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의 이해 최종과제로 낸 꽁트. 요즘은 미디어가 발달해서 꽁트하면 상황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원래는 단편이라 부르기엔 짧은 소설을 의미한다. 새벽 5시까지 신나게 쓰느라(쓰는 도중 목감기 걸림 -_-) 글 자체는 많이 우울한 편. 원래 새벽은 조울증의 시간 아니던가. 아주 즐겁거나 아주 우울하거나. 혹자는 센티멘탈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하는 듯 싶다만.

모티브(?)는 『갑각나비』의 3장, 사전. 발표를 해야 한다고 해서 사족으로 덧붙인 맺음말도 첨부. 실제 발표는 '가격'항목만 하고 맺음말 세번째 문단부터 했던 것 같다.



경제학 용어 사전


가격

1)물건의 교환 가치를 화폐를 기준으로 나타낸 것.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생산과 수요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미시경제이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 지표이다.

2)

수업이 끝났다. 가방을 챙기고 교실 문 밖을 나서려는 데 친구가 보였다. 얘도 아직 졸업 안 했었지. 불러 세웠다.

"저녁 약속 없냐? 같이 먹자."

"아 미안, 선약이 있어서."

"넌 맨날 바쁘냐?"

"미안, 미안. 다음에 꼭 같이 먹자. 미안~!"

결국 오늘도 혼자 식당에 들어섰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학교 식당의 싼 메뉴는 맛이 없고 맛있어 보이는 메뉴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재정 정책' 항목에서 계속)


가정

1)이론의 토대가 되는 명제. 경제학에서는 모든 사람을 경제인으로 가정한다.

2)

눈을 뜨니 어슴푸레한 여명으로 뒤덮인 방이 덮쳤다. 어두운 빛이 장식 하나 없는 검소한 방의 모든 생명이 살균된듯한 우울한 분위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비치고 있었다. 건너편 작은 선반 위의 반 정도 말라버린 선인장이 그나마 남은 미약한 생기를 애처롭게 대변하고 있었다.

또 다시 병실에서 깨었다. 이번에도 목을 졸린 모양이다. 링거액이 꽂힌 오른팔이 따끔하다.

무슨 꿈을 꾸다가 일어났더라? 다소 평범한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삶을 사는 평범한 꿈. 아니, 평범한 삶이란 불가능한 나에게 그 꿈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이려나. 잡힐 듯 눈 앞에 아른거리지만 팔을 뻗어 쥐고자 하는 순간 얼마나 멀리 있는지 깨닫는 것. 꿈이란 그런 것이다.

그 꿈이 현실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의미 없는 가정이겠지.

('시장' 항목에서 계속)


경제인

1)Homo Economicus.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 행동경제학 등 일부 비주류 경제학에서는 다른 가정으로 이 가정을 대체하기도 한다.

2)

요란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또 책상에서 잠이 들었다. 과제를 다 하고 잠이 들었던가? 과제를 다 했으면 책상이 아니라 침대에서 깨었으리라는 당연한 결론에 생각이 미치자 조금 우울해졌다. 어제도 책상에서 깼던 것 같은데.

우선 알람을 끄고 세수를 했다. 화장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수도꼭지를 통해 쏟아지는 차가운 물이 졸음을 쫓아주었다. 정신이 들고 나니 더욱 우울하다. 제대로 자지도 못 하면서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

등교하기 위해 가방을 챙겼다. 책상에 널려있는 종이들이 보인다. 그래도 조금은 정리를 해 놓고 등교하는 것이 맞겠지. 종이를 집었다. 뒷면에는 빽빽하게 글씨가 들어 차 있었다. 오늘 내야 할 과제였다.

이걸 언제 한 거지?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한 의문이 내 마음을 휘저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등교할 때도 못 했던 것 같았던 과제가 책상 위에 놓여있었지. 의문은 더욱 거세게 내 마음을 휘둘렀다.

또 다른 알람. 방을 나서야만 한다. 모든 의문을 억누르고 종이를 정리해 가방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책상에 반만 쓰다 만 일기장을 책장에 다시 넣으며 문을 나섰다. 문을 닫기 전 책장에 꽂힌 붉은 일기장이 배웅해주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멍하니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통화 정책' 항목에서 계속)


노동력

1)생산요소시장에서 가계가 제공하고 기업이 구매하는 것으로 자본, 기술과 함께 총생산을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투입 할 때마다 투입되는 노동 당 생산량의 증가는 감소하며 이를 한계생산체감이라 부른다.

