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혹성탈출> 시리즈의 프리퀄 정도 되는 영화를 한편 봤었다. 꽤 재미있게 보았던지라 이번에는 원작이라는 책을 보기로 했다.

혹성 탈출 - 8점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소담출판사

스포일러를 적당히 당해서(위키에서 검색해본 것이 화근이었다) 그다지 반전이랄 것은 못 느끼게 되어 아쉽다. 1963년의 소설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만들어진 영화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느껴졌다. 이번 서평은 이 둘을 비교하는 것이 주가 될 듯 싶다.

우선 영화부터.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은 개봉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원작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부분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공포를 그려낸다. GMO 작물을 둘러싼 논쟁과 마찬가지로 과학이 주된 공포의 원천이다. 마지막에 점과 선으로 표현된 바이러스의 전파는 결국 기술에 자만했던 GEN-SYS사의 실수로 일어난 것이 아니던가.

책으로 돌아와 보면 여기에서의 공포는 소설 H. G. Wells의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종류와 비슷하다. 웰즈의 소설에서 후대 인류는 놀고 먹고 자다가 기술과 이성을 잃어버린 부르주아의 후손들인 엘로이와 지하에서 노예처럼 일만 하다가 기술과 이성만 발달해 인간성을 잃어버린 프롤리타리아의 후손들인 멀록으로 나뉘게 되고, 멀록이 엘로이를 사냥한다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있다. 불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간의 몰락 원인은 엘로이의 몰락 원인과 마찬가지로 '인생이 편해져 생각하기도 싫어하다 보니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다. TV 보느라 주말가는줄 모르는 사람들, 긴장하란 말이다.

소설에서는 유인원이 인류를 대체하게 되는 과정이 나오는데,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지는 잘 모르겠다. 유인원은 똑똑해지고 인류는 멍청해지면서 유인원이 인류를 쫓아낸다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되도록 놔둘 사람들일까? 이전에 TED 강연 중 인간처럼 행동하는 보노보가 나오는 강연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쓴 것처럼 인간은 인간같은 유인원들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을까? 프랑켄슈타인 컴플렉스는 강하다.

조금 생각해볼 점은 소설에서 '이성=언어'라는 등식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언어는 논리적인 사고에 중요하다만 언어 없이 논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할까? 이영도의 『~를 마시는 새』시리즈에서 언어 없이 텔레파시로 의사소통하는 나가라는 종족이 등장하는데, 이 종족에게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들어 사고에 언어는 필수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등장한다.[각주:1] 어릴 적부터 귀가 멀어 수화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들도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데, 이런데도 언어가 사고의 필수조건일까?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세계의 한계는 언어의 한계"라면, 언어가 채우지 못한 세계 또한 존재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혹성 탈출 - 8점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소담출판사
  1. 소설 속에는 없고 각 장이 시작하기 전 잠깐 나오는 글에 등장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복구 끝난 글 리스트입니다. 복구하는 순서대로 올라갑니다.
latex는 http://www.codecogs.com의 엔진을 이용합니다.
설사 이 엔진이 나가더라도 latex 형식의 수식은 볼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관리하기 한결 쉬워질 듯 싶네요. 새로 물리/수학 관련해서 글을 쓰려면 못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귀찮은 관계로(...) 이전 글들만 복구하겠습니다. 급한 글 있으면 덧글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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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Predictably Irrational의 저자 Dan Ariely의 TED 강의. 2장인가 3장 내용일 거다.

Predictably Irrational (Mass Market Paperback)10점
댄 애리얼리 지음/Harper Collins

한글 번역으로도 나왔는데, 애석하게도 원서가 더 싸다. 나야 더 좋지만(...).

상식 밖의 경제학 
댄 애리얼리 지음, 장석훈 옮김/청림출판

동영상을 간단하게 줄인다면 제목처럼 "선택할때는 마음대로겠지만 실제로는 아니란다". 많은 선택이 얼마나 그 선택이 제시되는 방법에 따라 바뀌는지 설명하고 있다. 동영상에 등장하지 않은 결과는 같지만 중간이 다른 문제로는 다음이 있다.[각주:1]

