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기계과를 개과라고 부른다. 술을 퍼마시다 못해 개가 되어서 개과라는 것이다(개처럼 술을 퍼마셔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어떻게 보면 개과라는 표현은 남자들의 리그인 공대의 놀이 문화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다는 슬픈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이런 개과의 술을 하지 못하는 이단아이다. 소주보다는 맥주를 좋아하고, 맥주도 한잔만 마시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나는 내가 기계과의 이단아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소주 열병식 들이키는 동기들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주량을 가졌기 때문이다. 새내기 배움터 첫날 8시에 제일 먼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우리과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설이 되었다.
그래, 난 이단아이다. 물론 그것이 술이 약한 아버지를 둔 유전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원죄는 아니다. 오랜 기억을 떠올려 보건대, 난 어릴때부터 독특하기를 바래왔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이 학원에서 배우는 애들과 동급이 되기는 싫다는 오기로도 나타났었고(결국 다니기는 했다), 친구중 누가 말했듯이 45도 비틀린 시각을 가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 또, 사상적으로도 이단아가 되기를 바래왔다고도 할 수 있다. 잘 섞이면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는 흙탕물의 진흙과 같은 존재. 평범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독특한 그런 존재. 이런 존재들에게 끌렸던 것은 이단아가 되리라는 복선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장담컨데 앞으로도 이런식으로 독특하게 사고하려는 버릇은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런 버릇은 결국 모태신앙이었던 나에게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종교라는 금지된 성역에 비판의 발을 들이밀게 된 것은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한국이 이처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이유는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건 주로 목사들이나 그렇지만... 유럽이 망한 것도 믿음에 금이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옳은 설명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45도 비틀어 보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보는데서 시작하니까 말이다. 정말 한국은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유럽이 세계 열강의 뒷전으로 물러난 것은 믿음을 가진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일단 내가 생각하는 결론부터 말해본다면, 정답은 '아니오'이다.
일단 옆나라 일본부터 보자. 일본이야말로 한국의 경제성장에 맞먹는 성장을 보여준 대표적인 대조군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은 말 그대로 '망했다'. 원자탄이 떨어진 히로시마는 쑥조차도 못 자랄 쑥대밭이 되었고, 폭격으로 온전한 너트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공장들은 크게 망가졌다. 이랬던 일본이 지금은 경제대국의 하나이다. 미국의 뒤를 바짝 좇아가는 놀라운 재생능력을 가진 국가인 일본의 종교는 어떨까? 놀랍게도 기독교가 아닌 신토라는 토속종교와 불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이 믿음의 힘으로 재생했다고 믿기에는 무언가 꺼림칙하지 않은가? 혹자는 일본은 전쟁 전에 기초적으로 쌓인 기술이 있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의 부흥은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약 1-3백만명(3% 이하) 정도 되는 일본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일본이 재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27%가 넘는 사람이 기독교인 한국은 왜 일본보다 크게 성장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저 멀리 중남미로 가 보자. 여기는 잘 알려져 있듯이 천주교 국가들의 세상이다. 인구상승률이 제일 높은 이유가 교황청에서 피임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라고 읽은 바가 있는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여기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구역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난 아직까지 중남미가 한국보다 살기 좋고 경제도 더 크다는 주장은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인지 아닌지는 숫자를 확인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GDP로 매긴 순위에서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가진 중남미의 나라는 브라질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보통 '망했다'고 표현하는 유럽국가들은 왜 이리 GDP 순위가 높은지. 이래도 믿음이 경제발전을 보장해주는 확실한 보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말이 생각난다. 다름아닌 목사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은 '성적을 올려주세요' 이런 기도까지 다 들어주시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공부하나 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좋은 성적을 보장해주시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결국 경제도 같은 것 아닐까? 나는 '경제좀 발전시켜주세요' 이런 기도를 올린다고 경제가 발전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물며 몇장 안 되는 시험지의 작은 숫자조차 허락하시지 않는데 과연 그 많은 지폐의 숫자를 허락하실까?
가끔 폭우가 오면 댐의 수문을 개방하기도 한다. 수문을 열지 않으면 댐이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상처를 딛고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문을 열기 위해 폭우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 내가 고등학생일 적에 시험기간에 드렸던 기도는 '성적이 잘 나오게 해주세요'가 아닌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게 해주세요'였다. 노력이 꼭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믿음이 강한 신자라면 한국의 성장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태의 노력에 대해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라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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