2)

'너는 내가 제공한 노동력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적이 없어'

글씨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효용' 항목에서 계속)


독점

1)시장에 하나의 공급자만 존재하는 것. 이 경우 시장이 왜곡되어 완전경쟁시장에서와 같은 파레토 효율이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개입이 정당화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만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한 경우(규모의 경제) 자연적으로 독점시장이 형성되는데 이를 자연독점이라고 부르며 대표적인 사례로 항공기 시장이 있다.

2)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집 『나무』 중에는 노르베르 프티롤랭이라는 이름의 형사가 등장하는 소설 「조종」이 있다. 형사에게는 원래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던 왼손이 있었는데 이 왼손이 갈수록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상당히 과격한 방법으로 파업을 일으킨다. 어쩔 수 없이 프티롤랭은 왼손의 요구에 굴복하고 협력관계를 맺기로 합의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침대 위에서 뒹굴며 얼마나 멋진 상상인가 감탄했다. 내 몸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니! 언제나 그랬듯이 이 프랑스 작가의 경이로운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며 책을 덮었었지. 침대 위에서 누워 읽어서 그런지 왼팔이 저렸다. 오른팔로 책을 대충 책상 위로 던지고는 저린 왼팔을 주무르며 다시 한번 이 작가의 기발한 생각에 찬사를 보내고는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내 몸의 독점적인 소유주였고, 왼손이 파업을 일으킨 남자의 이야기는 기가 막힐 소설일 뿐이었다.

('탄력성' 항목에서 계속)


루카스

1)Robert Lucas Jr. 합리적기대이론(rational expectation hypothesis)을 주장한 미국의 경제학자. 합리적기대이론이란 정부 정책에 대해 각각의 경제 주체가 그에 맞추어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는 이론으로 극단적인 경우 정부의 통화정책이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못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2)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오늘 나온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담배가 비탄력적('탄력성' 항목 참조)인 재화라 할 때 담배의 세금 인상이 가져올 효과에 대해 논평하시오".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꾸역 꾸역 써내려 가면 완료는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오늘 밤을 뜬 눈으로 보내야겠지.

어차피 교수님께서는 아주 잘 쓰거나 아주 못 쓰지 않는 이상 평범한 점수를 주신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된 글을 쓴다고 해서 좋은 점수를 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해법은 과제는 대충 쓰고 내일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집중해서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려나.

집에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았는데도 과제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런 때에는 일기라도 쓰면 좀 기분이 나아진다. 일기장을 꺼내고 근래에 쓴 적이 없었던 만년필을 꺼냈다. 파란 배럴이 아름답게 빛났다. 다행히 잉크가 마르지는 않았다.

일단 날짜를 적었다. 더 쓸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눈꺼풀은 무거웠고, 난 눈꺼풀이 중력을 따라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경제인' 항목에서 계속)


민영화

1)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기업의 효율을 제고하기 위해 민간 기업으로 그 기능을 이전하는 것. 많은 정부에서 케인즈 이론 이후 시카고 학파가 주장한 신자유주의를 기본 경제정책으로 채택하면서 크게 증가하였다.

2)

학교 식당을 나서는데 출입구의 한 공지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먹고 나온 식당이 다음 학기부터는 더 이상 생활협동조합이 아닌 외부업체에서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생활협동조합의 적자가 너무 심해서 운영하는 식당의 수를 줄이겠다는 말은 있었는데 실제로 그럴 줄이야.

교내의 외부업체가 운영하는 식당은 전부 밥값이 살짝 비싸다. 다음 학기에 들어오는 외부업체도 그러겠지. 그러면 다음 학기에는 어디서 밥을 먹지. 우울해졌다.

('처분가능소득' 항목에서 계속)


보이지 않는 손

1)아담 스미스가 그의 책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생산과 수요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 현대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2)

TV를 보면서 하나 둘 귤을 까먹다가 오랜만에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을 뒤져 먼지를 뒤집어쓴 자그마한 책 하나를 꺼냈다. 필통에서 놀고 있는 만년필에게 일을 시킬 때가 되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우선은 날짜를 써야지. 그 다음엔 무엇을 쓰지?

