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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5 로버트 P. 크리즈 저 김명남 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1)
  2. 2010.10.11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
트위터를 간간히 하던 시절에(요즘도 간간히 한다. 간간히의 주기가 길어서 그렇지) 했던 트윗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찾아보니 최신 글이네.

물리학자란 자연의 아름다움을 수학으로 노래하는 시인들이다. (요즘 판타지를 너무 많이 읽었구나.)
-5월 2일 Tweet 

간간히의 주기가 1달 남짓이라는 신발견은 일단 제쳐두고(ABC마트 만세!), 난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알기를 원하고 자기가 얻은 앎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에서 말했던 적도 있고. 물론 자신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 위대한 천체여, 네 빛을 받을 내가 없었더라면 네 빛이 무슨 소용이리"(여튼 비슷한 소리를 『차라투스트라』에서 했다) 명상은 결국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 점에서 개운하게 읽은 책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 10점
로버트 P. 크리즈 지음, 김명남 옮김/지호

실험. 이론을 아름답게 여기는 부류에 더 가까운 나에겐 껄끄러운 존재이다. 학점이 잘 안 나온다는 것은 넘어가더라도,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이론을 한방에 산산조각내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니지 않았던가. 실험은 항상 이론을 뒤엎을 준비만 하며 눈을 번뜩거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실험은 이론과 친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을 실험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이론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론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을 실험에서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질문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실험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아름다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래서 저자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꼽은 실험들을 모으기로 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그 실험들이 왜 아름다운지 설명해주며 그 아름다움에 동참하기를 주문한다.

절대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실험으로 꼽혔던 단 하나의 실험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아래의 실험이다. 전자는 양자역학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간섭무늬를 만든다. 하지만 전자가 간섭무늬를 만드는 것은 여러 개의 전자가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날아가면서 전자들끼리 서로 부딛치며 간섭 무늬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를 하나씩 날려보낸다면 어떨까? 결과는 아래와 같다.


점차 점들이 밝아온다. 하나 둘 무작위로 쌓이던 점들은, 시간이 지나고 지날수록 스크린을 메우기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무작위하게만 보이던 점들이 점차 모습을 갖추어간다. 마치 전자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빛이 하나 둘 밝아오는 은하의 별들처럼 조금씩 흩뿌려진 점들이 구조를 이루어 종대를 이룬다. 아름다움을 못 느끼더라도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할 수 있겠는가. 자의식조차 없는 미립자들이 무대에 하나 하나 들어서며 점차 군무를 완성해가는 발레리나들처럼 움직이는데, 누가 이 경이로움을 못 느낀단 말인가.

저자가 책을 구성한 방식은 흥미롭다. 실험을 한 가지씩 나열하면서 그 실험이 어떻게 모습을 갖추어 갔으며 왜, 어떻게 아름다운가를 설명한다. 저자가 캐번디시가 자신의 실험을 설계하고 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오류의 원인들에 집착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을 보노라면 마치 수학의 증명에서 느끼는듯한 엄격함에 소름이 돋는다. 이론과 간결한 수식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캐번디시의 편집증적인 엄격함에서 경외를 느낄 것이다. 하나의 실험에 대해 설명이 끝난 다음에는 간주라는 부분으로 넘어간다. 간주에서 저자는 실험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한다. 실험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어째서 사람들이 실험에게서 비인간적인 것만 보는 것이 부당한지를 설명하고, 실험과 함께 살아가며 그 고된 작업을 마친 실험자들에게 바치는 찬가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 실험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주변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도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 10점
로버트 P. 크리즈 지음, 김명남 옮김/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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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17 15:53

미학 오디세이 3권 세트 - 10점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즐거움과 함께 인간의 본질과 가장 맞닿아있는 감정이다. 사실 아름다움에서 즐거움이 나오고, 즐거움에서 아름다움이 파생되어 사실상 둘을 면도날로 자르듯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모든 세상은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남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이다. 철학자들은 이성(理性)에서, 신학자들은 신성(神聖)에서,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그것을 각자의 언어, 그러니까 논리, 성서, 수학으로 표현했을 뿐이라고.

이 사람들은 단지 다른 미적 감각을 가졌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학의 논의의 상당수가 철학과 겹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정신활동이고, 이성은 정신활동의 정수처럼 여겨지지 않던가? 더군다나 수많은 동기가 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즉 미각(美覺)에서 출발했다면 인간의 정신에 매력을 느끼던 사람들이 놓기 힘든 주제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학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활동에 대한 교양서 중에서 단연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책을 꼽으라면 진중권씨의 『미학 오디세이』시리즈이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책을 사다가 5만원을 채우면 마일리지 2000점을 더 준다는 알라딘의 유혹(?)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만, 나온지 10년이 거의 넘어가는데도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점이 눈을 끌었던 것 같다.

