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나무의 그림자, 서울대학교, 2008

학교 내에는 연못이 있다. 자하연이라고 불리는 연못인데, 이름의 유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비의 호를 따 온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어느 단대에서 여기에 신입생을 투척(?)하는 환영식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사라졌다고 하고, 다리가 있었다고도 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무슨 바람을 맞았는지, 인문대 신양학술회관에서 공부를 하고 나와 자하연을 찾았다. 밤에 찾은 자하연은 낮에 찾았던 자하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비록 물은 혼탁하지만(예전엔 정말 맑은 물을 자랑했다고 한다만, 지금은 2급수이다) 야경 덕분인지 학내 최고의 연예 코스중 하나로 추앙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물론 솔로인 나는 이런 정보가 필요 없지만...

낮에 공부하러 가기 전에 들렀던 자하연은 물고기들의 천국이었다.

김정욱, 자하연의 붕어, 서울대학교, 2008

사진에서는 밝은 애들만 보이겠지만, 저 물 위에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것의 반은 검은 고기의 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내가 걸어다니면 물고기들이 날 쫓아 몰려오는 것을 보고서는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도 느꼈다. 무엇이든 자기보다 숫자가 많으면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다. 이쪽으로 몰려오는 개미 떼가 날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알게 모르게 피하게 되는 이유와도 같다.

물고기들은 사람이 걸으면서 생기는 진동에 반응해 모이는 것처럼 보였다. 언듯 이 물고기들은 길들여졌다는 생각을 했다. 먹다 남은 과자를 뿌려주는 존재에 이렇게 반응을 하다니. 한편으로는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다. 아무런 근심 없이(언제까지나 나의 편견이지만) 물 속을 거닌다니 말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저것이 과연 참된 자유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유로이 다닌다 하더라도 결국은 연못 안. 아무리 자유로이 다닌다 하더라도 지구 대기권 안일 뿐인 인간이 우주에 심취하는 이유가 이것과 같은 것일까?

김정욱, 낮의 자하연, 서울대학교, 2008

낮이 아닌 밤에 들렀던 자하연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낮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간데없이 사라지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만 남았다. 이것이 밤의 색다른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빛을 제거함으로서 빛을 쉽게 다룰 수 있게 해 주고, 이렇게 쉽게 다룰 수 있게 된 빛들로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원시인들에게 정복의 대상이었던 밤이, 이제는 가공의 대상이 된 느낌이다.

김정욱, 밤의 자하연, 서울대학교, 2008

기숙사로 가기 전 난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이 장면을 보고만 있었다.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보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흔들리던 마음이 진정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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