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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1 역사공부를 하면서 떠오른 짧은 생각 몇가지 (2)
내일 시험을 봅니다. '한국의 문화유산'이란 일반교양 과목인데, 역시 유산을 다루다 보니 역사가 자연스레 끌려 나오네요. 공부를 하다가(공부라고 해 봤자 프린트에 끄적거린거 복습하는 정도긴 하지만 -_-) 생각나는 몇가지 적어봅니다.


1.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기본적으로 '후대가 평가한 선왕의 기록'입니다. 왕이 죽으면 실록을 기록하는 실록청이 세워지고, 여기서 사초(史草 - 사관들이 기록한 왕의 행동 및 언행들)와 기타등등의 자료를 분석(해석이라고 해야 하려나...)하여 실록을 편찬했다고 하는군요.

재미있는 부분은 이것입니다. 1. 실록은 왕이 절대 보지 못했다. 2. 사초는 사관이 아니면 볼 수 없었다. 3. 사초 등 실록이 만들어질 때 사용된 자료는 모두 폐기되었다.(이를 세초(洗草)라고 한다네요). 4. 실록은 후대에 새로 나오기도 한다(정권 교체). 이때 기존의 실록은 보관되고, 개정실록이 같이 보관된다.

물론 1번은 세종때 어겨졌다는군요. 용비어천가를 짓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1, 2번은 지금의 정권이 좀 새겨 둘 필요가 있는 부분인 듯 합니다. 실록과 사초는 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많이 들어간 자료들입니다. 왕에게 이런 자료들의 열람을 제한한 이유는 보나마나 '왕에 의한 비판의 탄압'을 막기 위해서였지요. 지금 정권처럼 '잔소리 듣기 싫어하는 정권'은 새겨두어야 하겠습니다. 설마 조선시대보다 못한 정권으로 거듭나려고요...

4번도 또 재미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교과서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지요. 일각에서는 400번이나(100번인가요?) 고쳐진 누더기에게 교과서라고 이름붙일 수 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만 전 이걸 400보 신의 교과서(?)에 가까워진 교과서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뭐, 이건 중요한 건 아니군요. 하여튼 '정권이 바뀌어도 전 정권의 시각은 그대로 유지하는 정책' 이 하나는 높게 사야 할 것 같네요. 지금 행태를 보면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려고 탯줄에서 영양분 공급받던 힘까지 뽑아내고 있는데, 조선시대에도 그러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뎅겅... 하지만 이건 당연히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할 일은 아니지요.


2. 향교, 서원 - 교육기관

교육기관하면 다 성균관을 떠올리게 되는데, 기초교육기관(초중고등학교라고나 할까요?)은 향교와 서원이었습니다. 향교는 국가에서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었고, 서원은 사립으로 세운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향교는 교육 말고도 제사의 기능도 지녔는데, 15세기 말부터 군역을 면제받으려고 향교에서 한 자리 맡으러 기어들어온 사람들 때문에[각주:1] 교육 기능이 급격히 하락했다고 합니다. 결국 17세기에 이르러서는 교육은 전부 서원에서 이루어지고 향교는 제사의 기능만 남았다고 하네요.

서원은 16세기 즈음 힘을 얻기 시작한 사림[각주:2]세력이 사화[각주:3]를 피해 지방에 은거하면서 세운 사립교육기관입니다. 15세기 말부터 시작된 향교의 질적 하락과 함께 뜨기 시작했다네요. 향교처럼 교육뿐만 아니라 제사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었고, 나중에 이 서원들은 흔히들 말하는 학연의 구심점이 된다고 합니다.

요즘 공립고등학교의 질적 하락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사고(자립형 사립고등학교)나 특목고(특수목적 고등학교)가 뜨고 있지요. 또, 공교육을 믿지 못해서 사교육이 뜨고 있습니다. 전 이것이 향교가 추락하고 서원이 뜨게 된 시대 상황이랑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이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향교는 이름뿐인 곳으로 남고 서원이 실질적인 곳이 되었던 것처럼 고등학교가 이름뿐인 곳으로 남고 사교육이 실질적인 곳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뭐, 지금 상황을 보면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보이긴 합니다만, 아직은 되돌리지 못할 만큼 멀리 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반면에 대학 문제는 너무나도 멀리 간 덕분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지요. 고등학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한다는데, 솔직히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뭐, 공정택이한테서 뭘 기대합니까 -_- 벌써부터 서원을 장려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3. 이념의 전파 속도

