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18. 14:51 Daily lives

비가 온다

어제는 일찍 자겠다고 크게 다짐을 먹고 오전 3시까지 버티다가 잠이 들었다.

결국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은 먹기 힘든 2시에 일어났고, 아침을 오후 5시 반에 먹게 되겠지.

아직 어두운데 시간이 어느정도 ?瑛막졌 궁금해서 커튼을 열어본 창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고

조용함에 익숙해져 있었던 나는 창문을 연다.

'얼마만에 듣는 비 소리일까..'

빗방울이 아스팔트 바닥을 치는 상쾌한 소리에 따라

하모니카를 잡고 느릿느릿한 곡조 하나를 뽑는다.

'룸메는 교회에 갔겠지. 나도 가야 하는데 난 매번 뭐 하는 짓이람...'

살짝 자책하며, 느린 선율을 따라 바람을 분다.

느린 선율에 지칠 때이면 빠른 곡조도 한번 뽑아 보고

정 힘들면 가만히 아스팔트 드럼의 소리를 들어보기도 한다.

우르릉거리는 불만을 들어주면서 뭐가 문제일까 하고 속으로 물어보기도 하고

규칙적인 박자에 맞춰 몸을 조금씩 흔들어 보기도 한다.

아날로그로 살기로 약속했던 어젯밤의 약속은 잊어버리고

결국엔 키보드를 친다. 짧은 스타카토의 울림.

주위를 둘러보면 어젯 밤 월광소나타를 떠올린 베토벤처럼 마구 휘갈긴 포스트잇이 붙어있고

공부 좀 해 보겠다고 산 파인만씨의 빨간 강의록이 놓여있고

은빛으로 사길 원했지만 검정으로 신청된 노트북 쿨러와

그 위에 가부좌 자세로 놓여있는 나의 14인치 와이드 노트북

그리고 노트북을 보좌하기 위한 푸른 무선 마우스와

책상 위에 널부러져 있는 새하얀 이어폰

그 앞에는 숙제를 하겠다고 펴 놓은 책이 있고

그 옆에는 숙제를 하려던 것처럼 놓여있는 A4용지가 있다.

물론 숙제를 하나도 안한 것은 아니지만, 넣은 시간에 비해 한 양이 너무 많아서 말이지.

숙제를 하던 종이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3색펜이 도도한 검정색 펜을 드러내고 있고

뚱뚱한 샤프와 옷을 안 빨아서 더러워진 계산기가 놓여있다.

계산기 옆에는 너무 많은 펜던트를 들고 다니다가 외피가 찢어질 듯 말듯 한 필통이 있고

그 반대쪽 숙제를 하려던 책 옆에는 영어 자료와 레포트 용지, 그리고 나의 매니저인 학생수첩이 놓여있다.

물론 그 옆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정을 불어넣던 하모니카와 하모니카 케이스가 놓여있고 말이다.

밖에서는 슬슬 빗방울들이 밀려들어오고

그 울림은 점차 강해진다.

예전 02년도에 광장으로 하나 둘 몰려오는 붉은 물결처럼

갈수록 점차 세지는 느낌이다.

일기는 여기쯤에서 끝내고, 이제는 숙제를 다시 해야지.

번개의 호통 소리가 빨리 마음을 잡으라는 것처럼 들린다.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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