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7. 20:13 Report/Books
크로스로드 SF 단편집,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 이영도.듀나 외 지음/해토 |
소설은 금방 금방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물론 난 픽션보다는 논픽션을 선호하지만.
이번 책은 크로스로드에서 기고된 SF 단편들 중 엄선(?)한 것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표지가 좀 에러이긴 한데 그래도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다. 이영도씨의 단편이 실려있다는 것으로 소장가치 상승(?).
아침에 트위터에 올린 것처럼 SF를 읽다보면 이론을 잘못 이해한 부분이 눈에 너무 크게 들어온다. 너무 크게 들어와서 정작 소설의 내용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게 문제. 이전에 Murray Gell-Mann이 TED 강연에서 '양자역학에 대해 잘못 설명하는 교양책이 시중에 넘쳐난다'는 말을 했는데, 내가 이전에 이 글에서 정확하게 그 예를 지적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똑같은 잘못된 이해가 단편 「0과 1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나의 측정'이 세계의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 말이다. 상당히 지독한 인간중심주의가 느껴지는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아인슈타인이 그랬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달이 내가 쳐다보고 있어서 존재한다는게 말이 되냐'라는 말로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주류(?) 물리학의 입장은 '물질의 존재는 물질이 서로 반응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에 더 가깝다.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을 묘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닮음보다는 차이가 그 사람을 드러내는 법이다. 이렇게 신나게 까 놓고 이런 말 하기는 좀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소설 내용은 마음에 들었다.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소설을 쓰다가 때려치운 경험도 있고, 더불어 시간여행에 대한 시각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1
기타 각 작품별로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각들은:
-이영도, 「별뜨기에 관하여」: 별자리를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명불허전. 그런데 예전에 인터넷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2
-듀나,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20세기의 재림을 보는 기분
간판격 단편. '기술에 대한 불신'이 간간히 내비치는게 특징이다. 이영도가 전 단편 중 하나인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에서 말했던 문화가 문화를 집어삼키는 시대에 대한 우려가 보이기는 하지만 소설의 중심에 놓인 그 불신이 점수를 까먹었다. 기술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기술을 잡아먹어야 한다는게 신념이라서.
-임태운, 「채널」: 채널 사이의 숨겨진 채널에 감춰진 음모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진짜 따로 할 말이 없다.
-송경아, 「하나를 위한 하루」: 아버지냐 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뒤끝이 좀 많이 남아서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괜찮은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중. 강풀의 만화 『26년』의 결말이 생각난다.
-설인효, 「진짜 죽음」: 속설에 진리를 본 자는 미쳐버린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름대로 내용은 참신했지만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내용이다. 일단 각종 실험의 결과가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그 발표를 규제하는 기구가 있다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독한 엘리트주의, 선민의식이 느껴져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핵무기에 대한 지식을 예로 들면서 아예 모르는 것이 나은 것도 있다는 주장을 하지만 역으로 핵무기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다른 지식(수소폭탄 등)에 대해서 쓰면 안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알면서도 쓰지 않는 것과 알지 못해 쓰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3
-노기욱, 「소울메이트」: 기계가 운명의 상대를 점지해주는 시대의 비극
왜 나는 '사람의 감정을 확인해주는 기계'들이 등장하면 제대로 테스트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일까? 진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기계가 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려준 커플들의 말로와 기계가 반응을 일으켰다는 거짓말을 한 커플들의 말로, 그리고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커플들의 말로를 전부 조사해야 할텐데 그걸 전부 조사한 통계가 사용되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난 다른 사람과 무언가 다른듯. 4
-김보영, 「0과 1 사이」: 시간여행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꼬여만 가고...
위에서도 말했듯 오개념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글 속에 녹아든 분위기가 재미있었지만.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부분은 이영도의 전 작품 『퓨처 워커』가 생각나게 한다.
-김몽, 「차이니스 와이너리」: 중국은 언제까지 악의 축이려나
내가 '아시아 연합' 방면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해서 그런 배경이 깔려있는 소설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중국에 대해 좀 많이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기분이 드는데(마치 냉전시대 소련을 비난하던 미국처럼) 내 이력 탓일듯 싶다. 그 외에는 평범.
-김선우, 「양치기의 달」: 타 행성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인간은 언제라도 인간성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기분이 드는 단편.
