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0. 17:47 Writer

but a grin without a cat!

방학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penguin classics 버전으로 사놓고 읽다가 수학자가 주석을 단 버전으로 갈아탔다. Martin Gardner 주석의 The Annotated Alice.

The Annotated Alice: The Denfinitive Edition (hardcover)
루이스 캐롤. 마틴 가드너 지음/W. W. Norton & Company
수학자가 보는 수학자의 소설은 어떤 모습일까?

penguin classics 버전은 작아서 좋지만 주석 보기가 영 불편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말 그대로 앨범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녀석이라 집에 모셔두고 보고 있다. 그래도 주석을 바로 옆에 처리해 주어서 읽기에는 좋다.(그리고 이 책의 주석이 내가 바라던 주석들이기도 하다)[각주:1] 문제라면 가격이겠지만...

제목은 여기서 따왔다.
[...]

  "All right," said the Cat; and this time it vanished quite slowly, beginning with the end of the tail, and ending with the grin, which remained some time after the rest of it had gone.
  "Well! I've often seen a cat without a grin," thought Alice; "but a grin without a cat! It's the most curious thing I ever saw in all my life!"

[...]

-Lewis Carrol/Martin Gardner, The Annotated Alice, p.67

책에는 'grin without a cat'이 현대 순수수학을 잘 설명하는 구(句)라고 주석이 달려있다. 사과 하나, 사과 둘, 사과 셋, ... 에서 시작했던 숫자들인데 사과는 어디로 가고 수만 남았을까?

---

과제를 하다가 잠시 쉬려고 이번에 사다 놓은 『괴델, 에셔, 바흐』의 앞 부분을 조금 읽다 말았는데, 서문에 '이 책의 내용은 어떻게 비생명체가 생명을 얻는가에 대한 고찰이다'라는 식으로 써 놓은 부분이 있었다. 재미있는 지적이다. 분명히 인체를 구성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움직이는 원자들일 뿐이지만, 우리의 사고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컴퓨터 모니터 상에 떠오른 알록달록한 점들이(내 블로그는 거의 흑백이긴 하지만) 어디에서 의미를 얻는 것일까? 원자들은 어디로 가고 우리의 우울한 생각들만 붕 뜬 채 남아버린 것일까?

Godel, Escher, Bach (Paperback)
Douglas R. Hofstadter 지음/Basic Books
번역본보다 싼 원서라니...

사실 생명체에만 한정시키지 않더라도 그런 현상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0과 1을 어디에선가 갑자기 나타나버린 가상공간으로 만들어버렸고, 고등학생들이(대학생이라고 다르지는 않지만...) 1 레벨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밤을 새게 만드는 MMORPG들은 0과 1에서 그들의 분신들에게 몬스터를 사냥할 무기를 쥐어주었다. 현대에 들어 이런 현상이 숨가쁘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에만 이런 일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무려 고대부터도 비슷한 사례가 있으니까. 글을 쓸 영감(?)을 제공한 덧글을 소개한다.

진짜 로그인하게 만드는 글이다. 김용옥의 지난 글에 이한열의 죽음을 두고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생명은 실깨비다. 국가라는 것은 허깨비다. 어떻게 허깨비가 실깨비인 사람을 이유없이 죽일 수가 있는가?"

그렇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짓거리는 절대적으로 그 동기가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이어야만한다. 절대로 그 어떤 이유에서건 희생을 강요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그 희생의 과실을 따먹는 것은 국가나 민족이 아닌 바로 그 도적놈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노동자들을 '산업역군",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태극전사"라고 부르는 씨발 개잡것들아. 저 단어들에는 너거들 개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해서 뒈지는게 가장 큰 영광이다라는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위험하고 더러운 환경에서 존나게 일하는 노동자들과 한겨울에 눈밭에서 팬티바람으로 체력테스트 해야하는 선수들을 힐끗 본 후에 룸살롱 찾아가고 유명 여자 탈렌트나 능욕하는 씨발럼들은 따로 존재한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존나 치켜세우고 실제로는 정신적 육체적 폭력이 난무하는 온갖 비인간적 근무환경으로 굴종을 길들이고, 가끔씩 동족끼리 총겨누게 하거나 자국시민 학살, 그리고 천안함 사건같이 재수없게 죽으면 빠담=발린 주둥이로 "웁스"하면 그만인거다. 저 씨벌룸들은 그시간에도 룸쌀롱에 있고 탤런트를 능욕하며 재미보고 있거든.

결국 국가든 민족이든 계급적 각성없이 뭉퉁그려서 생각할 수는 절대로 없다. 니가 속한 계급과 꼬라지를 정확히 직시하고 그 후에 니 스스로의 판단으로 민족과 국가를 같다 붙이기 바란다. 무조건 존나 선진조국을 위해 니 한몸 희생하지 마라. 니는 살아있는 생명이지 소모품이 아닌거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국가가 되었지만, 국가라는 허공의 성채에서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1. 11장까지는 penguin classics 버전을 읽어서 그 이전의 주석들을 확인해보질 못했는데, 확실히 Gardner 주석이 좀 더 내용이 많고 풍부하다. 삽화도 주석으로 처리되어 있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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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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