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군중심리'(귀스타브 르 봉 저)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의 서평중에 히틀러가 이 책에서 사용되는 정치적 선동기술을 상당히 응용하고 있다는 글귀가 있는데, 이제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군중을 지배하려면 제일 먼저 신념을 주입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세뇌에 가장 유용한 방법은 바로 반복적인 암시라고 한다. TV방송과 라디오를 이용한 선전만큼 쉬운 반복적인 암시가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 바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편향성이 욕을 얻어먹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모른다. 말한 것처럼 반복적인 암시야말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긴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공통의 분노 대상. 군중을 움직이는 데에는 논리적인 이성보다는 감성과 본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용한 유태인 학살. 반미를 빨갱이로 몰아가면서 논리적인 이유따위는 없는 매카시즘. 어찌 보면 대한민국도 그리 커다란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시위하는 놈들은 다 빨갱이야라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직도 울려퍼지고 있는 것을 보면, 군중의 신념은 부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르 봉의 주장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반복적인 암시를 통한 독재자의 넘볼 수 없는 위엄. 이 위엄을 이용한 통치.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정권의 대통령들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에 가득 찬 보수세력. 한국현대사는 위엄은 그 위엄이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부터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 그 위엄에 대항할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서는 찬양과 맹종의 대상이다. 경외감도 경계해야 할 감정 중 하나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기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긴,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정말 자유의지로 행하는 것은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10%도 안될 자유의지. 무의식의 영역과 의식의 영역 중에서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면, 의식의 영역이 잠식당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리라.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보이지 않는 잠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