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자물리에서 표준모형(standard model)이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형 중 가장 자연을 잘 기술하는 모형을 의미합니다. 물리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들어보셨을 네 개의 힘과 쿼크, 중성미자 등등이 이 표준모형을 구성하고 있죠. 그리고 대부분의 (입자)물리학자들의 꿈은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과서에도 기록되고 운이 좋으면 노벨상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현재 알려진 가장 정확한 자연에 대한 기술이 실패하고 있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표준모형이 자연을 기술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지점은 의외로 많으며, 그 중 하나는 뮤온의 이상자기모멘트(anomalous magnetic moment)입니다. 뮤온은 경입자(lepton)의 하나로, 전자의 무거운 형제라고 생각하시면 얼추 맞습니다. 현재(2018년 12월) 위키백과의 해당 페이지에서 인용하고 있는 측정된 뮤온의 이상자기모멘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a_\mu = 0.001~165~920~9(6)\]


반면에 표준모형이 예측하는 뮤온의 이상자기모멘트는 다음과 같죠.

\[a_\mu^{SM} = 0.001~165~918~04(51)\]


두 값은 약 3.5 표준편차만큼의 차이를 보입니다. 3.5 표준편차는 두 값이 실제로 같았을 경우 1/1000보다도 작은 확률로 이런 차이를 보여야 한다는 의미로, 실험이 어딘가 잘못되었거나 우리가 가진 이론이 어딘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증거가 되지요. 현재 페르미랩(Fermilab)에서는 이 차이가 실존하는지 검증하기 위한 정밀측정 실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상자기모멘트가 흥미로운 관측량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이상자기모멘트란 무엇일까요? 이상자기모멘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운동량과 자기모멘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므로, 우선은 이 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물리학은 정량적인 측정량을 정성적인 측정량보다 우선시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특성을 숫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예컨대 운동량(momentum)이란 물체가 얼마나 격하게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그 양을 계량화한 것을 의미합니다. 같은 물체라도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면 더 많은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더 큰 운동량을 가질 것이고,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두 물체라도 더 무거운 물체가 더 많은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더 큰 운동량을 갖는 식이죠. 물론 물체는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만은 않습니다. 팽이와 같이 한 자리에서 뱅그르르 도는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회전운동을 계량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리량이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입니다.


각운동량은 자신이 잡은 기준점에 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갖는 오비탈 각운동량(orbital angular momentum)과 그 물체가 스스로 회전하기 때문에 갖는 스핀(spin)이란 두 값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아무런 내부구조도 없는 순수한 점으로 취급하는 전자와 같은 기본입자들조차 스핀을 가지며, 기본입자들이 어떤 스핀을 가지는가는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점이 회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므로 '전자가 회전하고 있다'는 설명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자는 고유한 각운동량을 갖는다'고 이해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었던 이상자기모멘트로 돌아오면, 이상자기모멘트는 입자가 갖는 스핀으로부터 예상되는 자기모멘트가 그 측정값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는지를 나타내는 값입니다. 이제 자기모멘트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되었군요.


자석 중에는 전기의 힘으로 자력을 발휘하는 전자석이란 물건이 있습니다. 전자석은 전하를 가진 물체가 움직여서 전류를 만들면 그 전류에 의해 자기장이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자석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전자석처럼 전하가 크게 도는 운동을 해야만 자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하가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것으로도 자석이 만들어질 수 있지요. 이렇게 회전하는 대전된[각주:1] 물체가 자신의 회전운동으로 만들어내는 작은 자석을 계량화한 값이 자기모멘트입니다. 그리고 자기모멘트는 회전운동으로부터 만들어졌으므로, 어떤 물체의 자기모멘트는 그 물체의 스핀과 비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예상을 반영하여 한 물체의 자기모멘트를 그 물체의 스핀으로 나눈 것을 자기회전비율(gyromagnetic ratio)이라고 부르며, 랑데 g 인자(Landé g-factor)는 자기회전비율을 기본입자를 기술하기에 유용한 단위로 측정한 값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기본입자인 전자나 뮤온도 포함되며, 앞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뮤온 자기회전비율의 이론으로 계산한 값과 실험으로 측정한 값 사이의 불일치는 현대물리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자연스러운' 자기회전비율은 얼마일까요?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기본입자들의 스핀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기본입자들 또한 스핀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기본입자들은 아무런 스핀이나 가질 수 있는 것일까요? 물론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현재 알려진 기본입자들은 스핀이 1(글루온/광자/W,Z 보손)이거나 1/2(쿼크/전자/중성미자 등), 혹은 최근 발견되어 누구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힉스 입자처럼 0입니다. 일반적으로 양자역학에 따르면 스핀은 정수(0,1,2 등)거나 반정수(1/2,3/2,5/2 등)를 가져야만 하죠. 여기에서 스핀을 단순한 숫자로 적기는 했지만, 각운동량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어떤 단위로 계량되는 값이기에 실제 스핀은 $\hbar$로 쓰는 디락 상수를 단위로 잰 값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본입자들이 전자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를 minimal coupling이라 부릅니다)을 요구할 경우 스핀 1/2 입자를 기술하는 방정식인 디락방정식으로부터 g 인자의 값이 2여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이상자기모멘트란 실제 g 인자의 값이 2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를 잰 것으로, g 인자의 값은는 양자역학적인 효과에 의해 예측된 값인 2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상자기모멘트가 적어도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양자역학적인 효과를 무시해도 좋으며, 많은 경우 g 인자의 값을 2로 취급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렇다면 다른 입자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Belinfante는 디락방정식의 선례를 따라 minimal coupling을 요구할 경우 스핀이 s인 기본입자는 g 인자의 값으로 1/s를 갖는다는 가설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s에 1/2를 대입할 경우 우리가 잘 아는 전자나 뮤온의 g=2라는 결론을 얻게 되죠. 그렇다면 다른 스핀을 갖는 기본입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현재 표준모형에 남아있는 전하를 가지면서 스핀이 1/2이 아닌 입자로는 W 보손이 있으며, W 보손의 g 인자는 2.11[각주:2]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W 보손의 스핀은 1이죠. 따라서 자연스러운 자기회전비율은 g=1/s란 Belinfante의 가설은 벌써부터 반례와 마주하게 되죠.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값은 무엇일까요?