Q1. 철로가 고장나 작업자 6명이 철로를 손보고 있다. 한명은 오른쪽에서 철로에서 삐져나온 못을 박고 있고, 나머지는 드릴까지 동원해 가면서 철로를 바로 세우고 있다. 작업을 감독하고 있는 당신은 커피를 들고 자판기에서 돌아선 순간 철로에 무인으로 운영되는 기차가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기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프로그래밍 했어야 하는데 정류장에서 무언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더군다나 작업하는 동료들은 드릴의 소리 때문인지 기차가 들어섰는지도 알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5명의 동료들에게 뛰어가기에는 기차가 너무 가까이에 와 있다. 다행히도 기차가 들어오는 철로를 바꿀 수 있는 레버가 근처에 있다. 하지만 철로를 바꾸게 되면 다른 철로에서 작업하고 있는 동료가 위험해진다. 레버를 당겨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Q2. 철로가 고장나 작업자 5명이 철로를 손보고 있다. 드릴까지 동원해 가면서 철로를 바로 세우는 꽤 큰 작업이다. 육교 위에서 작업을 감독하고 있는 당신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본 순간 철로에 무인으로 운영되는 기차가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기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프로그래밍 했어야 하는데 정류장에서 무언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더군다나 작업하는 동료들은 드릴의 소리 때문인지 기차가 들어섰는지도 알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5명의 동료들에게 뛰어가기에는 기차가 너무 가까이에 와 있다. 그 순간 당신은 어느 정도 이상의 충격을 받은 기차는 멈추도록 프로그램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에 있는 뚱뚱한 동료를 철로 위로 떨어뜨리면 기차는 반드시 멈출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과적으로는 한명 vs 5명이라는 선택이지만 두 문제가 이 선택을 제시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답도 달라진다.

책에는 등장하지만 위 동영상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선택은 경로 의존적이다. 쉽게 말한다면 이전에 뭘 선택했느냐에 따라 이번에 택하는 선택이 바뀐다는 것. 흔히들 씀씀이를 키우면 소비를 원래대로 줄이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그것과도 관련이 있다.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전문점 커피가 처음 마시기는 꺼려지지만 한번 마시고 나면 심심찮게 먹는 것을 발견하는이유로 제시하고 있다.(당장 나부터 커피 마실때마다 에스프레소 찾아서 주머니가 고생중이다.)

다른 강의도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잘만 찾아서 보면 위 책의 거의 모든 내용을 읽지도 않고 알 수도 있을듯 싶다. 그러고보니 책 서평을 아직 안 쓴 것 같네. 
  1. 도덕과 감정이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제이다. 엄밀히 말한다면 동영상과는 전혀 다른 원인으로 답이 바뀌는 경우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0:52)
괜찮아 잘 될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머리는 회의하지만 가슴은 위안되는 말. 난 왜 항상 머리가 듀얼코어로 돌아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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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오랜만에(?) 휴가를 나왔다. 그냥 저냥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이러면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서 산책이나 할까 하고 집을 나섰다.

휴가나와 만날 사람이 없다니 내 인생이 그렇지 뭐 -_- 

활자중독이라는 병리현상에 찌든 무거운 육신을 끌고 다니는지라 뚜벅뚜벅뚜벅 길을 걷다가 들어간 곳은 서점이었다. 서점에 들어서면 서점의 명당자리를 떡하니 꿰차고 있는 것은 베스트셀러 코너이다. 베스트셀러 코너를 얼핏 훑어봤는데 있는게 긍정 뭐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 위주였던지라 볼 것 없겠구나 싶었다. 경제/경영 서적도 좀 있긴 했는데 그런 쪽에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했다. 외국인 저자들의 책을 번역한 번역서의 경우 원제를 적어주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더러는 번역한 제목보다 번역 전의 원제가 책의 내용을 더 충실히 반영하는 경우도 있고, 같은 제목으로 번역되었더라도 다른 원제를 가진 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물론 장하준 교수는 책을 영어로 썼다. 그래서 원제를 다는 것이 어색해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내 저자들이 쓴 책에서도 영어로 제목을 다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꽤 전에 사볼까 했다가 아는 것들을 다시 읽는 수준에서 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구매를 포기한 『통계의 미학』에는 Statistical Thinking이라는 영어 제목이 붙어있다.

통계의 미학
최제호 지음/동아시아
통계는 사기 아닌 사기다. 그래서 통계에 문외한이라면 이런 책을 읽는 편이 좋을지도.

내가 서점에서 보았던 책은 이 책이었다.

