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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편

처음에는 무위의 실천가 타입이 나오더니, 다음에는 자유로운 아나키스트가 튀어나왔다. 한 서너번 했는데 이 둘만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저 둘 사이 어딘가에 내 성향이 존재하는듯.

무위의 실천가
| 실천, 해탈, 공空, 무위
'무위'한다고 하여, '실천'과 등지라는 법은 없다. '무위' 자체가 실천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타입의 사람들을 '무위의 실천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세상을 관통하는 일관된 법칙은 없다. 세계는 변화무쌍, '변화' 자체가 천하의 도道이다. 그런 변화의 격랑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도 휩쓸리지 않는 지고한 자유인은 바로 이 타입의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모든 존재를 향해 자신을 개방하라! 세계 만물, 각각에 우주가 들어있나니! 이 타입의 동양사상가는? = 싯다르타, 장자, 원효, 장재
『철학 vs 철학』에서는?
  2장 자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아지타와 싯다르타
  4장 도란 미리 존재하는 것인가? 노자와 장자
15장 깨달은 자가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 원효와 의상
18장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장재와 주희
싯타르타
고타마 싯다르타는 모두가 알다시피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 즉 석가모니이다. 그를 철학자로 볼 수 있을까? 사상사의 맥락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실천가'였던가? 역시 그렇게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 교리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불교의 법을 설했던 이유도 중생들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랐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실천'에 관한 사상이 겨냥하는 것은 사실 모두 이것에서 비롯된다. 이 부류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싯다르타만큼 이 분야에 있어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다. 
[관련된 책]
장자
장자와 관련된 일화는 너무나 많다. 『장자』 자체가 이야기들의 묶음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장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고 싶다면 장자를 직접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워낙 알쏭달쏭한 말들이 많아서 그 속에 담긴 결을 이해하려면 좋은 해설서도 한 권쯤 필요할 것이다. 장자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흔히 그의 사상을 '도피적'인 것으로 알고 있거나, '신선놀음'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데, 이것은 그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다. 중국의 대동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무수한 이론들처럼 그 역시 실천적인 이유에서 그의 사상을 전개시켰다. 부, 명예, 권력 등 단일한 척도에 의해 좋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들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그것을 통해 무위의 삶, 자유롭게 벗어나고 재구성되는 삶을 말한 그의 철학은 삶의 적극적인 방식을 말한 것이지, 삶으로 부터의 도피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싯다르타와 더불어 이 계열의 철학자들의 대표격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된 책]
원효
이렇게 이름 난 사람이, 신라왕실과도 일정한 관계가 있었던 사람이 '무위의 실천가'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사상사적인 맥락에 봤을 때 그의 사상은 충분히 그럴만 한다. 원효가 종국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깊은 사유, 폭넓은 지식이 아니었다. 그는 '생각과 논의조차 필요없을 정도의 실천'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그 유명한 해골물 이야기는 직관적으로 알고, 생각하기 전에 그것을 실천하고야 하는 그의 사상과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늘 민중들과 함께 춤추고, 희노애락을 나눴던 그의 면모를 만나보자!
[관련된 책]
장재
장재는 주희보다 약간 앞선 연대의 사람으로, 송나라 시대에 성립된 신유학에 결정적인 기초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는 유학자로서, 향후 유학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를 명확하게 주지하고 있었다. 당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강력한 세력을 확장해온 불교와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있는 도가 사상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유학에 미래가 없다고 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그러한 자신의 생각에 오래전부터 중국에 전해진 전통적인 자연관, 즉 기의 흐름을 통해 세계의 유, 무가 나뉜다고 보는 견해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시대를 통찰하는 지혜와 정확한 판단력, 더불어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상상력까지 ‘지성인’이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췄다고나 할까?
[관련된 책]

'그냥 흘러가듯 살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살고있는 편이라(다른말로 정신나갔생각없다고 할 수 있다) 딱히 틀린말은 아닌듯 싶다.