펜을 놓았다. 붉은 일기장 위에 차분히 놓인 푸른 만년필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항상 그럴 때가 있다. 쓰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정작 쓸 말은 하나도 없는 막막한 상태. 답답한 마음에 잠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일기를 쓰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아침에 링거액이 꽂혀있었던 곳이 살짝 저려왔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 주사 바늘이 계속 얇아진다고 해도 사람의 피부에 아무런 흔적도 안 남기기는 힘든가 보다. 오른팔 팔꿈치 안쪽이 수많은 붉은 점들로 가득하다. 팔이 좀 더 아파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못 쓰게 되기 전에 빨리 일기를 마무리해야겠다. 눈길을 다시 책상 위로 옮겼다.

종이 위에는 내가 쓴 적이 없었던 글이 적혀있었다.

'나비는 갑옷을 입고 왼팔로 날개를 뜯어내지'

보이지 않는 손이 적고 간 문장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보고 싶지 않았던 손이 적고 간 문장이었다.

('독점' 항목에서 계속)


시장

1)교환이 일어나는 곳. 물리적인 공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경제학자들은 완전경쟁시장을 가장 이상적인 시장의 형태로 보며 이 경우 파레토 효율을 달성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2)

병실의 깨끗하다 못해 결벽적인 공기로부터 벗어나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오른팔의 링거액 주사 바늘 자국들이 살짝 저렸다. 룸메이트로부터 전화.

"응. 괜찮아. 자주 그러는거 알잖아.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그래, 그래. 너무 늦지는 말고. 그럼 잘 들어와."

조금 우울해졌다. 나도 애인이 있으면 저렇게 밝게 살 수 있을까? 무거운 발길을 계속 옮겼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기 전 먹거리나 조금 사서 들어가야겠다. 길을 가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조금 큰 가게로 들어섰다. 이런 때에는 과일을 먹어야 한다.

"아니, 사과가 왜 이렇게 비싸요?"

"제철도 아닌데 어떻게 싸게 나와. 거기다가 뉴스 봤지? 요새는 전염병 때문에 먹을만한 사과는 눈꼽만큼도 없어요. 귤은 어때 귤. 한창 제철이라 양도 많고 값도 싼데."

"...그러면 귤 이천 원 어치 주세요."

('보이지 않는 손' 항목에서 계속)


인적 자본

1)각 근로자에 내재된 기술 및 지식 등을 통칭하는 것으로 교육 등으로 축적이 가능하다. 내생적 성장이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성장요인 중 하나이며 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급속한 성장의 원인을 인적 자본의 축적에서 찾기도 한다.

2)

교실에 들어선다. 교재를 펼친다. 칠판을 본다. 노트에 옮긴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는다.

성장 회계, 기술 발전, 자본 축적, 노동 투입, 인적 자본.

그래, 나는 지금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중이다.

수업이 끝나고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이 또한 인적 자본을 축적하는 일이리라.

('가격' 항목에서 계속)


임금

1)생산요소시장에서 가계가 제공하는 노동력에 대해 기업이 지불하는 금액.

2)

"이미 네가 달라는 대로 임금을 주고 있잖아!"

'겨우 그 정도가 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간담이 서늘해졌다.

('노동력' 항목에서 계속)


재정 정책

1)정부가 그 해 돈을 어떻게 지출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정부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이다. 케인즈는 불황에는 정부가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펼쳐 더 많은 정부지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해법을 채택하고 있다. 08-09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통화정책을 쓸 수 없었던 일부 유로존 국가에서 과다한 재정정책을 펼쳐 국가부채가 과도하게 누적되었고 결국 유로존 위기로 이어졌다.

2)

지갑을 열어보았다. 천 원 지폐 두 장이 보인다. 혹시나 해서 온 지갑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백 원 동전 하나만 나올 뿐이다. 오백 원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오늘의 재정 정책도 긴축 재정이다. 그냥 밥만 먹고 바로 집에 가야겠다.

('민영화' 항목에서 계속)


정부 개입

1)완전경쟁시장에서 벗어난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서 정부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 규제를 이용하거나 국책사업을 벌여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케인즈 이론에서는 불황일 때 재정 정책을 통한 정부 개입을 중요시한다.