습관부터 바꿔라
전옥표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Changing Habit은 "습관 바꾸기"다. 제목을 살리고 싶었으면 Change your habit쪽이 맞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살펴봤더니 역시 영어 제목도 같이 달려있다. 그걸 다 나열한다면 무의미한 광고가 될 테니 넘어가자. 영어 제목도 붙이기는 이 저자만의 취향일지도 모르니 다른 책들을 살펴보자.

제대로 시켜라 
류랑도 지음/쌤앤파커스
Performance Leader랑 "제대로 시켜라"는 의미는 얼추 비슷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전자가 이끌어가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밀어붙이는 느낌.

많지는 않지만 그런 책이 있기는 있다. 그렇다고 꼭 경제/경영 분야의 책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알라딘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훑다 보니 『SKT』라는 야구를 엄청 잘할것만 같은 제목의 소설도 있고, 신간 리스트에는 살까 고민되는 『커피 마스터클래스』라는 책도 있으며(에스프레소는 맛있다), 몰랐는데 『철학 콘서트』에도 Philosophy Concert라는 영어 제목이 같이 기록(?)되어 있다.

허구한날 국어책에서 외쳐대는 "바른말 고운말 우리말을 사랑합시다"라는 진부한 구호를 외치려는 것은 아니다. 당장 길거리를 돌아다녀 봐도 안경집 창문엔 영어로 무엇이 아름다운 눈인가 논하고 있고 음식집 벽면엔 "우리는 당신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영어로 쓰고있는 것을 보면 이미 영어는 반 모국어의 단계에까지 올라섰다. 수능의 외국어 영역이 사실상 영어 영역 아니던가. 단지 왜 한글로는 이런 미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가,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Posted by 덱스터
스포일러 주의!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 10점
루퍼트 와이어트

「카우보이 비밥」을 아시는가. 이 미래빈티지공상과학만화의 4화 Gateway shuffle편을 보면 과격자연보호운동가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가진 무기 중에는 인간과 유인원의 2% 다른 유전자에만 반응하는 생체무기도 등장한다. 유전적으로 매우 작은 차이도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데(당장 TV속 연예인과 거울 속 사람을 비교해보자. 둘의 유전적 차이는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이 2%에만 반응한다는 생체무기도 헛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카우보이 비밥 - 기념판 (7DISC)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노바미디어
정주행 충동이 가끔씩 이는 미래빈티지공상과학만화「카우보이 비밥」

「혹성탈출」이라는 영화는 인간이 지배당하고 유인원이 지배하는 행성에 불시착한 사람이 겪는 모험을 그린다. 본 적은 없지만 들어보기는 귀가 빠지도록 들어봐서 제대로 된 번역인 "유인원의 행성Planet of the Apes"보다 혹성탈출이라는 명사가 더 익숙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 불시착한 행성은 미래의 지구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주인공은 좌절한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고 한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이 미래의 지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물론 이전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원인으로 문명이 뒤집히기 때문에 프롤로그라 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다음은 영화 소개.

과학자 ‘윌 로드만(제임스 프랭코 분)’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아버지(존 리스고 분)를 치료하고자 인간의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켜주는 ‘큐어’를 개발한다. 

이 약의 전임상시험(동물을 대상으로 한 약효실험)으로 유인원들이 이용되고, '윌'은 그 중 한 유인원에게서 태어난 어린 ‘시저(앤디 서키스 분)’를 데려가 자신의 집에서 키운다.

가족처럼 살고 있던 윌과 시저, 시간이 지날수록 ‘시저’의 지능은 인간을 능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저’는 이웃집 남자와 시비가 붙은 ‘윌’의 아버지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인간을 공격하고, 결국 유인원들을 보호하는 시설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자신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서서히 자각하고 인간이 유인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본 ‘시저’는 다른 유인원들과 함께 생존을 걸고 인간들과의 대 전쟁을 결심하는데……


보통은 영화를 보면 조용히 그 영화에 집어삼켜진 채로 영상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외마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 탄성이란 "원숭이를 인간으로 만들어놨네". 상대방에 자신을 이입하는 성향은 인간의 본성이라지만[각주:1] 그걸 넘어서 이건 원숭이를 힘이 좀 세고 털만 좀 많은 인간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사람과 유인원의 대결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대결이었다. 숨어지내다가 발견되고, 잡히고, 학대받고, 그러면서 점차 반기를 들게 되는 사람들과 원래 그들을 사람으로 볼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의 대결. 영화 「맨 인 블랙Men in Black」의 외계인들을 우리 주변의 자신을 숨긴 사람들로 보면[각주:2] 색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다.