자유로운 아나키스트
| 자유, 깨달음, 자연주의, 생명
"세상을 위해 내 몸에 터럭 하나라도 내놓지 않겠다!"라고 말하는 타입. 질서니 법칙이니 하는 말에 근본적인 거부감이 있다. 고정된 가치 기준이 없는 당신의 사유는 탱탱볼 마냥 어디로 튈지 모른다, 주의할 것은 한가지! 어떤 진리도, 근본 법칙도, 권력도, 국가도 몽땅 업수이 여기다 보니 '허무주의'에 빠져 몸을 버릴 수 있다. 모든 기성질서를 내려놓고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 법을 익혀라! 이 타입의 동양사상가는? = 혜능, 양주, 왕충, 범진
『철학 vs 철학』에서는?
  9장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가 가능한가? 양주와 한비자
11장 모든 일에는 절대적인 필연성이 존재하는가? 동중서와 왕충
12장 정신은 영원한 것인가? 혜원과 범신
14장 수양하려는 생각도 집착일 수 있을까? 신수와 혜능
혜능
육조 혜능이라 불리는 이 사람. 무려 1300년 전에 살았던 불교계의 대스타다. 그런데 '육조'는 왜 '육조'인 것일까? 그것은 그가 속했던 교단인 '선종'의 6대 조사라는 의미이다. 불교에는 크게 세가지 교파가 있는데, 율종, 교종, 선종이 그것이다. 율종은 계율을 중시하고, 교종은 자기 수양[참선]을 중시한다. 마지막으로 선종은 혜慧라는 글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혜', 지적인 통찰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율종은 우리에게는 약간 낯설 수도 있는 것이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유학의 영향력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아마도 민중들에겐 '계율'피로증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율종이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고 당나라 때까지 교종과 선종의 양립체제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혜능은 선종이 교종보다도 훨씬 더 영향력을 확대하던 시기에 활동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돈오)를 강조하고, 깊은 산 속에서 선문답을 나누는 선종의 오랜 전통에 비춰볼 때, 그가 이 부류로 분류된 것은 꽤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사상적으로도 그는 '마음'의 실체성을 부정하였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신수의 주장에, 없는 마음을 어떻게 닦느냐며 응수할 정도로 고착된 생각, 정주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관련된 책]
양주
기원전 400년, 동양철학사에서 흔히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 불리는 시기에 활동한 철학자다. 『맹자』 <진심>盡心편에 그의 사상의 일면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글귀가 전해진다. "양주 선생은 위아爲我의 입장을 취한다. 자기 몸의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아는 일을 하지 않는다."가 바로 그것인데, 사실 맹자는 비난조로 적었지만, 우리까지 그러한 태도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어떤 주장이란 늘 다양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전란으로 천하가 황폐해지고, 백성은 나날이 굶주리던 시기에 양주는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고 명예, 재산, 이념 등으로 자신의 몸을 얽어매는 당대의 각종 사상과 정치적 규칙에 반대하면서 위아의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양주가 보기에는 천하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외물外物(부, 명예, 권력)에 휘둘리기 때문에 전쟁이 끊이질 않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에 비춰 보자면, 진정 중요한 것은 사람이 각자의 자유에 따라 각자의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 국가, 권력, 명예, 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 부류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양주가 가장 급진적이지 않을까 싶다.
[관련된 책]
※ 양주가 직접 저술한 책은 전해지지 않으나, 『열자』『맹자』 등에 그가 가진 사상의 면모를 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왕충
중국 한나라 시대의 유명한 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고향마을을 주름잡는 천재였다고 한다. 8살 때는 논어와 서경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었고, 15세 때에는 당대의 메트로폴리스 낙양으로 가서 유학의 경전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했던 성장환경 덕에 급진적이고 과격한 정책들을 내는 그는 결코 중용된 적이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다행일 수도 있는 것이, 중용받지 못하다보니 더욱 공부에 매진하였고,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대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상은 유물론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인간은 자연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도 관철시킬 수도 없으며 오직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에 자신을 적응시킬 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사유에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무신론적인 성격도 발견된다. 자연이 객관적 존재이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인간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때 용龍의 자손인 황제의 신성도 별것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논리에 당대 지배층이 식겁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 천재이면서 반골인 경우, 그리고 반골을 반골이 되게끔 만드는 경우가 바로 왕충의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의! KOEI사의 유명한 게임 삼국지에 나오는 '왕충'과는 다른 인물임.)
[관련된 책]
범진
인간이 죽은 후에는 무엇이 남을까? 범진은 생명이란 몸과 마음의 결합체로 보았다. 그리곤 날카로움과 칼날의 비유를 들어 칼날이 사라진다면, 날카로움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몸이 없어진다면, 영혼 또한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400년경 활동했던 사람으로 영혼불멸론을 주장했던 혜원에 맞서 신멸론(神滅論)을 주장한 사람이다. "죽은 뒤에 영혼이 어찌되든 뭔 상관이람" 할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주장이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조건에서 가령 죽은 뒤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유교적 전통의 '제사'는 결코 의미 있는 짓이 못된다. 다시 말해 산 사람들의 일상적 생활에도 무수한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관련된 책]

이것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닌게, 비슷한 이유로 매우 고민했던 시간을 보낸적이 있어서 순간 뜨끔했다. 말 그대로 허무주의에 빠져 살던 시기. 물론 그 결론을 '알게뭐야'라고 내렸기 때문에(니체형님 감사) 그 이후 엄청 시니컬하게 성격이 변해버린것 같다.

