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buckshot님이 Read&Lead에서 알고리즘 포스팅을 하시고 계십니다. 전 물론 이보다는 좀 더 나아가서 인간 자체가 '특정 알고리즘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기계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자세한 것은 다음에 다루어 보아야겠네요.
이런 제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을 보면 참 다양한 법칙이 있습니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이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가끔 발견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처럼 놀라는 경우도 없지요. 이 책도 그런 부분에서 놀라게 되더군요.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 입니다. 예전에 대학국어 서평과제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쓴 적이 있는데, 잠깐 공개해 볼까요?(사실 그리 잘 쓴 서평은 아닙니다만...-_-) 상당히 기니까 열기 전에 잠깐 생각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합리적이었던 개인은 왜 집단에서 합리성을 잃어버리는가?
방대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은 자연 현상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원했다. 곡물을 심어야 할 시기나 비가 오는 시기, 강이 범람하는 시기 등 많은 자연 현상들은 잘못 예측하였다가는 당장의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과 별들을 연구하여 달력을 개발하였고, 비가 오거나 강이 범람하리라는 사실을 예측하게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문명을 세웠다. 이후 세월이 지날수록 문명은 더욱 발전하였고, 인류가 예측하는 현상의 정확도와 범위는 점차 넓어져 지금은 영원이라고 느껴질 만큼 먼 미래 - 태양이 약 60억 년 뒤에는 붕괴할 것이다 따위 - 까지도 어느 정도 합리적인 예측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때 사람들이 예측을 좀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 발달시킨 것들을 학문이라 부른다. 학문은 그 범주가 매우 넓어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종류로 분류한다. 이런 다양한 학문의 수만큼 학문에서 사실에 접근하는 방법의 수는 다양하나, 대부분의 경우 그 과정은 서로 유사성을 보인다. 대표적인 유사성은 그 학문에서 예측하고자 하는 대상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에서의 행동을 예측하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에서는 생명체를 연구할 때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세포를 연구하며, 물리학에서는 미립자들의 행위를 연구한다. 또,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심리를 다단계로 나누어 가장 기본이 되는 단계를 연구하기도 하며, 경제학에서는 경제적인 개인의 행동을 연구한다. 이런 접근 방법을 취하는 이유는, 자연 현상은 단순화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복잡하여 이해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화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이런 접근 방식으로 얻어진 많은 지식들은 매우 정확한 예측을 보장한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장 작은 단위에서 얻어진 지식들은 가끔 전체적인 흐름을 전혀 예측치 못하기도 한다. 이러한 예는 매우 다양하다. 일례로 뇌와 지능을 떠올려 보자. 뇌는 뉴런(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뉴런들은 간단한 장난감처럼 간단한 신호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신호만 전달할 수 있는 하나하나의 세포가 모이게 되면 세포 하나하나의 특성에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현상인 지성을 만들어낸다. 또, 미국의 대공황도 좋은 예이다. 당시 각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은 경제학이 예측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지만, 경제는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전체적인 불경기의 경우 미시적인 입장에서의 경제가 아닌, 전체적인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들에서 집단으로 모인 개개인은 원래 가졌던 특성과는 다른 새로운 특성이 발현된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귀스타브 르 봉(군중의 심리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로 널리 알려진 사회심리학자이다.)의 저서 『군중심리』(원작 La psychologie des foules)는 이런 부분을 잘 잡아낸 책이다. 개개인의 심리 상태가 개개인이 모인 상태인 군중의 심리상태와 같을 수 있을까?
르 봉의 대표작 『군중심리』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1부에서는 군중으로 모인 개개인들이 갖는 심리상태와 정신적 능력을 서술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1부에서 알아본 심리상태와 정신적 능력이 군중의 신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와 이 신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여러 외부요인들을 살펴보았다. 마지막 3부에서 저자는 다양한 군중들을 분류하고, 그렇게 분류한 군중들이 각기 다른 부류들과 대조되는 특징들을 알아보았다. 제 3부의 내용은 그 내용의 특성상 『군중심리』의 부록이라 볼 수 있으며, 중요한 내용들은 거의 1부와 2부에 집적되어 있으므로 이 서평에서는 보다 큰 중요도를 갖는 1부와 2부의 내용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르 봉은 먼저 군중의 하향 평준화되는 지적 능력을 지적한다. 이러한 특성이 군중의 행동에 의식적인 요소보다는 무의식적인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설명하며, 따라서 군중은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요소에 더 끌린다고 르 봉은 결론내리고 있다. 또한 이런 감정적인 요소가 고립된 개인은 시도할 수 없는 많은 행동들을 가능하게 하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군중으로 모인 개인들은 항상 범죄적 성향만 갖지는 않는다고 서술한다. 이어서 그는 군중의 의견과 믿음에 대해 서술한다. 여기서 그는 앞에서 서술한 군중의 퇴보된 사고 능력 때문에 군중은 단순화된 이념만 수용한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이렇게 군중은 우매하다는 특징에 입각하여 민주주의의 많은 주장에 대해 비판 - 기초교육은 사회적 낭비일 뿐이다 나 군중은 독재자를 원한다 등 - 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필자는 민주주의가 사회의 기반적인 사상적 배경이 되는 사회에서 자란 탓에 이러한 민주주의에 비판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상당한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놓지는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현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날카로운 현상에 대한 서술은 그가 서론에서 말한 듯이 ‘일종의 관찰기록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책으로 읽히기 기대’하고 저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서술들을 읽으면서 필자는 부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을 때 느꼈을 법한 두려움을 느꼈다. 