W 보손의 g 인자 값이 2에 가깝다는 실험결과에 대해서 들으신 다음이라면 '가장 자연스러운 g 인자의 값은 2가 아닐까?'란 의심을 해볼 수 있겠지요. 흥미롭게도 이 단순무식한 답이 실제 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Holstein은 다음과 같은 정황근거를 제시합니다.[각주:3]


1) 고에너지 콤프턴 산란(Compton scattering)이 좋은 성질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값이다.

2) GDH 합 규칙(sum rule)이 자연스럽게 측정하는 값이다.

3) 중력자 산란과 광자 산란 사이의 KLT 관계를 자연스럽게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값이다.

4) 열린 끈이론(open string theory)으로부터 예측되는 값이다.

5) 일반상대론에서 전기장의 영향 아래 움직이는 입자의 스핀을 기술하는 BMT 방정식이 가장 간단해지는 값이다.

6) 전하가 있는 회전하는 블랙홀(Kerr-Newman)을 점입자로 취급하는 극한에서 얻는 값이다.


위 목록의 흥미로운 점이라면 중력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1번과 2번을 제외하면 모두 중력과 접점을 갖고 있습니다; 중력자 산란이나 일반상대론, 블랙홀은 당연히 중력과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끈이론의 경우에는 닫힌 끈(closed string)을 자연스럽게 고려하면서 닫힌 끈의 한 상태인 중력자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게 되지요. 표준모형에서는 일반적으로 중력을 다른 힘들과 같은 위치에 두고 다루지는 않기 때문에 은근슬쩍 나타난 중력은 예상 밖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예상 밖의 등장이라고 해서 그것이 우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법이죠.




이 포스트의 제목인 중력과 자기회전비율의 관계를 이야기하려면 이 관계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새로운 기술법으로부터 출발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주인공은 스피너-헬리시티 변수(spinor-helicity variable)입니다.


스피너-헬리시티 변수는 우리가 사는 세계인 3+1차원의 세계에서 회전을 기술하는 군인 $SO(1,3)$군이 행렬식이 1인 $2 \times 2$ 복소행렬들의 집합인 $SL(2,\mathbb{C})$군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표준적인 양자역학을 따른다면 우리가 다루는 모든 상태(state)는 이 $SL(2,\mathbb{C})$군의 표현(representation) 중 하나로 수렴해야 하죠. 스피너-헬리시티 변수는 단순히 모든 상태를 $SL(2,\mathbb{C})$군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fundamental representation)과 그 켤레복소수(complex conjugate)에 해당하는 표현만을 이용해 기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셨다면 단순히 '최대한 군더더기를 없애고 입자들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스피너-헬리시티 변수는 질량이 없는 입자에 대해서만 그 기술법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변수가 질량이 있는 입자에 대해서도 쓸 수 있도록 확장된 것은 채 2년이 지나지 않았죠. 이 변수를 쓰게 되면 여태 이야기한 g 인자와 중력과의 관계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주로 다룰 문제는 다음 파인만 도표(Feynman diagram)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질량이 있는 입자(검은 선)가 질량이 없는 입자(연파랑 물결선)를 방출하는 과정에 대한 산란진폭(amplitude)입니다. 산란진폭이란 산란실험의 중요한 물리량인 산란단면적을 계산하기 위해 필요한 물리량으로, 자세한 설명을 다루기에는 이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다른 글에서 설명하도록[각주:4] 하겠습니다. 또한 산란진폭 업계의 표준을 따라 모든 운동량은 들어오는(incoming) 방향으로 취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자 셋을 다루는 파인만 도표


