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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5 글을 쓴다는 것

2008. 9. 25. 22:05 Writer

글을 쓴다는 것

사람들은 글을 쓴다는 것을 종이라는 그릇에 먹으로 정제된 생각을 집어 담는 것으로 생각한다. 분명히 걸러지고 또 걸러져서 잘 정돈된 생각을 담은 글은 향기가 난다. 하지만 낙서처럼 휘갈겨 댄 글들은 시궁창에나 어울리는 글들일 뿐일까? 물론 그런 글들은 대부분 눈이 썩어들어갈 것만 같은 쓰레기들이기는 하지만, 잘 찾아보기만 한다면 가공되지 않은 원석을 찾을 수 있다. 300년간 수학자들을 괴롭혀 온 어느 책 귀퉁이의 낙서가 그러한 원석의 하나이고, 절망에 젖어 길을 걷다가 의자에 걸터앉았을 때 엷은 가로등 불빛에 비친 한줄의 희망적인 글귀가 그러한 보석의 하나이다. 무심코 써낸 글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이다. 생각해 보건데, 생각을 거르고 걸러서 씌여진 글이라도 향기 아닌 향기가 나는 글도 있었다. 결국, 글이 생각을 거를수록 좋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거대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무엇이 좋은 글을 만드는 것일까? 그건 생각의 깊이가 아닌가 싶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 그것이 내면화되어 굳어진다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도 스쳐지나간 한 방울의 향수와 같은 진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을 아무리 거르고 거르더라도 원래 가졌던 생각이 인분과 같다면 악취를 풍길 수 밖에 없다. 예전에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배웠던 GIGO(Garbage In Garbage Out)라는 단어는 전자회로뿐만 아니라 뇌 속의 사고회로에도 적용되는 것이다.[각주:1]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의 깊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의 깊이를 깊게 할 수 있을까?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넓히는 것이 답일까? 많은 사람들은 많은 지식이 깊은 사고를 보장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생각의 깊이는 세계에 대한 이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지식은 분명히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까지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세계는 마치 흐린 공과 같아서,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공 안에 들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세계에 대한 이해이며, 지식은 이 세계라는 공을 바라보는 시점을 많게 해 주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방향에서 공을 바라본다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엔 어느 정도 이상에서는 더 이상 자세히 볼 수 없게 된다. 공 속의 안개를 뚫고 그 안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지식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각주:2]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각의 깊이를 깊게 할 수 있을까? 난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통찰력은 이 안개 속을 뚫고 볼 수 있는 능력과 같아서, 더 적은 지식으로도 흐린 공 속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통찰력은 지식으로는 깊어지지 않는다. 통찰력을 기르는 방법은 반복적인 사고 뿐이다. 이미 결론내린 사항에 대해 다시 한번 고려해 보고, 여기저기서 틀린 것은 없나 다시 고려하는 것, 이런 것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내는 것.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사고의 깊이를, 통찰력의 깊이를 깊게 할 수 있다. 수많은 것을 아는 만물 박사더라도 노스님의 통찰력에는 힘을 못 쓰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이다. 만물 박사는 아는 것이 많더라도 그 많은 지식을 머리에 넣느라고 깊게 사고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매일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는 노스님의 통찰력과 지혜에 못당하는 것이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한다. 그것은 나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글에 향을 담을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이렇게 글을 잘 쓰려면 깊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물론 사람은 생각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얽혀있는 인간 모습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라도 더욱 생각을 부지런히 하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1. 여담이지만, 이렇게 많은 법칙이 원래 만들어진 곳 말고도 다른곳에 많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을 보면 '세계는 양파 껍질과 같아서 모든 법칙은 서로를 닮아 있다' 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본문으로]
  2. 르 봉은 그의 저서 '군중심리'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많은 지식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믿음일 뿐이라는 것이다.(이를 뒷받침하는 통계적인 근거도 제시되어 있었으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것을 근거로 르 봉은 의무교육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난 이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의무교육은 원래의 사회에서는 발견되지 못했을 보석을 발견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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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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