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6. 17:48 Daily lives

YITP School

교토대의 유카와이론물리연구소에서 여는 끈이론 학교를 다녀왔습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일본에 가 보는 것은 처음이었네요.


첫 사흘은 따로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YITP에서 예약해준 호텔에서 지냈습니다. 지낸 게스트하우스는 카오산 교토 게스트하우스였고,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는 (아마도 같은 프랜차이즈(?)에서 운영하는) 카오산 교토 극장에서 맥주를 한 잔 하고 돌아왔습니다. 홀란드에서 온 두 분과 대화했는데,[각주:1]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 네 달 정도 세계를 여행중이었다고 하더군요. 아르헨티나와 영국에서 온 다른 사람들과 함께 2차로 노래방을 간다고 했는데, 내일 비행기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고 빠져나왔습니다(...) 사실 가봤자 부를 노래도 없고


학교는 장론 반, 끈이론(으로 일단 분류하는 것들) 반으로 총 네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두 강의는 거의 버렸고 두 강의만 제대로 머리에 집어넣고 가는것 같네요.


1. CFT Bootstrapping

막연히 재미있어 보인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주제였는데, 직접 보고 나니 CFT 공부부터 제대로 해 두어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치적인 접근에 대한 코멘트도 재미있었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계있을지도 모르는 논문(...)을 읽는데 필요한 지식이라 상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2. Holographic Entanglement Entropy

사실상 학교에 등록한 이유가 된 강의였는데, 초반에 너무 기초적인 것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가도 처음 알게 된 사실들도 나오는 등 유익했습니다. 특히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던 Holographic Entanglement Entropy의 증명 등은 상당히 도움이 되었어요. 마지막에는 최근 연구중인 주제에 대해서도 다루었는데, 솔직한 감상은 '재미있는 계산이기는 한데, 실제 물리적인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계산인가'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다루는 상태가 UV cut-off에 비례하는 에너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 신경쓰여서 말이죠.


3. Integrability

알아들은 것은 '하나의 연속적인 변수로 나타낼 수 있는 보존량의 집합을 이용해서 문제를 푼다'밖에 없었습니다.(...) Bethe ansatz를 모르니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없더라구요.


4. Localisation

알아들은 것은 '초대칭을 이용해 경로적분을 직접 계산이 가능한 적분으로 축소한다'밖에 없었습니다.(...) 강의자가 렉쳐노트를 올려두어서 못 알아들은 부분을 체크하다가 흐름을 놓친 이후로 완전히 놓아 버린 것은 제 잘못이기는 하지만요(...) 하루 각잡고 초대칭을 공부하기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대칭 공부를 제대로 안 해두면 강의 못알아듣는 서러운 일이 더 생길 것 같아서...(...)


다음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몇가지 인상깊었던 부분들.


1. 저상버스

대부분의 교토 시내를 돌아다니는 버스가 저상버스였습니다. 저상버스가 아닌 버스를 딱 한 번 타봤으니까요. 놀랐던 것은 사람이 타고 내릴 때 버스가 전체적으로 사람이 타고 내리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작은 디테일이라 그런지 말하기 전까지는 알아차린 사람이 없더군요. 한국에서 저상버스를 탄 적이 거의 없는지라 한국의 저상버스도 같은 기능이 붙어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교통카드가 별로 보편적이지 않은 듯 했던 것도(교통카드 통합기능이 있어보이는 카드 광고가 거의 모든 버스 안에 붙어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네요.


2. 일본어

일행중에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한문을 조금은 읽지만 공부 안 한지 오래라 한자만 보고 의미를 파악하는데는 무리가 많아서요. 언젠간 일본어도 공부해봐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더군요. 물론 '언젠간'이 never의 동의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3. 신호등

신호등이 없어도 될 것 같은 작은 골목에도 신호등이 붙어있더군요. 큰 횡단보도면 거의 항상 신호음이 들렸습니다. 아직도 귀에 울리는 '띠↗또↓ 띠↑띠↑또↓'(...)와 '춍춍'(...) 조용할 시간의 조금 큰 길가에서는 먼 곳에서부터 울리는 신호음이 점차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독특한 공간감도 기억에 남습니다.


4. 자전거

자전거를 엄청 자주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인도가 넓은 편이고 인도쪽에 세워진 차가 없다 보니까 자전거를 타기에는 좋은 환경이죠.


5. 자동차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보았던 차들보다 폭이 좁은 편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6. 신사

진짜 골목마다(...) 신사가 있다고 해도 과장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들 정도로 신사가 많더라구요. 첫 날 묵었던 숙소 바로 건너편에도 신사가 하나 있었는데 '전자기기에 악령이 안 들도록 기도해준다(...)'는 포스터가 인상깊었습니다. '논문 아이디어 잘 나오게 해주는 부적'같은게 있으면 사려고 했는데 없어서 첫날 간 청수사에서 대충 비슷해 보이는 학업관련 부적(...)을 하나 구매했습니다. 학업성취어수(學業成就御守)라고 써 있네요. 매화시즌이라고 해서 북야천만궁도 갔는데(매화축제 입장료를 보고는 그냥 주변만 보고 왔습니다(...)) 거기에서 파는 학업관련 부적은 죄다 수험이나 시험에 맞춰져 있더군요. 학문의 신을 모셨다며... 왜 학문 관련은 없는건데...


7. 골목길

적당히 깔끔하면서도 낡은 느낌이 드는, 그리 크지 않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을 엄청 좋아하는데, 많은 골목이 이런 느낌이었던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총평을 하자면, 꽤나 마음에 드는 도시였습니다. 일행과 나중에 여기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대화도 나눴으니까요. 물론 실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애로사항을 겪는지는 모르는 입장이니 살기 좋은 곳이라는 평가는 유보해두는 것이 좋겠지요.

  1. 굉장히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는 놀랐습니다. 오개국어 정도 하는 것 같더라구요(하나는 고전 희랍어라고 하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일본어를 배워야겠다고 다시 다짐하게 되더군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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