자세한 설명은 논문으로 넘기기로 하고 결과만 적어보면, 위와 같은 일반적인 입자 셋의 산란진폭은 다음과 같은 꼴로 적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질량이 있는 입자는 질량 m에 스핀 s인 입자라고 가정하였으며[각주:5], 질량이 없는 입자의 헬리시티는[각주:6] h로 가정하였습니다.

\[ M_3^{h} = (mx)^h \left[ g_0 \frac{\langle {\bf 21} \rangle^{2s}}{m^{2s-1}} + g_1 x^{1} \frac{\langle {\bf 21} \rangle^{2s-1} \langle {\bf 2} 3 \rangle \langle 3 {\bf 1} \rangle}{m^{2s}} + \cdots + g_{2s} x^{2s} \frac{\langle {\bf 2} 3 \rangle^{2s} \langle 3 {\bf 1} \rangle^{2s}}{m^{4s-1}} \right] \]


이 산란진폭을 보면 총 2s개의 파라메터 $g_i$가 등장하며, 모두 각자의 해석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질량이 없는 입자의 헬리시티를 h=1로 둘 경우 이 산란진폭은 입자가 전자기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며[각주:7], 첫번째 파라메터인 $g_0$는 입자의 전하량을 결정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두번째 파라메터인 $g_1$인데, 이 경우 $g_1$은 g 인자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며, $g_1$이 0이여야만 g 인자의 값이 2가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g_0$만 남기고 나머지 파라메터를 전부 0으로 결정한 $M_3 = x \langle {\bf 21} \rangle^{2s}$이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으니[각주:8] 이런 관점에서도 g=2가 가장 자연스러운 자기회전비율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요.


위의 산란진폭에서 질량이 없는 입자의 헬리시티를 h=2로 둘 경우 이 산란진폭은 입자가 중력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나타내게 됩니다[각주:9]. 흥미롭게도 중력이 입자의 질량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스핀과도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정해져 있다는 성질에 의해 $g_1$이 0 이외의 값을 가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g 인자가 자연스러운 값 2를 갖기 위해서는 $g_1$이 0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결과이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둘은 관련이 있습니다.




1986년 Kawai-Lewellen-Tye 세 사람은 (끈이론의 맥락 안에서) 중력자를 포함한 산란진폭을 글루온만 있는 산란진폭의 (적절한 처리를 거친) 제곱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를 KLT 관계라고 부르며, 이 관계를 양자효과를 고려한 경우까지 확장한 것을 BCJ(Bern-Carrasco-Johannsson) 관계라고 부릅니다. 이런 관련성은 색-운동학 이중성(colour-kinematics duality), 중력은 양밀 제곱 (GR=YM^2), 혹은 더블 카피 (double copy) 관계라는 이름을 쓰기도 합니다. 위에서 Holstein이 언급한 g=2에 대한 여섯가지 정황증거 중 세번째 정황증거가 이 관계를 이용하죠.


글루온은 양밀이론(Yang-Mills theory)의 스핀 1인 질량이 없는 입자를 지칭하는 말로, 우리가 아는 전자기력의 광자와 닮은 사촌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따라서 KLT 관계는 광자를 포함한 산란진폭을 적절한 처리를 거쳐 제곱하면 중력자를 포함한 산란진폭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요. 어째서 KLT 세 사람이 이런 관련성을 알아내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끈이론에서 중력과 양밀이론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끈이론에서 입자는 끈의 각기 다른 진동 모드로 구현됩니다. 진동 모드란 끈이 얼마나 격하게 진동하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대체로 진동이 격해질수록 그 진동 모드에 해당하는 입자의 질량과 스핀이 증가하게 됩니다. 둘은 진동이 격해짐에 따라 서로 비례해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레제 궤적(Regge trajectory)이라고 부릅니다. 레제 궤적은 핵물리 발전 초창기에 강한 핵력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입자들의 스핀과 질량 사이에 선형(linear)[각주:10] 관계가 존재한다는 관찰을 바탕으로 세워진 가설인데, 끈이론의 태동기에는 끈이론이 레제 궤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끈이론을 가망있는 핵물리 모형으로 여기고 뛰어들게 되었죠.


각기 다른 진동 모드. N이 클 수록 격렬하게 진동하고 스핀과 질량이 증가한다.



끈이론에서 다루는 끈의 종류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열린 끈(open string)과 닫힌 끈(closed string)이죠. 열린 끈은 신발끈처럼 양 끝이 이어져 고리를 이루지 않는 끈을 지칭하며, 닫힌 끈은 고무줄처럼 양 끝이 이어져 고리를 이루는 끈을 말합니다. 열린 끈의 경우 질량이 없는 입자에 해당하는 진동 모드 중에는 스핀이 1인 진동 모드가 포함되며, 닫힌 끈의 경우 질량이 없는 입자에 해당하는 진동 모드 중에는 스핀이 2인 진동 모드가 포함됩니다. 따라서 열린 끈의 경우에는 질량이 없고 스핀이 1인 입자가 등장하고 닫힌 끈의 경우에는 질량이 없고 스핀이 2인 입자가 등장합니다. 질량이 없고 스핀이 1인 입자로는 글루온과 광자가 있고, 질량이 없고 스핀이 2인 입자는 중력자로 유일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열린 끈을 다루게 되면 질량 없는 스핀 1 입자가 필요한 양밀이론을 포함하게 되며, 닫힌 끈을 다루게 되면 질량 없는 스핀 2 입자가 필요한 중력을 포함하게 되지요.


