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의 이 날,

난 처음으로 칼날같이 차가운 숨을 들이쉬었겠지.

화살같은 뜨거운 빛에 눈이 따가웠었겠지.

18번째 생일.

어떻게 보면 다른 생일들과도 크게 다른 생일은 아닐 테지만

어떻게 보면 내 유일한 18번째 생일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처음으로 사회와 제일 닮은 곳에서 처음으로맞이하는 생일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혼자서 끙끙대다가 처음으로맞이하는 생일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생일일수도 있다.

그래서,

이 날을 계기로,

기억 속에만 묻어두었던,

자그맣고 조그마한 기억들을 꺼내어,

잊혀지지 않도록 0과 1들의 기록으로 나타내려고 한다.

내 기억의 끝자락은 어디일까...??

글쎄... 내가 아주 어릴 때

각막을 풀에 베였던 적이 있다는 것. 그정도일까?

끝자락에서 제일 강한 기억은 그것이지만

더 끝으로 가다 보면

유치원 시절의 유치한 기억들도 조금은 살아난다.

이성 관계라는 것 자체에 대한 개념이 없던 유치원생 시절.

놀러간 곳에서 어떤 여자아이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그냥 혼자 신나서 돌아다녔던 기억.

귀에 종이를 꾸겨 넣었던 기억.(필름 싸는 그 두꺼운 종이었던것 같다. 보통 씨리얼 포장지처럼 회색빛의 두꺼운)

싫어하다가도 귀에 좋다더라는 사기에 그대로 넘어갔던 기억(하지만 이상하게 뺀 기억은 없다)

그런 기억들도 있고

뒤로 오면

갈수록 후회심이 커져서

차마 여기에 적지는 못해겠는 잊고싶은 기억들이 있다.

가까운 기억 중에는

초등학교 6학년때의 당시엔 나도 몰랐던 감정들이 있고

지금의 나를 만든 우발적인 선택들이 있다.

역시 가장기억에 남는 우발적인선택은 물리이다.

어릴때부터 무진장 싫어했던 암기.

내가 물리를 선택한 주된 이유가 암기가 절대적으로 적은 과목이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갈 때 영재교육을 받을 때

영재교육을 왜 받고 싶으냐는 질문에

과학이 좋아서요라고 답했었던 어린 나.

과학이 좋았던 이유는 역시 암기거리가 사회나 국어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당시에 없었고, 잘하기만 했지 따로 관심을 가졌었던 때는 아니니까.

2학년때, 대학교 영재교육원에 가게 된 나는(2학년때 다니는 교육원이었다)

당당하게(?) 물리를 선택했었다.

그때, 이곳에들어오고 싶은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과학이 좋은데, 지학/생물은 암기거리가 많아서 싫고, 화학은 무기쪽과 연관이 되어서 평화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답했지만

신기하게 붙었다.

그래. 그때부터 내가 물리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겠지.

그렇게 그렇게 물리에 빠저 든 이후

어머니께 이끌려 억지로 경시학원을 다니게 ?榮?

그렇게도 싫어했던 학원.

하지만 학원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었겠지.

참 나도 특이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있는 길은 의식적으로 피해보려고 한다고 할까?

학원을 싫어한 이유가

뭐랄까, 천편일률한 대한민국의 학생 생활을 하기 싫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라는 녀석은 다르다는 것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왠지는 모르지만, 웬지 과자 부스러기를 힘들게끌고 가는 개미들을 보면서

난 그런것 쯤이야 하며 우월함에 빠져들어 있는 관찰쟁이 어린 소년처럼이라고 해야 되나?

하여튼 그렇게 학원의 도움을 받고

난 내가 그리 열망하던 과학고에 합격했다.

어릴 적드라마 카이스트를 너무 좋아해서

카이스트에 갈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인지

아니면 과학을 좋아하니까 일단은 찔러보자식으로 열망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어떻게 난 결국 과학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카이스트가 아닌 다른 대학으로 와 버렸지만.

그래, 그렇게 과학고에 들어간 다음에는

집안에 상이 났지.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가 떠나간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느끼게 된 상이었지.

결국 울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울면 그분이 슬퍼하실꺼야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나도 참 독하지...

그것으로 어떻게 된건지는 모르지만

과학고에서의 생활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생각보다 성적도 잘 나왔고.....

하긴, 그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거겠지만 말이다.

그때의 결심은, 글쎄 뭐랄까 지금의 내가 생각해봐도 상당히 유치하다.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할 것 같아 나중으로 미루어 두려고 한다.

그것을 기록하는 순간은...

참, 맞다 맞다.

기록할 것이 아직은 많이 남았지.

1학년 때 일명 NASA캠프라는 것을 갔다.

