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3. 00:27 Daily lives

대학 폐교 - 단상

예전에 친구한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사립대보다는 국립대를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기껏해야 대학생이 뭘 알겠느냐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

저출산 + 경제위기. 사립대학의 절반 정도는 저출산과 경제위기 때문에 재정상태가 악화될 것이고(둘 다 대학입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학생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폐교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립대는 그런 걱정이 없으니 국립대가 나을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예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학생수 감소 대학 문 닫기 쉬워진다 (뉴시스)

부산의 사립대가 목표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학은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교육, 특히 대입시장과 관련된 고질적인 병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공급과잉이고, 나머지 하나는 공급자주도시장이라는 것이다.

공급과잉이라는 것은 대학이 과도하게 많다는 의미이다. 실례로 대학입학자의 비율은 80%에 근접한다. <왜 순수학문이 바보들의 학문이어야 하는가>에서 이미 말했던 것 같은데 사회는 이렇게 많은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막이 내린 이유 중 하나로 과도하게 많아진 양반을 드는 경우도 있듯, 화이트칼라는 생산과는 거리가 먼 계층이다. 유통에 능한 이 인력층은 생산층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이공계를 엿먹이는 사상의 대표격인 사농공상에서 사가 제일 먼저 온 것은 말하는 사람들이 사에 속했기 때문이고, 농이 그 다음에 온 것은 농이 생산을 맡은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신전이라도 땅이 있어야 세울 수 있는 법이다.

공급자주도시장은 수요자(입학생)와 공급자(대학) 사이에서 공급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거래는 수요자보다는 공급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이다. 다른 말로는 과잉수요가 존재한다는 말이 되겠다. 위쪽에서는 공급과잉이라고 해 놓고서 아래에서는 수요과잉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개별 대학을 놓고 비교하면 확실히 수요과잉임을 알 수 있다. 전재산을 팔아서라도 명문대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명문대의 입구는 크기가 정해져 있다. 이 좁은 입구를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경쟁을 벌인다.

대입시장은 미술작품이 거래되는 경매시장과 닮았다. 명작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명작은 복제품이 없기 때문에 하나뿐인 작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미친듯이 가격을 부른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무명작가의 작품은 손드는 사람이 없어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이쯤 되면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미국과 유럽의 대입시장이다. 유럽식 대입시장은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라서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식은 상당히 닮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교는 가능해 보인다. 미국식이 한국식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공급과잉은 없다는 것과 수요자주도시장이라는 점이다.

이 차이는 미국과 한국에서 대학을 가는 이유에서 두드러진다. 미국은 대학이 말 그대로 대학(大學)이다. 고등학교에서 수준이 좀 되는 학문을 배운 다음 좀 더 커다란 학문을 배우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관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공부하려고 대학온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들 가니까 가는 것 뿐이지.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문제의 근원은 사회 전반 분위기에 있다. 대학 졸업장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한 현실이 대입을 부추기고 과잉수요를 낳는다. 영화 I am Sam에서 주인공은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최소임금제가 지켜지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교육 과열의 문제는 결국 대입의 문제이고, 대입의 문제는 결국 생존의 문제이다. 따라서 사교육을 잡는다는 말이 교과부에서만 나온다는 말은 이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공교육 강화를 통해서만 해결되는 문제가 이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 없이도 어느 정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생활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 다음에야 공교육 강화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상위층의 개인교습과 같은 형태의 사교육은 언제나 수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제거하지 못한다. 사교육 문제의 핵심은 비대하게 큰 시장에 있다.

따라서 사교육을 잡고 싶다면 양극화를 줄여야 한다. 양극화의 심화가 과열된 교육수요의 근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대학 졸업장이 없는 사람들의 생존이 힘들어진다.

'Daily liv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 = 말의 연장?  (0) 2009.07.17
참된 존재에 대하여 - 서양 철학자 버전  (6) 2009.07.13
과학에서 불가능이란  (2) 2009.07.05
여명의 뻘글  (0) 2009.06.15
봄학기 종강  (6) 2009.06.13
Posted by 덱스터

블로그 이미지
A theorist takes on the world
덱스터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