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8. 18:53 Writer
518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청소년의 현실
0. 날도 날이니만큼 이것 저것으로 바쁘더라도 글은 하나 대충 던져놓고 가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시작해 보죠.
1.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흔히들 말하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서 나타나는 온갖 혐오정서 등이 사회가 불안정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자신의 기반세력을 다진 반석이 유대인에 대한 혐오정서이기도 했고, 최근의 사례를 보자면 재정이 미숫가루보다 더 곱게 갈려버린 그리스의 경우 사회 혼란을 등에 업고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등 혐오정서의 보편화가 사회혼란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볼 만한 근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꽤나 인상적으로 읽었던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The True Believer』에서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심리상태를 자신의 삶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해줄 더 큰 대의에 삶을 바친다고 분석했는데 이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있다. 1 2 경제는 불안하고 일자리는 없으니 내 망가진 삶의 원인으로 지목할 피의자가 필요했던 것이라 생각했었다. 얼마 전 진중권씨가 일베 이용자들과 설전을 벌이며 국가에 슈퍼에고를 투영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다음 글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http://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1158135
고소를 하겠다 하니 바로 장난이었다고 꼬리를 내리는 반성문인데, 만약 '내 삶을 바쳐 추구할만한 대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꼬리를 금방 내리지는 않았을 터. 내 가설에도 큰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일베 이용자의 대다수가 10대라는 것이 또 다른 문제 아니던가. 벌써 10대가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는다니, 학원에서 듣기 싫은 수업을 감기는 눈과 싸우며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아니면 우리나라에 내가 알지 못하는 아동노동착취가 벌어지고 있거나. 그런데 내가 믿는 대한민국은 아동노동착취는 없는 나라이기에, 아무래도 내 가설을 뒤집어야 할 것 같다.
2.
대선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일베충의 일기'라는 만화가 있었다. 꽤나 감상적인 만화로 기억하는데-'남들이 다 예라고 할때 아니오라고 했다가 인간 이하로 취급받은 사람들이 뭉친 것이다'였나?- 그 만화의 내용 하나 하나를 잘 곱씹어보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어디 한 곳에 발 붙이고 소속감을 누리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긴 사람이 달라 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나 비극은 이 소속감을 일베에서 찾으며 시작된다.
3.
공동체로서 하나됨을 느끼는 것에는 중독성이 있다. 축제와 각종 종교적 의식은 이런 하나된 느낌을 제공하기에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말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남들과 내가 하나로 묶여있다는 공동체의식은 강한 희열을 가져온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 것이라는 시를 쓴 사람도 있지 않던가. 심지어 08년의 광우병 사태의 원인을 '축제의 부재'에서 찾은 보수논객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너와 내가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정은 그만큼 강렬하다. 3
그리고 하나로 뭉치는 데는 처단해야 할 가상의 악을 하나 만들어두고 거기에 대해 전투적으로 반응하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여기에는 좌우 할 것 없이 모두 포함된다. 625 이후 빨치산들을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국군이나 군부통치 이후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대학생들이나 한국 여자를 싸잡아 이상화된 악마로 그려내는 일베 이용자들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를 뭉뚱그려 생각없이 사는 잉여인간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나 백인을 제외한 타인종 외국인들을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짐승으로 여기는 인터넷 하위문화 정서나 그 대상이 다를 뿐 본질적인 논리는 동일하다. 4호퍼의 말처럼, 광신도의 대척점에는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에 무관심한 회의주의자가 있을 뿐이다. 『맹신자들』에는 나치가 척결대상으로 보았던 공산주의자들을 잠재적인 협력자로 여겼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문장을 이해했다면 이 문단을 오독할 일은 없을 것이다. 5
4.
일베는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추천을 많이 받은 유머게시물들을 보관하던 게시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도 제일 질 좋은(?) 유머자료가 올라오고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사용하는 게시판은 학교커뮤니티와 SNS정도라 확인할 방법은 없다.(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이 유머자료들 때문에 똥통이라 생각하면서도 일베에 들어가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일베 이용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난 그들이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사회적 평판에 금이 가는 선택을 할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 자유를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짐은 짊어지는게 세상의 이치인데.
이렇게 유머게시물을 보면서 간간히 보는 정치적인 게시물들에서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그 게시물에 익숙해지게 되면 더 이상 문제의식을 못 느끼게 된다. 문화충격은 그 문화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에나 겪지 그 문화권에 적응하면 문화충격은 문화의 차이로 수렴하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어쩌다가 비슷한 글을 썼을 때 추천이 한가득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동화되어 간다.
4.1.
바로 위 문단의 결론은 순수한 픽션이다. 일단 내가 일베를 하지 않으며, 주변에서 일베를 한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공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누군가 일베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위 가설을 검증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는 한데, 경험상 '나는 일베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육성으로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검증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
초점을 약간 당겨 보면 지난 대선기간에 활동했다는 국정원의 댓글 관련 사건들과 최근의 초청강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518과 자신의 정체성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의 한 층을 구성하기 때문이겠지 싶다. 누구도 내가 나쁜 놈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 법이다. 자신의 정체성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 뭐 대충 수긍은 간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권이 걸려있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은 성급하기는 하지만, 소속됨 혹은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 것 아닐까.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 다 하니 나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아니면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소속감을 온라인상의 댓글로부터 찾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6.
소속감은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것이 남에게 공감받는 것. 인명(人命)을 벌레 목숨처럼 여기는 것에서 문제점을 못 느낀다는 것은 물론 문제이지만, 그런 곳에서나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 6 가정과 학교에서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일개 인터넷 사이트에서야 겨우 느낀다는 것인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보통 학생들이 학부모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시험지에 적힌 숫자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숫자로 매겨지는 등수이다. 교사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도 별로 다르지 않은 잣대가 이용된다. 그런데 댓글 한 줄 쓰는 것으로 비슷한 인정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경제학적 인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7.
교육백년지대계라 했다.
흔히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실생활에서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을 쓰는 경우는 다른 비슷한 사례로부터 얼마든지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경쟁이 거세다 못해 전쟁처럼 변해가는 현대 산업은 온갖 역사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기에, 굳이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보다는 이런 곳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더 금방 와 닿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역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사의 역할은 정통성 확립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명시되었듯 419혁명의 이념을 계승한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난, 근현대사를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발자국 위에 놓여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따라 더 답답한 것이련지도 모르겠다.
p.s.
글을 쓰다 보니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Getting more』의 한 꼭지가 떠올라 글을 갈아엎을까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꼭지인데, 반미적 근본주의자들을 고사시키는 방법은 그 근본주의자들을 떠받치는 일반 대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떠올리고 나니 이처럼 상대방을 훈계하는 어조의 글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팔아먹는 글일 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결과적으로는 있으나마나 한 글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일단 적었으니 부족하더라도 내보내고 보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 공개하기로 한다.
- 현재 책이 없어 정확한 인용은 뒤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 이 책이 내가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의 90% 이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다. [본문으로]
- 피천득 선생님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화세력을 두고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평가는 더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 변희재씨는 한때 변이희재라는 이름을 쓰던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의 두번째 경우를 염두에 두고 쓴 문단임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첫번째 경우에는 그냥 역사교육의 부재이기 때문에 어쨌든 교육이 까여야 합니다. 7번에서 계속.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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