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재미있는 글이라서 퍼왔습니다 -_-;;

흠... 원래 과학에서 말하는 신은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쪽에 가깝죠.(물론 여기서 신은 만물에 대해 중립적인 신을 의미) 그리고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에 차이가 없다면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논리선별법을 통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는 쪽이고요.

종교적인 의미의 신은 과학적인 증명을 때려 치는게 옳다고 보기는 합니다. 언제까지나 '무엇이 과학인가'의 문제인데, 믿음은 과학과는 좀 거리가 있어서요. 그런데 과학적으로 논증할 때 기준을 누구의 것으로 삼느냐가 문제네요. 포퍼의 논의가 어느 정도 우수하기는 하지만 역시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각주:1] 쿤은 '정상과학'이라는 지속적인 체계가 존재한다고 한 것에서만 의의를 찾을 수 있어서요. 그래도 포퍼의 기준을 들이대면 '가설에 반증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가 과학적인 명제의 기준입니다. 종교에서 그런 부분을 찾기는 힘들죠. 사람이 살아도 신의 뜻, 죽어도 신의 뜻, 이런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다고 무신론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인간이란게 세계를 인식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논리에 부분 부분 구멍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런게 비이성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사실 비이성의 바다 위에 이성이라는 쪽배 하나 떠 있는 것이 인간의 심리일테고요. 글 자체는 유신론자의 논리가 비과학적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1. 포퍼대로라면 반증 하나에도 이론이 뒤집혀야 하는데 실제로는 실험을 의심하는 사람이 더 많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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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npeu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명론'이라는게 있습니다. 무신론의 '수줍은' 표현이라고 역사적으로 평하죠. '만물에 대해 중립적인 신'의 존재여부로 문제를 정식화한 순간, 이미 문제를 '다 끝난 것'으로 치워버린 것 혹은 수줍은 무신론으로 돌아간 것과 다름 없습니다. 사티레브가 아주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종교에 대해 논하려면, 그가 하는 것처럼 현실의 신, 현실의 종교, 현실의 믿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제우스든, 아후라마즈다든... 저 이야기에 등장하는 '학생'처럼 종교인들은 각자의 신을 믿지 '만물에 대해 중립적인 신'을 믿는 사람은 멍청한 '교수'에 속하는 과학자들밖에 못 봤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의 부재'를 '신'이라고 부르죠. (웬 신성모독)
    이런 말이 생각나네요. "푸딩의 증명은 먹어보는 것이다"

    2009.08.29 13:45
  2. Carrot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이클 셔머의 접근법이 좀 상식적입니다. 신은 초자연적인 것이고 과학은 자연적인 것이니 둘을 헷갈리지 말라, 뭐 이런 형태인데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2009.08.29 15:34
  3. Favicon of http://chew282.wordpress.com BlogIcon Donni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辛라면.

    2009.08.29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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