맨 인 블랙
배리 소넨필드
2편은 캐비넷 속의 세상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뿐.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왜 인간은 항상 자멸을 자초할 짓을 하는가이다. 이 영화에서 점과 선으로 세련되게 표현한 재앙의 바이러스처럼[각주:3] 앞서 언급한 미래빈티지공상과학만화에서도 과격환경운동가들이 자신들이 만든 재앙의 바이러스에 멸사함을 암시하는 엔딩이 있다. 후자는 전통적인 인과응보 엔딩이라면 전자는 급속히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프랑켄슈타인 컴플렉스일듯 싶다. 확실히 문화의 흐름 자체가 "언젠가는 밝아질 미래"에서 "어두워지기 기다리는 미래"로, 좀 부정적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데, 그만큼 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일까.[각주:4]

영화에서 등장하는 신약(?)인 Alz-113에 대해 첨언하자면, 실제로 동물을 대상으로는 임상실험이 문제없으나 인간 대상으로 바뀔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전설적(?)인 탈리도마이드Talidomide가 있다. 동물 실험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던 이 약은 실제로는 엄청난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수많은 기형아들이 태어나고 나서야 알려졌다. 「카우보이 비밥」의 4화에서 등장한 그 2%에 작용하는 생체무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영화에서 사용된 Alz-113은 바이러스 계열인데, 실제로 DNA가 무슨 작용을 하는지 검사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이용해 세포에 DNA를 주입하는 실험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박테리오파지에 원하는 DNA를 넣어 대장균에 그 DNA를 주입하는 방법은 대학 교재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방법이다. 하필 바이러스를 이용한 덕분에 신나게 바이러스가 퍼져버리는 악몽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 10점
루퍼트 와이어트
  1. 신경학적으로는 거울신경의 작용이라고 한다. 이 거울신경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고 원활한 사회생활이 가능해진다. 이 신경에 문제가 생기거나 해서 사회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자폐증이라고 부른다. [본문으로]
  2. 성적소수취향자라는 거창한 문제까지 갈 것도 없이 편부모 가정, 가정폭력, 고아, 부잣집 아이들 사이의 가난한 아이 등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다. [본문으로]
  3. 영화 크레딧 올라간다고 바로 나가지 말 것. 그게 끝이 아니다. [본문으로]
  4. 물론 2차대전 이후 이성(理性)에 대한 불신이 엄청나게 떠오른 것도 그 한 이유일 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데카르트는 수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기하학과 대수학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 위대한 발견이 겨우 부록 따위로 여겨지는 그 유명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cogito ergo sum". 아무리 고찰해 보아도 고찰하고 있는 어떤 무언가가 존재해야만 하는데, 그 존재가 내가 아니면 무엇이겠냐는 말이다.

물론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는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지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무언가는 이 감각에 대해 회의하고 있고 또 지금 이 잡다한 생각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카르트는 그 무언가가 "나"라고 확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그 무언가를 나라고 확언하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등골을 타고 뒷골을 강타했다.

"으앗 차!"

얼떨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하고 있다. 이거 또 독서실에서 소리지르는 어떤 무개념이 또 나타났다며 성토하는 게시글이 학교 커뮤니티를 도배하겠군.

"쉬잇!"

참 잘도 조용히 시킨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크게 소리지를 줄은 몰랐나 보다. 얼굴에 당당히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다니.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했다.

"네가 그렇게 갑자기 차가운 캔을 대지만 않았어도 조용했을 거거든?"

"눈 앞에서 손을 몇번이나 흔들었는데 정신을 못 차려? 도대체 뭣에 그리 넋이 팔린거야?"

"숙제"

책상 위에는 깨끗한 미적분학 책과 공식이 이리저리 흩어진 A4용지가 널부러져 있었다. 벡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 써먹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이거 기한 지난건데?"

맙소사.

"그보다 빨리 짐 챙겨. 다음 수업 지각하겠다."

"지각하지 뭐."

"지각하면 F인데?"

