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3.02.22 같은 문장도 다른 사람이 읽으면 다른 글이 된다
  2. 2009.01.27 당신들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16
  3. 2008.08.28 이단아
  4. 2007.08.05 으흠...;;

예수전 - 8점
김규항 지음/돌베개


이전에 Facebook에 올렸던 단평(?)




내 책 욕심은 좀 지나친 편이다. 그래서 가진 몹쓸 버릇 중 하나가 흥미로운 인용구를 보면 그 원전 찾아 읽기인데, 이 책도 그런 경로로 읽게 되었다. '왼 뺨을 맞았으면 오른 뺨을 대라'가 항거의 표현이었다는 주장이 인상깊었다.


저자와 정치 노선이 차이가 있는지라(내 성격은 매우 보수적이다. 믿기려나 모르겠지만) 불편한 구석도 있기는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마가복음(책에서는 천주교를 따라 마르코 복음으로 옮겼다. 사실 저자는 천주교 신자)을 당대의 사회적 맥락을 재구성하여 그 의미를 재구축한 책인데, 사회변혁운동가-묘사로는 아나키즘에 준할 정도이다-로 읽은 것이 인상적. 생각해보면 에릭 호퍼(이 사람도 흥미로운 인용구에서 원전 찾아 읽게 된 경우. 그 인용구는 '광신도의 대척점에는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에 무신경한 회의론자가 서있다' 였던가?)도 그의 첫 저서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에서 대중운동가로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종교부흥운동이랑 헷깔리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공자의 경우에도 원래는 사회개혁이론이었다만 한대에 지배이념으로 채택하면서 개혁만 빠져버린 경우. 참고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제1원인으로 지목되는 성리학도 시작은 사회개혁이론이었다. 지금은 개신교가 욕 많이 먹지만 원래 처음 시작했던 프로테스탄티즘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개혁사상이었고, 자본주의의 경우에도 욕은 오지게 먹지만 프로테스탄티즘의 견인차 노릇을 했던 사상이다.(그리고 사실 자본주의를 욕하기도 애매한 것이, 무턱대고 자본주의 욕하는 것은 맑스주의, 맑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아나키즘-얜 이 안에서도 수만가지로 나뉜다-, 트로츠키주의, 마오이즘 구분 안하고 싸잡아서 욕하는거랑 똑같은거다. 미국에 정착한 자본주의와 일본에 정착한 자본주의가 다르고, 북유럽에 정착한 자본주의는 여기와 또 다르다. 우리나라도 다르고. 물론 자본주의는 돈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라서 사상적으로 방어하려는 사람은 없다는 것도 싸잡아서 욕먹는 한 원인이겠지만.) 달이 차면 기운다는 것은 이걸 두고 말한 것이려나.




원래는 뒷 부분에 개인적인 글 한 문단이 더 붙어 있었는데, 그건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잘라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자기가 글을 쓴 의도가 온전히 전해지도록 노력한다. 문학, 특히 시의 경우는 그 글 자체의 아름다움이 의도가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글에 담긴 의미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장자는 <천도>편을 제환공에게 '책이란 성인의 찌꺼기'라고 말하는 방망이수레바퀴 깎는 노인의 이야기로 맺는다. 말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뜻이다.


내가 보기엔 껍데기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싶다. 게껍데기는 하나지만 그 안에 살아있는 생명이 꿈틀거리는지, 잘 익은 살이 놓여있는지, 짭쪼름한 간장으로 숙성되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대상이 된다. 어항바다를 활주하는 살아있는 게와 잘 익은 찜게와 정작 나는 안 먹지만 밥도둑이라는 간장게장이 같을 리는 없지 않은가.


