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결 버스

Writer 2013. 8. 20. 21:33
정신줄을 놓아봅시다...



"덜커덕 덜커덕."

아, 아니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정지』를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의성어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그 책은 살 생각이 없었는데 이벤트로 주는 상품이 끌려서 장바구니에 넣었던 책이지만(충동구매 한 적 없는 자 돈을 던져라) 예상 외로 인상적이었다. 다시 시작해 보자.

"버스의 흔들거림이 귓가에 전해져 왔다. 평소처럼 멍하니 먼 곳을 주시한다. 에어컨을 틀었는지 바람이 흘러나온다만 시원함과는 거리가 멀다. 원래 에어컨 바람을 직격으로 맞으면 시원하다 못해 추운 법인데, 정부의 절전 시책이 기름으로 돌아가는 버스의 에어컨에도 손길을 뻗친 모양이다.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거나.

청각에게 관심을 달라 보채던 흔들거림은 촉각으로 눈을 돌린 모양이다. 그리 많은 사람이 탄 버스가 아닌데도 흔들림에 따라 옆 사람의 어깨가 살짝 살짝 부딪쳐 온다. 미지근하게 퍼지는 바람과 있는 듯 없는 듯 간간히 존재를 알려오는 옆의 어깨.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 든다. 이런걸 데자부라 하던가. 영화 <집으로>에서 보았던 시골길 위의 버스가 이런 느낌일까? 80년대에 버스를 탔으면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30년을 뛰어넘어 같은 감성에 젖다니 시간여행자란 별명이라도 붙여줘야 하나.

흩어진 초점으로 계속 전방을 주시한다. 생각이 멈춘 것일까 아니면 생각이 흐르는 것일까. 무념의 흐름에 마음을 띄워 본다. 아마도 이 글을 기승전결이 있는 방식으로 끝내긴 힘들겠지. 뭐, 우리 대부분의 삶도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는 아닐꺼다. 흐르고 흐르다 종착점에서 그래도 재미있게 살았구나 돌아보면 된 것 아닐까. 물은 강이 거기에 있기에 흐르고, 사람은 숨결이 거기에 있기에 사는 것 아니겠나 싶다.

생각은 도약을 거듭하고, 버스엔 철학자가 탄생한다. 버스 철학자라니 골방 철학자에 약간의 사회성을 섞어 대충 버무린 겉절이같은 느낌의 조어이다. 계속되는 도약은 도약을 도약한다. 생각의 도약에 대한 생각. 메타도약이라고 하면 되려나.

생각은 뱀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일자로 이어지듯 논리적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경우가 드물다. 이렇게 도약이 있는 생각을 비선형적 사고라 부르는 모양인데, 아는 건 줏어먹은 단어밖에 없어 이 말의 신뢰성은 보장하지 못하겠다.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구조가 이런 식이라고 한다. 하이퍼링크로 서로 도약하는 인터넷 페이지들은 이전의 단선율로 흐르던 책이나 신문과 같은 매채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책은 기승전결이 있다. 비록 주석이나 각주를 통해 그 갑갑한 일방통행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여전히 우리는 책에 대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갖기를 요구한다. 아무리 그 형식을 탈피한 책이라고 해도 변주까지만 허용할 뿐이다. 관계 없는 글을 포함한 책에겐 난잡하다며 편집의 칼날을 들이댄다. 사서삼경의 사서인 『대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예기』의 다른 내용들은 통편집에서 살아남질 못했다.

허나 글은 정보혁명 시대로 오게 되자 더 이상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게 되었다. 마치 우리의 생각처럼 말이다. 멘탈붕괴는 정확히 말하자면 두 가지로 나누어야 한다. 논리적 사고능력이 붕괴하여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와 논리적 사고능력에 도약이 너무 넓어져 생각간의 연결고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 후자는 정신능력의 과다발현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약을 빨았다'는 흔한 표현은 후자가 비교적 약해서 청자가 어떻게든 화자의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약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글을 잇기 난감해져 여기서 마친다. 기전승결에 대해 말하는 기전승결이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보니 멘붕에 대한 부분에서 멘붕해 버렸고, 약빤 소리에 대한 부분은 약한 소리로 마쳐버렸다. 하지만 최고의 찬사는 그것 자체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마디 더 덧붙이면 쓸모없는 결이 만들어질테니 무시하기로 한다. 버스를 타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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