흥미로운 점은 열린 끈 두 개를 가져다가 양 끝을 이으면 닫힌 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에서 양밀이론의 산란진폭을 제곱하면 중력이론의 산란진폭을 얻을 수 있다는 KLT 관계가 유도됩니다. 닫힌 끈의 산란진폭은 열린 끈의 산란진폭 한 쌍을 가져다가 곱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므로, 중력이론의 산란진폭은 양밀이론의 산란진폭 한 쌍을 가져다가 곱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열린 끈 둘의 끝을 잇는 것으로 닫힌 끈을 만들 수 있으며, 이 성질은 KLT 관계의 근간이 됩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앞서 도입한 스피너-헬리시티 변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입자 셋의 산란진폭에는 총 2s개의 파라메터 $g_i$가 등장할 수 있으며, 그 중 $g_1$은 광자/글루온과의 상호작용의 경우 g 인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중력자와의 상호작용의 경우 항상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만약 이 입자가 광자/글루온과의 산란진폭을 제곱하는 것으로 중력자와의 산란진폭을 얻을 수 있는 KLT 관계를 만족하게 된다면 광자/글루온 산란진폭의 $g_1$은 중력자 산란진폭의 $g_1$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력자 산란진폭의 $g_1$은 항상 0이어야 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으므로 이 입자의 광자/글루온 산란진폭의 $g_1$ 또한 0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으며, 이로부터 이 입자의 g 인자는 항상 2란 값을 만족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중력이 g 인자의 값이 2가 되도록 강제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자기회전비율이라는 입자의 전자기장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한 파라메터가 전자기력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중력과의 상호작용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최근에 개발된 표기법인 스피너-헬리시티 변수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이 새로운 도구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미래를 예단하는 것은 멍청한 헛소리를 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므로 여기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기보다는 이미 알려진 흥미로운 결과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중력과의 가장 '단순한' 상호작용이지요.


스피너-헬리시티 변수로 쓸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중력자와의 상호작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M_3 = x^2 \langle {\bf 21} \rangle^{2s} \]


그리고 중력이 있는 계에서 가장 단순한 물체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no hair) 블랙홀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죠. 따라서 이 산란진폭이 블랙홀과 중력자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가설을 세워 볼 수 있겠죠. Arkani-Hamed는 그 가설이 실제로 밝혀진다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블랙홀이 '기본입자'처럼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요. 그리고 실제로도 이 산란진폭이 (고전적인 크기의 스핀을 갖는) 블랙홀의 산란진폭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일 수 있습니다. 위에서 Holstein이 언급한 '블랙홀의 g 인자는 2다'란 명제를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이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피너-헬리시티 변수라는 새로운 도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이 그렇게까지는 놀랍지 않은 일을 알 길이 없었겠지요. 이 새로운 도구가 어떤 길로 우리를 안내하게 될 지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 대전된 물체는 전체적으로 전하를 가진 물체를 말합니다. [본문으로]
  2. loop effect라 불리는 양자효과를 고려한 값으로, 양자효과를 제하면 남는 값은 정확히 2입니다. https://arxiv.org/pdf/hep-ex/0209015.pdf [본문으로]
  3. 이 목록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초대칭이론의 경우에도 g 인자의 값이 2로 고정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또 다른 강력한 정황증거인 셈이죠. [본문으로]
  4. 끈이론 개론 시리즈의 2편이 산란진폭을 다룰 예정입니다. [본문으로]
  5. 때때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수식에서 질량을 나타내는 m을 생략하겠습니다. [본문으로]
  6. 헬리시티는 질량이 없는 입자의 스핀을 말합니다. 질량이 없는 입자의 경우 스핀의 방향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특별히 헬리시티란 이름을 붙입니다. [본문으로]
  7. 광자의 스핀이 1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본문으로]
  8. 이렇게 $g_0$만 남기고 다른 파라메터를 전부 0으로 날려버리는 선택은 질량이 없는 극한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본문으로]
  9. 중력자의 스핀이 2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본문으로]
  10. 비례관계를 보다 전문적으로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얼마 전에 했던 삽질 관련 내용 정리.