보니까 공통점이라면 '법칙같은건 없음'인듯 싶다. 하긴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 '금지를 금지하라'가 대충 섞이면 저런 성격이 나오는지도.



서양편

처음 나온 것은 상식에 충실한 소시민(...). 나머지 하나는 감성적인 문필가(......). 무언가 동양편과 많이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기분탓이겠지...

상식에 충실한 소시민
| 상식, 평균, 평범, 무난, 둥글게 둥글게
상식에 충실한 당신은 김혜수한테 뺨맞을 타입. 뭔소리냐고? ‘엣지’가 없다는 뜻. 양쪽을 두루 살피고,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것'을 택하는 타입이다. 다같이 땡땡이 치고 놀다가도 어느샌가 자리로 돌아와 제 할일을 찾는 균형적인 당신은, 매력적이기보다는 밋밋한 게 사실. 그러나 극단의 사유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몹시도 어려운 일이란 것을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집대성의 철학'을 전개하거나, 흐름을 통합하는 사유를 펼쳤던 이 부류의 철학자들은? =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피히테, 당신
『철학 vs 철학』에서는?
  1장 사물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11장 우리가 보는 세계는 모두 동일할까? 칸트와 니체
12장 아름다움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칸트와 부르디외
13장 망각은 인간에게 불행인가? 피히테와 니체
아리스토텔레스
'상식' 하면 바로 이 사람! 따라올 자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을 이 사람이 정립했기 때문이다. 자연학, 형이상학, 문학이론, 윤리학 등등 그가 저술을 남기지 않은 분야는 적어도 17세기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 그는 왜 이렇게 많은 저술을 남긴 것일까? 그것은 그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유가 애초에 각각의 개별자들의 존재에 집중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식과 비슷하지 않은가? 각각의 경우들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만, 일관성을 가지고 전체를 꿰는 원리는 아주 부족한 우리의 그 '상식'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사유는 개별 문제들에 관해서 자세히 탐구하려는 태도를 제공해 준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의 할아버지쯤 되지 않을까 싶다.
[관련된 책]
  • 형이상학아리스토텔레스 지음 | 김진성 옮김 | 이제이북스
  • 희랍 철학 입문W. K. C. 거스리 지음 |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정치학아리스토텔레스 지음 |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 지음 | 강상진, 김재홍, 이창우 옮김 | 이제이북스
칸트
철학사상 이렇게 꼼꼼한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살던 동네인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나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고, 딱딱 맞춰진 일과에 따라 생활했던 사람. 그의 일상에 걸맞게 그의 철학도 매우 꼼꼼하게 전개된다. 마치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이 타입에 분류된 이유는 그의 실천철학 덕분이다. "네 행위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동하라"라는 그의 명제는 그가 얼마나 '상식'에 충실했는지를 보여 준다. '보편'이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점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바가 아니었던가?!
칸트는 자신이 한 말 중에 가장 위대한 말을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 남겼다. "이것으로 좋다!"라고 말이다. 평생에 걸쳐 강도 높은 사유를 하고, 『판단력 비판』에 이르러 이전의 것들을 가볍게 흔들어 놓았던 이 대철학자의 마지막 말이 의미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유란 집착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했을 때 나타나는 '능력'이라는 점이 아니었을까?
[관련된 책]
피히테
칸트 사후 독일 철학은 절정기를 맞는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로 더욱 잘 알려진 피히테는 칸트가 펼쳐 놓은 강력한 영향권 아래서 사유했던 사람이다. 열렬한 계몽주의자이기도 했지만,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프랑스식 계몽주의와 독일식 계몽주의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는 현실에서 '계몽'을 했고, 그 결과 혁명의 이념인 정치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독일은 오직 학자들의 머릿속에서만 강력한 혁명이 일어났다. 흔히 우리가 '철학' 하면 어렵다고 떠올리는 이유는 한국에 주로 들어온 철학사조가 이 시기의 독일 철학이었던 탓이 크다. 관념적인 사고의 극단을 보여 줬던 '독일 관념론'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 다른 누구도 아닌 '피히테'다. 소시민의 '정신승리법'이 생각나지 않는가?
[관련된 책]
이 타입의 마지막 철학자는 바로!! 당신!!!!
혹시 너무 평탄하게만 생각해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길~!

사실 손해보는거 엄청 싫어하는건 맞다(상관없나?). 그런데 니체와 반대편인거냐(...)

