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7.10.07 신서로, <피어클리벤의 금화> (2)
  2. 2012.08.13 갑각 나비 - 현실은 환몽을 낳고 실제는 몽환을 먹으며 자란다
  3. 2011.09.13 피에르 불 저 이원복 역, [혹성 탈출] (2)
  4. 2011.07.20 한 수업시간의 꿈
  5. 2011.06.04 Luna venator
  6. 2010.07.24 이야기꾼 (3)
  7. 2010.06.27 크로스로드 SF 단편집,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2)

아마 살면서 경험할 추석 연휴 중 가장 긴 추석 연휴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번 연휴. 적당히 쉬었으니 슬슬 느껴서는 안되는 감정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런저런 소설을 읽었습니다. 흔히(?) 말하듯 노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있음에도 노는 것이 재미있는 것인 법이니까요(...) 점차 준비해둔 소설의 리스트가 다해가던 때, 다양한 사람들의 추천을 보고는 언젠가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해놓고는 서장만 읽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소설이 생각나 다시 펼치게 되었습니다. 아니, 다시 열었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려나요. <피어클리벤의 금화>입니다. 모처럼 비평을 작성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든 글도 오랜만이군요.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s/?novel_post_id=11110


판타지라는 장르에서 사람들이 연상하는 것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 공통점을 하나로 묶어낸다면 마법, 이종족, 종교, 그리고 중세 정도일까요?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근세나 미래의 기계문명을 엮어내는 경우도 있으니 마법과 이종족 정도를 판타지 장르의 가장 큰 특색이라 부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문제가 하나 남습니다. '왜?'


왜 사람들은 굳이 마법과 이종족이라는 자신도 만나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해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일까요? 그냥 재미있어 보이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촘촘한 인과의 거미줄을 요구하는 허구와는 달리 주사위 놀음의 변덕에 시달린다는 것이 현실의 고약한 점이니까요. 하지만 그 변덕에 의해 망가진 거미줄을 수복하는 거짓만큼 사람의 인상에 깊게 남는 것은 없다고 했죠.[각주:1] 그렇다면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거미줄 가닥을 찾아 사유의 손끝을 더듬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우선 마법의 레종 데트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중세란 배경은 (우리가 아는 한) 기술문명의 최전방에 선 현대의 독자들에게 너무 느린 시대입니다. 나이와 관록이 동의어로서 사용될 수 있던 시대와 그 둘은 독립적인 개념임을 실증하는 현대의 멀미나는 기술발전속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활동에 전반적으로 속도가 붙었지요. 가령 통화기능이 달린 회중시계는 실시간으로[각주:2]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발달된 의료기술은 질병의 (제한된) 정복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속도로 질환으로부터 회복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었죠.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판타지란 장르에서 마법의 의의는 화려한 화염구를 적들에게 날리는 극적인 긴장감에 있지 않고 회복마법으로 동료를 치료하거나 원거리의 동료와 심상으로 소통하는, 이른바 현대 기술문명의 속도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한 현대기술의 대체품이라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발달된 기계문명과 마법을 함께 다루는 것은, 마법으로 작동하는 기계들이 아닌 이상, 어떤 의미에서 자기모순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계문명을 바탕으로 세워진 사회와 마법의 반석에 기초한 사회 사이의 골이 깊은 단절된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각주:3]


이종족의 존재는 아무래도 마법보다는 다소 까다롭습니다. 왜 판타지 장르에서는 귀가 조금 더 길고 수명도 조금 더 긴 사람이나 머리 한둘 정도 작고 빠르게 늘어나며 피부가 녹색인 사람(?) 등을 도입하는 것일까요? 그저 색다른 외모를 가진 자들을 추가하여 다른 세계의 이야기임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우화의 형식을 빌어 인격을 부여받은 동물들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있을텐데 말이죠.


