의 여왕을 범할 생각을 하냐며 소년을 나무라며, 자신들은 그런 불경스런 일에 가담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소년의 욕망은 나무들의 거부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소년은 나무의 팔을 취해 자신의 활로 삼았다. 나무들은 고통에 떨며 앞으로는 자신들의 눈물만을 내어주리라 저주를 내렸고, 이후 사람들은 나무의 살은 먹지 못하고 눈물만 먹게 되었다. 눈물만 먹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하게 되었다.

소년은 달을 좇을 활을 구했지만 그 활에 실을 화살은 구하지 못하였다. 달을 좇을 화살을 찾아 헤메이던 소년에게 기꺼이 화살이 되어 주겠다고 나선 것은 흙이었다. 자신에게 난 모든 것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지만 그를 거부했던 두 새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흙은 그 오만한 두 새를 떨어뜨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소년은 흙에게 너는 무슨 재주가 있냐며 조롱하였고, 흙은 모욕에 치를 떨며 소년을 방해하겠다 맹세하였다. 소년은 빛에 대한 욕심이 강해 주변에 빛 조각이 있으면 끌어당기는, 하지만 그 자신은 그 탐식으로 검게 물든 돌이 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들어 알고 있었고, 달의 피를 마실 화살로 그 돌을 선택하였다. 소년은 빛 조각을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그 돌이 달의 피를 다 마시고 피를 잃은 달이 금방 잡히리라 여겼다.

활과 화살을 구한 소년은 활을 들어 달을 보았다. 달이 그 날개를 활짝 피었을 때, 소년은 천천히 활을 당겨 달을 겨냥하였다. 이윽고 소년이 활의 시위를 놓는 순간, 흙이 몸을 비틀며 소년의 사냥을 방해하였고, 소년이 활에 실어 날려보낸 화살은 빗나가 저 멀리 남녘으로 사라져 버렸다. 빛 조각을 끌어당기는 돌은 지평선 너머로 멀어져 가면서 하늘에 가득하던 빛나는 깃들을 같이 끌고 가 버렸고, 이후 깃들은 사람이 두려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년은 흙에게 네가 왜 나를 방해하느냐 화를 내었다. 흙은 너는 나를 욕되게 했다고 하면서 네가 나를 딛고 활을 당길 때마다 나는 내 몸을 비틀어 너를 방해하리라 맹세했다고 말했다. 소년은 이를 무시하고 다시 시위를 당기어 달을 겨냥했으나 흙이 몸을 다시 비틀었고, 몇번 더 활을 들었던 소년은 망각을 모르는 흙이 자신을 계속 방해할 것을 깨닫고는 물을 딛고 달을 좇아야만 했다.

물은 딛을 때마다 일렁였고, 물에 익숙하지 않던 나무의 팔은 끊어지고 말았다. 소년은 물을 버티지 못한 그 팔을 욕하며 집어던지고 다른 활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모두들 소년의 활이 되기를 거부하였다. 소년이 강제로 나무의 팔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고, 그 팔이 돌아갈 때 조차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이 되어 줄 것이 없었지만 소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더욱 거대하게 자라났고, 욕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 저항하지 않는 빛나는 깃들을 그의 활과 화살로 삼으라 부추겼다. 소년은 해와 달의 깃으로 활과 화살을 짰지만 하늘에 올려둔 활과 화살은 매번 남녘으로 날아간 돌이 가져가 버렸다. 소년은 다른 탐식에 물들은 돌을 구하여 북녘에 두었고, 깃들은 두 돌들이 서로 끌어당겨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소년은 새로운 활과 화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소년은 다시 달을 좇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깃에 좇기기 전까지 위험을 모르던 만조의 여왕은 겁을 먹고는 노래하기를 그만두었고, 만조의 왕은 자신도 자신의 깃에 좇기지 않을까 걱정하다 춤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소년은 계속 달을 좇았으나, 물을 디딘 탓에 그 화살은 매번 빗나가곤 했다. 그러나 소년이 화살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달은 숨어 화살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화살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나와 도망을 계속하였다. 간혹 소년이 잘못 쏜 활이 해를 좇는 경우도 있었지만 걱정하느라 춤마저 잊어버린 왕은 그 때마다 달처럼 숨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소년의 추적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소년은 늙어갔고, 소년이 잡히지 않는 달을 좇다가 노쇠하여 힘을 잃어버리자 욕망은 소년의 몸까지도 집어삼켰다. 욕망은 소년이 짠 활과 화살에 입혀 사냥을 계속하였다. 간혹 욕망은 흙이 방해하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싶어 흙에 기대 날카로운 시위를 당겨보곤 했으나 망각을 모르는 흙은 항상 온 몸을 비틀어대었다.

