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11 그 많은 뚜껑들은 누가 다 끼웠을까 3
  2. 2010.02.03 등록금 문제를 바라보는 방법 2
찰리의 초콜릿 공장이라는 동화가 있다. 겸손함을 칭송하고 예의없는 태도에는 가차없이 철퇴를 내려찍는 보수주의의 정수를 모아놓은 동화인데, 이름있는 배우 조니 뎁이 출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는 찰리의 아버지가 치약 공장에서 치약에 뚜껑을 끼우는 일을 하다가 그 일을 대신할 기계가 들어오는 바람에 짤리는 장면이 나온다. 비록 영화는 마지막에 아버지가 그 기계의 정비를 맡는 정비사가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현실에서도 해피엔딩을 찾을 수 있을까?

기술은 발전한다.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의 증가를 낳기도 하지만, 애꿎은 곳에서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프레온 가스와 피부병의 관계도 하나의 예이지만, 사람들이 좀 더 직접적으로 느꼈던 말썽은 꽤 극단적인 상황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란게 일어난 이후 19세기 초에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알 것이다. 기계 파괴 운동 말이다. 현실은 영화에서처럼 해피엔딩이 아니라, 뚜껑을 끼우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자 기계를 부수러 공장에 무기를 들고 입성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사람이 하던 일을 많은 부분을 기계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금방 보인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옆에서 시끄럽게 돌아가는 세탁기는 원래 내가 강가에 앉아 손으로 빨랫감을 내려쳐야 하는 수고를 약간의 수도세와 전기세로 전담해주고 있다. 랩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원래 누군가가 옆에서 악기를 들고 딩가딩가 하고 있었어야 했던, 엄연한 노동이다. 이것 뿐이던가? 식기세척기는 어머니가 식사 후 투덜대며 하시던 일을 대신하고 있고, 공장에서 차 철판 사이사이에 용접하는 일도 원래는 기술자가 하던 일이다. 기계가 도입되기 전에 만들어진 치약들의 그 많은 뚜껑들은 누가 다 끼웠을까?

물론 사람만 할 수 있는 일도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 소설가만 사는 나라는 없지 않던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다소 우울한 질문은 옆으로 치워두고, 지금처럼 기술의 발전이 급격하게 진행될 때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전에도 한 번 간단하게 글을 썼던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첨단 기술이 세계의 지평을 넓힐수록 '그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혹은 '그 기술로 쫓겨나게 된 사람들'은 더욱 시달리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시달림이 대를 이어 유전된다는 것이다. 영화 아이로봇을 생각해보자. 길거리를 쓰는 청소부들 중 사람은 없었고, 집에 로봇 한 대 없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 로봇이 공급되기 시작했을 때 길거리를 청소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또, 저 시대에 로봇을 살 돈이 없어 집안 일을 전부 자기가 도맡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아들딸들은 그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이미 존재한다. OLPC(One Laptop Per Child)라고 해서 극빈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한 대씩 지급하자는 운동인데,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언제까지나 가난의 사슬을 끊자는 것이 목표이지 가난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미래의 씨앗이지만, 어른은 현재이다. 미래의 씨앗은 언제나 현재라는 토대에 심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미래를 생각하는 만큼 현재에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

물론 기술이 인간을 밀어내는 만큼 기술은 인간을 필요로 하는 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기술이 만들어낸 자리는 기술이 밀어낸 자리와 다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손가락 봉합을 잘 하는 의사라고 하더라도 녹내장 수술을 바로 잘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차이를 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재교육이고, 재교육은 개인 수준에서보다는 국가 단위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돈을 잘 버는 직업은 대부분 그 전문성 때문에 대체할 사람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계들에게 밀려난 자리가 부유한 직업일 가능성보다는 가난한 직업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이 이럴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누가 무어라고 하던,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기술이 발전하며 가축이 설 자리가 좁아진 것처럼 인간이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고, 설 자리가 사라진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미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보았던 '재정파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복지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신문기사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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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MB “등록금 싸면 좋지만 교육 질 떨어져” (데일리안)