이 잘 알려진(하지만 나는 몰랐던) 상식을 증명하는 방법은 Schwarz-Christoffel transform을 이용하는 것. 이 변환은 복소평면의 윗 반평면(upper half plane)을 다각형의 내부로 보내는 등각변환이다. 완전한 등각변환이라고 하기에는 꼭지점에서의 등각성이 깨지긴 하지만 그 정도는 무시하기로 하고(...). 2차원 이상유체 문제나 도파관 문제를 풀 때 이 변환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 물리과에서는 보통 풀 일이 없는 문제들이라 생소한 사람들도 많을듯. 구체적인 설명은 위키백과의 해당 항목으로 넘기기로 하자.


Schwarz-Christoffel map이 하는 일. 변수 z에서의 upper half plane을 등각성을 유지한 상태로 변수 w에서의 다각형 내부로 보낸다.


이 변환을 통해 증명하고 싶은 것은 'open string disk amplitude에서 vertex operator를 집어넣는 점들 중 일부가 한 점으로 수렴하고 이 점들을 a1, a2, ...으로 쓰기로 하자. 한 점으로 수렴하는 극한의 산란진폭은 a1, a2, ...에 해당하는 입자들이 산란하는 산란진폭과 나머지 입자들이 산란하는 산란진폭에 해당한다'는 주장인데, 다르게 이야기하면 'a1, a2, ... , c가 산란하는 진폭과 c, b1, b2, ...(b1, b2, ...는 vertex operator들 중 a1, a2, ...에 해당하지 않는 나머지)가 산란하는 진폭으로 나누어지며 그 사이를 c에 해당하는 상태가 진행하는 극한에 해당한다'가 된다. 단순히 말하면 c에 해당하는 internal propagator가 on-shell에 가까워져서 먼 거리를 이동한다는 이야기.


편의상 4ptc scattering을 생각하기로 하고 t-channel이 on-shell로 가는 극한을 생각하자. 이때 $SL(2,R)$를 이용해 vertex operator를 집어넣는 점 셋을 고정할 수 있다. 정석적인 선택은 $(0,\sigma,1,\infty)$. 따라서 다음 그림과 같은 형태의 Schwarz-Christoffel map을 찾는 것이 목표가 된다.


t-channel에서 intermediate state가 on-shell에 가까워지면 먼 거리를 이동하는 극한과 동등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필요한 Schwarz-Christoffel map


여기서 $\bar{\sigma_1}$은 왼쪽의 꺾이는 점(혹은 1번과 4번 string이 intermediate state에 해당하는 string으로 합쳐지는 점)에 해당하고 $\bar{\sigma_2}$는 오른쪽의 꺾이는 점(혹은 intermediate state에 해당하는 string이 2번과 3번 string으로 갈라지는 점)에 해당한다. 이제 위 그림에서 $\sigma \to 1$의 극한이 $f(\bar{\sigma_2}) \to +\infty$로 가는 극한, 즉 $\bar{\sigma_1}$에 해당하는 점에서 $\bar{\sigma_2}$에 해당하는 점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무한히 늘어나는 극한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이면 된다. 이 변환은 다음 미분방정식의 해로서 주어진다.

\[ f'(z) = A (z-x)^{1}(z-0)^{-1}(z-\sigma)^{-1}(z-[\sigma + a(1-\sigma)])^{1} (z-1)^{-1} \]


이 식은 다음과 같이 분수들의 합으로 정리할 수 있다.

\[ f'(z) = A\left\{ \frac{\alpha}{z-0} + \frac{\beta}{z-\sigma} + \frac{\gamma}{z-1} \right\} \]


약간의 Mathematica 계산을 통해[각주:1] $\alpha = \frac{-x(a\sigma - a - \sigma)}{\sigma}$, $\beta=\frac{a(\sigma - x)}{\sigma}$, $\gamma = (1-a)(1-x)$가 된다는 것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영 못 믿겠으면 손으로 계산하는 것도 방법. 여기서 $a$와 $x$가 고정되어 있다면 $\alpha$, $\beta$, $\gamma$ 모두 유한한 값으로 고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분은 단순한 $1/z$의 적분이므로 바로 계산이 가능하다. 단, 복소변수이기 때문에 약간의 주의가 필요. Argument를 결정하는 branch cut은 편의상 -Im(z)축 방향으로 뻗도록 하는 것이 좋다.

\[ f(z) = A\left\{ {\alpha}\text{Log}z + {\beta}\text{Log}(z-\sigma) + {\gamma}\text{Log}(z-1) \right\} + B \]


state 1은 $-A\alpha$방향, state 2는 $-A \beta$방향, state 3는 $-A \gamma$방향, state 4는 $A(\alpha+\beta+\gamma) = A$방향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위의 그림에 맞게 $A$의 값을 정하면 $A<0$이 된다. 이제 string worldsheet이 갈라지는 점들($f(\bar{\sigma_1})$과 $f(\bar{\sigma_2})$)의 위치를 살펴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Im(w)축상의 위치가 아니라 Re(w)축 방향의 거리이므로 Log의 argument에 해당하는 항은 잠시 무시해도 좋다. 우선 왼쪽의 합쳐지는 점의 위치를 구하면 다음과 같다.

