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4. 05:07 Writer
왜 순수학문이 바보들의 학문이어야 하는가
시험은 월요일인데 공부는 안되고 해서 새로 RSS 구독을 신청했다. 그래서 지금 구독하고 있는 블로그 수는 27개이다.(나머지 하나는 블로그인지 아닌지 조금은 애매해서 제외). 구독 신청한 블로그는 김우재 님의 블로그이다. 예전에 내 입맛에 맛는 45도 뒤틀린 시각이 잘 드러난 포스트를 보았던 기억이 잇는데, 추천 RSS를 뒤적거리다가 발견해서 구독을 신청했다.
신청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RSS를 구독하게 되면 몇 개의 글이 읽지 않은 상태로 올라온다. 일단 이 글들은 상큼히(-_-) 무시해 주고 아래로 쭈욱 내려보았다. 어쩌다가 보니 이런 글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의 의미와 학풍이라는 것
한홍구 교수님의 『대한민국사』 라는 책을 보면(1권인지 4권인지 헷깔리는데 아무래도 1권인 듯 하다.) 대학교의 역사에 관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군부시절에 대학생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대학교가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렇게 기형적으로 자라난 '대학'이라는 제도가 위의 글 본문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올바른 대학의 의미가 증발해 버리는 결과를 나았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되었건, 지금의 대학교는 [고등학교 이후의 기초교육과정]처럼 변해 버린 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런 기초교육과정에 왜 자신의 돈을 써 가면서까지 공부해야 하냐는 일부 운동권(이 부분은 사실 잘 모르겠다.)의 주장을 본 기억도 있다. 기초교육과정인 만큼 정부나 기업에서 그 부담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
내가 보기에는 학부과정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사회 전체적으로 볼 경우 대학이 줄어드는 것이 이득이지만, 수요자라 할 수 있는 학생 개개인의 입장과 기업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정부에서 '대학을 강제로 통폐합하고 대학생 수를 줄인다'는 정책으로 나설 경우 폭동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이미 '대학은 나와야지'라고 말하는 학부모가 많은 상황에서 대학 수가 급감하고 대학생 되기가 특목고 들어가기보다 힘들어진다면 결과야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또, 일부에서는 '대학을 나온 자'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자' 사이의 계급이 형성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하는 듯 하다. 물론 이 지적은 그리 타당해 보이지는 않지만(이미 수많은 계급이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 이미 있는 계급차이가 심화된다고 해서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대학으로 나뉘는 계급은 그 전에 다른 것으로 계급이 나뉘지 않았을까?) 말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군가는 피를 보아야 한다. 그것도 한 세대가 일생에 거쳐서.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위의 글이 지적한 '학풍의 부재'이다. 나야 뭐 그런 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갓 대학에 입학한 08이지만(1년은 사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대학이 '학문의 중심지'가 아닌 '취업준비의 중심지'로 변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들 누구나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라는 말을 듣는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취업준비의 중심지'라고 하더라도 학풍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다. 위의 글에서 말하는 학풍이 '학문에 대한 토론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미 70년대부터 쭈욱 '운동권'이라는 '사회 제도에 대한 토론의 분위기'를 가진 집단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문제는 대학이 어떤 곳으로 변질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대학에는 이런 토론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가'이다.
필자는 이 문제의 답이 '순수학문은 바보들의 학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수학문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도박이다. 맨날 '왜 대한민국에는 학문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가' 라고 한탄만 하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 사람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박사학위를 수료한 사람이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먹이지 않아도(루머에 불과할 수 있다) 이미 본인부터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필자는 대학에 원서를 쓸 때 물리천문학부와 기계항공공학부 사이에서 갈등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원서를 넣기 직전까지만 해도 물리학부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6:4정도의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기계항공공학부에 들어와 있다. 부모님의 말을 듣기로 한 것이다.(물론 대학원은 의지대로 물리, 그것도 이론 쪽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왜 이런 현실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사실 먹고 살 수만 있으면 학문을 할 사람은 널렸다. 물론 내 주위가 대체적으로 학구열이 높은 편인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순수학문이 바보만 하는 학문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이유는 '생존을 걸고 하는 도박'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승률도 매우 낮다. 항상 불거지는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 문제만 하더라도(예전에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이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존재 자체가 위협이 받는 도박을 할 사람이 있을까? 난 거의 없다고 본다. 결국 학문이 더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명맥이 끊기지는 않는 운동권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사회 문제는 어찌 되었든 구성원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관심 속에서 비판이 싹트고, 비판은 토론을 가져온다. 순수학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을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토론의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까? 차라리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가 더 쉬우리라고 본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물리학부에 진학한 정말 절친한 친구가 너무나도 자기 과에 대한 자랑을 해 대자 이런 농담을 던진 적이 있었다. '부럽긴 부럽지.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배고플 것 같아.' 언제까지 술자리에서 이런 자조섞인 한탄을 해야 한단 말인가.
