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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3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10점
신영복 지음/돌베개

신영복 교수님의 책입니다. 예전에 『나무야 나무야』를 어쩌다가 읽게 되었는데(논술 관련된 학원에서 필독서로 쥐어주었던 것 같네요 -_-;;) 이때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나 봅니다. 잠시 일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을 때 시간을 때우고자 서점에 들렀다가 이 책을 보고서는 바로 집었거든요. 그 상태로 쭈욱 읽었습니다.

결국 책을 사기로 마음먹은 것은 30쪽부터 시작하는 <청구회 추억>이라는 글 때문이었습니다. 8장 가까이 되는 장문의 글이었는데, 글에서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고 하나요? 아이들(저보다는 어른이겠지만...-_- 전 당시 존재 자체가 없었으니)과의 작은 추억에서 묻어나는 따뜻함에 망설임 없이 책을 계산대로 가져갔습니다.

지금 제가 가진 책에는 포스트잇이 잡초처럼(-_-;;) 돋아나 있습니다. 읽다가 '오 이글 괜찮다 나중에 다시 읽어야지' 싶은 글들은 전부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는데, 얼핏 보아도 20장 정도 붙어 있네요.(혹시나 해서 세어보니 23장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특징은, 포스트잇이 책의 뒤 끝으로 갈수록 많이 붙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징역살이의[각주:1]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사색의 깊이가 점차 깊어졌기 때문이겠지요. 아니면 단순히 제가 더 쉽게 감동하는 체질로 바뀌었거나요 ^^;;

첫 포스트잇은 87쪽에 붙어있습니다.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이네요. 사람을 사랑할 때에는 그 겉모습만 보지 말고 속까지 보아라라는 아주 대표적인 도덕책 내용을 다룬 편지지만[각주:2], 제가 이 글에 포스트잇을 붙였던 이유는 이 구절 때문입니다.

너는 아직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같은 가격이면 그 염색료만큼 천이 나쁜 치마이기 십상이다.

이 부분을 읽고 잠시 벙찐 얼굴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신선한 충격을 주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처음의 충격은 '아 이런 생각을 왜 여태 하지 못했던가'이라면 요즘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입니다.

두 번째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쪽은 책장을 휘리릭 넘겨(알고보니 세장이군요 쳇) 93쪽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엽서인데, 제가 배워왔던 해석과는 또 다른 신선한 해석이었습니다. 보통 이 경구는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데서 천하를 평정하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서신에서는 이 금언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자기 자신을 가다듬는 것과, 가족을 안정케 하는 것, 나라를 다스리는 것, 그리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것 모두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라는 것입니다. 제가 없는 수신은 이기주의[각주:3], 치국 없는 제가는 계급간의 불화[각주:4], 평천하 없는 치국은 침략전쟁에[각주:5]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105페이지에도 포스트잇이 붙어 있네요. 버림과 키움이라는 제목의 서신입니다. 예전에 이 글을 읽고 그 인상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글을 하나 쓴 적이 있는데, 지금 보아도 그때 그 느낌이 살아있습니다. 책상 정리를 한 지 두어달 되가는 듯 한데, 다시 날 한번 잡아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네요. 어차피 기숙사에서 이사하면서 한번 정도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갈 것은 가져가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뭐 굳이 이런 다양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책은 저에게 상당히 많은 영향을 준 책입니다. 블로그 초기에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경어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요(더불어 지금은 구어체를 주로 사용하고 있군요 으음..). 처음 경어체를 사용해야겠다고 느끼게 된 데에는 이 책의 역할이 좀 컸다고 기억합니다. 더불어 처음으로 경어체를 사용한 포스트도 이 책과 관련이 있는 포스트이구요(생각해 보니 이 포스트는 일부러 편지 형식으로 썼던 것 같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뒤로 갈수록 ~이다, ~했다와 같은 일상적인 어투는 점차 사라지고 높임말이 주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무래도 받는이가 갈수록 부모님이나 계수님, 형수님과 같이 높임말을 아니 쓸 수 없는 대상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 제일 크겠지만[각주:6], 벽으로 둘러쌓인 세월동안 말의 모난 부분이 점차 닳아 둥글어져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셨겠지요. 그래도 한번 정도는 책장 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책을 꺼내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덧. 이 책에 있는 많은 편지들을 스캔한 그대로 인쇄하여 펴낸 책이 있더군요. 좀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입니다. 비록 책에 가끔씩 보이는 편지의 손글씨는 잘 못 읽겠지만 말이지요 -_-(한문은 더더욱...)

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지음/돌베개
  1. 대한민국사 4권에서는 이런 일화가 있네요. 정향 선생님이 교도소에 새로 생긴 서도반에 글씨 지도를 해 주러 오셨다가 신영복 교수님(당시에는 죄수였지요 ^^;)을 만나고는 '아, 이분들은 귀양 온 사람들이구나'하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징역살이라고 쓰고 귀양살이라고 읽으니 느낌이 색다르네요 ^^ - 한홍구, 『대한민국사』 4권, 한겨레출판, 2008, p208 [본문으로]
  2. 사랑에 관한 글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글은 같은 책의 350쪽에 있는 구절입니다. 사실 사랑이라기보다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말이지요. 어느 한 시나리오에서 기억나는 구절을 적어 본다고 되어 있는데, '내가 그와 같이 있으면 더욱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싶을 때 한번 쯤 곱씹어보아야 할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3. 꼭 가정이 아니더라도 여기서 의미하는 제가는 이웃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으로]
  4. 책에서는 '부옥(富屋)의 맹견(猛犬)과 그 높은 담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꼭 이런 의미가 아니더라도 부정부패와 연계해서 생각하게 되네요. 확실히 검은 돈은 치국 없는 제가 아니겠습니까. [본문으로]
  5.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생각납니다. 사실 전쟁이라고 하기도 그렇지요. 초딩과 최홍만의 싸움을 싸움이라고 부르기 뭣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본문으로]
  6. 조카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다 ~해야한다로 끝나더군요 ^^;;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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