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겠다.

진짜 왜 법조인들은 개념이 없을까? 법대 나와서 경제부장관이라는 인간이 입은 싸가지고 말 뒤엎기를 숨쉬듯이 하는 것도 그렇고, 주어가 없다면서 말의 뜻을 바꾸어 버리는 언어의 연금술사 나으리도 그렇고, 도대체 법을 하는 사람들 중에 개념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 죽겠다. 원래 이런 공격적인 글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기사(정확히는 이와 같은 내용의 다른 기사이지만 그냥 보이는 대로 긁어왔다)를 보고서는 눈알이 뒤집혀졌다.

檢, 노건평 `30억 공범' 입증에 주력(종합)
검찰 “노건평씨 포괄적 공범”

사실 이 기사만 보고 글을 쓰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다음 글이 휘발유를 끼얹은 다이너마이트에 불씨를 당겨주었다.

우리말 오들희 236회 - '포괄적' 의 올바른 사용법

(냉면개시 님, 존경합니다 -_-乃)
애써 잊어 두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이처럼 어의없는 개소리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법조인에 대해 이미지가 무지 나쁜 상태인데(물론 법조인 중에서는 개념차고 존경해야 할 분들이 계신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으나, 괜히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내를 흐린다고 하는게 아니라는 걸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법치의 최정점에 계신다는 분들이 이런 헛소리만 해 댄다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 검찰을 괜히 떡검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기초교육, 그것도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법을 적용할 때의 원칙이 있다. 첫째, 법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여야 한다. 이것은 두말하면 입 아픈 원리이다. 법을 처음에 만든 이유가 무엇이던가? 사회에 정의를 구현하자는 목적에서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인류가 도입한 것이 법이었다. 이 원칙은 법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그리고 둘째, 법은 누구에게나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 많은 정의의 여신상의 눈이 가려진 이유가 그것이다. 눈으로 편견이 개입할 여지를 막자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다시 눈을 뜬 정의의 여신상을 만들자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는 하지만(여신의 눈은 인간의 것과는 달리 정의를 꿰뚤어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왜 여신의 눈을 가리느냐 마느냐가 상당한 논쟁을 일으키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관련된 글에 링크를 하나 걸어 둘 테니 참고하길 바란다.

자, 그러면 왜 이 '포괄적 공범'이라는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간단하다. 첫째, '포괄적 공범'이란 개념이 법전에 있기나 하냐? 예전에 어쩌다가 친구들에게 끌려가 보게 된 '눈에는 눈 이에은 이'라는 영화에는 이런 인상깊은 장면이 있다. 복수를 위해 범죄를 벌이고 있다는 보고를 하면서 공감하고 있는 후임을 향해 형사가 '법전에 복수란 항목이 있냐'라고 호통을 치면서 법전을 던지는 장면이다. '복수'라는 항목이 법전에 없는 것처럼, '포괄적 공범'이라는 개념도 법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법률에 근거하여서만 처벌하는 방식에는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목적이 아닌 법률이라는 수단에 매몰되어 버리는 위험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법을 제한적으로 정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지금처럼 미쳐 날뛰는 공권력에게서 개개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법대로 처벌하려면 말 그대로 '법이 제한하는 대로만' 처벌해야 한다. 이게 대통령에게 KBS 사장의 '임명권'만 주고 '임면권'은 명시하지 않은 이유이다. 뭐 이런 소리 해 보았자 청와대와 국회의 가죽만 인간인 종자들은 듣지도 않을 테지만.

두번째 문제. 물증이 없는데 구속하겠단다. 살인미수라도 물증이 없으면 구속하지 않는게 원칙이다. 다들 사시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배우지 않았던가? 노건평씨 구속 이유를 들어보면 다 추정추정추정... 정확히 찝어낸 물증은 하나도 없다. 나중에 실제로 노건평씨가 뇌물을 받아 먹었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배반한 것으로 두고 두고 욕을 먹어야 한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켜준다고? 그건 개인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더군다나 옳지도 않은 말이다) 공권력이 할 말은 아니다. 과학이 그 권위을 과학적 원리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획득하는 것처럼, 공권력도 법의 엄격한 적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이것을 어기게 된다면 공권력은 전제군주의 폭정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 내용은 다음 기사가 잘 다루고 있으니 링크 걸어두겠다.

검찰 “노건평씨 직접 돈 안받았어도 포괄적 공범”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문제. 난 앞서 두 가지 법의 원칙을 말했는데,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위 문제가 노건평씨가 아니라 이상득씨였어도 이렇게 날림으로 구속영장을 날렸을까? BBK를 일주일만에 날림으로 처리한 검찰의 '화끈한'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김옥균 여사(개인적으로는 이 단어를 붙이는 것이 뭣하다고 느끼고 있다)의 사촌언니 사건이 소리소문없이 흐지부지되어 사라져 버린 검찰의 '너무나도 화끈한'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난 전혀 아니었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검찰이 법을 '커다란 독나방은 이리저리 빠져나가기 쉽게 허술하게 짜였지만 작은 나비는 어떻게 날더라도 잡힐 수 밖에 없도록 타이트하게 짜인 독거미줄'로 쓰고 있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검찰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검사님들, 중학교 교과서부터 보셔야겠다.(물론 그 이전에 개념탑재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위의 '법에서 명시하는 대로만 처벌할 것', '무죄추정의 원칙', '일관성 있는 법의 적용'은 상식이다. 상식이 아니라고 치더라도, 최소한 사시를 공부했다는 사람들에게 위 세가지 개념들은 상식이어야 한다. 물론 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이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앞에 제시한 세가지 조건들이 만족되어야만 한다. 목적은 절대 수단을 정당화시켜주지 못한다. 특히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라면 이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것일까? 내 짧디 짧은 생각에는 이것은 다 사법연수원에서 개념을 심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사법연수원에서 실제로 개념있는 강의를 하는지 개념의 개자조차 다루지 않는지는 헌법 공부조차 안해 본 입장에서 알 수는 없으나, 사시를 통과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저렇게 개념이 없다는 것은 분명히 사법연수원에서 사시합격자들의 머리에 빨대를 꽃고 개념을 뽑아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밖에 못 내리겠다. 사법연수원은 '상식과 개념'이라는 과목을 신설하라. 그대가 키워내길 원하는 훌륭한 법조인들은 최소한 개념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덧. 대법원 앞의 정의의 여신상은 서양의 것과는 달리 칼 대신 법전을 손에 들고 있다. 이런 다툼보다는 평화를 중시하는 태도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칼이 없다는 것은 대법원이 정의를 해친 자들을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대법원은 정의를 구현할 강력한 의사가 있음을 어떻게든 표시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법원이 정의 구현을 위해 뼈가 가루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의지가 강력하다면 그것을 표출해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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