원래 이름은 ISC, International Space Camp라는 건데

그곳에서의 경험. 참 인상적이었지.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과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았고(메신저도 그랬지만 이제는 이메일 계정과 메신저 둘 다 사용하지 않는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것을 깨달았다.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찔러본 것이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적으로 옮기려는 노력으로 과장된 감동을 적어 내려갔다. 나도 대학은 붙고 봐야지.

그래도 참 슬펐던 것은

대한민국에서는 자비를 부담해서 그 캠프에 갔었어야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국가적으로 지원해 준 곳도 있었고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지원해준 곳(약간 과장?榮募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도 있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 이곳저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나라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내가 그곳을 다녀온지 2년이 다 되 가는데 작년엔 누가 갔는지조차 모른다.

아직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우주라는 넓은 바다에 뛰어들 준비가 안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포항공대 물리경시대회를 날려먹고(캠프 기간이 물리경시대회 기간과 겹쳤었다)

대비도 단단히 하지 못한 채 KPhO를 봤다.

결과는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은상.

은도 못탔으면 쪽팔렸을텐데 이런 느낌보다는

참 운이란게 나에게 왜 이렇게 호의적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왜냐하면 정말 말 그대로 그날 1교시 문제는 쌩으로 다 날려먹었거든.

2교시는 3번 교정작업을 거치긴 했지만(-_-;;)

동이라도 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 덜컥 은이라는 폭탄을 받았다.

또 기억나는게 있지.

겨울방학, 그 막장의 극한이 어디까지인가 겨루어 본 시간들.

난 동참하지 않았지만(그래도 평소보다는 막장짓을 많이 하기는 했다)

별의 별 신기한 경우가 다 있었다.

방학 보충을 아예 안나오질 않나,

그냥 집에 가질 않나,

학교에서 수업할 동안에 기숙사에서 자고

점심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점오로 하루를 끝내는 아이들.

물리 AP라는 그냥 그저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이 경험은 나름 중요한 것 같다)

역시 막장의 시간이라는 것에는 큰 변함이 없을 것 같다.

하긴, 고3들도 고3시절에 제일 막장으로 놀았다고 성토하니까(순전히 내 친구들의 말이지만)

참, 물리 AP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물리 AP, 실제로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랬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처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교수 밑에서 가치관 등을 익히고

다음에는 유명한 교수 밑으로 내려가서 연마하는 것이 제일 바른 학문의 길이라고 했던것 같다.

가치관을 익힌다...라. 정말 중요한 말인 것 같다.

현재 내 실력의 절반 이상은 특이한 가치관에서 나온다고 해도 내가 반박할 말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역시 기억에 남는 것은 마지막 여름방학이다.

올림피아드라는 같잖은 이유로 수업을 있는대로 다 빼먹고 다니면서 잠만 퍼질러 잤던 시간들

그래도 나름대로 그 시간동안 많은 경험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 많은 시간 속에서

특이한 가치관이 완성되었으니까 말이다.

그 많은 사색의 시간 속에서

남들이 알아보지 못했던 길을 찾아낸다는 것.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는 2학년 올림피아드 성적이 반영된다는 여론 때문인지

1학년때의 배는 잘 본것 같은데(그래도 많이 틀렸다. 뒤돌아서고 나니 틀린게 눈에 보이더라)

1학년 2학년 컷이 비슷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상이 같을줄은 몰랐다.

그래, 삼연타로구나.

언제까지나 2인자의 자리인가 고민했던 시절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 계속 가졌던 생각은

"마지막에는 웃으리라". 그렇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결과가 어떻느냐, 그거지.

마지막에 웃는자가 진정한 승자 아니겠어?

이제 2학기에 들어서는

난생 처음으로 서울로 상경해 가면서 학원을 다녔다.

글쎄, 내 인생의 큰 흐름길이 결정되는 시간이었기에

그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길을 따라 간다는 것에는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수학에 정말 약한건 절대적인 사실이니까.

물론 그래도 물리는 내가 알아서 했다.

중간만.

결국 물리 전문성면접 대비를 받았고(싫어하긴 했지만)

금방 적응하는 내 성격 탓에

불평하는 것 조차 잊어버렸다.

그렇게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나니

난 내가 꿈도 못 꾸었던(이라기 보다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대학에 들어와 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널럴한 것 같다.

다시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릴때 동경했던"이렇게 사회가 썩었다니" 80년대 운동권 놀이도 해 보고

다시 성적이라는 것에 이리뛰고 저리뛰고 분발하기도 하고...

아직 앞으로 남은 길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아니면 정해져 있되 내가 모르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가 보겠어라는 총으로 벌집을 만들어도 수그러 들줄 모르는 좀비같은 근성으로

버텨 봐야겠다.

1년뒤, 난 내가 얼마나 변했나 확인해 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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