여기서 잠시 판타지 장르에서 이종족이 다뤄지는 방식을 떠올려봅시다. 이종족은 외양이나 수명뿐만 아니라 생활 양식 또한 상당히 다른 것으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컨대 귀가 조금 더 길고 수명도 마찬가지로 긴 것으로 묘사되는 종족은 숲을 생활 근거지로 두고 주된 경제활동이 수렵/채집이며 마법에 대한 숙련도가 높은 것으로 묘사되기 마련이며, 머리 한둘 정도 작고 피부가 녹색인 것으로 묘사되는 종족은 마찬가지로 수렵/채집을 하지만 약탈 또한 서슴지 않으며 땅굴을 주된 생활 근거지로 갖는 것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이들과 대응시킬만한 존재를 찾는다면 이방인, 혹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있겠지요.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이종족들은 타국 혹은 타 문화권의 외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고 합니다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중매체나 인터넷 동영상 채널을 살펴보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지를 다루는 내용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습니다. 문화권 간의 차이가 더 벌어진다면 시각의 차이도 한껏 벌어지겠지요. 애석하게도 이 거리감을 살려낸 작품들은 많지 않습니다.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다루는 리뷰에서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가 끝없이 호출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것입니다. <드래곤 라자>에서 묘사된 엘프 이루릴은 분명히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의 내용도 이해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진, 혹은 일반인보다는 머리가 좀 더 좋은, 존재로 묘사되지만 맥락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화에서는 영 겉돌기 일쑤입니다. 머리를 주전자에 빗대는 농을 건네는 장면에서 영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용, 혹은 린트부름의 올바른 적생자, 빌리더자드가 인간 처녀를 납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용은 절대적인 힘 혹은 신격의 현신처럼 묘사되며, 그에 걸맞는 앎을 갖추며 약속에 구속됩니다. 고블린 혹은 흐로킨의 검은 혈맹은 판타지 장르에서 널리 퍼진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묘사됩니다. 피부색은 묘사된 적이 없으나 검은 혈맹이라 했으니 아무래도 어두운 색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이들의 사회와 가장 유사한 이미지를 갖는 문화권(?)을 찾는다면 아무래도 바이킹을 들어야 할 듯 싶군요. 서리심의 무녀는 겨울 혹은 자연의 인격화처럼 묘사됩니다. 인격을 얻은 자연은 수목 보호 외 일절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 문장은 틀렸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넘기기로 하죠. 류그라, 혹은 쓰러진 신목의 유배자들은 판타지 장르에서 널리 퍼진 엘프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원 본거지를 잃고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족으로서 그려지며, 아무래도 떠돌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집시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이들과의 대화는 실로 타문화간의 대화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상이한 가치관 사이의 대화로 그려집니다. 그것이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다른 특기할만한 점은 이야기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의 성비입니다. 막연한 인상비평에 불과합니다만, 이렇게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군상극에서 이야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조타석에 올라타도록 허락받은 인물의 7할 정도가 여성이라는 것은 판타지란 장르에서 상대적으로 드문 일이니까요. <드래곤 라자>와의 또 다른 유사성인 이야기의 배경, 즉 국가의 체계가 뒤틀리기 시작하는 격동의 시기와 관련이 있는 설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되도록이면 자제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쓰러진 신목의 유배자들은 귀가 길며 유랑민족으로서 박해받았고 그들만의 마법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할 두드러짐을 내보이지 못했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들의 발자취로 인해 다듬어진 세계관이 어떻게 타 종족과 다른지 제대로 묘사된 적이 없다고 해야겠지요. 이는 작가의 생각이 아직 거기에 다다르지 못했다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이야기의 전면에 내세워질 기회가 없었던 유랑민족의 비애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공교롭게도 이 비평을 적는 시점에서 소설은 118화까지 진행되었고, 이야기의 전면에 나설 기회가 없었던 류그라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작품인만큼, 조금은 더 기대를 걸어보아도 좋겠지요.


이 즈음 해서 없는 거미줄 가닥을 더듬는 사고실험의 끝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글의 모든 것은 밤하늘의 별들 사이를 잇는 가상의 선만큼이나 허구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별자리와 그에 얽힌 신화가 아직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아주 의미 없는 글은 아닐 것이라 약간은 자위해도 상관없으리라 자기최면을 걸어봅니다.


  1. 제 세계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저술 중 하나인 <블랙 스완>의 저자 NNT의 견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아인슈타인이 이 문제에 골몰한 덕분에 현대물리학에서는 이 개념을 정의하는 것에 애를 먹는다는 사실은 잠시 잊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3. 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겠지요. 가솔린 오토바이를 타고 윈체스터를 쏴제끼는 마법사가 파이어볼을 쏴제끼는 모습에 매력을 못 느끼겠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취향을 관통하는 일도 별로 없겠다고 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티스토리를 시작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
    초대장을 저에게도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메일은 2540mj@gmail.com 입니다.

    2018.01.11 00:25 신고

깨어 꿈을 꾼 기억이 있는가?


간혹 게으름에 굴복해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깨어서 꿈을 꾸게 된다. 정신은 더 없이 멀쩡하지만 육신은 꿈 속을 헤맨다. 육신을 원래의 세계로 돌려놓는 것은 핸드폰 알람이거나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독촉 정도. 그러고 보니 요즘 너무 게을러졌군.[각주:1]


뜬금없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아직은 꼬리가 없는 이 소설이 그와 닮았기 때문이다. '부활의 왼손'이라는 별칭의 신비한 능력을 가진 레이즈와 그와 얽히게 된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면이 점차 융해되어 사라지는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가슴은 그 기묘한 감정의 여운에 한동안 헤맨다.


소설의 독특한 구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는 3장 사전이다. 이미 말한 적 있듯 본인은 구상하기만 하는 소설이 꽤 많다. 그 중 하나가 「어느 역사학자의 책상」이라는 제목을 붙일 예정이었던 글인데, 이 글은 신문기사 스크랩과 녹취록 등 짧은 독립적인 글들로부터 구현되는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만 했었다. 가제처럼 어느 역사학자의 책상을 훔쳐보는 듯 한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갑각 나비』의 3장은 사전의 독립적인 항목들을 첫 장부터 끝까지 읽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필자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글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꽤 커다란 충격이었다.


3장의 경우 그 실험적인 구성으로 소설의 기묘함이 더욱 두드러지나 이 글의 기묘함은 그 구성보다는 그 주제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갑각 나비』의 주제는 원, 정확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소설의 각 장은 크건 작건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각 장에서 그리던 호가 처음 시작한 위치로 돌아올 때가 되었을 때, 그 호는 뒤집혀 원점과 결합한다. 예컨데 이런 것이다. 첫 장에서 알드레는 잃어버린 왼손을 다시 얻으며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원점에서 그는 '솟는 것이 있으면 가라앉는 것도 있다'는 말처럼 무언가 다른 것을 잃어버렸다. 다른 원들은 독자께서 직접 읽으며 찾으시길 바란다.


