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서 천만관객시대를 열었던 두 영화 중 하나인 <실미도>. 실미도라는 영화를 처음 본 때는 중학교 3학년 졸업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문화생활 자체를 별로 안 즐기다 보니(기껏해야 책이나 읽지)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아니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전 인생을 통틀어 열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뭐, 그것도 일단 내 인생 자체가 매우 짧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야기가 약간 옆길로 샛는데, 영화 실미도에서 두고 두고 회자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설경구가 총을 난사하며 '비겁한 변명입니다!'하고 외치는 장면 말이다.
이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유는 일단 문구가 자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겁하다와 변명하다 둘 다 강렬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진 단어이다. 비겁하다는 것은 정의감 없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겁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단어이며, 변명은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 둘러대기 위한 가림막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단어이다. 이 두 부정적인 이미지가 결합한 것이 바로 '비겁한 변명입니다!'라는 문구인데, 부정적인 이미지가 중복되다 보니 강렬해 질 수 밖에 없고 강렬한 이미지는 자극적이며, 자극적인 이미지는 뇌리에 깊게 남기 때문에 중독적으로 쓰이고 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유행이라는 것이 있듯이 이 문구는 이미 유행이 지난 짤방으로 전락해버렸지만 말이다.
오늘 내가 이 오래된 장면을 들고 나온 이유는 몇몇 '비겁한 변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책 좀 읽으라고 할 때 흔히들 하는 말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이 글을 쓰게 된 목적도 이것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 사람은 책을 읽을 시간이 주어져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봉사활동을 할 시간이 없어서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책을 읽는 데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도 똑같다.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공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이다. 물론 성적이라는 것은 이런 자기 노력이라는 단일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성적도 마음을 먹으면 어느 정도 이상까지는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도 전교 30% 안에는 들어야 공부 좀 열심히 했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소극적인 내가 싫다는 것(내가 그렇다)도 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행동해 보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다. 눈 딱 감고 실수 하는거다. 실수 한 다음 깔끔하게 잊어버리는 거다. 그냥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못하는거다. 인정하자.
과제가 너무 많아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신문을 못 보겠다고, 나중에 커서 인물이 된 다음에 정치계의 썩은 물을 갈아버리겠다고 말하지 말자. 인정하자. 그건 그냥 정치에 관심이 없는거다. 하루에 5분만 포털 기사 제목만 훝어주어도 요즘 무슨일이 있는지 대충은 알고, 30분만 투자해도 좀 깊게 알 수 있는게 요즘 인터넷 세상이다. 관심이 그냥 없는거다. 인정하자.
▶그래, 바로 이 장면이야
이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유는 일단 문구가 자극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겁하다와 변명하다 둘 다 강렬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진 단어이다. 비겁하다는 것은 정의감 없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겁쟁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단어이며, 변명은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 둘러대기 위한 가림막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단어이다. 이 두 부정적인 이미지가 결합한 것이 바로 '비겁한 변명입니다!'라는 문구인데, 부정적인 이미지가 중복되다 보니 강렬해 질 수 밖에 없고 강렬한 이미지는 자극적이며, 자극적인 이미지는 뇌리에 깊게 남기 때문에 중독적으로 쓰이고 잇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유행이라는 것이 있듯이 이 문구는 이미 유행이 지난 짤방으로 전락해버렸지만 말이다.
오늘 내가 이 오래된 장면을 들고 나온 이유는 몇몇 '비겁한 변명'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책 좀 읽으라고 할 때 흔히들 하는 말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이 글을 쓰게 된 목적도 이것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 사람은 책을 읽을 시간이 주어져도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봉사활동을 할 시간이 없어서 봉사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책을 읽는 데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도 똑같다.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공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이다. 물론 성적이라는 것은 이런 자기 노력이라는 단일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성적도 마음을 먹으면 어느 정도 이상까지는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도 전교 30% 안에는 들어야 공부 좀 열심히 했다는 말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소극적인 내가 싫다는 것(내가 그렇다)도 다 자기가 적극적으로 행동해 보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다. 눈 딱 감고 실수 하는거다. 실수 한 다음 깔끔하게 잊어버리는 거다. 그냥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못하는거다. 인정하자.
과제가 너무 많아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신문을 못 보겠다고, 나중에 커서 인물이 된 다음에 정치계의 썩은 물을 갈아버리겠다고 말하지 말자. 인정하자. 그건 그냥 정치에 관심이 없는거다. 하루에 5분만 포털 기사 제목만 훝어주어도 요즘 무슨일이 있는지 대충은 알고, 30분만 투자해도 좀 깊게 알 수 있는게 요즘 인터넷 세상이다. 관심이 그냥 없는거다.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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