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라이스 - 6점
빈센조 나탈리
나는 3.5점을 주고 싶었는데 없네

스플라이스란 유전공학의 DNA Splicing이라는 기법에서 유래한 제목일 것이다. 말 그대로 유전자를 잘라서 이어붙이는 것을 말하는데, 유전공학에서 사용되는 기초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내가 본 것은 조금 다르지만 아무래도 감독이 원했던 것은 윤리와 도덕 없이 폭주하는 기술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중간에 칠성사이다를 너무 많이 마셔서 세수하러 가느라 화제(?)가 된 남자주인공과 생명체가 교감을 나누는 부분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리뷰를 진행하는데는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리뷰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접어놓는다. 리뷰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종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지루하지만(영화 자체도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 감독이 보라는 것은 안 보고 다른것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부분을 찝어낼 수 있는 영화이다.


  1. 일부는 사실이 가치중립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가치는 인간의 것이다. 인간이 없는 사실은 차가운 명제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본문으로]
  2. 감독은 전 세계의 nerd들을 향해 '괴물들아 조카 크레파스 18색이야'를 외치고 싶었던 것일까...-_- [본문으로]
  3. 양력은 단면적에 비례한다. 길이의 세제곱에 비례한다고 가정해도 인간의 날개는 4m가 넘는 너비를 가져야 한다는 결론은 피하기 어렵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책을 사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장바구니에 추가했던 책이다.

가공된 신화, 인간 - 8점
틸 바스티안 지음, 손성현.박성윤 옮김/시아출판사

이전에 좀 거칠게 표현했던 적이 있기는 하지만, 동물에 대한 동정에서 시작하는 채식주의에 대한 내 입장은 아직도 부정적이다. 감정이나 종교의 영역에서 채식주의를 옹호한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를 갖겠지만, 논리의 입장에서 동물을 먹지 말자고 주장한다면 모순없는 입장은 과식주의(果食主義 - Fruitarianism)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각주:1] 과일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식물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식사를 끌어들인 이유는 책의 주제가 '동물과 인간사이'이기 때문이다. 부제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사유하다'가 책의 주제를 잘 표현해준다. 사실 내가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이, 이 부제가 사실상 책 내용의 전부이다. 여기에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연을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로 드레싱을 곁들여주면, 『가공된 신화, 인간』이라는 샐러드는 완성된다. 그러면 이 샐러드에는 어떤 야채가 들어가 있을까?



예전에 「워낭소리」라는 독립영화가 대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그 이유는 '시골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바라보려는 낭만주의적 시선'이 어려있는 것이며, 이것이 7-8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에서 낙후된 '도시의 시골에 대한 부채의식'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좀 까칠하게 분석했던 글을 하나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정확한 출처는 검색해보아도 걸리지 않고 해서 일단은 링크 없이 놓아둔다. 책 이야기하는데 왜 난데없이 영화 이야기를 하느냐면, 책에서는 똑같은 현상이 자연에 대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부채의식은 아니더라도 자연에 대한 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

근대적 의미의 '동물 사랑'은 낭만주의의 산물이다. 그것은 시민 계층의 성장과 함께 형성된 '감정의 세계'와 결부되어 있다. 요한 고트프리트 조이메의 유명한 시 「진실한 휴런 사람들」에서 보듯이, 이 시대는 인간이 '고귀한 야생의 자연'을 발견하고 찬미하던 시대였고, 장 자크 루소가 정치적인 의도로 주창했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개인의 감정 구조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시대이기도 했다.[...] 그 시대에는 자연이 다양하게 형상화되었는데, 자연은 낭만주의의 도피처이자 지향점이었다.

[...]
p.126

이런 '낭만주의적 관점'은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는 아직도 의문이 가지만 많은 경우 동물보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물들에게 감정이입할 것을 요구한다. 구육(狗肉 - 개고기)이 관련될 경우, 대부분의 합법화 반대론자들의 논리가 여기에서 멈추어 있지 않던가.[각주:2] 책의 저자는 이 부분 역시 짚고 넘어간다.

[...]

직관적인 감정이입은 실제로 효과가 있으며 우리의 경험도 그것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그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감정이입은 성게나 민달팽이보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가진 '귀여운' 강아지나 송아지에게 훨씬 빠르고 쉽게 적용이 된다. 반면 미생물에게는 거의 언제나 실패다.

[...]
p.138

저자는 그렇다고 '동물에게는 권리같은 것을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권'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처럼 아직 끝을 보지는 못했으나 언젠가는 자연계에 대해서도 비슷한 개념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한다.[각주:3] 그리고 이런 개념들은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거미가 실을 뽑아내듯 스스로에게서 뽑아"내어 지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앞에 정리한 부분은 사실 이 샐러드에 들어가는 여덟가지 재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장은 주로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이용해왔는가'나 '동물과 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들'과 관련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 소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드레싱에 해당하는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연을 대해야 하는가'와의 궁합 때문에 필연적으로 소개해야만 하는 재료가 하나 있다. '전염병'

08년 여름, 광장의 밤은 수많은 불빛으로 아른거렸다. 광우병 논란과 함께 소고기 수입에 대한 폭발적인 우려가 낳은 결과였다. 난 당시의 가장 큰 문제가 불필요하고 이롭지도 않은 외교적 행동에 있다고 보지만, 이 책은 조금 다른 부분에 집중한다. 광우병은 변형프리온이 생성되어 폐사된 소를 원료로 만든 사료 때문에 크게 퍼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종 전염병' 말고도, 지금과 같은 식료품 소비 체제를 그대로 이어 갈 경우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책에서는 경고하며 다른 대안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

만일 소비자들이 식료품 상점의 선반에서 뉴질랜드 산 사과나 남아프리카 산 배를 향해 너도나도 손을 뻗치지만 않는다면, 자사 비행기를 통해 해외에서 독일로 미생물 불청객들을 수입해오곤 하는 루프트한자가 더이상 세계 제일의 화물항공 기업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생물과 잘 지내야한다.