본인은 이전에 짧은 단상을 적으며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 아는가? 옛 사람들은 원을 완벽한 도형, 즉 가장 아름다운 도형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원의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 소설은 13장까지 나와 있다. 12장과 13장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어서인지 분위기가 다소 다른데, 13장은 설명이 늘어진다는 느낌이다. 13장이 압도적으로 길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 늘어지는 설명이 그 어떤 장들보다도 더욱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었다. 작가의 10년 전의 글을 더럽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기우로 치부해도 좋을 것이다.


http://www.drwk.com/serial/frame.php?idx=12908&bidx=1000024

  1. 물론 헛소리다. 자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개운하게 깨는 것일 뿐.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얼마 전 <혹성탈출> 시리즈의 프리퀄 정도 되는 영화를 한편 봤었다. 꽤 재미있게 보았던지라 이번에는 원작이라는 책을 보기로 했다.

혹성 탈출 - 8점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소담출판사

스포일러를 적당히 당해서(위키에서 검색해본 것이 화근이었다) 그다지 반전이랄 것은 못 느끼게 되어 아쉽다. 1963년의 소설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만들어진 영화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느껴졌다. 이번 서평은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이 주가 될 듯 싶다.

우선 영화부터.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은 개봉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원작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부분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공포를 그려낸다. GMO 작물을 둘러싼 논쟁과 마찬가지로 과학이 주된 공포의 원천이다. 마지막에 점과 선으로 표현된 바이러스의 전파는 결국 기술에 자만했던 GEN-SYS사의 실수로 일어난 것이 아니던가.

책으로 돌아와 보면 여기에서의 공포는 소설 H. G. Wells의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종류와 비슷하다. 웰즈의 소설에서 후대 인류는 놀고 먹고 자다가 기술과 이성을 잃어버린 부르주아의 후손들인 엘로이와 지하에서 노예처럼 일만 하다가 기술과 이성만 발달해 인간성을 잃어버린 프롤리타리아의 후손들인 멀록으로 나뉘게 되고, 멀록이 엘로이를 사냥한다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있다. 불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간의 몰락 원인은 엘로이의 몰락 원인과 마찬가지로 '인생이 편해져 생각하기도 싫어하다 보니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다. TV 보느라 주말가는줄 모르는 사람들, 긴장하란 말이다.

소설에서는 유인원이 인류를 대체하게 되는 과정이 나오는데,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잘 모르겠다. 유인원은 똑똑해지고 인류는 멍청해지면서 유인원이 인류를 쫓아낸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되도록 놔둘 사람들일까? 이전에 TED 강연 중 인간처럼 행동하는 보노보가 나오는 강연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쓴 것처럼 인간은 인간같은 유인원들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을까? 프랑켄슈타인 컴플렉스는 강하다.

조금 생각해볼 점은 소설에서 '이성=언어'라는 등식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언어는 논리적인 사고에 중요하다만 언어 없이 논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할까? 이영도의 『~를 마시는 새』시리즈에서 언어 없이 텔레파시로 의사소통하는 나가라는 종족이 등장하는데, 이 종족에게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들어 사고에 언어는 필수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등장한다.[각주:1] 어릴 적부터 귀가 멀어 수화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도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데, 이런데도 언어가 사고의 필수조건일까?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세계의 한계는 언어의 한계"라면, 언어가 채우지 못한 세계 또한 존재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혹성 탈출 - 8점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소담출판사
  1. 소설 속에는 없고 각 장이 시작하기 전 잠깐 나오는 글에 등장한다.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욱이 요즘에 공부 안하네~ 물리 포스팅이 꽤오래됐어

    2011.09.23 01:33 신고

데카르트는 수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기하학과 대수학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 위대한 발견이 겨우 부록 따위로 여겨지는 그 유명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cogito ergo sum". 아무리 고찰해 보아도 고찰하고 있는 어떤 무언가가 존재해야만 하는데, 그 존재가 내가 아니면 무엇이겠냐는 말이다.

물론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는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무언가는 이 감각에 대해 회의하고 있고 또 지금 이 잡다한 생각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그 무언가가 "나"라고 확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그 무언가를 나라고 확언하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등골을 타고 뒷골을 강타했다.

"으앗 차!"

얼떨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 이거 또 독서실에서 소리지르는 어떤 무개념이 또 나타났다며 성토하는 게시글이 학교 커뮤니티를 도배하겠군.

"쉬잇!"

참 잘도 조용히 시킨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크게 소리지를 줄은 몰랐나 보다. 얼굴에 당당히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다니.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했다.

"네가 그렇게 갑자기 차가운 캔을 대지만 않았어도 조용했을 거거든?"

"눈 앞에서 손을 몇번이나 흔들었는데 정신을 못 차려? 도대체 뭣에 그리 넋이 팔린거야?"

"숙제"

책상 위에는 깨끗한 미적분학 책과 공식이 이리저리 흩어진 A4용지가 널부러져 있었다. 벡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 써먹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이거 기한 지난건데?"

맙소사.

"그보다 빨리 짐 챙겨. 다음 수업 지각하겠다."

"지각하지 뭐."

"지각하면 F인데?"

응? 지각하면 F라니, 그 수업은 화요일에 있는데?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잠깐. 황급히 손목시계를 보았다. 요일을 가리키는 바늘은 무심히 TUE라는 글자를 향해 서 있었다.

"으악!"

