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9. 08:49 Daily lives
데이터 센터의 중심에서 특이점을 외치다
A method is more important than a discovery, since the right method will lead to new and even more important discoveries.
- Lev Davidovich Landau, reported by Lance Dixon1
어제(월요일) 왕립학회(Royal Society)의 대학연구펠로십(University Research Fellowship) 지원서를 제출했다. 일기예보를 보아하니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으로 더운 날이 될 것 같은데, 온 여름을 말 그대로 꼴아박은 지원서를 제출한 날과 올 여름의 마지막 날이 엇비슷한 것은 공교롭다고 하겠다. 인터뷰조차도 가지 못했던(...) 작년 경험을 반영해서 연구 방향을 조금 바꿨는데,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겨울이 되면 알 수 있겠지.
작년에는 '그래도 인터뷰까지는 가겠지?'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터뷰조차 가지 못해서 약간의 충격을 받고 올해 연구계획서 초안에서는2 연구 방향을 아예 바꿔서 제출했는데,3 같이 지원하는 학교측에서 이 내용을 완전히 날려버리는 것은 좀 아깝다는 피드백을 받고 다시 집어넣었다. 덕분에 중력파 언급이 사실상 없었던 연구계획서 초안과 (여태 진행하던) 중력파 관련 연구 계획이 잘 어우러지도록 연구계획서를 초고를 갈아엎는 3주동안 머리를 싸매고 살았고, 초고가 완성된 뒤에는 (작년과는 반대로) 연구계획서의 4쪽 제한을 초과하지 않도록 분량을 조절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었다.4 뭐, 좋은 신호(?)일지도?
여튼, 작년에는 단어 세주는 웹페이지에서 같이 제공하는 문법검사기와 (아마도 LLM이 들어간) 편집 추천기만 써서 지원서를 작성했는데, 올해는 야코비안 가설의 반례로부터 감명(?)받아 드디어 쓰기 시작한 LLM을 이용해서 지원서 피드백을 받아가며 수정했다. 사람으로부터의 피드백도 물론 받긴 했지만 큰 부분에서 들어가야 하는 내용 정도의 추천만 받았던지라5 자잘한 부분에서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에 대한 피드백을 계속 받았고, 자잘하게 놓쳤던 부분들을 잡아내서 꽤 도움을 받았다. 꾸준히 '이런 표현은 연구계획서에 쓰기에는 너무 문학적이다'란 지적을 받고는 '시끄러워 의도한거야'라고 매번 쳐냈지만.
가장 크게 도움을 받은 것은 '연구계획서를 처음 보는 사람'이 계획서에서 받을 인상을 재현해주는 부분이었다. LLM 이전에는 연구계획서를 처음 보는 사람의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 연구계획서가 완성되면 (연구계획서를 잊어버리기 위해) 일주일 정도 놔뒀다가 다시 들여다보며 수정했었는데, 이 시간이 필요가 없어진 것. 무료 플란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ChatGPT와 Claude(얼마 전부터 연구소에서 토큰을 지원해주기 시작해서 쏠쏠하게6 썼다)의 피드백은 상당히 달랐던 것도 흥미로웠던 경험. 다만 제출하고 나서 '너무 AI가 고치자는 방향대로 고쳤나?'란 생각이 들긴 했는데, 주사위는 던져졌고 뭐 운명(?)을 기다리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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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ChatGPT에 연구계획서를 넣고 피드백을 요청하는데 거부감이 있었다. 모형 학습에 사용될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만사가 그렇듯 사람이 좀 다급해지고 그러면 '악마'와의 거래(...)도 한번씩 하게 되고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이 연구를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없다시피 하니 괜찮겠지 싶어 LLM에 피드백을 돌리긴 했는데 (그리고 항상 incognito 모드를 사용했다. '연구제안서를 처음 보는 경험'을 재현하려다보니), 다음에도 그렇게 할 지는 좀 생각을 해봐야 할 듯. 마찬가지로 공교롭게도 어제부터 나비에르--스토크스(Navier--Stokes) 방정식의 해와 관련된 (수학적 보다는 사회적?) 문제가 인터넷을 달구기 시작했고, 자세한 내막은 아직 불명이지만 경계심을 갖기에는 충분하다고 보이기 때문. 블로그 포스트를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따금 '무언가를 쏟아내기 위해' 글을 쓰고 싶어지는 때가 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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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비에르--스토크스 방정식의 해를 찾을 것'으로 (부정확하게) 요약되기도 하는 클레이 연구소(Clay Mathematics Institute)의 밀레니엄 문제는 정확히는 '충분히 연속적인 초기조건에서는 나비에르--스토크스 방정식의 해가 존재하고 유일함을 증명하거나 반례를 찾을 것'이다. 