감성적인 문필가 타입
| 센스, 감성, 열정
동물적 감각+논리적 이성까지 겸비한 당신은 욕심쟁이, 후후훗! 감각과 동시에 ‘쓰임’까지 고려하는 섬세함을 가진 당신. 동물적 감각을 중시하지만, 이 감각은 명확한 데이터를 토대로 나오는 것이다. 좋아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센스쟁이 타입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동물적 감각과 함께 빛나는 통찰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어디 가서 미움 사기 십상인 타입+_+? 현대의 직업군에서 꼽자면 ‘디자이너’ 혹은 ‘설계자’에 가까운 이 부류의 철학자는? = 흄, 들뢰즈, 마르크스, 아감벤
『철학 vs 철학』에서는?
  8장 어느 경우에 인간은 윤리적일 수 있는가? 흄과 칸트
15장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헤겔과 맑스
26장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 데리다와 들뢰즈
28장 정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슈미트와 아감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동시에 유명한 회의주의자. 여기까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의외로 흄이 애덤 스미스의 절친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또 한 가지, 그가 '회의주의자'가 된 이유는 '시니컬'하거나 '허무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단순히 광대하게 펼쳐진 우주 앞에서 지적 겸손함을 보일 줄 아는 사람일 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가 살던 당대에는 초월적인 신 없이 평화와 행복을 상상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주 유쾌하고 평온한 상태에서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죽어 갔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성'에 꽤나 집착하는 태도를 보인 적도 있었는데, 결국엔 '이교도'라거나, '무신론자', '회의주의자'(이건 사실 꽤 모욕적인 표현이다)라는 악명을 얻었다. 하지만 후대에 칸트에 의해 정직한 사유가로 재평가되고, 들뢰즈에 의해 감각의 위대함을 보여 준 철학자로 높이 평가받았으니, 니체 말대로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야 다시 태어난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관련된 책]
맑스
20세기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상가를 딱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99%는 이 사람을 꼽을 듯. 적을 구워 먹어 버릴 것 같은 열정으로 글을 써 댔던 이 사람은 '천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정말 놀랄 만큼 면밀한 분석을 수행했으면서도 문학적인 감수성은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는다. 맑스의 책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꼼꼼하고 정밀한 분석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걸 가지고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인류 역사 전체를 살펴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맑스의 일상은 가끔 '혼돈 그 자체'였다고 한다. 가장 수입이 적을 때조차 당대의 중산층에 상응하는 정도였는데, 지출의 무능력과 사치로 인해 먼저 죽은 딸의 관조차 장만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생활에서도 유능한 '천재'란 정말 없는 것인가?
[관련된 책]
들뢰즈
"그는 너무나 굳센 나머지 실망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 허무주의적인 세기말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질병과 죽음에도 역시. 왜 나는 과거에 그에 대해서 떠벌렸던가? 그는 웃었다.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여기 있다. 슬퍼하는 건 너야, 멍청아. 그가 말한다." (들뢰즈의 죽음 이후 『르몽드』에 실린 리오타르의 추도문)
들뢰즈에 대해 그 자신의 발언을 제외하고, 이렇게나 그와 그의 사유를 잘 표현한 말이 있었던가? 긍정적 삶의 대가였던 들뢰즈는 그 어떤 '부정적인 것의 긍정성'도 용납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것은 그냥 부정적인 것일뿐 그로부터 긍정적인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좋아하는 '반성'을 엄청나게 경멸한다. 반성은 우리를 위축시킬 뿐이다!
들뢰즈는 '글쓰기' 그 자체에 관해서도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보통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형식의 글쓰기 실험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책은 '이해'할 수 없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는 있다는 것이다! 깊은 밤 고원 위에서 별 밭을 우러르는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싶을 때 그의 저서 중 아무 곳이나 펴 놓고 읽어 보길 바란다. 말들의 미로 속에서 오바이트하거나, 오만가지로 펼쳐지는 생각의 잔치를 볼 수 있으리라!
[관련된 책]
아감벤
'벌거벗은 사람들', 오직 생명 그 자체만 남은 사람들.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개념들을 현대사회를 철학적으로 독해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똑똑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은 하나의 사태를 다른 것들과 연결하는 통합적인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이 철학자는 그렇게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호모 사케르'를 현대로 소환함으로써, 현재의 '호모 사케르'를 드러낸다.
방랑하는 사람들, 자격 없고 소속 없는 사람들을 통해 자유와 대안까지 그려 볼 수 있을까? 더 자세한 내용은 『철학vs철학』이나, 아감벤의 다른 저서를 보시길! 어쨌든 우리 삶에서 '정치'를 사고할 때 주목해야 할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다는 사실!
[관련된 책]

문필가 타입은 할만한 코멘트가 별로 없어서... 유일하게 겹치는(?)건 가끔씩 소설쓰는 몽상을 한다는 것 정도?

그런데 결국 둘이 말하는건 '이것저것 조합해서 무언가 만들어내는건 잘 하는 타입'이라는 건가..



그냥 바넘효과로 생각하고 넘어가련다. 잠깐, 이거 '알게뭐야'랑 똑같은 반응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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