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밝다. 햇볕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일부러 햇볕이 잘 드는 방으로 자리를 잡았더니 어두워야 할 밤에도 햇볕이 든다. 달이 비추어준 빛은 달빛으로 부르는 전통이 있기는 하나 그 빛의 뿌리를 파고들다 보면 태양이 쏘아낸 빛에 도달하니 햇볕이라 불러도 (과학적으로는) 오류가 없을 것이다.

며칠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 하다. 와인버그의 『태초의 3분』에는 시안(cyanide: CN)의 흡수 스펙트럼의 얇은 갈라짐으로부터 우주의 온도를 예측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그 작은 차이가 내 눈을 끌었다. 계산해보면 밀리전자볼트 단위의 아주 작은 에너지 차이인데, 이것을 어떻게 물리적 지식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처음 든 생각은 C-N 결합을 수소원자 모형으로 단순화시켜 이 차이를 fine splitting이나 hyperfine splitting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세구조상수 계산에 전자의 질량이 사용되고, 여기서는 전자의 질량이 양성자의 질량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 설명은 너무 작은 숫자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가설은 깔끔하게 포기하였다.

다음 가설은 회전운동에너지가 양자화된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고전역학적으로 각운동량은 회전관성과 각속도의 곱으로 나타나며, 회전운동에너지는 회전관성과 각속도의 제곱의 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양자의 영역에서는 각운동량이 양자화되므로, 각운동량의 최소단위인 플랑크 상수를 시안 분자의 회전관성으로 나누면 각속도를 얻을 수 있으며, 이로부터 최소 단위의 회전운동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으리란 추론이었다.

지식을 총동원해보기로 했다. 플랑크 상수는 197MeV-fm이고 양성자의 질량은 938MeV, 분자 단위의 길이는 대략 Å정도의 차수이다. 환원질량(reduced mass)으로 취급하면 회전관성은 대략 6GeV-Å^2이고 전자볼트-제곱미터 단위로 나타내면 대략 -11승 정도, 플랑크 상수는 전자볼트-미터 단위로 나타내면 -7승 정도 된다. 따라서 플랑크 상수의 제곱을 회전관성으로 나누어주면 -3승 정도의 전자볼트 단위, 즉 밀리전자볼트 단위의 에너지가 남는다. 시안의 흡수스펙트럼의 미세한 갈라짐의 원인을 찾은 셈이다.

달빛이 밝으니 오랜만에 밝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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