욕망은 지금까지도 만조의 여왕을 좇아 헤매인다. 욕망이 그 헤맴을 멈추게 되면 그가 남겨놓던 발자국보다도 더 강하게 세계를 잠식할 것이고, 그 때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리라.

- 뉴먼 로스(Numon Rothe), 『흩어진 전설들의 모음집』, 제 5장 中



이야기 진행에 방해되기 때문에 빼 놓은 건데, 소년이 짠 활은 별자리가 되었고 쏘아진 화살들이 별똥별이며 땅이 방해해서 지진이 생기고 가끔씩 숨기 때문에 일식과 월식이 생기며 북녘과 남녘에 던져진 돌 때문에 나침반이 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영도를 읽던 사람은 알겠지만, 눈물에 대한 오마주. 아무래도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지만 그냥 놔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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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의 초콜릿 공장이라는 동화가 있다. 겸손함을 칭송하고 예의없는 태도에는 가차없이 철퇴를 내려찍는 보수주의의 정수를 모아놓은 동화인데, 이름있는 배우 조니 뎁이 출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는 찰리의 아버지가 치약 공장에서 치약에 뚜껑을 끼우는 일을 하다가 그 일을 대신할 기계가 들어오는 바람에 짤리는 장면이 나온다. 비록 영화는 마지막에 아버지가 그 기계의 정비를 맡는 정비사가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을 찾을 수 있을까?

기술은 발전한다.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의 증가를 낳기도 하지만, 애꿎은 곳에서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프레온 가스와 피부병의 관계도 하나의 예이지만, 사람들이 좀 더 직접적으로 느꼈던 말썽은 꽤 극단적인 상황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란게 일어난 이후 19세기 초에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알 것이다. 기계 파괴 운동 말이다. 현실은 영화에서처럼 해피엔딩이 아니라, 뚜껑을 끼우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자 기계를 부수러 공장에 무기를 들고 입성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사람이 하던 일을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금방 보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옆에서 시끄럽게 돌아가는 세탁기는 원래 내가 강가에 앉아 손으로 빨랫감을 내려쳐야 하는 수고를 약간의 수도세와 전기세로 전담해주고 있다. 랩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원래 누군가가 옆에서 악기를 들고 딩가딩가 하고 있었어야 했던, 엄연한 노동이다. 이것 뿐이던가? 식기세척기는 어머니가 식사 후 투덜대며 하시던 일을 대신하고 있고, 공장에서 차 철판 사이사이에 용접하는 일도 원래는 기술자가 하던 일이다. 기계가 도입되기 전에 만들어진 치약들의 그 많은 뚜껑들은 누가 다 끼웠을까?

물론 사람만 할 수 있는 일도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 소설가만 사는 나라는 없지 않던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다소 우울한 질문은 옆으로 치워두고, 지금처럼 기술의 발전이 급격하게 진행될 때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전에도 한 번 간단하게 글을 썼던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첨단 기술이 세계의 지평을 넓힐수록 '그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혹은 '그 기술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은 더욱 시달리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시달림이 대를 이어 유전된다는 것이다. 영화 아이로봇을 생각해보자. 길거리를 쓰는 청소부들 중 사람은 없었고, 집에 로봇 한 대 없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 로봇이 공급되기 시작했을 때 길거리를 청소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또, 저 시대에 로봇을 살 돈이 없어 집안 일을 전부 자기가 도맡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아들딸들은 그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이미 존재한다. OLPC(One Laptop Per Child)라고 해서 극빈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한 대씩 지급하자는 운동인데,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언제까지나 가난의 사슬을 끊자는 것이 목표이지 가난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미래의 씨앗이지만, 어른은 현재이다. 미래의 씨앗은 언제나 현재라는 토대에 심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미래를 생각하는 만큼 현재에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

물론 기술이 인간을 밀어내는 만큼 기술은 인간을 필요로 하는 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만들어낸 자리는 기술이 밀어낸 자리와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손가락 봉합을 잘 하는 의사라고 하더라도 녹내장 수술을 바로 잘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차이를 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재교육이고, 재교육은 개인 수준에서보다는 국가 단위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돈을 잘 버는 직업은 대부분 그 전문성 때문에 대체할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계들에게 밀려난 자리가 부유한 직업일 가능성보다는 가난한 직업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이 이럴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누가 무어라고 하던,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며 가축이 설 자리가 좁아진 것처럼 인간이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고, 설 자리가 사라진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미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보았던 '재정파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복지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신문기사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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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공학,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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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bar.tistory.com BlogIcon h-ba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참 어렵습니다.. 기술하나 개발할때마다 몇십년 뒷일까지 다 생각할 수도 없는일이고...

    2010.08.14 17:42 신고
  2. hmmm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학적 사고는 기계가 영원히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일테지만, 저보다 적분을 잘하는 계산기를 보면 무섭기도 하군요..

    2010.08.16 01: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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