필자는 군중에 가담한 기억이 있는데, 이후 이 책을 읽고서 르 봉이 서술한 일반적인 군중의 특징이 군중에 있었을 때의 나를 되돌아보았을 때와 너무나도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타적인 무한한 증오와 자신의 주장의 근거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같은 많은 특성들은 당시의 나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단어들이었다. 군데군데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그의 날카로운 분석들은 이미 출판된 지 1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 몸 속 구석구석을 관찰하는 듯한 불편한 기분을 느꼈던 원인은 그의 냉철한 직시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군중을 지배하기 위한 조언들은 실제 역사 속에서도 쓰였다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의 자서전 『나의 투쟁』(원작 Mein Kampf)에서 르 봉이 제시한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라디오를 활용한 반복적인 암시로 80%를 가뿐히 넘는 엄청난 지지율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미국 루즈벨트 정부의 노변담화를 벤치마킹했다는 이명박 정부의 라디오 연설을 괴벨스의 라디오 활용 방법과 비교하면서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 무엇보다 언론의 독립성이 민주주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기반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것 등은, 아직까지도 그의 주장이 유효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한편, 책을 읽다 보면 저자는 결국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저자는 군중이 결코 지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매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저자 역시 책에서 대중은 전문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현상이 있음을 서술하고 있으며, 이는 대중에 의한 지배체제가 이전의 군주정치나 귀족정치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아니함을 강하게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예측에 있어서 전문가보다는 다수의 대중이 내놓은 의견을 통계적으로 잘 처리한 답안이 보다 높은 적중률을 자랑한다는 통계자료를 생각한다면 군중이 우매하기만 하다는 그의 인식은 분명히 편향되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또한, 르 봉은 그의 저서에서 여성과 어린아이 등 소위 말하는 약자 계층에 대해 이성적인 면 보다는 감정적인 면이 강하여 열등하다는 의견을 드러낸다. 이런 사회적인 편견은 태어날 때부터 남녀에게 지속적으로 걸리는 암시의 영향을 제거해야만 비교할 수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하나, 이것을 차치하고서도 감성적인 것이 열등하다는 것은 고양이보다는 강아지가 우월하다는 견해와 같은 종류의 편견일 뿐이다. 물론 20세기 초까지 여성의 참정권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이러한 의견이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일반적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하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너무나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현상들의 원인에 대한 답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상이 있으면 그 현상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뒤따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법인데 이 책에서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피하고 있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 책은 사실들에서 일반적인 경향을 유추해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기에, 이런 현상들이 왜 생겨나는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들에 대한 설명만 있고 왜 그러한가에 대한 설명은 없었던 점은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다. 필자는 현대에 와서 두드러지게 발전하고 있는 진화심리학과 같은 기타 관련 분야에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논의를 해 주리라고 희망한다.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군중은 결코 똑똑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을 민주주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분명히 개개인보다는 하나의 집단으로 모인 개인들의 판단이 더욱 합리적인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이는 The New Yorker의 편집장인 제임스 수로위키(James Surowiecki)의 책 『대중의 지혜』(원작 The Wisdom of Crowds)에 잘 나와 있다.) 오히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대중의 우매함’은 귀족정(Aristocracy)을 옹호하는 증거로 쓰이기보다는 민주주의가 놓칠 수 있는 사각지대를 비추는 한줄기 섬광으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분명히 군중으로 모인 대중조차도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놓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제가 직접 제 서평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용두사미'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시작은 인류의 역사를 들먹여대면서 가는 거창하고 오만함의 극치이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책 한권...-_-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좀 울화통이 터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볍신같이 책을 쓸 수 있는거지?' 위의 서평에서도 조금 언급했지만, 이분 민주주의를 엄청 싫어하십니다. 근데 그것도 결국은 자기가 말한 '어떤 지식인이라도 시대적인 군중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민주주의는 아니다' 라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하는군요. 주성영 의원님이 좋아하시는 '천민민주주의'적 관점이 대세였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상당히 정확합니다. 저도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더군요. 지난 촛불 때,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게 다 이 책 덕분인 듯 합니다. 역시 이 책의 의의는 '민주주의 때려치자'가 아닌 '민주주의가 놓칠 수 있는 사각지대를 바라보자'가 되겠군요. 권력자에게 휘둘리기 싫으시면 한번 쯤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읽다 보면 조금은 인간에 대한 회의가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런 반응에 대해 전 이렇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러시아의 단편 작가이자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하는군요(물론 전 TED에서 보았지만, 인터넷에는 전혀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간은 그가 어떠한지 알게 되면 진보한다.
(Man will become better when you show him what he is li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