조선 초중기에는 고려시대의 유산을 아직 못 버렸다고 합니다. 대략 15-16세기만 해도 조선시대의 유교적 사고방식보다는 고려시대의 전통적(당시엔 전통이지요 ㅇ-ㅇ) 사고방식이 우세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유교에서 강조하는 부계 중심의 친족 관념이 아니라 양측적 친족 관념이 우세했다고 하는군요. 재산분배도 아들 딸 가릴 것 없이 균등하게 분배했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이 제일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결혼에 있습니다. 보통 남자는 '장가간다'라고 하고, 여자는 '시집간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장가란 '장인어른의 집안'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 초기에 결혼을 하면 남편이 장인어른의 집에 가서 생활하는 처가살이를 하였는데 이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인이 남편의 집에 사는 시집살이는 17세기 이후 유교적 관념이 정착했을 때에서나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유교 이념의 전파 속도가 참 인상적입니다. 조선은 1392년, 즉 14세기 말에 세워진 국가입니다. 17세기 중반에 들어서 유교 이념이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건국이념이 사회 전반에 정착하는데 약 200여년이 걸렸다는 말이 됩니다. 대중은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각주:4] 이게 그렇게 강력할 줄은 몰랐네요. 50여년만에 민주화를 이룩(?)한 대한민국이 진통을 겪는 것도 슬슬 이해가 됩니다. 패러다임 변화는 늙은 사람이 죽음으로서 이루어진다는 누군가의 독설이 생각나네요.


4. 산수화

산수화는 산과 물을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이 그림들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기에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연유는 당시가 혼란의 시대였고(반란에 반란, 또 반란을 거듭해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앞에 나섰다가 개죽음당하지 않으려고 중앙 정계에 나가기를 피하던 사람들이 산속으로 은둔하면서 이런 행동을 미화하는 데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산수화는 송나라 때 본격적으로 발전한 이후, 고려 말 흘러들어와 유교 이념이 정착한 16-17세기의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했다고 하네요.

산수화에서 느낀점은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입니다. 지금의 개판인 정치판을 보고 생각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지식은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고 신영복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강물이 더러우면 발을 씼겠다는 고사도 생각납니다. 좀 더 힘을 기를 때 까지는 불의를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 당장 달라 붙어서 때려 부수어야 하는가. 이건 모든 사람들의 고민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때려 친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바꿀 수 있었다면 그들이 과연 때려 쳤을까요?


어릴 때 전 역사를 무지하게 싫어했습니다. 외울 것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식 조금 외우고 머리 굴리면 되는 물리를 참 좋아했습니다. 뭐, 물리 좋아하는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나중에 가면 역사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을 것이라는 한 은사님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역사에서 숫자가 아닌 흐름을 보면 역사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역사를 배우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당연히 숫자보다는 흐름이 더 중요하겠지요.(중학교 때 국사 선생님이 생각나는군요. 1년 내내 필기한 것이 두장이 못 되었습니다. 국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닌 흐름이라고 강조하시던 것이 기억에 남네요.)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요즘 들어 심해진 교과서 때리기는 근거가 빈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역사를 배우는 의미가 '역사의 실수를 통해 배워 실수를 막자'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반대한민국적인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종교를 주입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밸런스는 필요하겠지요. 지나치게 자학적인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유발하니까요. 하지만 반대한민국적인 부분이 아예 없다는 것은 종교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전 반대합니다.

잡담이 길었네요. 전 이만 공부하러 -_-;;
  1. 대한민국사 4권을 보면 대학생에게 군역을 좀 덜어주는 시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대학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무언가 상당한 싱크로를 자랑하네요. 군대는 누구에게나 기피의 대상인 듯 싶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지만 -_- [본문으로]
  2. 士林 - 사대부의 숲이란 뜻으로, 이전의 세력과는 다른 진짜 선비란 뜻이라네요. [본문으로]
  3. 士禍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勳舊派 - 조선이 세워질 때 공을 세운 세력)에 의해 흐드러지게 후려맞은(?) 사건들을 말합니다. [본문으로]
  4. 르 봉은 저서 『군중심리』에서 군중은 극도로 보수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보수란 단어가 넓은 스펙트럼의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여기서의 보수는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해야 할 듯 싶네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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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envyang.tistory.com BlogIcon 엔비앙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는 초큼의 관심도 없는 저라 그런지 뭔가 다 생소하게 들리지만 제 동생이 보면 참 좋아할 내용같아요 ㅋㅋ
    동생은 한국 사학과거든요 +_+
    서로 상대방한테 어떻게 그런과 가서 공부할 생각했냐고 신기해 함ㅋㅋㅋ

    2008.12.12 14: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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