또 모든 독서실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오늘 밤 게시판 다운되겠군.



"42번 또 지각인가? 옥세화 지각..."

"아직 아닙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헐떡거리는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외쳤다. 시계를 보니 2시 29분. 아직 수업 시작 1분 전.

"...은 아니군. 자리에 앉기 전 30분이 되지 않는다면."

시계의 숫자는 2:29:54. 꽤 많은 계단을 뛰어올라왔던 다리는 내 자리까지 다시 뛰어야 했다. 독서실에서 깨워주는 친절함을 보였던 재현이는 먼저 가겠다면서 같이 가자는 내 절규를 무시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태평히 옆자리에 앉아있다. 병주고 약주고도 아니고 야속한 녀석.

"자, 수업 시작. 294쪽. 3부 열역학이다. 설마 1권 가져온 사람은 없겠지?"

설마가 사람잡는다. 급하다고 집히는대로 들고 뛰어왔더니 2권이 아닌 1권을 가져왔다. 옆자리에선 당연하다는 듯 2권을 꺼내며 날 한심히 쳐다본다. 네가 날 그렇게 놀래키지만 않았어도 제대로 들고 왔을 거거든? 임시방편으로 맞는 책을 가져온 척 1권을 펼친다.

"열역학은 원래 물리와는 전혀 다른 분과에서 시작한 학문이다. 현대 학문 체계에서 초기의 열역학과 가장 가까운 학문은 화학이다. 옛날 사람들은 열의 원인을 칼로릭, 번역하자면 열소,의 운동으로 여겼다는 사실이 이를 잘 드러낸다. 열역학이 물리에 편입되게 된 배경에는 ..."

너무 뛰었더니 졸리다.

"... 물질의 합성비가 ... 원자설이 ... "

눈이 너무 피곤하다. 눈만 잠깐 감자. 잠은 안 잘거다.



깜짝이야. 흰 바탕 위에 검은 글씨가 마구 흩날린다.

'분자 하나 하나의 위치는 완전한 우연을 이룬다. 분자는 상자의 모퉁이에 있을 수도 있고, 한 가운데에 있을 수도 있으며, 벽의 정 중앙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분자가 한 위치에 모여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별적으로는 우연에 속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필연인 것이다."'

전공 책을 읽는 기분이다. 내가 이런 책을 읽을 리가 없으니 현실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자각몽인가?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어떤 작가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그 인터뷰어가 이야기를 쓸 때 어디까지 이야기를 구상해 놓느냐고 묻자 인터뷰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커다란 흐름만 잡아 놓고 나머지는 손 가는대로 씁니다. 이야기 자체는 정해져 있지만, 그 순간 순간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순전히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적지요. 이전에 실수로 잃어버렸던 원고를 다시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초고를 찾아서 비교해보니 줄거리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글이 되어있더군요.」 이야기는 필연이지만, 단어는 우연이라. 전체는 필연이지만, 개별은 우연이라.'

그 작가의 인터뷰라는 것, 읽어 본 적이 있다. 뉴먼 로스라는 작가일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날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진다. 나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던 나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거기 멍때리고 있는 자네. 그래서 도입 된 물리량이 무엇이라고?"

다행히 별로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엔트..'

옆구리를 찌르는 손가락에 놀라 얼떨결에 일어서고 말았다. 꿈꾸고 있는데 찌르는 건 뭐람.

"일어서서 대답할 필요까진 없는데 그쪽이 편하다면 편한대로 하도록."

응? 찔린 방향을 쳐다보았더니 재현이가 입을 벙긋거리고 있다. 시간은 가고 있고, 무슨 질문인지는 모르겠고, 벙긋거리는 입을 보니 엔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일단은 한 글자라도 시작해 보자.

"엔...트.."

"...로피. 좋아. 졸아도 수업은 듣고 있네. 수업을 계속 진행하지."

얼떨결에 맞추었다.



수업이 끝났다. 다행히 다섯번째 지각은 면해서 F는 피했다만, 다음 번에도 늦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천천히 독서실로 내려오는데 재현이가 뒤에서 따라잡았다.

"잘만 자던데 대답은 어떻게 또 한거야?"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조금 뜸을 들이고 대답해주었다.

"그냥, 그렇게 대답하면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아리송한 표정의 재현이를 남겨두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Writer > Sho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학 용어 사전  (0) 2012.12.28
忘生舞  (0) 2012.09.09
바벨의 반역가  (0) 2012.08.30
한 수업시간의 꿈  (0) 2011.07.20
이야기꾼  (3) 2010.07.24
그 날의 기억  (0) 2010.04.15

댓글을 달아 주세요

Luna venator

Writer 2011.06.04 21:25
한번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단편은 가끔 써 보긴 했는데 역시 목표는 장편.

장편 소설에 가끔 등장시키려고 써본 신화. A4 두장 정도의 분량.



먼 옛날, 그러니까 해는 춤추고 달은 노래하며 그 깃들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한 작은 마을에 또래보다 유독 작은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의 가슴 속에는 어느 다른 소년보다도 거대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바로 '욕망'이었다.

이윽고 소년은 자라 자신만의 활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활은 자신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물건이어서, 그 주인이 될 사람이 그 활의 첫 희생물의 피로 활에게 이름을 하사해야 비로소 그 주인을 받아들인다. 활은 이름을 선사받는 순간부터 그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 맹약은 자신의 이름을 전해 준 그 희생물의 나이까지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는 오래된 활을 들고 다니는 사냥꾼들이 존경받고는 했다.

