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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9 이영도, [그림자 자국]
그림자 자국 - 10점
이영도 지음/황금가지

처음 작가 이영도를 접하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온 뒤 어떤 친구가 텍스트 파일이 들어있는 압축 파일을 메신저로 보내준 것이었다. 요즘은 내가 여건이 안 되어서 연락이 잘 안 닿는 친구이기는 한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말할 일이 생기리라 믿어두자.

그의 소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눈물을 마시는 새』이다. 일반적인 환상문학(사실 판타지라고 부르는 편이 속 편하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설정이 두드러지기 때문인데, 그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는 무언가 정이 안 간다. 내용이 꼬여 있어서 그러려나. 그래도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라면 역시 『드래곤 라자』이다. DR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연계작으로 『퓨처 워커』가 있다. FW라고도 부르는 연계작은 뒤로 갈수록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어서 글자가 한 눈으로 들어가 한 눈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그림자 자국』은 근래에 출시된 DR의 연계작이다. 그 사이에 머리가 굵어진 것인지 아니면 소설 자체가 좀 더 쉽게 쓰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데 서너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다. 그렇다고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택한 소재는 '그림자 지우개'라는 물건인데, 어떤 대상의 존재를 비워 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그 물건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돌아가고, 그 허공을 다른 인과관계들이 채우도록 한다. 때문에 잘 짜여진 인과관계의 거미줄은 허물어지고, 수십 마리의 벌레를 잡아두느라 이곳 저곳 때운 곳이 많아진 거미줄처럼 소설의 흐름도 매끄럽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소설에는 읽기 쉽도록 특이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일러두기를 보고 나서 소설을 읽으면 알겠지만, 문단에 붙어 있는 숫자와 그 그림은 조금씩 변화한다. 어떤 존재가 나타나고 사라지느냐에 따라 그림이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것인데, 힌트를 주자면 맨 왼쪽은 예언자의 존재, 중간 그림은 프로타이스의 존재, 우측은 시에프리너의 존재를 상징한다. 이 표시를 생각해 가면서 소설을 읽으면 여러 개의 세계가 평행하게 진행되는 소설의 중후반부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매번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그의 소설에는 매력이 있다. 가볍게 흐르는 문체와 무겁게 흐르는 내용의 이질적인 조화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와 같은 느낌을 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DR을 접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생소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을 자세한 설명 없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DR을 읽어보지 않고서도 이야기 자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읽지도 않은 책 때문에 이해의 깊이가 얕아진다면 억울한 일 아니겠는가.
 
그림자 자국 - 10점
이영도 지음/황금가지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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