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4. 21:25 Writer

Luna venator

한번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단편은 가끔 써 보긴 했는데 역시 목표는 장편.

장편 소설에 가끔 등장시키려고 써본 신화. A4 두장 정도의 분량.



먼 옛날, 그러니까 해는 춤추고 달은 노래하며 그 깃들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한 작은 마을에 또래보다 유독 작은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의 가슴 속에는 어느 다른 소년보다도 거대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바로 '욕망'이었다.

이윽고 소년은 자라 자신만의 활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활은 자신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물건이어서, 그 주인이 될 사람이 그 활의 첫 희생물의 피로 활에게 이름을 하사해야 비로소 그 주인을 받아들인다. 활은 이름을 선사받는 순간부터 그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 맹약은 자신의 이름을 전해 준 그 희생물의 나이까지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는 오래된 활을 들고 다니는 사냥꾼들이 존경받고는 했다.

그 마을에서 자신의 첫 활은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의 피로 이름을 내려주는게 보통이었고, 간혹 욕심이 있는 자들은 표범을 잡곤 했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은 표범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소년은 남들이 아직 잡아보지 못한 사냥감을 사냥하기로 했다. 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나는 새, 그 어떤 새보다도 화려하게 날갯짓하는 새, 그 어떤 새보다도 맑게 노래하는 새, 달을.

소년은 달을 같이 좇을 활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소년은 다른 또래들처럼 나무들을 찾아갔다. 나무들에게 찾아간 소년은 같이 달을 좇을 것인지 물었고, 나무들은 만조(萬鳥)의 여왕을 좇겠다는 소년의 말에 기겁하였다. 나무들은 어찌 천상의 여왕을 범할 생각을 하냐며 소년을 나무라며, 자신들은 그런 불경스런 일에 가담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소년의 욕망은 나무들의 거부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소년은 나무의 팔을 취해 자신의 활로 삼았다. 나무들은 고통에 떨며 앞으로는 자신들의 눈물만을 내어주리라 저주를 내렸고, 이후 사람들은 나무의 살은 먹지 못하고 눈물만 먹게 되었다. 눈물만 먹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하게 되었다.

소년은 달을 좇을 활을 구했지만 그 활에 실을 화살은 구하지 못하였다. 달을 좇을 화살을 찾아 헤메이던 소년에게 기꺼이 화살이 되어 주겠다고 나선 것은 흙이었다. 자신에게 난 모든 것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지만 그를 거부했던 두 새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흙은 그 오만한 두 새를 떨어뜨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소년은 흙에게 너는 무슨 재주가 있냐며 조롱하였고, 흙은 모욕에 치를 떨며 소년을 방해하겠다 맹세하였다. 소년은 빛에 대한 욕심이 강해 주변에 빛 조각이 있으면 끌어당기는, 하지만 그 자신은 그 탐식으로 검게 물든 돌이 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들어 알고 있었고, 달의 피를 마실 화살로 그 돌을 선택하였다. 소년은 빛 조각을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그 돌이 달의 피를 다 마시고 피를 잃은 달이 금방 잡히리라 여겼다.

활과 화살을 구한 소년은 활을 들어 달을 보았다. 달이 그 날개를 활짝 피었을 때, 소년은 천천히 활을 당겨 달을 겨냥하였다. 이윽고 소년이 활의 시위를 놓는 순간, 흙이 몸을 비틀며 소년의 사냥을 방해하였고, 소년이 활에 실어 날려보낸 화살은 빗나가 저 멀리 남녘으로 사라져 버렸다. 빛 조각을 끌어당기는 돌은 지평선 너머로 멀어져 가면서 하늘에 가득하던 빛나는 깃들을 같이 끌고 가 버렸고, 이후 깃들은 사람이 두려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년은 흙에게 네가 왜 나를 방해하느냐 화를 내었다. 흙은 너는 나를 욕되게 했다고 하면서 네가 나를 딛고 활을 당길 때마다 나는 내 몸을 비틀어 너를 방해하리라 맹세했다고 말했다. 소년은 이를 무시하고 다시 시위를 당기어 달을 겨냥했으나 흙이 몸을 다시 비틀었고, 몇번 더 활을 들었던 소년은 망각을 모르는 흙이 자신을 계속 방해할 것을 깨닫고는 물을 딛고 달을 좇아야만 했다.

물은 딛을 때마다 일렁였고, 물에 익숙하지 않던 나무의 팔은 끊어지고 말았다. 소년은 물을 버티지 못한 그 팔을 욕하며 집어던지고 다른 활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모두들 소년의 활이 되기를 거부하였다. 소년이 강제로 나무의 팔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고, 그 팔이 돌아갈 때 조차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이 되어 줄 것이 없었지만 소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더욱 거대하게 자라났고, 욕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 저항하지 않는 빛나는 깃들을 그의 활과 화살로 삼으라 부추겼다. 소년은 해와 달의 깃으로 활과 화살을 짰지만 하늘에 올려둔 활과 화살은 매번 남녘으로 날아간 돌이 가져가 버렸다. 소년은 다른 탐식에 물들은 돌을 구하여 북녘에 두었고, 깃들은 두 돌들이 서로 끌어당겨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소년은 새로운 활과 화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소년은 다시 달을 좇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깃에 좇기기 전까지 위험을 모르던 만조의 여왕은 겁을 먹고는 노래하기를 그만두었고, 만조의 왕은 자신도 자신의 깃에 좇기지 않을까 걱정하다 춤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소년은 계속 달을 좇았으나, 물을 디딘 탓에 그 화살은 매번 빗나가곤 했다. 그러나 소년이 화살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달은 숨어 화살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화살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나와 도망을 계속하였다. 간혹 소년이 잘못 쏜 활이 해를 좇는 경우도 있었지만 걱정하느라 춤마저 잊어버린 왕은 그 때마다 달처럼 숨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소년의 추적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소년은 늙어갔고, 소년이 잡히지 않는 달을 좇다가 노쇠하여 힘을 잃어버리자 욕망은 소년의 몸까지도 집어삼켰다. 욕망은 소년이 짠 활과 화살에 입혀 사냥을 계속하였다. 간혹 욕망은 흙이 방해하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싶어 흙에 기대 날카로운 시위를 당겨보곤 했으나 망각을 모르는 흙은 항상 온 몸을 비틀어대었다.

욕망은 지금까지도 만조의 여왕을 좇아 헤매인다. 욕망이 그 헤맴을 멈추게 되면 그가 남겨놓던 발자국보다도 더 강하게 세계를 잠식할 것이고, 그 때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리라.

- 뉴먼 로스(Numon Rothe), 『흩어진 전설들의 모음집』, 제 5장 中



이야기 진행에 방해되기 때문에 빼 놓은 건데, 소년이 짠 활은 별자리가 되었고 쏘아진 화살들이 별똥별이며 땅이 방해해서 지진이 생기고 가끔씩 숨기 때문에 일식과 월식이 생기며 북녘과 남녘에 던져진 돌 때문에 나침반이 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영도를 읽던 사람은 알겠지만, 눈물에 대한 오마주. 아무래도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지만 그냥 놔두련다...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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