글이 홧김에 써서 그런가 조금은 두서없게 쓰였다. 독자는 이 점 양해해주길 바란다.
신청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RSS를 구독하게 되면 몇 개의 글이 읽지 않은 상태로 올라온다. 일단 이 글들은 상큼히(-_-) 무시해 주고 아래로 쭈욱 내려보았다. 어쩌다가 보니 이런 글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교의 의미와 학풍이라는 것
한홍구 교수님의 『대한민국사』 라는 책을 보면(1권인지 4권인지 헷깔리는데 아무래도 1권인 듯 하다.) 대학교의 역사에 관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군부시절에 대학생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대학교가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렇게 기형적으로 자라난 '대학'이라는 제도가 위의 글 본문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올바른 대학의 의미가 증발해 버리는 결과를 나았다고 볼 수도 있다. 어떻게 되었건, 지금의 대학교는 [고등학교 이후의 기초교육과정]처럼 변해 버린 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런 기초교육과정에 왜 자신의 돈을 써 가면서까지 공부해야 하냐는 일부 운동권(이 부분은 사실 잘 모르겠다.)의 주장을 본 기억도 있다. 기초교육과정인 만큼 정부나 기업에서 그 부담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
내가 보기에는 학부과정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사회 전체적으로 볼 경우 대학이 줄어드는 것이 이득이지만, 수요자라 할 수 있는 학생 개개인의 입장과 기업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정부에서 '대학을 강제로 통폐합하고 대학생 수를 줄인다'는 정책으로 나설 경우 폭동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이미 '대학은 나와야지'라고 말하는 학부모가 많은 상황에서 대학 수가 급감하고 대학생 되기가 특목고 들어가기보다 힘들어진다면 결과야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또, 일부에서는 '대학을 나온 자'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자' 사이의 계급이 형성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하는 듯 하다. 물론 이 지적은 그리 타당해 보이지는 않지만(이미 수많은 계급이 형성되어 있는 사회에 이미 있는 계급차이가 심화된다고 해서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대학으로 나뉘는 계급은 그 전에 다른 것으로 계급이 나뉘지 않았을까?) 말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누군가는 피를 보아야 한다. 그것도 한 세대가 일생에 거쳐서.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위의 글이 지적한 '학풍의 부재'이다. 나야 뭐 그런 것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갓 대학에 입학한 08이지만(1년은 사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대학이 '학문의 중심지'가 아닌 '취업준비의 중심지'로 변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들 누구나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라는 말을 듣는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취업준비의 중심지'라고 하더라도 학풍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다. 위의 글에서 말하는 학풍이 '학문에 대한 토론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미 70년대부터 쭈욱 '운동권'이라는 '사회 제도에 대한 토론의 분위기'를 가진 집단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문제는 대학이 어떤 곳으로 변질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대학에는 이런 토론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가'이다.
필자는 이 문제의 답이 '순수학문은 바보들의 학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수학문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도박이다. 맨날 '왜 대한민국에는 학문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가' 라고 한탄만 하지,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 사람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박사학위를 수료한 사람이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먹이지 않아도(루머에 불과할 수 있다) 이미 본인부터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필자는 대학에 원서를 쓸 때 물리천문학부와 기계항공공학부 사이에서 갈등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원서를 넣기 직전까지만 해도 물리학부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6:4정도의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기계항공공학부에 들어와 있다. 부모님의 말을 듣기로 한 것이다.(물론 대학원은 의지대로 물리, 그것도 이론 쪽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왜 이런 현실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사실 먹고 살 수만 있으면 학문을 할 사람은 널렸다. 물론 내 주위가 대체적으로 학구열이 높은 편인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순수학문이 바보만 하는 학문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이유는 '생존을 걸고 하는 도박'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승률도 매우 낮다. 항상 불거지는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 문제만 하더라도(예전에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이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존재 자체가 위협이 받는 도박을 할 사람이 있을까? 난 거의 없다고 본다. 결국 학문이 더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직도 명맥이 끊기지는 않는 운동권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사회 문제는 어찌 되었든 구성원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관심 속에서 비판이 싹트고, 비판은 토론을 가져온다. 순수학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을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토론의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까? 차라리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가 더 쉬우리라고 본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물리학부에 진학한 정말 절친한 친구가 너무나도 자기 과에 대한 자랑을 해 대자 이런 농담을 던진 적이 있었다. '부럽긴 부럽지.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배고플 것 같아.' 언제까지 술자리에서 이런 자조섞인 한탄을 해야 한단 말인가.
글이 홧김에 써서 그런가 조금은 두서없게 쓰였다. 독자는 이 점 양해해주길 바란다.
- 고등학생의 평균 대학교 진학률은 80%에 이른다고 한다. 자료에 따라 조금씩 숫자가 다르긴 하나 80%를 넘는다는 것은 조금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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