2)

교실로 가던 도중 게시판에 붙은 한 자보가 눈길을 끌었다.

'학교본부는 더 이상 신성한 상아탑을 저잣거리로 만들지 말라'

훑어보니 대략 학생을 돈주머니로만 보는 외부업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과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생활협동조합에 더 많은 지원금을 주어야 한다 두 가지로 요약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들만의 리그일 뿐.

('인적 자본' 항목에서 계속)


GDP

1)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으로 번역되며 한 국가 내에서 생산한 모든 최종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화폐단위로 계산하며 생산된 물건은 모두 소비되기 때문에 소비된 최종재의 값을 합치는 것으로도 계산할 수 있다. 또한 생산하면서 번 돈은 각 경제 주체에게 분배되므로 이 분배되는 금액을 이용해서 계산하기도 한다.

2)

"이번 달 수입이 없어서 그래. 뉴스에서 올해 GDP 떨어져서 난리 났다 하잖니."

"네..."

다 과도한 욕심이란 것을 알면서도 서운한 감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파레토 효율' 항목에서 계속)


처분가능소득

1)가계에서 소비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 소득에서 세금을 제한 값이다. 일반적으로 전부 소비에 사용하지는 않고 일부는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한다. 케인즈 이론에서는 처분가능소득에서 저축하는 비율을 1에서 뺀 값을 한계소비성향(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이라 부르며, 이 값이 1보다 작기 때문에 균형재정을 하더라도 정부 지출을 늘이면 국내총생산은 상승하게 된다.

2)

셔틀에서 내리니 깡통 하나를 두고 구걸하는 남자가 보였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400원. 씁쓸하다. 쓸 수 있는 돈이 이것뿐이라니.

동전 네 개가 깡통을 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내 마음도 저렇게 경쾌하면 좋으련만.

('루카스' 항목에서 계속)


케인즈

1)John Maynard Keynes. 1930년대에 『일반 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집필하여 불황은 유효수요가 공급을 충당하지 못하여 생기는 일이며 이 때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집행해 유효수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아직 많은 정부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2)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길 건너편에 휘날리는 현수막 하나가 눈에 띄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는 거대국제자본은 모두 자폭하라!'

얼마 전 과도한 국가부채로 구제금융을 신청했었지. 모든 케인지안은 공직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얼씬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소주만 연거푸 들이키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요즘은 취직한 곳에 적응 잘 했으려나. 내심 졸업한 애들이 부러워졌다.

셔틀버스가 현수막을 가리며 멈추었다.

('정부 개입' 항목에서 계속)


탄력성

1)수요량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에 변화가 있을 때 수요량이 얼마나 민감하게 변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어느 재화의 가격탄력성이 1보다 크면 탄력적이라고 하고 가격이 내릴수록 가격과 소비량의 곱은 증가한다. 1보다 작은 경우에는 비탄력적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역으로 가격을 올릴수록 가격과 소비량의 곱이 증가한다. 담배는 비탄력적 재화로 여겨지고 있다.

2)

왼손에 얹힌 만년필이 경쾌하게 움직인다. 한 장 한 장 종이는 글씨로 뒤덮이고 그 종이들을 수용할 자리가 부족했던 책상은 덮여가기 시작한다. 탄력 있게 휘어지는 만년필 촉이 마치 종이와 마찰하며 내는 사각이는 소리에 탭댄스를 추는 듯 했다.

왼손이 쓴 글은 정교하게 짜여진 에세이였다. 그것도 해당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교수가 쓴 글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신없이 글을 읽다가 왼손이 옆구리를 찌르고 나서야 일기장에 남겨진 글을 보았다.

'이런 읽을 만한 글도 주고 온갖 잡다한 일을 해주는 왼손한테 보상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임금' 항목에서 계속)


통화 정책

1)정부가 시장에 도는 화폐의 양을 조절하는 것. 재정 정책과 함께 정부가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다. 경제 전체의 통화량이 인플레이션 및 이자율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 예로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을 이용해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조절하는 것이 있는데, 이는 루카스의 합리적기대이론의 등장으로 그 가능성이 의심되었다. 케인즈는 통화량을 늘여 이자율을 낮추고 이것이 확대된 기업투자로 이어지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그 결과가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통화 정책보다는 재정 정책을 선호하였다.