그 마을에서 자신의 첫 활은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의 피로 이름을 내려주는게 보통이었고, 간혹 욕심이 있는 자들은 표범을 잡곤 했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은 표범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소년은 남들이 아직 잡아보지 못한 사냥감을 사냥하기로 했다. 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나는 새, 그 어떤 새보다도 화려하게 날갯짓하는 새, 그 어떤 새보다도 맑게 노래하는 새, 달을.

소년은 달을 같이 좇을 활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소년은 다른 또래들처럼 나무들을 찾아갔다. 나무들에게 찾아간 소년은 같이 달을 좇을 것인지 물었고, 나무들은 만조(萬鳥)의 여왕을 좇겠다는 소년의 말에 기겁하였다. 나무들은 어찌 천상의 여왕을 범할 생각을 하냐며 소년을 나무라며, 자신들은 그런 불경스런 일에 가담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소년의 욕망은 나무들의 거부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소년은 나무의 팔을 취해 자신의 활로 삼았다. 나무들은 고통에 떨며 앞으로는 자신들의 눈물만을 내어주리라 저주를 내렸고, 이후 사람들은 나무의 살은 먹지 못하고 눈물만 먹게 되었다. 눈물만 먹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하게 되었다.

소년은 달을 좇을 활을 구했지만 그 활에 실을 화살은 구하지 못하였다. 달을 좇을 화살을 찾아 헤메이던 소년에게 기꺼이 화살이 되어 주겠다고 나선 것은 흙이었다. 자신에게 난 모든 것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지만 그를 거부했던 두 새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흙은 그 오만한 두 새를 떨어뜨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소년은 흙에게 너는 무슨 재주가 있냐며 조롱하였고, 흙은 모욕에 치를 떨며 소년을 방해하겠다 맹세하였다. 소년은 빛에 대한 욕심이 강해 주변에 빛 조각이 있으면 끌어당기는, 하지만 그 자신은 그 탐식으로 검게 물든 돌이 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들어 알고 있었고, 달의 피를 마실 화살로 그 돌을 선택하였다. 소년은 빛 조각을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그 돌이 달의 피를 다 마시고 피를 잃은 달이 금방 잡히리라 여겼다.

활과 화살을 구한 소년은 활을 들어 달을 보았다. 달이 그 날개를 활짝 피었을 때, 소년은 천천히 활을 당겨 달을 겨냥하였다. 이윽고 소년이 활의 시위를 놓는 순간, 흙이 몸을 비틀며 소년의 사냥을 방해하였고, 소년이 활에 실어 날려보낸 화살은 빗나가 저 멀리 남녘으로 사라져 버렸다. 빛 조각을 끌어당기는 돌은 지평선 너머로 멀어져 가면서 하늘에 가득하던 빛나는 깃들을 같이 끌고 가 버렸고, 이후 깃들은 사람이 두려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년은 흙에게 네가 왜 나를 방해하느냐 화를 내었다. 흙은 너는 나를 욕되게 했다고 하면서 네가 나를 딛고 활을 당길 때마다 나는 내 몸을 비틀어 너를 방해하리라 맹세했다고 말했다. 소년은 이를 무시하고 다시 시위를 당기어 달을 겨냥했으나 흙이 몸을 다시 비틀었고, 몇번 더 활을 들었던 소년은 망각을 모르는 흙이 자신을 계속 방해할 것을 깨닫고는 물을 딛고 달을 좇아야만 했다.

물은 딛을 때마다 일렁였고, 물에 익숙하지 않던 나무의 팔은 끊어지고 말았다. 소년은 물을 버티지 못한 그 팔을 욕하며 집어던지고 다른 활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모두들 소년의 활이 되기를 거부하였다. 소년이 강제로 나무의 팔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고, 그 팔이 돌아갈 때 조차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이 되어 줄 것이 없었지만 소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더욱 거대하게 자라났고, 욕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 저항하지 않는 빛나는 깃들을 그의 활과 화살로 삼으라 부추겼다. 소년은 해와 달의 깃으로 활과 화살을 짰지만 하늘에 올려둔 활과 화살은 매번 남녘으로 날아간 돌이 가져가 버렸다. 소년은 다른 탐식에 물들은 돌을 구하여 북녘에 두었고, 깃들은 두 돌들이 서로 끌어당겨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소년은 새로운 활과 화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소년은 다시 달을 좇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깃에 좇기기 전까지 위험을 모르던 만조의 여왕은 겁을 먹고는 노래하기를 그만두었고, 만조의 왕은 자신도 자신의 깃에 좇기지 않을까 걱정하다 춤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소년은 계속 달을 좇았으나, 물을 디딘 탓에 그 화살은 매번 빗나가곤 했다. 그러나 소년이 화살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달은 숨어 화살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화살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나와 도망을 계속하였다. 간혹 소년이 잘못 쏜 활이 해를 좇는 경우도 있었지만 걱정하느라 춤마저 잊어버린 왕은 그 때마다 달처럼 숨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소년의 추적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소년은 늙어갔고, 소년이 잡히지 않는 달을 좇다가 노쇠하여 힘을 잃어버리자 욕망은 소년의 몸까지도 집어삼켰다. 욕망은 소년이 짠 활과 화살에 입혀 사냥을 계속하였다. 간혹 욕망은 흙이 방해하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싶어 흙에 기대 날카로운 시위를 당겨보곤 했으나 망각을 모르는 흙은 항상 온 몸을 비틀어대었다.

