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30. 23:46 Writer/Short

바벨의 반역가

하늘을 오르려던 사람들이 흩어지고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흔적만 남은 탑 앞에는 한 남자의 터전이 있는데, 이 남자의 눈은 길을 지나간 그림자의 흔적을 알아볼 정도로 날카로왔다.


어느 날 아라지의 한 연금술사가 남자를 찾아왔다. 이 연금술사는 작은 에메랄드 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뱀들이 줄을 이루어 꼬리를 물며 춤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에메랄드 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에메랄드 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아비두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금술사는 남자의 거처에 해가 다섯번 질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금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연금술사는 작은 금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연금술사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자이번의 한 뱃사람이 남자를 찾아왔다. 이 뱃사람은 작은 금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자그마한 사람과 새들의 그림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뱃사람은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금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금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아라지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뱃사람은 남자의 거처에 안식일이 다섯번 지날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은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뱃사람은 방패만한 은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뱃사람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기탈저의 한 사냥꾼이 남자를 찾아왔다. 이 사냥꾼은 방패만한 은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부러진 막대기들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사냥꾼은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은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은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자이번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냥꾼은 남자의 거처에 달이 다섯번 날개짓을 할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동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사냥꾼은 손가락만큼의 동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사냥꾼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아비두의 한 현자가 남자를 찾아왔다. 이 현자는 손가락만큼의 동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동판들 위에는 자그마한 원과 세모들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현자는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동판들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동판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기탈저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현자는 남자의 거처에 해가 다섯번 돌아올 동안 머무르며 돌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현자는 다섯사람의 손가락만큼의 돌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현자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자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흔적만 남은 탑을 올랐다. 남자의 한숨은 폭풍이 되어 탑의 남은 흔적을 지워버렸고, 그 이후 그 남자를 본 사람이 없었다.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년이란 시간을 잘만 써 놓고 이상한 시간 단위 고안해 내느라 고생했다.


자이번의 뱃사람과 기탈저의 사냥꾼이 익숙하다면 기분탓일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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