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 21:53 Writer

고민의 밤

고민입니다.

제 작은 철학은, 명확한 사실관계에 기반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세상을 살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저는 세상사는 맑은 호수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맑은 물속을 한번에 들여다 보면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이 호수 위를 한가로이 날고 있는 매 뿐입니다. 하지만, 이 매는 높이 떠 있기에 물속의 일에 직접 관여하기에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현실을 버린 학문이 이러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할 이유는 현실을 바꾸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속을 거닐고 있는 물고기가 올바르다고 말하기에는 무리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물 속을 거닐게 되면 물 속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지만, 근시안이 되어 버려 적확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부지런한 바보만큼 이웃을 괴롭히는 자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무턱대고 물속에 달려들었다가 부지런하기만 한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됩니다.

왜 신은 인간에게 멀리 있는 것을 내다보는 능력을 주지 않은 것일까요. 천리안까지는 아니더라도, 호수의 전경을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늘에 호수를 살짝이라도 비추어 주었으면 이런 물 속에서 어느 정도는 멀리 내다보며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것밖에 허락하지 않은 대신 여행이라는 것의 즐거움을 선물한 것이라고 믿으니, 그나마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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