-백상준, 「우주복」: 인간 외계인 몰라요 외계인도 인간 몰라요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 물론 나는 읽은 후 페르미온과 보존을 떠올리면서 물질과 원하는 경우에만 반응하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물질 사이의 반발은 전자가 페르미온이기 때문에 파울리 배타원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페르미온과 보존 사이를 진동할 수 있는 입자가 존재한다면 가능할지도라는 결론을 내리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난 역시 무언가 달라.
명불허전. 그런데 예전에 인터넷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2
-듀나,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20세기의 재림을 보는 기분
간판격 단편. '기술에 대한 불신'이 간간히 내비치는게 특징이다. 이영도가 전 단편 중 하나인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에서 말했던 문화가 문화를 집어삼키는 시대에 대한 우려가 보이기는 하지만 소설의 중심에 놓인 그 불신이 점수를 까먹었다. 기술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기술을 잡아먹어야 한다는게 신념이라서.
-임태운, 「채널」: 채널 사이의 숨겨진 채널에 감춰진 음모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진짜 따로 할 말이 없다.
-송경아, 「하나를 위한 하루」: 아버지냐 딸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족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뒤끝이 좀 많이 남아서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괜찮은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중. 강풀의 만화 『26년』의 결말이 생각난다.
-설인효, 「진짜 죽음」: 속설에 진리를 본 자는 미쳐버린다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름대로 내용은 참신했지만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내용이다. 일단 각종 실험의 결과가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해 그 발표를 규제하는 기구가 있다는 것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독한 엘리트주의, 선민의식이 느껴져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핵무기에 대한 지식을 예로 들면서 아예 모르는 것이 나은 것도 있다는 주장을 하지만 역으로 핵무기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다른 지식(수소폭탄 등)에 대해서 쓰면 안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알면서도 쓰지 않는 것과 알지 못해 쓰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 3
-노기욱, 「소울메이트」: 기계가 운명의 상대를 점지해주는 시대의 비극
왜 나는 '사람의 감정을 확인해주는 기계'들이 등장하면 제대로 테스트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일까? 진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기계가 반응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려준 커플들의 말로와 기계가 반응을 일으켰다는 거짓말을 한 커플들의 말로, 그리고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커플들의 말로를 전부 조사해야 할텐데 그걸 전부 조사한 통계가 사용되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봐도 난 다른 사람과 무언가 다른듯. 4
-김보영, 「0과 1 사이」: 시간여행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꼬여만 가고...
위에서도 말했듯 오개념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글 속에 녹아든 분위기가 재미있었지만.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부분은 이영도의 전 작품 『퓨처 워커』가 생각나게 한다.
-김몽, 「차이니스 와이너리」: 중국은 언제까지 악의 축이려나
내가 '아시아 연합' 방면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해서 그런 배경이 깔려있는 소설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중국에 대해 좀 많이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기분이 드는데(마치 냉전시대 소련을 비난하던 미국처럼) 내 이력 탓일듯 싶다. 그 외에는 평범.
-김선우, 「양치기의 달」: 타 행성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인간은 언제라도 인간성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기분이 드는 단편.
-백상준, 「우주복」: 인간 외계인 몰라요 외계인도 인간 몰라요
재미있게 읽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 물론 나는 읽은 후 페르미온과 보존을 떠올리면서 물질과 원하는 경우에만 반응하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물질 사이의 반발은 전자가 페르미온이기 때문에 파울리 배타원리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페르미온과 보존 사이를 진동할 수 있는 입자가 존재한다면 가능할지도라는 결론을 내리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난 역시 무언가 달라.
위에 있는 소설들은 전부 크로스로드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활자는 모니터보다는 종이 위에서 더 잘 읽히는 것이 현실이다.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 이영도.듀나 외 지음/해토 |
- 비록 신영복 교수님께서는 『강의』에서 이렇게 작은 차이를 부각하는 서양적 사고방식이 가져온 반인간성에 대해 통탄하셨지만 우리가 가진 그나마 쓸만한 몇 안되는 도구 중 하나인 것을 어쩌겠는가? [본문으로]
- 그런데 딱히 악평할 거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 엘리트주의와 선민의식을 딱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의식이 자기 자신을 규제하는데 쓰이면 발전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을 규제하는 순간 선민의식은 온갖 죄악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소설에서 나온 '국제문명보호연대'는 후자의 너무도 모범적인(?) 예이다. [본문으로]
- 플라시보 효과는 의외로 강력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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