\[ f(\bar{\sigma_1}) = A \left\{ \alpha \log |x| + \beta \log |x-\sigma| + \gamma \log |x-1| \right\} + i \cdots + B \]


오른쪽의 합쳐지는 점의 위치는 다음과 같이 주어진다.(수식이 약간 깨지는데 중요한 부분은 다음 문단에 있으므로 굳이 편집하지는 않겠다)

\[ f(\bar{\sigma_2}) = A \left\{ \alpha \log |\sigma + a(1-\sigma)| + \beta \log |a(1-\sigma)| + \gamma \log |(a-1)(1-\sigma)| \right\} + i \cdots + B \]


$\sigma \to 1$의 극한에서 발산하는 항만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 f(\bar{\sigma_2}) = A \left\{ \beta \log |(1-\sigma)| + \gamma \log |(1-\sigma)| \right\} + \cdots \]


참고로 이 극한에서는 $\beta + \gamma \to 1 - x$이기 때문에, 오른쪽의 갈라지는 점은 $+\infty$의 방향으로 밀려나는 것이 맞다(부호를 $x<0$와 $A<0$로 결정했기 때문). 여기서 발산하는 항들은 전부 로그에 들어가는 값이 0으로 수렴하는 극한 때문에 등장했으므로, 이런 현상은 4ptc scattering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산란 상황에서도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vertex insertion point가 모이게 되면 amplitude factorisation이 되는 극한, 혹은 intermediate state가 long distance propagation을 하는 IR divergence가 있는 극한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


$\sigma \to 1$ 극한은 두 갈라지는 점 사이의 거리가 무한이 멀어지는 극한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이 논증은 worldsheet에서의 이야기이고, 실제 target space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induced metric을 생각해보면 worldsheet상에서의 거리가 무한히 멀어지는 것과 target space상에서의 거리가 무한히 멀어지는 것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1. Apart 함수를 쓰면 된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지도교수님과 회식을 하던 도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최근 들어 논문 원고만 쓰고 블로그는 방치해뒀다는 약간의 자책감과 글을 쓰지 않는 버릇을 들이다가는 생각하는 법도 잊어버린다는 약간의 위기감과 연구에 진척이 나질 않는데 잠시 숨을 돌려볼까 하는 약간의 일탈감에 힘입어 오랜만에 글을 써 볼까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주제는, 교수님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 전공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가 좋겠다 싶었죠. 제가 제 전공에 대해 글을 쓸 정도로 제 전공을 잘 아느냐고 물으신다면 양심의 가책은 느끼겠지만, 그런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배짱으로 들이대는 것이 젊음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나이를 묻거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살기로 했습니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사극 중 <태양인 이제마>가 있습니다. 사상의학의 개척자 이제마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였는데, 드라마 중간에는 양의학을 접한 이제마가 다음의 말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양의학은 부분을 깊게 살펴 빠르게 효과를 보지만 전체를 고려하지 않아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기억에 의존한 대사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의 영원한(?) 떡밥 중 하나인 '한의학과 양의학 중 어느 쪽을 믿을 것인가'란 질문은 잠시 제쳐두고, '부분을 깊게 살핀다'는 말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부분을 자세히 파고들어 전체를 이해해보겠다'는 접근방식을 환원주의(reductionism)라 부릅니다. 예컨대 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면 시계를 구성하는 톱니바퀴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환원주의는 근대과학의 주된 구심점으로 작동했습니다. 현실 세계는 복잡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쳐내고 나면 보다 단순한 현상으로 환원되고, 환원된 단순한 현상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단순화된 현실을 다루는 것으로 얻은 지식을 현실 세계로 다시 외삽하면 현실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의 근간이었으니까요. 20세기부터 이어진 근대과학의 눈부신 성장을 보면 이런 접근법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죠.


입자물리, 혹은 고에너지물리는 이런 환원주의의 끝에 놓인 학문 중 하나입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각종 신화 및 설화를 살펴보면 '왜 번개가 치는가?' 혹은 '왜 무지개가 생기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지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치게) 성공적이었던 환원주의를 이 런 문제들에 적용해보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겠지요. 환원주의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보다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그 작은 부분을 이해하는 것으로 원래 이해하고자 했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세계를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나가다 보면 물질의 구성 요소라 여겨지는 소립자들을 이해하는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소립자물리, 혹은 입자물리를 환원주의의 끝에 놓인 학문이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입자물리학의 성배를 최종이론(final theory), 혹은 모든 것의 이론(TOE; Theory Of Everything)이라 부르는 것 또한 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입자물리는 고에너지물리라고도 부릅니다. 물리학자들이 작은 물체들의 행동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믿는 양자역학에 따르면 보다 작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므로, 가장 작은 것을 보고자 한다면 가장 높은 에너지를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입자가 아닌 것들 또한 다룬다는 점에서 고에너지물리라는 명칭이 보다 정확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용어의 혼동을 방지하고자 이 글에서는 입자물리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자물리는 그 이름이 시사하듯이 입자들의 행동을 다룹니다. 그렇다면 먼저 입자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양자역학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물리학자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뉴턴의 입장을 따른다면 입자는 하나의 점이고, 따라서 점입자(point particle)이란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기하학에서 다루곤 하는 '크기와 부피를 갖지 않는 추상적인 점'이 바로 입자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 정의는 '얼마나 공간을 차지하는가'의 관점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점입자는 다른 물리적인 성질 즉 질량이나 전하와 같은 성질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책을 한 권, 두 권 세는 것처럼 입자도 한 개, 두 개 셀 수 있지요. 이런 입자의 정의는 직관적으로는 잘 와닿기는 하지만 실제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세밀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보다 현대적인 입자의 정의는 헝가리 출신 미국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Eugene Wigner)에 의해 정립되었습니다. 위그너 분류법(Wigner classification)은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따릅니다.