미학 오디세이 1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1권은 에셔(Escher)의 일러스트가 주로 나온다. 들어 본 사람만 많고 정작 읽은 사람은 적다는 『괴델, 에셔, 바흐』의 에셔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에셔의 작품을 보았던 것은 일본에 갔을 때 둘러보다가 들렀던 어떤 박물관(미술관이었는지도 모른다)에서였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잠깐 그 앞에 서서 서너 초 정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발길을 돌리는 자그마한 소년이 보였을테지만, 나에게는 영화 「컨택트(Contact)」에서의 시공간의 벽을 넘나드는 찰나의 여행이었다. 때문에 그 곳 기념품점에서 팔고있는 자그마한 저금통-들어간 동전이 쌀알보다도 작아지거나 작은 상자만이 떠 있는 공간 속으로 동전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들-을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나왔던 기억이 난다.


이런 애들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동전도 엄청 작아졌었는데 다른 비슷한 건가?

1권과 동시대에 나온 책이 2권이다. 2권은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다루고 있다.

미학 오디세이 2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에셔의 작품들처럼 마그리트의 작품들도 말이 안 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그리트의 작품들 중에는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이전 글에서 잠시 끌어왔던 이 그림이다. 허공에 떠 있는 성, 어디에서 많이 본 판타지적 요소 아닌가?



제 3권은 앞의 두 권과는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적 간극이 있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두 권의 책과는 살짝 다른 분위기가 함께하고 있어 천천히 다루기로 하고, 위 두 권을 독자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말 하나는 잘 해서 안티와 팬 모두를 끌고다니는 진중권씨의 말빨이 그대로 녹아나 있는 괜찮은 책이라고 하겠다. 책이라는 것이 대화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던 전통을[각주:1] 그대로 따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서로 대화시키는 구성을 넣은 것은 분명히 오래된 기법이지만 그 전통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현대를 사는 나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름다움과 같이 보편적이면서도 난해한 대상을 이해할 때에는 직접 남과 토론하면서 배우는 것이 효과적인 학습법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산문과 대화를 적절히 배합한 책의 구성이 얼마나 절묘한지 놀라게 된다.

트로이
아델 게라 지음, 강경화 옮김/열림원
조금은 상관없지만, 대화로만 구성된 현대 책 중 하나. 참고하시길...

앞서 말했듯이 3권의 분위기는 그 전의 두 권과는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작가가 강산이 변하는 시간만큼 머리가 굵어진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다룬 주제 자체가 분위기의 변화를 유도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전에 날 가르치셨던 은사분들 중에는 이른바 '시계추 이론'이라는 것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었는데,[각주:2] 그 주된 내용은 모든 것이든 시계추처럼 한 쪽으로 기울었다가 그 반대로 기울게 되고, 다시 기울어진 쪽에서 원래 위치로 다시 기우는 주기적인 행동을 무한히 반복한다는 것이다. 서양 문화의 분위기가 인간 중심에서 신 중심으로, 신 중심에서 다시 인간 중심으로, 이런 식으로 계속 진동한다는 것을 가장 큰 근거로 내세우셨던 기억이 나는데 돌이켜보면 어떤 철학자가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튼, 공비가 -1인 기하급수처럼 끝없이 진동하는 역사 속에서 그 끝은 어디에 있을까? 0? 1? 아니면 다음의 식에서 r에 -1을 넣으면 얻는 값처럼 이도 저도 아닌 ½?

1 \,+\, r \,+\, r^2 \,+\, r^3 \,+\, \cdots 
\;=\; \frac{1}{1-r},
'기하급수적으로'라는 단어가 이 수열에서 나왔다.[각주:3]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발걸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다. 철학이 이리 저리 시계추처럼 진동하다가 결국에는 끝나지 않은 기하급수처럼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을 잃어버린 현대-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시대-의 미학 또한 차가운 겨울 밤을 지낼 피난처를 찾지 못한 길거리의 나그네의 발걸음처럼 무겁다. 그렇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필자가 3권을 읽으며 느낀 첫 느낌은 '억지로 분위기에서 무게를 덜어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미학 오디세이 3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가 앞으로 쓰지 않을 소설' 이었다. 한편으로는 적절한 소설을 찾아 헤매기 귀찮아하는(?) 저자의 게으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게으름보다는 꽤 무겁게 흘러가는 현대철학과 그 무거운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기 위한 장치라고 느껴졌다. 그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며 굳어있었던 얼굴에 피식하며 스쳐 지나가는 미소를 안겨주는 효과는 있었다.



맑은 달밤에 베란다에 홀로 앉아 달과 함께 맥주캔을 홀짝이던 그대. 무엇이 그대를 베란다로 끌고 왔는지 궁금하지는 않던가? 오늘 한번 무엇이 그대를 불러냈는지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미학 오디세이 3권 세트 - 10점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미학 오디세이 1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미학 오디세이 2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미학 오디세이 3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1. 플라톤의 책은 두 사람이 서로 대화하는 구조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 가까운 근대에서 찾는다면 갈릴레오의 책이 이런 방식으로 쓰여졌다. 가까운 지역에서 찾는다면 공자의 論語가 딱 이런 구성이다. [본문으로]
  2. 이상하게도 이 분처럼 조금은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강의하시는 분들은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아니면 내가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선생님이 엄한 분위기를 가지고 계셔서 그때에만 주의를 집중했을 수도 있고. [본문으로]
  3. 파인만(R. Feynman)씨는 이 단어의 상위 개념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이라는 단어 대신 '경제학적'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했다. 인플레이션을 생각해보면 경제학적 숫자가 무한대를 상징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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