욕망은 지금까지도 만조의 여왕을 좇아 헤매인다. 욕망이 그 헤맴을 멈추게 되면 그가 남겨놓던 발자국보다도 더 강하게 세계를 잠식할 것이고, 그 때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리라.

- 뉴먼 로스(Numon Rothe), 『흩어진 전설들의 모음집』, 제 5장 中



이야기 진행에 방해되기 때문에 빼 놓은 건데, 소년이 짠 활은 별자리가 되었고 쏘아진 화살들이 별똥별이며 땅이 방해해서 지진이 생기고 가끔씩 숨기 때문에 일식과 월식이 생기며 북녘과 남녘에 던져진 돌 때문에 나침반이 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영도를 읽던 사람은 알겠지만, 눈물에 대한 오마주. 아무래도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지만 그냥 놔두련다...

'Wri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을 타려면 말과 가까워지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2) 2011.10.09
한글 본문, 영어 제목  (0) 2011.08.28
Luna venator  (0) 2011.06.04
그 많은 뚜껑들은 누가 다 끼웠을까  (3) 2010.08.11
but a grin without a cat!  (0) 2010.04.10
새 물리 교과과정  (4) 2010.04.09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야기꾼

Writer/Short 2010.07.24 12:33
간이 플라스틱 의자가 불편해질 즈음이었다.

"내가 어디까지 말했었더라?"

그는 태양을 등진 채 잔 두개가 놓여있는 네모난 플라스틱 쟁반을 들고 있었다. 나는 시린 햇살에 손그늘로 눈을 쉬게하며 대꾸했다.

"'사람이 반영구적으로 살게 된다면'까지 말하고 음료를 받으러 갔지"

두 잔이 탁자 위에 놓였다. 그를 위한 얼린 잔에 담은 시원한 흑맥주, 그리고 나를 위한 따뜻한 화이트 카페모카. 그는 살얼음이 떠 있는 흑맥주를 들이키고는 향을 음미했다. 이 녀석은 소재가 떨어졌다니까 준다고 해놓고서는 묻어갈 심산인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을 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첫 부분을 놓쳐버렸지만.

"... 통합이 이루어지겠지. 지금 미디어 환경이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보자고. 갈수록 발언권이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고, 길이는 짧아지는데다가, 대화같은 모습을 띄기 시작한단 말이야."

"어, 잠깐만. 첫 부분 못 들었는데 다시좀.."

그는 말을 멈추더니 잠깐 한숨을 쉬었다.

"넌 어째 바뀐게 하나도 없냐. 정신 놓고 있다가 못 듣는것도 그렇고. 먼 미래에는 인류의 모든 정신이 통일된 하나의 유기체가 될 거라고."

"근거는?"

"그러니까 설명하고 있잖아. 미디어는 계속 '만인의 대화'로 수렴하고 있어. 모든 미디어의 원형인 기록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지. 원전은 대화로 쓰인 게 많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탁자 위에 놓인 맥주잔으로 손을 뻗었다. 포도송이까지 있는 포도넝쿨 모양으로 깎아낸 나무를 기둥으로 세운 고급으로 보이는 유리탁자이다. 문득 이 카페 주인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진다. 플라스틱 의자에 이런 탁자를 조합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물론 맥주와 커피를 같이 판다는 것부터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 인간이 기계와 바로 접속하는 시대가 올꺼야. 「매트릭스」에서처럼 정신이 기계로 바로 들어가는거지. 물론 영화에서처럼 선을 사용하는 구식은 아닐테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렇게 오래된 영화를 끌어오는 너는 구식이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듣기나 해. 어쨌든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그 사람들의 생각을 연결하는 연결망은 어떤 모습이겠냐는거지."

"하이브마인드(Hivemind)라는 거냐?"

"그거야. 하이브마인드. 물론 개개인은 처음에는 나는 연결망에 접속된 다른 상대와 대화를 한다는 기분으로 살아가겠지. 하지만 그 후손들은 다를꺼야. 태어날 때 부터 그 거대한 연결망에 접속된 상태로 살아갈 거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이것이 나의 생각인지 연결망에서 내려온 생각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겠지. 점차 연결망과 융합하는거야."

커피를 들었다. 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중화해줄 포도당이 필요하다. 달달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머리가 좀 덜 아파졌다. 그 와중에도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죽은 사람들은 잊혀진 기억들이 될 것이고, 태어난 사람들은 엉뚱한 발상들이 되겠지. 마치 바다의 물고기 떼와도 같아. 하나 하나 살펴본다면 이쪽 무리에 있다가 저쪽 무리에 있다가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각 무리를 살펴본다면 무리 자체의 모습은 변하지 않지. 미래에 우리의 뇌가 연결되어 있을 연결망도 비슷한 모습일꺼야."

"그런데 사람이 반영구적으로 사는 건 무슨 상관이야?"

그는 잠시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 그건 이제 중요해질꺼야."

그러면 처음에 다른 이야기로 시작할 것이지. 그가 주문한 것을 받으러 간 동안 떠올렸던 소설 첫머리가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일단 미래에 통합된 정신이 등장한다는 것은 합의를 보았으니까, 사람이 거의 무한히 살아가게 될 때를 생각해보자고. 일단 내 결론은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거야."

