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1. 11:00 Report/Books
내용이 비어있는 책을 읽기 위해서
마땅한 번역본을 잘 모르겠어서 손 대기 어려웠던 『장자』를 드디어 읽기 위해 구했다. 교수신문에서 발행하는 번역본 비평 칼럼 모음집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에서도 추천한 오강남 해설 버전으로. 그리고 제목에 쓴 것과 같이 내용이 비어있는 책이기에(비어있다는 말은 문장 사이가 드넓다는 의미이다. 문단과 문단 사이마다 사막과 바다와 밀림이 있어 길 헤매기 딱 좋다고 표현하겠다.) 길잡이로 쓸 책도 하나 구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도 『장자』를 다루는 것들이 있어 다시 읽어보았고. 이 책이 이번에 구한 책이다. 1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 강신주 지음/그린비 |
하나의 키워드로 『장자』를 관통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이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하여 어떻게 남과 상호작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으로 수렴한다.
이 문제의식이란건 다음과 같다. 이전에 한번 회자된 적이 있었던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었다. 아직 세계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라다크의 삶을 소개하는 책인데, 여기서 책의 제목 '오래된 미래'란 갈수록 공허해지는 도시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그러니까 과거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책에는 다음의 일화가 나온다. 2
언젠가 나는 열 시간 동안이나 계속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너무 지치고 스트레스가 쌓여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그날 저녁, 내가 머물던 집 식구들에게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도고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웃고 말았다. 내가 농담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책상 앞에 편안하게 앉아서 종이 위에 펜으로 글씨를 썼던 것뿐이었다. 이마에 땀이 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것은 일이 아니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서구사회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스트레스나 지루함, 좌절감 같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후략]
-『오래된 미래』, p.188
사무실에서 문서작업을 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퇴근해 본 사람, 아니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쓰느라 곤혹을 치러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는 것이 일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다크 사람들에게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취미에 불과했다. 그들은 글을 쓰는 것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바탕이 되는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서로 경험하는 것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에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슴아픈 이별을 겪은 사람들이 간혹 하는 "나는 널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라는 말이 이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꽃을 피우고 있고, 노트북으로 이 졸문을 두드리고 있는 타자가 있으며, 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으니 우리는 "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주제가 『장자』의 중심이 됨이 이 책을 쓴 해설자의 생각이다. 남을 이해하기 위해 내면화된 선판단을 최대한 비워내야 하며, 이를 돕기 위해 일부러 정합적인 논리를 분쇄하는 형식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3
책 자체는 즐겁게 읽었으나 『장자』를 이해하는데 그렇게 많은 다양한 철학자들의 말이 필요했는지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말이란 것은 떼어놓기에 따라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필수적이지 않다면 굳이 이렇게 많은 말들을 끌어올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철학적인 논의에서는 말로 그 핵심을 전달하기 힘드므로 하나의 주제가 다양한 변주로 연주되며 응당 그래야 마땅하지만 소개하지도 않을 다양한 철학자들의 글을 인용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딱 니체나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정도로만 소개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버렸다. 제 아무리 비슷한 음악이라도 한 음악의 일부를 다른 음악에 중첩시켜 버리면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도 부록의 『장자』 연구 동향에 대해 다룬 부분은 좋았다.
다음은 이전에 구했던 책들 중 『장자』를 다룬 또 다른 책이다.
장자 교양강의 - 푸페이룽 지음, 심의용 옮김/돌베개 |
책의 『장자』 접근은 상당히 파편화되어 있다. 그 점에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 하겠지만, 그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다. 4
강의 - 신영복 지음/돌베개 |
이 책은 『장자』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의 한 장에서 해설하고 있기에 포함시켰다.(평점은 책 전체에 대한 것이다.) 이 책 역시 하나의 키워드, '반성'으로 『장자』를 꿰뚫고 있다.
'반성'이라는 핵심어가 선택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 대부분을 사 읽는 사람으로 평한다면 그 분의 주제의식은 '관계의 회복'에 있다. 모든 글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아닌 사회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런 그에게 개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 『장자』는 하나의 온전한 주제라기보다는 반동으로 읽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인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회를 해체시켜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도록 만들자는 것을 주제의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자』는 성경과 같이 따라야 할 책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앞서 소개한 『오래된 미래』와 같이 돌아보도록 만드는 책으로 그려진다.
얼마 전 우화를 하나 올렸었다. 바벨의 반역가. 영역하면 Rebel of Babel이, 살짝 잘못 읽으면 바벨의 번역가가 된다. 신이 바벨의 사람들을 다른 언어로 흩어 버렸으니 다른 언어들을 이어주는 이들은 반역가일 터이다.
이전에 '창조적 오독'이라는 구를 듣고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다. 칸트의 말이 이렇느니 저렇느니 언쟁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 영향인지, 필자는 책은 저자와 독립된 개체로 분류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 권의 책이라도 그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주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책은 저자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전달할 의무가 없다. 장자도 언급했듯, 책은 성인(聖人)이 남긴 찌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독일의 훔볼트대학Humboldt Universität zu Berlin의 본관에는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Die P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aber darauf an, sie zu verändern.
칼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Thesen über Feuerbach의 마지막 테제이다. 괜찮은 『장자』 번역본을 구하던 중 간혹 "장자가 실제 말한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라며 그 책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경우를 보았다. 내 생각은 그렇다. 중요한 것은 장자가 하고자 했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장자의 말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고. 장자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매달린다면, 성인이 남긴 찌거기에 매달리는 것과 다른 것이 무어란 말인가.
- 나에겐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자료집의 성격이 더 강한 편이다. [본문으로]
- '아이들은 자라기를 희구하고 어른들은 어릴적을 회구한다'는 제목으로 서평을 쓰다가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도 산업혁명 이후 등장하는 이른바 '자연예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느꼈던지라. 읽을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될 책은 아니나 세계화와 거대도시화에 대한 반발에서 쓰인 책임은 분명하다. [본문으로]
-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뜻에 오염된 '선입견'이라는 단어 대신 사용하였다. 책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 이 책 역시 서평을 쓰다 말았다. 필자가 신영복 선생님의 영향을 꽤 많이 받은지라 이것 저것 쓰기는 많이 썼는데, 정작 중요한 책 설명이 없어서 아직 비공개이다. 책 자체는 일독을 권한다. [본문으로]
- 돌아다니는 번역이 조금씩 마음에 안 들어서 각각을 참고해가며 직접 번역해 보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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