여기서 (값이 발산하거나 하는) '특이점의 형성'은 반례에 해당한다. 특이점이 형성된 이후에는 특이점으로부터 임의의 경계조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해의 유일성이 깨지기 때문.7 그리고 클레이 연구소가 요구하는 반례와 관련하여 어제 마스토돈 포스트 하나가 갑툭튀했고,8 오늘 OpenAI측에서 브리핑을 내놓았다. 이 논란을 따라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존 연구자들이 최신 LLM을 이용해 (나비에르--스토크스 방정식과 관련된 방정식에서) 반례를 구성하기 위해 사용한 접근법이 OpenAI측의 언어모형 훈련에 이용되어 비공개 최신 모형에서 나비에르--스토크스 방정식의 특이점 해를 구성하는데 사용되었는가가 논란의 핵심이다. 어느 측의 주장을 신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을 내리지는 않겠지만, OpenAI는 밀레니엄 문제를 푸는데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놓고는 기대했던 홍보 효과 대신 역효과만 난 것 같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인상비평이기는 하다.9
그리고 이 반례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처음에 인용한 란다우의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인공지능이 반례를 구성하기 위해 택한 접근법으로부터 인류는 '반례가 존재한다' 외에 무엇을 배웠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테렌스 타오가 더 많이 생각해봤을테니 테렌스 타오의 마스토돈 포스트를 링크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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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번 '물리학자의 자질'과 호기심 및 화전민식 연구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봐야 하는데,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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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Lance는 이 말을 어디서 봤는지 구체적인 출처를 찾지 못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Amplitudes 학회에서의 발표 중 하나일텐데 CERN에서 진행했던 24년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본문으로]
- RSURF는 대학과 같이 지원하기 때문에 보통 대학에서 같이 지원할 지원자를 모집하는 preselection이 있고, 보통 preselection때 연구계획서 초안을 요구한다. [본문으로]
- 저번에 지원할때는 중력파가 중심이었던지라 '이게 아닌가벼'란 느낌으로 커리어의 중심이 되는 중력파 관련 내용을 아예 뺐다. 이번에 지원할 때 중심이 되는 주제는 당시에는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연구계획에 내세울만큼 충분히 발전된 상황이 아니기도 했고. [본문으로]
- 작년에는 11pt로 작성했는데 네 장에 꽉 들어차도록 내용을 쥐어짜내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올해는 10pt로 작성했는데 다섯장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불필요한 표현을 최대한 쳐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본문으로]
- 그리고 보통 한 줄 한 줄 검토해가며 여러 번 피드백을 줄 정도로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기도 하고... [본문으로]
- 라기엔 이번 달 할당량의 70% 이상을 벌써 다 썼다... 피드백을 요청할 때마다 최고 모델 + '제안서를 검토할 때 웹상의 현재 문헌과 교차검증할 것'을 요구했더니 많지도 않은 토큰이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본문으로]
- 펜로즈(Penrose)의 '특이점 정리'가 놀라운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상대론은 항상 일반상대론을 믿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해를 갖는다는 의미이기 때문. [본문으로]
- 테렌스 타오의 관련 블로그 포스트. [본문으로]
- 물론 학계에 가까운 사람이란 입장에서의 비평이고, 목표 청중이 미 국방부(이제는 전쟁부라고 불러야 하나?)였다면 성공적인 홍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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