"왜냐하면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 내가 하려던 말은 어떻게 안거야?"

"내가 해줬던 이야기잖아. 대체로 낳는 자손의 수는 수명과 반비례하는데, 그건 동족간의 경쟁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현상이라고. 그렇다면 무한히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생식은 먼 과거의 일이 되겠지."

한 삼사년 전에 말해준 공상인데 기억하고 있다니 살짝 놀랐다. 하긴, 그는 어릴 적부터 비상한 기억력으로 벼락치기 하나는 기똥차게 잘 했었지.

"어쨌든, 사람이 태어나지 않으면 미래의 인류 통합 사념체에게 재미있는 생각거리는 사라지게 되겠지. 특이한 발상의 진원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통합된 사념은 분할할꺼야."

그는 이 한 마디만 하고 다시 맥주잔에 손을 대었다. 아니 이게 뭔소리야? 마음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듯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혼자서 벽에다 대고 하는 이야기는 재미없잖아."

"이야기가 거기에서 왜 나와?"

"먼 과거부터 밤의 지루함을 달래주던 것이 이야기니까. 결국 새로운 자극이 없으니까 새로운 조합인 이야기를 지루함을 달래줄 약으로 선택하겠지. 하지만 혼자서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재미없어. 그러니까 그 통합사념은 나뉘어져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할 거야."

"아니 그래도.."

말 끝을 흐린건 여우비다. 파라솔이 없는 탁자여서 대화를 마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에도 다른 말을 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밖에서 나누던 대화로 심란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들은 대답은 기억난다.

"아, 그런데 과연 태어나면서부터 그 연결망에 접속될 가능성이 있을까? 아직 덜 자란 아이에게 나타나는 폭력성이 얼마나 잔인한지는 알잖아?"

"초등학생이 적분을 배우는 시대인데 그런 부모의 극성이 사라질 것 같아? 그것보다도 난 성선설을 믿어서. 더군다나 그렇게 큰 집단에 자정능력은 당연히 존재하겠지."

여튼, 나는 지금 내 방의 책상 앞에 앉아있다. 모레까지 보내기로 한 단편 원고를 오늘까지 쓰고 내일은 퇴고해야 한다. 딱히 다른 소재를 찾을 시간도 없어서 그가 주었던 소재를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다. 인류의 미래가 다중인격장애라니, 참 인류의 운명도 기구하다.

그래서 그게 이야기의 끝이야? 나태(懶怠)가 묻는다. 다언(多言)이 대답한다. 끝이야. 잠자코 있던 탐욕(貪慾)이 고개를 든다. 뭐야. 너답지 않게 이야기가 너무 단순한 것 같은데? 그런가? 내 나름대로는 다채로운 이야기였다고 생각하는데. 너라면 무언가 더 끄집어낼 줄 알았지. 탐욕의 말이 끝나자 나태가 다시 말을 꺼낸다. 교만(驕慢), 너가 한번 이야기해봐라. 다언이 거든다. 그래, 너 이야기 하나는 멋지게 하잖아. 잠깐의 침묵. 그리고 교만이 입을 연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에게 최고의 이야기를 선사해주지. 교만은 점차 비대해지더니 모두를 집어삼킨다. 낮을 덮치는 어둠과도 같이.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둠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래, 이제 시작인거지. 한번 숨을 내쉬고, 연필을 다시 잡는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빛이 있으라."

말은 힘이요, 언어는 권력이었다. 자신으로부터 자라난 세계가 모태를 삼키리라는 것을 모르는 듯 말은 세계의 이것저것을 빚어내었다. 빛을 모아 낮을 만들자 어둠은 모여 밤이 되었고, 부스러기를 긁어모아 땅을 만들자 남은 먼지는 모여 바다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아직 말에게 힘이 있었던 시대의 일이다.

여기까지 글을 쓴 후, 잠시 연필을 내려놓았다. 이 말은 써야 할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고는, 종이를 뒤집고 연필을 다시 집어들어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간이 플라스틱 의자가 불편해질 즈음이었다.



본격 수미상관 소설.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이 많은데, 너그러이 봐주세요.

소설 속 소설의 첫 부분은 번역투와 비문이 난립하네요. 그래도 분위기를 살리는 것 같아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Writer > Sho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제학 용어 사전  (0) 2012.12.28
忘生舞  (0) 2012.09.09
바벨의 반역가  (0) 2012.08.30
한 수업시간의 꿈  (0) 2011.07.20
이야기꾼  (3) 2010.07.24
그 날의 기억  (0) 2010.04.15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0.07.25 18:26
  2. Favicon of http://wiessen.tistory.com BlogIcon 애기_똥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이야기입니다.

    2010.07.30 12:32 신고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 8점
이영도.듀나 외 지음/해토

소설은 금방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난 픽션보다는 논픽션을 선호하지만.

이번 책은 크로스로드에서 기고된 SF 단편들 중 엄선(?)한 것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표지가 좀 에러이긴 한데 그래도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다. 이영도씨의 단편이 실려있다는 것으로 소장가치 상승(?).

아침에 트위터에 올린 것처럼 SF를 읽다보면 이론을 잘못 이해한 부분이 눈에 너무 크게 들어온다. 너무 크게 들어와서 정작 소설의 내용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게 문제. 이전에 Murray Gell-Mann이 TED 강연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잘못 설명하는 교양책이 시중에 넘쳐난다'는 말을 했는데, 내가 이전에 이 글에서 정확하게 그 예를 지적했던 기억이 난다.