[...]
p.234

물론 광우병과 같이 인간이 육류를 섭취하느라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가축의 원래 삶이 왜곡되어 만들어지는 병들과는 다른 종류인 말레리아와 같은 전염병의 경우 세계화가 더 큰 요인이지만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다. 빈번한 화물 운반이 생태계 교란의 원인이 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필자는 샐러드를 먹을 때 드레싱을 전혀 하지 않고 생 야채만 먹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많은 친구들은 나를 두고 '무슨 맛으로 샐러드를 먹냐'며 신기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이 책을 샐러드에 비유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결론은 본문에 비해 양이 현저히 적다. 하지만 드레싱은 샐러드의 맛을 결정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샐러드는 어떤 드레싱을 사용했을까?

애석하게도 이 분야는 질문의 범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기 때문에 '답이 없는' 분야이다. 저자도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유보적인 결론만 내려놓고 있다.

[...]

겸허하게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가능한 이 세계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가운데 이 세계, 즉 하나의 시스템으로 파악되고 경험되는 세계, 우리와 더불어 존재하는 이 세계 안에서 - 혹은, 그냥 자연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동물과 식물세계의 번영, 그리고 솟구쳐 오르는 샘물의 투명함과 무궁함이 우리 자신의 안녕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함부로 깨뜨릴 수 없는 규칙의 지배 아래에 있음을 예감하는 것이다.

[...]
p.268

하지만 이 드레싱이 현재로서는 가장 쓸만한 드레싱 아닐까?



책 전반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균형을 조금은 힘들게 잡았다고 생각한다. 가령 책의 첫 두어장만 읽는다면 비록 그런 태도를 경계하고 있다고 해도 '자연에 대한 미화'로 가득 차 있는, 그저 그런 책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결국 균형을 잡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처음부터 그 자리에 안정되게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계추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정지하며 균형을 맞춘 느낌이라고 묘사하겠다.

가공된 신화, 인간 - 8점
틸 바스티안 지음, 손성현.박성윤 옮김/시아출판사

  1. '모순없는'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논리에 어느 정도의 모순이 존재한다고 해도 수학을 하고있지 않은 한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경우 점전하와 같은 비교적 '사소한' 모순은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입자물리와 같이 엄격함이 생명이 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본문으로]
  2. 난 구육을 먹지는 않지만 합법화에는 찬성한다. 불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개 도살을 양지로 끌어내어 직접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많은 미세한 조정이 필요하겠지만. 참고할만한 단편을 하나 링크해둔다. http://www.foog.com/372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현재 생존하고 있는 종 중에서 가장 인류와 가깝다고 알려진 보노보 이야기입니다. 보노보가 라이터를 사용할 줄 알고, 그림도 그리고, 돌로 석기도 만들고, 팩맨까지 하는군요 -_-;;; 이거 털만 없고 좀 더 크면 사람하고 구분이 안될 지경입니다.

솔직히 보면서 신기하다고 느끼는 만큼 두렵네요. 인류가 지구상에서 지배적인 구도를 형성한 것이 단순한 운에 의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언어가 인류 외의 종에게도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고, 도구도 그렇고 그런데 문자까지라... 완전한 문자는 아니지만 저런 그림들이 후에 발전하여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한자로까지 이어져 온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충분히 문자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요? SF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이 다양한 종들이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서 생활하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인류의 배타적인 공격성이 여기서도 발동되어 보노보는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네요. 자연, 보면 볼수록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입니다.
Posted by 덱스터
김정욱, Frozen wanderings, 서울, 2008


사진숙제로 기록해 두었던 메모를 찍으라는 과제가 나왔다.

어젯밤 우연히 떠오른 소설의 플롯을 적으려고 남는 수첩이 없나 뒤척이다가 발견했던 기억들, 그 방황의 기억들을 싣는다.

맨 아래의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까지도 구름 속에서 내다본 풍경처럼 흐릿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다.

낙서를 잘 보면 내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성격. 회의주의는 과학의 발전에 필수적인 존재라고는 하지만(어차피 이땅에 발 붙일 생각이니 굳이 나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 피곤하다. 위의 낙서에서는 이런 식이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을 추구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그러면 사람은 왜 행복해야 하는 걸까? 끝이 없다. Curiosity killed the cat. 지나친 의아심은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든다.

내 나름대로의 결론은 아무래도 다음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죽지 못해 사는 것, 내가 가고 난 다음에 남을 사람들을 위해 살자. 내가 찾지 못한 답을 그들은 찾아낼 테니까.'

하지만 답을 내가 찾아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요즘은 맨 아랫줄을 제외한 아래 세줄에 대한 의문이 가끔씩 머리를 맴돈다. 인간이 인간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 본능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본능을 이겨내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 결론은 글쎄... 본능을 끝까지 이겨내려 하지만 결국에는 무릎을 꿇고 마는 데 인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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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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