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speaking English can make you poor when you retire


영어와 같이 미래의 일을 현재형으로 쓸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다 현실에 충실하게-다시 말하자면 보다 미래를 경시하며- 산다는 가설을 소개하는 기사. 미래의 일을 현재형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은 '내일 학교가'라고 하지 못하고 '내일 학교 갈꺼야'라고만 할 수 있다는 것. 'I go school tomorrow'라고 할 수 없고 'I will go to school tomorrow'라고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래와 현재가 분리되는 언어를 사용할 경우 미래의 나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어 보다 미래에 소홀하게 된다고. 아직까지는 가설일 뿐이지만 말이다.


영어는 어떻게든 주어를 만들어 넣으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영어 사용자는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자를-혹은 희생양을- 찾는 성향이 있다는 견해가 생각난다.


사실 언어가 생각을 형성한다는 견해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이름을 짓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곤 하는데, 그 이면에는 이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놓여 있다. 이름을 말할 때 나는 소리에 특정 감정이 실릴 수 있고, 이 작은 차이가 누적되면 인생에 영향이 미친다는 것.(다만 사주에 의거하는 경우에는 이름으로 사주팔자의 비뚤어진 균형을 바로잡으려 한다. 불의 기운이 약하면 불화변을 붙인 한자를 쓰는 것이 대표적인 예. NEXT의 보컬 신해철씨의 경우에는 사주에 불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바다 해를 사용했다고 한다.) 감정이 실린다는 것은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이름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더 쉬운 예라면 살랑살랑과 설렁설렁이 만들어내는 느낌의 차이가 있다.


언어가 인간 특유의 능력으로 여겨지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언어의 영향력을 크게 평가하려는 성향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인 <혹성탈출>의 원작 소설에서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성의 보유 여부와 연결되고, 성경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이 있으며, 싯다르타는 태어나자마자 덤블링을 하고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외쳤으며, 노자가 72년간 뱃속에서 세계로 나오기를 거부하다가 나오자마자 말을 했다는 민간 설화까지 언어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일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다만 합리적 추론능력-이성은 서구철학의 개념이라서 이렇게 썼다-의 경우 주로 서구에서만 인간됨의 조건으로 여겨졌던 것은 의외.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으로 볼 수도 있을듯 싶다. 스콜라 철학이 성립되기 전에는 영지주의적인 성향이 없었던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실제 행동경제학 연구로 특정 단어를 이용하여 사람의 행동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이런 믿음이 비합리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난 왜 이런걸 알고있는걸까...-_-;;;




2월 23일 기사. 위는 Facebook에 올렸던 글.



보니 TED 강연 동영상도 있다. 아직 한글 자막은 없는듯.

댓글을 읽어보니 미래의 일을 현재형으로 쓸 수 없다기보다는 (I am going to go to school tomorrow로 쓰는 방법도 있으니) 미래의 일을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혹은 자주 사용되는가를 기준으로 언어를 나눈 모양이다. 통계를 낼 때 일기예보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한국어는 미래의 일을 미래형으로 나타내려는 성향을 가진 언어로 분류되어 있다. 사람들이 지적하다시피, 일기예보가 과연 언어 사용자들의 전반적인 언어 사용 양상을 대표할 수 있는가가 이 통계의 약점이다. 현실의 언어생활에 가장 가깝게 하려면 블로그나 게시판의 언어사용을 비교해야 하는데 이 또한 컴퓨터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이라는 약점이 있고.

다른 문제점이라면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문화적인 영향. 언어가 다르다면 겪어 온 역사가 다를텐데(민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근대국가 형성 전에는 분명히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그 민족이 겪어 온 인종차별과 같은 역사적인 경험은 확실히 존재한다. 유대인을 생각해보자.) 그 영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비판은 나라 수를 9개나 잡았으니 충분히 통계적으로 처리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덮어놓고 틀렸다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하고, 그렇다고 믿기에는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고. 너무 다양한 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후통계조작의 가능성이 있어서 그렇다. 재미있는 가설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모양.

그런데 이런 언어의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축하기 운동 등으로 그 영향력을 상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긴 하지만 큰 중요도를 부여하기는 애매. 결국 중요한 것은 '너님 통장엔 충분한 돈이 저축되어 있나요?' 아니겠는가.


Posted by 덱스터
오랜만에(?) 휴가를 나왔다. 그냥 저냥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이러면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서 산책이나 할까 하고 집을 나섰다.