그 동영상의 유일하게 볼 만한 부분. 나머지는 말 그대로 헛소리.

정확히 똑같은 잘못된 이해가 단편 「0과 1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나의 측정'이 세계의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 말이다. 상당히 지독한 인간중심주의가 느껴지는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아인슈타인이 그랬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달이 내가 쳐다보고 있어서 존재한다는게 말이 되냐'라는 말로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주류(?) 물리학의 입장은 '물질의 존재는 물질이 서로 반응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에 더 가깝다.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을 묘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닮음보다는 차이가 그 사람을 드러내는 법이다.[각주:1] 이렇게 신나게 까 놓고 이런 말 하기는 좀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소설 내용은 마음에 들었다.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소설을 쓰다가 때려치운 경험도 있고, 더불어 시간여행에 대한 시각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기타 각 작품별로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각들은:
-이영도, 「별뜨기에 관하여」: 별자리를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명불허전.[각주:2] 그런데 예전에 인터넷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듀나,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20세기의 재림을 보는 기분
간판격 단편. '기술에 대한 불신'이 간간히 내비치는게 특징이다. 이영도가 전 단편 중 하나인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에서 말했던 문화가 문화를 집어삼키는 시대에 대한 우려가 보이기는 하지만 소설의 중심에 놓인 그 불신이 점수를 까먹었다. 기술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기술을 잡아먹어야 한다는게 신념이라서.

-임태운, 「채널」: 채널 사이의 숨겨진 채널에 감춰진 음모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진짜 따로 할 말이 없다.

-송경아, 「하나를 위한 하루」: 아버지냐 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뒤끝이 좀 많이 남아서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괜찮은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중. 강풀의 만화 『26년』의 결말이 생각난다.

-설인효, 「진짜 죽음」: 속설에 진리를 본 자는 미쳐버린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름대로 내용은 참신했지만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내용이다. 일단 각종 실험의 결과가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그 발표를 규제하는 기구가 있다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독한 엘리트주의, 선민의식이 느껴져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다.[각주:3] 핵무기에 대한 지식을 예로 들면서 아예 모르는 것이 나은 것도 있다는 주장을 하지만 역으로 핵무기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다른 지식(수소폭탄 등)에 대해서 쓰면 안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알면서도 쓰지 않는 것과 알지 못해 쓰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노기욱, 「소울메이트」: 기계가 운명의 상대를 점지해주는 시대의 비극
왜 나는 '사람의 감정을 확인해주는 기계'들이 등장하면 제대로 테스트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일까? 진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기계가 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려준 커플들의 말로와 기계가 반응을 일으켰다는 거짓말을 한 커플들의 말로,[각주:4] 그리고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커플들의 말로를 전부 조사해야 할텐데 그걸 전부 조사한 통계가 사용되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난 다른 사람과 무언가 다른듯.

-김보영, 「0과 1 사이」: 시간여행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꼬여만 가고...
위에서도 말했듯 오개념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글 속에 녹아든 분위기가 재미있었지만.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부분은 이영도의 전 작품 『퓨처 워커』가 생각나게 한다.

-김몽, 「차이니스 와이너리」: 중국은 언제까지 악의 축이려나
내가 '아시아 연합' 방면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해서 그런 배경이 깔려있는 소설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중국에 대해 좀 많이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기분이 드는데(마치 냉전시대 소련을 비난하던 미국처럼) 내 이력 탓일듯 싶다. 그 외에는 평범.

-김선우, 「양치기의 달」: 타 행성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인간은 언제라도 인간성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기분이 드는 단편.

-백상준, 「우주복」: 인간 외계인 몰라요 외계인도 인간 몰라요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 물론 나는 읽은 후 페르미온과 보존을 떠올리면서 물질과 원하는 경우에만 반응하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물질 사이의 반발은 전자가 페르미온이기 때문에 파울리 배타원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페르미온과 보존 사이를 진동할 수 있는 입자가 존재한다면 가능할지도라는 결론을 내리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난 역시 무언가 달라.

위에 있는 소설들은 전부 크로스로드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활자는 모니터보다는 종이 위에서 더 잘 읽히는 것이 현실이다.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 8점
이영도.듀나 외 지음/해토

  1. 비록 신영복 교수님께서는 『강의』에서 이렇게 작은 차이를 부각하는 서양적 사고방식이 가져온 반인간성에 대해 통탄하셨지만 우리가 가진 그나마 쓸만한 몇 안되는 도구 중 하나인 것을 어쩌겠는가? [본문으로]
  2. 그런데 딱히 악평할 거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3. 엘리트주의와 선민의식을 딱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의식이 자기 자신을 규제하는데 쓰이면 발전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을 규제하는 순간 선민의식은 온갖 죄악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소설에서 나온 '국제문명보호연대'는 후자의 너무도 모범적인(?) 예이다. [본문으로]
  4. 플라시보 효과는 의외로 강력하다.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10.06.29 16:52
    • Favicon of http://dexterstory.tistory.com BlogIcon 덱스터 2010.07.01 1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간여행 부분보다는 이전 글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사람만이 측정할 수 있다'는 전제가 슬쩍 슬쩍 나타나는데 그 부분이 잘못되었다는 말이죠. 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나타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이었고,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1 

글 보관함

카운터

Total : 615,519 / Today : 11 / Yesterday : 81
get rsstistory!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