또다른 예시


어쩌다보니 책에 대한 평가보다는 책이 놓인 맥락에 대한 평가가 되어버렸는데, 이렇게 책을 새롭게 읽으려는 시도는 분명 환영해야할 대상이다. 지금은 블로그를 때려치신 김우재님이 하셨던 말인 '창조적 오독'이랄까. 이런 글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다만 논리적 비약과 오류는 최대한 없애주시고;;)


예수전 - 8점
김규항 지음/돌베개

Posted by 덱스터
한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종교 중 하나는 기독교입니다. 개신교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용어 통일을 위해 이 글에서는 기독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왜 욕을 먹는지 모릅니다(전 좀 특이한 케이스...)[각주:1]. 욕을 먹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몇 가지를 나열해 보면 다음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1. 공격적을 넘어 배타적인 전도

2. 세속화

세속화는 이 땅의 많은 종교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불교도 아예 없다고는 말 할 수 없고, 천주교도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각주:2] 그러면 유난히 기독교가 많이 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 첫 번째 이유가 주된 근거라고 봅니다. 한번 밉보이면 착한 일을 하더라도 의심하게 되고, 나쁜 일을 하면 밉보이던 것만 강화됩니다. MB가 월급 전액을 기부했다고 했을 때 잘한 일이긴 하지만 꿍꿍이가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많았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입니다. 물론 사회 약자를 보호하겠다면서 복지 예산을 줄여나간 것은 잘못한 점이긴 하지만요.

전 이런 부분이 기독교인들이 근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믿음'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입니다.[각주: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조금은 애매하다 싶으니 쉬운성경을 보겠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자청하시는 분들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당신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당신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믿는다고 할 때, 저 위에서 말하는 '바라는 것들'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대들이 그렇게 외쳐대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전 그 나라가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란, 어떤 사람이라도 열심히 일한다면 굶어 죽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자기가 노력한다면 자기가 가진 모든 올곧은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정의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를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대표되는 현재 대한민국의 전도 행태에 반대합니다. 예수님이 있음을 아는 것, 그리고 그분이 원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들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In response to:
다시 불어야 할 영성의 향기, 한국 개신교의 '오래된 미래' - 조현, <울림>  [Hendrix 님의 글]
  1. 친구들은 절 기독교인 취급 안 합니다. 왜지? ㅠ_ㅠ [본문으로]
  2. 그렇다고 이게 문제가 아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세속화는 분명히 배척해야 할 현상입니다. [본문으로]
  3. 단테 『신곡』에서도 인용된 유명한 구절입니다. 천국편 24곡.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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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2008. 8. 28. 23:03 Writer

이단아

흔히들 기계과를 개과라고 부른다. 술을 퍼마시다 못해 개가 되어서 개과라는 것이다(개처럼 술을 퍼마셔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어떻게 보면 개과라는 표현은 남자들의 리그인 공대의 놀이 문화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난다는 슬픈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이런 개과의 술을 하지 못하는 이단아이다. 소주보다는 맥주를 좋아하고, 맥주도 한잔만 마시면 얼굴이 달아오르는 나는 내가 기계과의 이단아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소주 열병식 들이키는 동기들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주량을 가졌기 때문이다. 새내기 배움터 첫날 8시에 제일 먼저 죽어버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우리과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설이 되었다.

그래, 난 이단아이다. 물론 그것이 술이 약한 아버지를 둔 유전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원죄는 아니다. 오랜 기억을 떠올려 보건대, 난 어릴때부터 독특하기를 바래왔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이 학원에서 배우는 애들과 동급이 되기는 싫다는 오기로도 나타났었고(결국 다니기는 했다), 친구중 누가 말했듯이 45도 비틀린 시각을 가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 또, 사상적으로도 이단아가 되기를 바래왔다고도 할 수 있다. 잘 섞이면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는 흙탕물의 진흙과 같은 존재. 평범하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독특한 그런 존재. 이런 존재들에게 끌렸던 것은 이단아가 되리라는 복선으로 작용했을 것이고, 장담컨데 앞으로도 이런식으로 독특하게 사고하려는 버릇은 버리지 못할 것이다. 이런 버릇은 결국 모태신앙이었던 나에게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종교라는 금지된 성역에 비판의 발을 들이밀게 된 것은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들 한국이 이처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이유는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건 주로 목사들이나 그렇지만... 유럽이 망한 것도 믿음에 금이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옳은 설명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45도 비틀어 보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보는데서 시작하니까 말이다. 정말 한국은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엄청난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유럽이 세계 열강의 뒷전으로 물러난 것은 믿음을 가진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일단 내가 생각하는 결론부터 말해본다면, 정답은 '아니오'이다.