2)

"엄마, 저 돈 좀 주세요"

"그런 거 없다"

"아 제발요. 밥 먹을 돈도 없어요."

"... 오천원."

"이거 교통비 하면 밥값도 안 나와요."

"셔틀 타면 되잖니?"

어머니는 항상 타이트한 통화 정책을 추구하신다.

('GDP' 항목에서 계속)


파레토 효율

1)Pareto efficiency. 한 주체의 효용을 늘이기 위해서는 다른 주체의 효용을 줄여야만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이 경우 전체의 효용이 최대가 된다. 완전경쟁시장에서는 파레토 효율이 달성된다.

2)

오천 원. 집 앞에서 지하철까지 버스를 타고 환승하면 학교 앞 역에서 내릴 때 추가운임이 발생한다. 지하철까지 걸어가지 않는다면 내가 밥을 굶거나 어머니한테 용돈을 더 받아야 한다. 결국 잠이 덜 깬 몸을 이끌고 지하철까지 걸어간다.

('케인즈' 항목에서 계속)


효용

1)소비자가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얻는 만족.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사람인 경제인은 이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소비하는 양이 많을수록 한 단위의 소비를 늘일 때 증가하는 효용의 양은 감소하며 이를 한계효용체감이라 부른다. 사람들 사이에서 거래가 일어나면 한계효용체감을 피할 수 있어 전체 효용은 증가하는 결과를 얻는다.

2)

"이런다고 너한테 좋을 것 하나 없다고! 이게 너한테 무슨 효용이 있어!"

필사적으로 오른손을 움직였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어! 이건 전혀 합리적('경제인' 항목 참조)이지 못한 일이라고!"

더 이상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 눈이 감겨온다.

('가정' 항목에서 계속)




참고자료

이준구, 이창용, 『경제학 들어가기』, 2판, 법문사, 2009




맺는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중에는 수능에 나온 자기 시에 대한 문제를 다 틀린 최승호 시인의 인터뷰 기사도 있다. 한국의 언어교육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서 보면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만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조물주의 손을 떠난 인간의 자유의지로 조물주의 속을 자주 썩이지 않던가.(조물주가 있는가라는 신학적인 질문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그래서 난 내 작품의 독립적인 삶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구체적인 해설은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래도 글을 무책임하게 던져놓고 알아서 읽으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최소한의 설명은 하려고 한다.


점성술이나 사주팔자와 같이 인간이 태어난 시각을 기준으로 그 인간의 특성을 분류하는 일은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사람이 쓴 글은 조금 다르다. 사람이 쓴 글은 그 글이 태어난 시각의 분위기를 담는다. 이런 말을 쓰는 이유는 이 글이 우울한 분위기를 담은 이유가 작가가 우울한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작가가 우울한 시각에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기 위해서다. 글을 다 친 것은 감기기운에 부은 목을 축이던 새벽 5시 경이었는데, 모두들 알다시피 새벽 3시는 인간이 가장 감정적인 시각이다. 원래 이 글의 모티브가 되는 소설이 괴기소설인데다가 태어난 시각 또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시간이었으니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우울한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 다시 한 번 밝힌다.


다만 약간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과제가 ‘현대경제의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내가 한 것은 ‘현대경제’를 표현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맺는말에서는 조금은 더 현대경제의 이해 수업을 표현한 것에 알맞은 개인적인 바람을 써보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헛소리를 할까 두려워 침묵하려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언을 하기 마련이며 실수는 인간적(errare humanum est)이다. 미래의 산업 또한 헛소리 위주로 재편될 것이다. 기계가 발달하면 사람의 노동은 육체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혹은 기계적인 것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옮겨갈 것이고, 가장 인간다운 행위는 문학과 예술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지어낸 이야기 또한 실체 없는 헛소리 아니던가. 결국 우리 모두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먹고 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동안 이 미래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 이 선언 또한 헛소리인 것 같긴 하지만.


‘헛소리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나 자신에 대한 주문이기도 하다. 나서서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이면에는 헛소리를 할까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언을 하더라도 다 같이 한 번 크게 웃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하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좀 더 자유로운 헛소리를 위하여. 헛소리가 좀 더 많은 사회가 좀 더 유쾌한 사회 아니겠는가. 한 번 뿐인 인생, 즐겁게 살다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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