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날도 날이니만큼 이것 저것으로 바쁘더라도 글은 하나 대충 던져놓고 가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시작해 보죠.


1.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흔히들 말하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서 나타나는 온갖 혐오정서 등이 사회가 불안정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자신의 기반세력을 다진 반석이 유대인에 대한 혐오정서이기도 했고, 최근의 사례를 보자면 재정이 미숫가루보다 더 곱게 갈려버린 그리스의 경우 사회 혼란을 등에 업고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등 혐오정서의 보편화가 사회혼란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볼 만한 근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꽤나 인상적으로 읽었던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The True Believer』에서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심리상태를 자신의 삶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각주:1]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해줄 더 큰 대의에 삶을 바친다고 분석했는데 이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있다.[각주:2] 경제는 불안하고 일자리는 없으니 내 망가진 삶의 원인으로 지목할 피의자가 필요했던 것이라 생각했었다. 얼마 전 진중권씨가 일베 이용자들과 설전을 벌이며 국가에 슈퍼에고를 투영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다음 글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http://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1158135


고소를 하겠다 하니 바로 장난이었다고 꼬리를 내리는 반성문인데, 만약 '내 삶을 바쳐 추구할만한 대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꼬리를 금방 내리지는 않았을 터. 내 가설에도 큰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일베 이용자의 대다수가 10대라는 것이 또 다른 문제 아니던가. 벌써 10대가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는다니, 학원에서 듣기 싫은 수업을 감기는 눈과 싸우며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아니면 우리나라에 내가 알지 못하는 아동노동착취가 벌어지고 있거나. 그런데 내가 믿는 대한민국은 아동노동착취는 없는 나라이기에, 아무래도 내 가설을 뒤집어야 할 것 같다.


2.

대선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일베충의 일기'라는 만화가 있었다. 꽤나 감상적인 만화로 기억하는데-'남들이 다 예라고 할때 아니오라고 했다가 인간 이하로 취급받은 사람들이 뭉친 것이다'였나?- 그 만화의 내용 하나 하나를 잘 곱씹어보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어디 한 곳에 발 붙이고 소속감을 누리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긴 사람이 달라 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나 비극은 이 소속감을 일베에서 찾으며 시작된다.


3.

공동체로서 하나됨을 느끼는 것에는 중독성이 있다. 축제와 각종 종교적 의식은 이런 하나된 느낌을 제공하기에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말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남들과 내가 하나로 묶여있다는 공동체의식은 강한 희열을 가져온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 것이라는 시를 쓴 사람도[각주:3] 있지 않던가. 심지어 08년의 광우병 사태의 원인을 '축제의 부재'에서 찾은 보수논객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너와 내가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정은 그만큼 강렬하다.


그리고 하나로 뭉치는 데는 처단해야 할 가상의 악을 하나 만들어두고 거기에 대해 전투적으로 반응하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여기에는 좌우 할 것 없이 모두 포함된다. 625 이후 빨치산들을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국군이나 군부통치 이후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대학생들이나[각주:4] 한국 여자를 싸잡아 이상화된 악마로 그려내는 일베 이용자들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를 뭉뚱그려 생각없이 사는 잉여인간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나 백인을 제외한 타인종 외국인들을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짐승으로 여기는 인터넷 하위문화 정서나 그 대상이 다를 뿐 본질적인 논리는 동일하다. 호퍼의 말처럼, 광신도의 대척점에는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에 무관심한 회의주의자가 있을 뿐이다. 『맹신자들』에는 나치가 척결대상으로 보았던 공산주의자들을 잠재적인 협력자로 여겼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문장을 이해했다면 이 문단을 오독할 일은 없을 것이다.[각주:5]


4.

일베는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추천을 많이 받은 유머게시물들을 보관하던 게시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도 제일 질 좋은(?) 유머자료가 올라오고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사용하는 게시판은 학교커뮤니티와 SNS정도라 확인할 방법은 없다.(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이 유머자료들 때문에 똥통이라 생각하면서도 일베에 들어가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일베 이용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난 그들이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사회적 평판에 금이 가는 선택을 할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 자유를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짐은 짊어지는게 세상의 이치인데.


이렇게 유머게시물을 보면서 간간히 보는 정치적인 게시물들에서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그 게시물에 익숙해지게 되면 더 이상 문제의식을 못 느끼게 된다. 문화충격은 그 문화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에나 겪지 그 문화권에 적응하면 문화충격은 문화의 차이로 수렴하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어쩌다가 비슷한 글을 썼을 때 추천이 한가득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동화되어 간다.


4.1.

바로 위 문단의 결론은 순수한 픽션이다. 일단 내가 일베를 하지 않으며, 주변에서 일베를 한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공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누군가 일베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위 가설을 검증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는 한데, 경험상 '나는 일베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육성으로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검증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

초점을 약간 당겨 보면 지난 대선기간에 활동했다는 국정원의 댓글 관련 사건들과 최근의 초청강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518과 자신의 정체성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의 한 층을 구성하기 때문이겠지 싶다. 누구도 내가 나쁜 놈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 법이다. 자신의 정체성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 뭐 대충 수긍은 간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권이 걸려있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은 성급하기는 하지만, 소속됨 혹은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 것 아닐까.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 다 하니 나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아니면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소속감을 온라인상의 댓글로부터 찾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6.

소속감은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것이 남에게 공감받는 것. 인명(人命)을 벌레 목숨처럼 여기는 것에서 문제점을 못 느낀다는 것은 물론 문제이지만, 그런 곳에서나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각주:6] 가정과 학교에서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일개 인터넷 사이트에서야 겨우 느낀다는 것인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보통 학생들이 학부모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시험지에 적힌 숫자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숫자로 매겨지는 등수이다. 교사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도 별로 다르지 않은 잣대가 이용된다. 그런데 댓글 한 줄 쓰는 것으로 비슷한 인정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경제학적 인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7.

교육백년지대계라 했다.


흔히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실생활에서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을 쓰는 경우는 다른 비슷한 사례로부터 얼마든지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경쟁이 거세다 못해 전쟁처럼 변해가는 현대 산업은 온갖 역사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기에, 굳이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보다는 이런 곳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더 금방 와 닿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역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사의 역할은 정통성 확립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명시되었듯 419혁명의 이념을 계승한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난, 근현대사를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발자국 위에 놓여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따라 더 답답한 것이련지도 모르겠다.



p.s.

글을 쓰다 보니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Getting more』의 한 꼭지가 떠올라 글을 갈아엎을까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꼭지인데, 반미적 근본주의자들을 고사시키는 방법은 그 근본주의자들을 떠받치는 일반 대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떠올리고 나니 이처럼 상대방을 훈계하는 어조의 글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팔아먹는 글일 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결과적으로는 있으나마나 한 글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일단 적었으니 부족하더라도 내보내고 보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 공개하기로 한다.


  1. 현재 책이 없어 정확한 인용은 뒤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2. 이 책이 내가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의 90% 이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다. [본문으로]
  3. 피천득 선생님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4.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화세력을 두고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평가는 더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변희재씨는 한때 변이희재라는 이름을 쓰던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6.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의 두번째 경우를 염두에 두고 쓴 문단임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첫번째 경우에는 그냥 역사교육의 부재이기 때문에 어쨌든 교육이 까여야 합니다. 7번에서 계속.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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