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6. 17:01 Writer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싶다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약간의 수정을 거쳐 재게재합니다.
요즘 들어 타임라인에 정치글이 많이 보이길레, 그냥 간단한(?) 상황 판단을 위한 가이드라인 올려봅니다. 아마도 내려갈수록 중요한 내용.
- 짤로 돌아다니는 내용으로 판단하지 말 것.
짤은 언제까지나 인스턴트 정보이며, 인스턴트 정보로 얻을 수 있는 진실은 통조림 음식 수준밖에 안 됩니다.
- 그나마 인스턴트 치고는 괜찮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건 토론 프로그램.
한 쪽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토론은 알맹이가 없고, 양 쪽이 치열하게 치고박고 싸우는 토론일수록 정보량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괜찮은 토론 프로그램이 있나 모르겠네.
- 한 사안에 대해 판단을 할 때, '각 진영'에서 제공하는 최대한 양질의 '글'을 최소 5개씩은 읽고 다음 과정을 거칠 것.
1. 양질의 글이란 최소한 세 가지의 논거를 기반으로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한 것을 말합니다. 10-20줄짜리 글은 일단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논거를 기반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글은 되도록 빼세요.
2. A4 한 장을 반으로 나누어 각 글에서 들고 있는 논거를 정리할 것. 통계 수치나 과거 사례 위주로.
3. 많은 경우 이렇게 하면 양 진영에서 같이 들고 있는 과거 사례가 있거나 서로 충돌하는 통계 수치가 있을겁니다. 이 경우엔 과거 사례를 해석하는데 취한 입장도 같이 정리하고 양쪽의 통계 수치의 신뢰성을 확인.
4. 여기까지 하는데 짧으면 2-3시간, 길어야 5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이 정도 시간도 투자 안 하고 진실을 얻겠다고 하신다면 통조림 수준의 진실밖에는 구할 수 없다는 말씀 드리기로 하죠.
5. 마지막으로, 혼자서 백분 토론을 거칠 것. 한 쪽에 최대한 빙의해서 다른 쪽을 공격하고 이 쪽을 방어하는 훈련을 해 봅니다. 이 일을 양 진영에 대해 다 해볼 것.
0.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20~30쪽은 되어보이는 글은 도저히 못 읽겠다고 질 나쁜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건너뛰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단문이 대세인 인터넷 시대에 긴 글은 길어봤자 A4 5쪽 이내예요(논문이나 보고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5번을 할 때 한쪽 진영에 대해 별로 호감이 안 간다고 불성실하게 빙의하지 마시고요.
- 신문 읽는 법. 전 신문을 안 읽습니다만, 도움이 될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해서.
1. 신문 기사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확인. 단어마다 고유한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신문 기사에서 그 대상에 대해 어떤 인상을 심으려 하는지 볼 것.
2. 신문 기사에서 말하지 않는 논리적 기반을 확인. 쉽게 말해 신문 기사가 무엇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지 확인하라는 의미입니다.
3. 신문 기사간 관계를 확인. 온라인상으로 읽을 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지면으로 읽을 땐 신문 기사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지면에 '경제 상황이 나빠 꿈을 잃는 대학생들'이라는 식의 기사와 '경제가 안 좋은데 파업이라니' 이런 식의 기사가 같이 있다면 그 신문은 대학생과 파업을 대립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가장 많은 훈련이 필요한 항목.
0. 정리한다면, '신문 기사를 많이 읽어라'가 아니라 '신문 기사를 깊게 읽어라'가 되겠네요. 많이 읽는건 양질의 선택을 하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 주장하는 사람의 순수함과 주장하는 내용의 합리성은 완벽한 독립변수.
순수한 의도로 악을 행할 수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게 된 아돌프 아이히만이 전자의 한 사례고, 자신이 이득을 얻겠다고 거래를 제안해오는 사람이 모두 내게 불리한 제안만 하는 것은 아니죠. 1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도 믿지 말 것.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 '나도 틀릴 수 있다'란 생각을 항상 하시길.
사실 첫 번째 항목이랑 마지막 항목이 제일 중요해요. 그것만 되어도 판단의 질이 150% 개선됩니다.
중요하니까 다시 한번 말하도록 하죠. 근본없는 짤방 같은 인스턴트 진실은 그만 드시고, 자신에 대한 과신은 제발 좀 버리세요. 순수함에 대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아무래도 앞의 둘보다는 중요도가 떨어져서. 참고로 순수는 편의점에서 500원에(코카콜라에 가는 로열티 포함) 200ml짜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대체로 캡콜(capcold.net/blog/)님이나 민노씨(http://minoci.net/)님의 가이드라인을 기억 속에서 대충 짜깁기한 것. 저도 인간인지라(쿨럭) 가운데 둘의 매우 긴 녀석들은 못 하고 있지만 나머지 넷 정도는 대충 탑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항목 때문에 교수님들한테 자신감이 없다고 까였던건가...
그러면 오늘도 진실을 찾는 여정을 떠나는 많은 분들께 바다의 가호가 있기를.(오글)
- 다만 아돌프 아이히만의 '순진함'은 연기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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