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휴가를 나왔다. 그냥 저냥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이러면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서 산책이나 할까 하고 집을 나섰다.

휴가나와 만날 사람이 없다니 내 인생이 그렇지 뭐 -_- 

활자중독이라는 병리현상에 찌든 무거운 육신을 끌고 다니는지라 뚜벅뚜벅뚜벅 길을 걷다가 들어간 곳은 서점이었다. 서점에 들어서면 서점의 명당자리를 떡하니 꿰차고 있는 것은 베스트셀러 코너이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얼핏 훑어봤는데 있는게 긍정 뭐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 위주였던지라 볼 것 없겠구나 싶었다. 경제/경영 서적도 좀 있긴 했는데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했다. 외국인 저자들의 책을 번역한 번역서의 경우 원제를 적어주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러는 번역한 제목보다 번역 전의 원제가 책의 내용을 더 충실히 반영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제목으로 번역되었더라도 다른 원제를 가진 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물론 장하준 교수는 책을 영어로 썼다. 그래서 원제를 다는 것이 어색해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내 저자들이 쓴 책에서도 영어로 제목을 다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꽤 전에 사볼까 했다가 아는 것들을 다시 읽는 수준에서 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포기한 『통계의 미학』에는 Statistical Thinking이라는 영어 제목이 붙어있다.

통계의 미학
최제호 지음/동아시아
통계는 사기 아닌 사기다. 그래서 통계에 문외한이라면 이런 책을 읽는 편이 좋을지도.

내가 서점에서 보았던 책은 이 책이었다.

습관부터 바꿔라
전옥표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Changing Habit은 "습관 바꾸기"다. 제목을 살리고 싶었으면 Change your habit쪽이 맞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살펴봤더니 역시 영어 제목도 같이 달려있다. 그걸 다 나열한다면 무의미한 광고가 될 테니 넘어가자. 영어 제목도 붙이기는 이 저자만의 취향일지도 모르니 다른 책들을 살펴보자.

제대로 시켜라 
류랑도 지음/쌤앤파커스
Performance Leader랑 "제대로 시켜라"는 의미는 얼추 비슷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전자가 이끌어가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밀어붙이는 느낌.

많지는 않지만 그런 책이 있기는 있다. 그렇다고 꼭 경제/경영 분야의 책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훑다 보니 『SKT』라는 야구를 엄청 잘할것만 같은 제목의 소설도 있고, 신간 리스트에는 살까 고민되는 『커피 마스터클래스』라는 책도 있으며(에스프레소는 맛있다), 몰랐는데 『철학 콘서트』에도 Philosophy Concert라는 영어 제목이 같이 기록(?)되어 있다.

허구한날 국어책에서 외쳐대는 "바른말 고운말 우리말을 사랑합시다"라는 진부한 구호를 외치려는 것은 아니다. 당장 길거리를 돌아다녀 봐도 안경집 창문엔 영어로 무엇이 아름다운 눈인가 논하고 있고 음식집 벽면엔 "우리는 당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영어로 쓰고있는 것을 보면 이미 영어는 반 모국어의 단계에까지 올라섰다. 수능의 외국어 영역이 사실상 영어 영역 아니던가. 단지 왜 한글로는 이런 미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가,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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