휴가나와 만날 사람이 없다니 내 인생이 그렇지 뭐 -_- 

활자중독이라는 병리현상에 찌든 무거운 육신을 끌고 다니는지라 뚜벅뚜벅뚜벅 길을 걷다가 들어간 곳은 서점이었다. 서점에 들어서면 서점의 명당자리를 떡하니 꿰차고 있는 것은 베스트셀러 코너이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얼핏 훑어봤는데 있는게 긍정 뭐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 위주였던지라 볼 것 없겠구나 싶었다. 경제/경영 서적도 좀 있긴 했는데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했다. 외국인 저자들의 책을 번역한 번역서의 경우 원제를 적어주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러는 번역한 제목보다 번역 전의 원제가 책의 내용을 더 충실히 반영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제목으로 번역되었더라도 다른 원제를 가진 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물론 장하준 교수는 책을 영어로 썼다. 그래서 원제를 다는 것이 어색해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내 저자들이 쓴 책에서도 영어로 제목을 다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꽤 전에 사볼까 했다가 아는 것들을 다시 읽는 수준에서 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포기한 『통계의 미학』에는 Statistical Thinking이라는 영어 제목이 붙어있다.

통계의 미학
최제호 지음/동아시아
통계는 사기 아닌 사기다. 그래서 통계에 문외한이라면 이런 책을 읽는 편이 좋을지도.

내가 서점에서 보았던 책은 이 책이었다.

습관부터 바꿔라
전옥표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Changing Habit은 "습관 바꾸기"다. 제목을 살리고 싶었으면 Change your habit쪽이 맞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살펴봤더니 역시 영어 제목도 같이 달려있다. 그걸 다 나열한다면 무의미한 광고가 될 테니 넘어가자. 영어 제목도 붙이기는 이 저자만의 취향일지도 모르니 다른 책들을 살펴보자.

제대로 시켜라 
류랑도 지음/쌤앤파커스
Performance Leader랑 "제대로 시켜라"는 의미는 얼추 비슷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전자가 이끌어가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밀어붙이는 느낌.

많지는 않지만 그런 책이 있기는 있다. 그렇다고 꼭 경제/경영 분야의 책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훑다 보니 『SKT』라는 야구를 엄청 잘할것만 같은 제목의 소설도 있고, 신간 리스트에는 살까 고민되는 『커피 마스터클래스』라는 책도 있으며(에스프레소는 맛있다), 몰랐는데 『철학 콘서트』에도 Philosophy Concert라는 영어 제목이 같이 기록(?)되어 있다.

허구한날 국어책에서 외쳐대는 "바른말 고운말 우리말을 사랑합시다"라는 진부한 구호를 외치려는 것은 아니다. 당장 길거리를 돌아다녀 봐도 안경집 창문엔 영어로 무엇이 아름다운 눈인가 논하고 있고 음식집 벽면엔 "우리는 당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영어로 쓰고있는 것을 보면 이미 영어는 반 모국어의 단계에까지 올라섰다. 수능의 외국어 영역이 사실상 영어 영역 아니던가. 단지 왜 한글로는 이런 미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가,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Posted by 덱스터
알라딘 메인 페이지에 올라왔을 때 눈여겨보았다가 얼마 전 사서 하루만에 읽어치운 책.

영단어 인문학 산책 - 6점
이택광 지음/난장이

단어를 하나 던져놓고 그 단어의 어원을 캐 들어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어원을 캐 들어가면서 그와 관련된 일화들을 소개하고, 또 그 일화들이 어떻게 현대 서구 사회의(정확히는 영미권 사회이겠지만) 지형을 그려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마치 셜럭 홈즈가 "한 방울의 물방울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거대한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각주:1] 단어 하나로 문화 전체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재미있게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뒤끝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상대적으로 이야기를 끌어 낼 만한 단어가 그리 많지 않아서 책으로 만들 분량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단어를 우겨넣으면서 생긴 현상인지 아니면 갈수록 내 집중력이 흐려졌는지는 불명이지만, 적어도 한 단어에 할애된 페이지 수는 갈수록 점차 줄어드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단어에서는 그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기도 하다.

아쉬운 점을 좀 더 써 본다면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이야기 『주홍빛 연구A study in scarlet』가 『주홍색에 대한 연구A study on scarlet』으로 잘못 번역되었다는 것.(206p) 주홍색은 죄악을 연상시키는 색이라고 한다. 중간 중간에 오타와 잘못된 편집이 보여 책의 완성도에는 살짝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1. 셜럭 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인 『주홍빛 연구』에 나오는 대사였던 것 같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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