가끔 헛소리 속에서도 무언가를 건져낼 때가 있다. 가끔씩 웃는게 웃는게 아닌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도 그 중 하나이려나.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어쨌든 기사를 읽다보면(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접속불량이었다) 무언가 건저낼만한 논리는 존재한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린다는 것. 중학교 공부만 제대로 해도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조절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전체의 80%가 넘는 고등학생이 대학으로 진학한다는데 이건 당연히 고학력자의 초과공급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부제목, '사람이 적게 필요한 분야에서 많은 학생 공부하면 안돼'가 틀린 말은 아니다.[각주:1] 예컨데 제대로 따진다면 공대생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난 이유는(그리고 이공계 기피현상이 생겨난 이유는) R&D에 투자하는 비용이 적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관련 직업군에서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단이 맞더라도 처방전이 영 아니면 환자는 한방에 훅 간다. 요즘들어 계속 등록금상한제가 등장하는데 언제까지나 고름을 잠시 짜는 것이 될 뿐 환부가 낫지 못하면 고름은 언젠가 다시 차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입에 올린 직업학교는 언제까지나 실업대책일 뿐 등록금 대책은 아니다. 더군다나 대학생보다는 실업자 위주로 개편해서 실업자 구제대책을 활성화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대학생만 직업을 구하는 것은 아니니까.

초장기적인 대책이지만[각주:2]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학을 진짜 가고싶어하는 사람들만 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구의 30% 정도만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한다면 등록금이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인구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하는가?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복지를 강화해서 대학에 가야만 하는 필사적인 이유를 제거한다면 등록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던 것 같은데 여유로운 사회가 되어야 해결된다는 말이다.

물론 대학 등록금 문제가 사라진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좋은 뜻'만 가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으로 대학 등록금 문제가 사라진다면 계급이 고착된다 즉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각주:3] 언제까지나 최상의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한다는 가정에서의 이야기이지만, 이전에는 비좁은 개천에서 말라죽지 않기 위해 용이 되려 죽음을 각오하고 애쓰던 잉어들이 이제는 개천을 마음껏 휘젓고 다녀 용이 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설명하면 될 것이다. 공자시대부터 내려오는 태평성대의 현대적인 모습이다. 귀족은 자애롭게 통치하고, 농민은 풍년을 즐긴다에서 귀족을 정치인 가문으로, 농민을 일반 노동자로 바꾸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간혹 농민이 귀족으로 상승하고 귀족이 농민이 되는 일은 현대에나 존재하지만.

그렇다면 최악의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잉어가 말라죽지 않으려 용이 되려 해도 개천 위에 쳐저 있는 그물 때문에 용이 되지 못하는 사회이다. 자본이 사실상의 권력인 현대에는 워킹푸어(working poor) 즉 일해도 가난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사회이며 마이크로크레딧(micro credit)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문제는 얼핏 흐름을 보아서는 이쪽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복지를 삭감하면서까지 세금을 줄인다면[각주:4] 그 세금은 투자로 이어져서 생활수준을 전체적으로 높여야 하는데 부동산이라는 매력적인 투기처를 제끼고[각주:5] 설비에 투자할 사람이 과연 그렇게 많을까?


어떻게 해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으려나. 뭐 이 나라가 잘못된 투표 한두번에 쫄딱 망할 정도로 허약한 체질은 아닌 것 같고 이런 고민을 나보다 깊게 하는 고민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가끔씩은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심심해서 사회란으로 발행.
  1. 때문에 사실상 수요가 증발해가는 학문을 할지 말지를 더욱 고민하고 있다. 과연 내가 이 적은 수요를 차지할 수 있을 만큼 능력있을까? [본문으로]
  2. 하지만 아무리 길어도 두 세대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같다. [본문으로]
  3. 이것도 뒤집어 말한다면 아직 계급이 굳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가 정착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본문으로]
  4. 복지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그러면 그 많은 세수는 어디서 빵꾸난 것일까? 그리고 인플레이션이라는 복병도 고려해야 한다. [본문으로]
  5. 아직도 매력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두가 매력적이라고 믿는다면 부동산은 매력적인 투기대상이다. 버블의 구조와도 유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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