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법칙으로부터 복잡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창발Emergence이라는 현상을 창으로 삼아 현실의 기업간 얽혀있는 경제구조를 살펴보았다고. 이번 경제민주화의 주요 척결대상이었던 순환출자가 대한민국만의 현상은 아닌 듯 싶다.[각주:1] 이 생각하느라 강연자가 마지막에 덧붙인 두 문장을 못 들었는데 댓글에서 지적했길레 다시 들어보니까 그 부분은 좀 그렇긴 하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밥그릇 다툼하느라 정작 일은 안한다'는 보편적인 정치인 비판. 좌우 논쟁이 이데올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논조의 발언인데 실제로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마련해주는 것 아니던가.[각주:2] 너무 이데올로기에 매몰되면 칸트의 정언명령이 갖는 한계를 겪게 되기는 하지만.


댓글에서 언급된 theRSAorg의 강연 동영상도 첨부. 여기서는 그 간단한 법칙을 '이기주의'로 정리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자기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정치사회적인 투자-로비-를 하고 그것이 더 많은 수입으로 이어진다는 것.



댓글에 자본주의가 인간의 물질적인 욕망을 동력원으로 삼는 사회체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를 허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간간히 보이는데, 글쎄올시다. 물질적인 욕망을 동력원으로 삼는다는 그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자본주의를 전복할수는 없다. 애초에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롱런하게 된 이유가 이 물질적인 욕망을 동력원 삼아 더 많은 풍요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갈아엎자고? 무언가 니체스러운 말이긴 한데, 언제까지나 자본주의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지 투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를 대안을 말하려면 자본주의가 가진 장점을 그대로 가져 갈 방안도 생각해두어야 한다는 말이다.[각주:3] 아직 난 그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간단한 법칙으로 복잡한 구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세포 자동자Cellular automaton 이론을 들 수 있겠다. 링크를 타고 위키백과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비교적 간단한 법칙으로도 상당히 복잡하고 화려한 현상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간단한 방정식과 적절한 초기조건을 가지고 호랑이의 무늬와 같은 복잡한 현상을 재현해낼 수 있는데, 이건 과학동아에서 확인하시길.


진화와 생명현상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잘 적응하는 놈이 살아남는다.' 진화론의 핵심은 이 단순한 법칙이다. 랜덤화를 거친 후 그 중 가장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놈만 남기고 한 사이클을 마치는 것. 진화란 있을 수 없다고 공격하려면 이 주장을 공격해야 하는데 엉뚱한 주장을 세워놓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 지적설계론처럼 이 간단한 과정이 어떻게 복잡한 다세포생물을 만들어낼 수 있냐는 주장의 경우에는 흰개미와 개미집의 경우처럼 '왜 그럴 수 없는가'를 보여야 한다. 하긴 뒤집어 생각한다면 '간단한 과정으로 복잡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를 증명할 수는 있지만 그 복잡한 구조에 다세포 동물이 포함된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하는[각주:4] 생물학자들의 책임도 없지는 않겠다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환원이기는 하지만 불평등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세포 생물의 경우 특정 세포가 다른 세포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각주:5] 물론 이건 사실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사실명제고, 사람은 당위명제를 좇으며 살지 사실명제에 매달려 살지는 않는다.

  1.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주요 국정과제에서 탈락하면서 그 꿈은 8:45 하늘나라로...ㅠㅠ [본문으로]
  2. 뒤집어 생각해보면 실제 정치인들도 나름대로는 자기 신념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3. 여기서 내 보수적인 색채가 드러나는군...-_-;; [본문으로]
  4. 박테리아가 다세포생물이 될 정도로 긴 시간동안 실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본문으로]
  5. 인간 뇌는 무게가 2%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모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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