일단 옆나라 일본부터 보자. 일본이야말로 한국의 경제성장에 맞먹는 성장을 보여준 대표적인 대조군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은 말 그대로 '망했다'. 원자탄이 떨어진 히로시마는 쑥조차도 못 자랄 쑥대밭이 되었고, 폭격으로 온전한 너트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공장들은 크게 망가졌다. 이랬던 일본이 지금은 경제대국의 하나이다. 미국의 뒤를 바짝 좇아가는 놀라운 재생능력을 가진 국가인 일본의 종교는 어떨까? 놀랍게도 기독교가 아닌 신토라는 토속종교와 불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이 믿음의 힘으로 재생했다고 믿기에는 무언가 꺼림칙하지 않은가? 혹자는 일본은 전쟁 전에 기초적으로 쌓인 기술이 있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의 부흥은 믿음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약 1-3백만명(3% 이하) 정도 되는 일본의 기독교인들에 의해 일본이 재생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27%가 넘는 사람이 기독교인 한국은 왜 일본보다 크게 성장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저 멀리 중남미로 가 보자. 여기는 잘 알려져 있듯이 천주교 국가들의 세상이다. 인구상승률이 제일 높은 이유가 교황청에서 피임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라고 읽은 바가 있는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여기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구역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난 아직까지 중남미가 한국보다 살기 좋고 경제도 더 크다는 주장은 들어보지 못했다. 실제인지 아닌지는 숫자를 확인해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GDP로 매긴 순위에서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가진 중남미의 나라는 브라질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보통 '망했다'고 표현하는 유럽국가들은 왜 이리 GDP 순위가 높은지. 이래도 믿음이 경제발전을 보장해주는 확실한 보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말이 생각난다. 다름아닌 목사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하나님은 '성적을 올려주세요' 이런 기도까지 다 들어주시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공부하나 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좋은 성적을 보장해주시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결국 경제도 같은 것 아닐까? 나는 '경제좀 발전시켜주세요' 이런 기도를 올린다고 경제가 발전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물며 몇장 안 되는 시험지의 작은 숫자조차 허락하시지 않는데 과연 그 많은 지폐의 숫자를 허락하실까?

가끔 폭우가 오면 댐의 수문을 개방하기도 한다. 수문을 열지 않으면 댐이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상처를 딛고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문을 열기 위해 폭우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 내가 고등학생일 적에 시험기간에 드렸던 기도는 '성적이 잘 나오게 해주세요'가 아닌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오게 해주세요'였다. 노력이 꼭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믿음이 강한 신자라면 한국의 성장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태의 노력에 대해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것이라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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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2007. 8. 5. 00:13 Daily lives

으흠...;;

약간 조울증 증세가 보이는 것 같다.

막 신나다가도 갑자기 지쳐버리기 일쑤.

스트레스가 과도한 건지...(그렇지 않을리가 없잖아)

KPhO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난 블로그를 하고 있네...;;

작년에 탄것만큼은 타야 되는데, 타고 싶은데 모르겠다.. 확실히 작년보단 잘하지만 2학년에도 시험을 보는 사람들도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을 것 아닌가.

새대학물리가 참 좋은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한 단원에서 일반적인 대학물리책은 안 다루는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 특히 통계역학, 회절 분석. 통계역학은 약간 봤지만, 회절무늬 분석은 영...

물리문제중 재미있는 문제 하나를 알았는데 짜증난다. 변수끼리 분리가 안되는 형태. 상당히 풀기 힘든 적분식이 튀어나왔다.

생물숙제도 있는데...

학교 분위기는 영...

열심히 해야 할 시기인데... 허무한 감정만 들고.. 벌써 허무주의에 찌든건가...

다시 신나게 인생을 살 그런 날을 위해 열공이다.

P.S

찬페 후기. 찬페때문에 요번주 금요일에 완전 뻗었다. 전날 밤에 그렇게 찬송가를 불러댔으니...;;

요즘 계속 느끼는 건데 교회나 찬모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으면 무언가가 몸에서 들어 올려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

이것인가... 다른 사람들, 친구들이 말하던 예수님과의 알현(단어가 맞나...??)

애석하게도 난 아직 예수님과 알현한 적이 없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났을수도 있으니까. 내가 신실하지 못한 신자인 이유가 그것일련지도 모른다.

언젠간 만나주실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 지쳐버리곤 한다.

근성으로 버텨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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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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