1. 이론상 어떤 물체의 에너지와 운동량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물체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기본적인 변수로 잡자.

1'. (특수)상대론에 따라 에너지와 운동량을 조합하여 질량을 정의한다.

2. 어떤 물체든 그 물체를 회전시키면 그 회전에 반응한다[각주:1]. 물체의 운동량을 변화시키지 않고 물체를 회전시켰을 때 물체가 반응하는 방식을 따라 같은 운동량을 갖는 물체를 분류하자.

2'. 회전에 반응하는 방식을 스핀으로 정의한다.


운동량이라는 개념이 생소할 분들을 위해 운동량을 약간 설명해보자면, 운동량이란 말 그대로 '물체가 얼마나 많은 양의 운동을 갖고 있는가?'를 계량화한 것입니다. 같은 속도로 달리는 소형차와 거대한 트럭을 비교하면 거대한 트럭 쪽(무거운, 혹은 질량이 큰 쪽)이 보다 많은 운동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은 소형차라고 해도 보다 빠르게 달리는 소형차가 보다 많은 운동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뉴턴의 입장에서는 이 두 관찰 결과를 반영하여 운동량을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정의합니다. 운동량의 현대적인 정의는 이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게 되므로 이 정도에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현대적인 입자의 정의에서는 입자를 다음과 같은 것들에 의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봅니다; 운동량 및 에너지가 몇인가(질량이 몇인가), 그리고 스핀은 몇인가. 이 과정을 통해 분류한 입자 한 개 한 개를 모아 입자 여러개를 묘사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물론 이 관점에서는 뉴턴의 입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하가 몇인가'란 질문을 통해 서로 다른 입자를 식별할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의에 '입자의 크기는 얼마이고 위치는 어디인가?'란 질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보이지 않죠. 그렇다고 입자의 크기나 위치를 묻는 질문이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모든 존재하는 것은 어딘가 공간을 조금이라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입자의 크기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답하려면 '입자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하는가?'를 묻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개념을 그 개념을 얻어내는 과정을 이용하여 정의하는 것을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라 부릅니다[각주:2]. 입자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손에 닿지 않는 물건의 크기를 가늠하는데 눈을 사용하곤 합니다. 눈이 하는 역할은 그 물건의 표면에서 반사된 빛을 잡아채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과정을 다르게 표현하면 빛과 물건이 충돌을 일으킨 뒤 튕겨져 나온 빛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방법을 입자의 크기를 측정하는 데 써볼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입자끼리 충돌시켜 보는 것이죠. 이처럼 입자와 입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산란실험이라고 부릅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투박하면서도 그에 걸맞지 않을만큼 강력한 실험이지요. 최근 힉스 입자의 발견으로 (약간의 희망을 담아 멋대로 수식어를 붙여본다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LHC에서 하는 실험도 이런 종류의 실험입니다. 그 이름(Large Hadron Collider; 큰 강입자 충돌기)이 암시하듯 LHC에서는 물리학자들이 강입자라고 분류하는 입자들을 매우 빠르게 가속시켜 서로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강입자는 나중에 이야기의 주연으로 등장하게 되지만 강입자에 대해서는 그 때 설명하기로 하죠.


산란실험은 반복수행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실험입니다. 작고도 작아 정확한 제어가 힘든 소립자들을 이용해야 하는 실험이라는 점이 반영된 셈이죠. 이렇게 반복수행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실험에서는 총 반복한 실험 횟수에 대하여 어떤 결과가 몇 번 얻어졌는지 그 비율을 관측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 됩니다. 그리고 이 비율은 입자의 '크기'를[각주:3] 정의하는 기준이 됩니다. '큰 물체일수록 더 많은 빛을 반사한다'란 일상생활에서의 관찰 결과를 소립자의 세계까지 확장한 것이지요. 재미있게도 산란실험은 '입자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적인 답 또한 줍니다. 한 입자가 다른 입자와 충돌을 일으켰다면, 두 입자는 서로 같은 위치를 지나친 것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이는 '같은 위치를 지나쳐야만 충돌을 일으킨다'는 성질은 사실 상당히 강력한 제약이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산란실험으로 결정되는 '크기'를 산란단면적(scattering cross-section)이라 부릅니다. 현대 입자물리학 역사의 큰 줄기는 산란실험으로 얻은 산란단면적의 정보로부터 이 산란단면적과 일치하는 예측치를 주는 이론을 역추적하는 일과 주어진 이론으로부터 원하는 산란과정에 해당하는 산란단면적을 계산해내는 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산란단면적은 입자물리학에서 거대한 주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끈이론은 이 거대한 주축으로부터 탄생했습니다.


