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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27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하여

예전에 자주 다니는 커뮤니티에서 괴기스런 만화를 올린 게시글이 인기글로 오른 적이 있었다. 그 게시글의 댓글에는 누가 더 괴기스런 만화를 가져오나 대결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사람들은 참 겨루길 좋아한다) 온갖 괴기만화로 가득한 게시글이 되어 버렸는데,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한 만화가 있다. 지금은 아무리 검색해도 찾질 못하겠어서 내가 기억하는 그 만화가 실존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만화는 슬프면서도 괴기함이 갖는 그 불편함이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림체는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사이의 그 애매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흰 도화지에 4B연필로 만화를 그린다면 쓸 법한,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유아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아마 에반게리온의 아스카의 내면을 표현할 때 사용된 것 같다- 그림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취미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편집하면 남는 그림의 어색한 흰 공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영미권의 만화를 가져온 모양이다. 내용은 지나치리만큼 단순하다. 한 남자아이가 있다. 조용조용한 그 아이는 한 여자아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많은 조용한 아이가 그렇듯 그 아이는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넘어져 무릎에 생채기가 났다(아마 그럴 것이다. 기억은 불완전하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은 그 아이를 걱정해주었다. 어디서 다쳤니, 아프진 않니, 소독해야지 등등. 선생님이 신경쓰자 반의 모든 아이는 선생님의 눈길을 따라 그 아이에게 집중하게 되었고, 그 아이가 좋아했던 여자아이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 아이를 보았다. 남자아이는 기뻐했다.


남자아이는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니! 남자아이는 좋아하는 아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아이는 더 큰 상처를 안고 등교하였다. 선생님은 역시 걱정하였고, 여자아이도 잠시뿐이긴 했지만 다친 아이를 걱정해주었다.


날이 지날수록 아이에게는 넘어지거나 계단에서 구른 것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상처가 늘어갔다. 그러나 특이한 일도 반복되면 일상이 되어버리는 법. 선생님의 우려는 깊어 갔지만 여자아이의 관심은 희미해져 갔다. 어느 날, 더 이상 여자아이가 관심을 갖지 않자 남자아이는 마지막 결심을 한다. 아마도 이 일이 끝나면 여자아이는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 관심어린 눈길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만화는 남자아이의 책상에 놓인 국화꽃으로 결말을 맞는다.


『한비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여자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미고 선비는 뜻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당시와 지금의 시대상이 다르기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에는 지금도 통용되는 진실이 담겨 있다. 누구든 자신을 보아주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록 그것이 자신의 목숨일지라도, 버릴 수 있다. 그 사람이 실존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예술 작품은 미래의 인류라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져 희생하는 행위를 거의 항상 칭송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가상의 존재가 가져 줄 관심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우울한 이야기이다. 뒷산의 나무들은 그 누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라나며 다른 생명들에게 그늘과 열매를 베푸는데, 왜 우리는 관심이 없으면 비틀어지도록 태어났을까. 과학자의 본능대로 진화심리학을 끌어들여 썰을 풀어 볼 수는 있겠으나 그걸로 이 우울한 기분을 풀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의 박탈당한 권익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한 단체의 대표가 사고로 사망하였다. 난 사실 남성연대의 목표의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대표가 속 시원한 말을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좋아했다고 말할수는 없다.


혹자는 성재기 대표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와 동일시한다. 물론 급이 같을 수 없는 사람을 비교하는게 가당키냐 하냐는 반론에는 동의하나, 그 감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성 대표의 행위가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며 어떤 가치를 지키려 했던 성스러운 자기희생일 것이다. 아무리 우습더라도 누군가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 대표와 전 열사의 비유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그걸 굳이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이 사건을 언급하려면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빼고 넘어갈 수는 없다. 많은 사람과는 달리 근래 문제가 되었던 호두과자 판매자의 조악한 노무현 전 대통령 비판이[각주:1] 잘못되었다고 (조악함과 잘못됨은 분명 다른 영역이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인, 특히 대통령이라는 책임져야 할 위치를 지낸 사람에 대해 비판은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그 비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일베 이용자들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들에게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반 쯤 풀린 눈의 병사가 얇은 나뭇가지로 적군의 사체를 헤집으며 짓는 괴기한 미소를 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장난감이 되는 현장은 언제 봐도 적응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그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제 3자의 눈으로 볼 기회가 생기게 되었으니 앞으로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현실은 기대에 못 미치겠지만.


성 대표에게는, 원한이 있었다면 툴툴 털어버리고 자유로와지길 기원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누가 되었든 구천을 떠도는 귀신을 보게 된다면 하고 싶어했던 말이기도 하다.





P.S.0 아직 사망은 확인되지 않았군요. 사망 추정 기사를 보고 착각한 모양입니다. 일단은 글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P.S. 전두환에 대해 '죽어도 싸다'는 태도(이전에는 뼈를 갈아마셔도 시원찮다는 다소 극단적인 말도 했던 적이 있다)를 조금은 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선 사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씨에 대한 추가적인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감정적인 반응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난 518의 직간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P.S.2 이와는 별개로 이 사건 이후 돈을 목표로 자해공갈협박하는 일은 없어졌으면 한다.

  1. 물론 단순한 비난에 가까워 보이긴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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