연관글:


비전공자를 위한 끈이론 개론(2) - 산란행렬의 계산 (작성중)

비전공자를 위한 끈이론 개론(3) - TBA (작성 예정?)


  1. 여기서 반응이라는 것은 '책상 위의 책을 뒤집으면 더 이상 앞면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던 뒷면이 보이는 것'처럼 그 물체를 기술하는 방법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으로]
  2. 보다 물리학, 특히 고전역학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힘을 받지 않는 물체가 등속운동하는 기준계'가 관성기준계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라면 '힘을 받지 않는 물체들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던져 그 물체들이 등속운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도록 잡은 좌표계'가 관성기준계의 조작적 정의에 해당합니다. [본문으로]
  3. '크기'에 따옴표를 친 이유는 크기를 (조작적으로) 정의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크기에 대한 각기 다른 정의는 물체의 크기에 대해 다른 답을 줍니다. 다양한 크기의 정의법을 보고 싶으신 분은 이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링크된 글에서 전자의 크기를 정의하기 위해 사용하는 조작적 정의들은 이 글에서 사용한 정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이번 글은 날로 먹습니다 -_- 한창 숙제에 치여 살아서...

아주 예전에 읽었던 물리학 교양 서적입니다. 초끈이론을 다루고 있고, 찾기 드문 한국인 저자의 글입니다.

스트링 코스모스 - 8점
남순건 지음/지호

음.. 네이버 블로그를 쓰던 때 읽었던 책이고, 그 블로그의 기록을 뒤져보니 무려 07년 10월에 읽었군요. 이제 1년 반이 다 되어가네요. 간단하게 글만 긁어서 접어둡니다.


책의 깊이는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원제 The elegant universe)』, 『우주의 구조(원제 The fabric of the cosmos)』나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원제 Parallel worlds)』에는 살짝 못 미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비록 『우주의 구조』와 『평행우주』는 끝까지 읽은 것이 아니지만..) 초끈이론에 대한 설명은 다른 책들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서 서술해주고 있지만(어떤 면에서는 더 낫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게이지 변환(gauge tranformation)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처음 봤거든요.), 책이 얇은만큼 기타 다른 내용, 그러니까 초끈이론이 아니라 물리학 일반에 관련된 내용이 적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주의 구조에서는 뉴턴이 제안한 회전하는 물통 실험이 들어가 있으며(제가 이 부분까지 읽고 읽기를 포기했지요. 그 전까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흑)[각주:1] 평행우주에서는 우주 진화론에[각주:2] 대해 나와 있지요. 이런 '초끈이론 외 물리학'에 대한 설명은 조금 부족합니다.[각주:3]

그래도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위의 네이버 블로그 소개글에서도 썼듯이 '한국인 저자'입니다. 사실 전 번역을 잘 못 믿는 편이라 여건이 되는 한 원서로 보려고 하는데(그래서 웬만한 영어를 원서로 가진 책들은 다 원서로 보지요..) 한국인 저자가 썼다면 번역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글이 매우 매끄럽고요(번역투라고 불리는 비문이 거의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금은 날로 먹는 글이긴 한데, 바쁜 처지 좀 이해해 주시고(;;) 그럼 전 이만 물러갑니다...

  1. 절대 좌표계의 존재에 대한 사고실험입니다. 위키피디아 링크로 대신합니다.http://en.wikipedia.org/wiki/Bucket_argument 그런데 보니까 마지막 더 읽을거리에 우주의 구조가 나오는군요 OTL [본문으로]
  2. 정확히는 다중우주론이라고 해야겠네요. 참고 : http://en.wikipedia.org/wiki/Multiverse [본문으로]
  3. 물론 여기에도 특유의 내용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양이 다른 책들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물리학을 좋아한다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강의.

전에 무언가 이상한 대칭성을 가지고 물리학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론물리학계의 대세로 굳어져 버린 끈 이론의 대척점에 선 사람, 가렛 리시. 그의 이론은 단순하다. 복잡한 끈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하학적인 입체로 만물을 구성하는 것. 이 기하적인 입체가 진화해 가는 것으로 만물을 설명하는 것이 그의 이론의 핵심이다.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내가 어쩌면 이 길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인 것일까... 순수학문은 바보나 하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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