응? 지각하면 F라니, 그 수업은 화요일에 있는데?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잠깐. 황급히 손목시계를 보았다. 요일을 가리키는 바늘은 무심히 TUE라는 글자를 향해 서 있었다.

"으악!"

또 모든 독서실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오늘 밤 게시판 다운되겠군.



"42번 또 지각인가? 옥세화 지각..."

"아직 아닙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헐떡거리는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외쳤다. 시계를 보니 2시 29분. 아직 수업 시작 1분 전.

"...은 아니군. 자리에 앉기 전 30분이 되지 않는다면."

시계의 숫자는 2:29:54. 꽤 많은 계단을 뛰어올라왔던 다리는 내 자리까지 다시 뛰어야 했다. 독서실에서 깨워주는 친절함을 보였던 재현이는 먼저 가겠다면서 같이 가자는 내 절규를 무시하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태평히 옆자리에 앉아있다. 병주고 약주고도 아니고 야속한 녀석.

"자, 수업 시작. 294쪽. 3부 열역학이다. 설마 1권 가져온 사람은 없겠지?"

설마가 사람잡는다. 급하다고 집히는대로 들고 뛰어왔더니 2권이 아닌 1권을 가져왔다. 옆자리에선 당연하다는 듯 2권을 꺼내며 날 한심히 쳐다본다. 네가 날 그렇게 놀래키지만 않았어도 제대로 들고 왔을 거거든? 임시방편으로 맞는 책을 가져온 척 1권을 펼친다.

"열역학은 원래 물리와는 전혀 다른 분과에서 시작한 학문이다. 현대 학문 체계에서 초기의 열역학과 가장 가까운 학문은 화학이다. 옛날 사람들은 열의 원인을 칼로릭, 번역하자면 열소,의 운동으로 여겼다는 사실이 이를 잘 드러낸다. 열역학이 물리에 편입되게 된 배경에는 ..."

너무 뛰었더니 졸리다.

"... 물질의 합성비가 ... 원자설이 ... "

눈이 너무 피곤하다. 눈만 잠깐 감자. 잠은 안 잘거다.



깜짝이야. 흰 바탕 위에 검은 글씨가 마구 흩날린다.

'분자 하나 하나의 위치는 완전한 우연을 이룬다. 분자는 상자의 모퉁이에 있을 수도 있고, 한 가운데에 있을 수도 있으며, 벽의 정 중앙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분자가 한 위치에 모여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별적으로는 우연에 속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필연인 것이다."'

전공 책을 읽는 기분이다. 내가 이런 책을 읽을 리가 없으니 현실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자각몽인가?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어떤 작가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그 인터뷰어가 이야기를 쓸 때 어디까지 이야기를 구상해 놓느냐고 묻자 인터뷰이는 이렇게 대답했었다.「커다란 흐름만 잡아 놓고 나머지는 손 가는대로 씁니다. 이야기 자체는 정해져 있지만, 그 순간 순간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순전히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적지요. 이전에 실수로 잃어버렸던 원고를 다시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초고를 찾아서 비교해보니 줄거리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글이 되어있더군요.」 이야기는 필연이지만, 단어는 우연이라. 전체는 필연이지만, 개별은 우연이라.'

그 작가의 인터뷰라는 것, 읽어 본 적이 있다. 뉴먼 로스라는 작가일 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날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진다. 나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던 나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거기 멍때리고 있는 자네. 그래서 도입 된 물리량이 무엇이라고?"

다행히 별로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엔트..'

옆구리를 찌르는 손가락에 놀라 얼떨결에 일어서고 말았다. 꿈꾸고 있는데 찌르는 건 뭐람.

"일어서서 대답할 필요까진 없는데 그쪽이 편하다면 편한대로 하도록."

응? 찔린 방향을 쳐다보았더니 재현이가 입을 벙긋거리고 있다. 시간은 가고 있고, 무슨 질문인지는 모르겠고, 벙긋거리는 입을 보니 엔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일단은 한 글자라도 시작해 보자.

"엔...트.."

"...로피. 좋아. 졸아도 수업은 듣고 있네. 수업을 계속 진행하지."

얼떨결에 맞추었다.



수업이 끝났다. 다행히 다섯번째 지각은 면해서 F는 피했다만, 다음 번에도 늦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천천히 독서실로 내려오는데 재현이가 뒤에서 따라잡았다.

"잘만 자던데 대답은 어떻게 또 한거야?"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조금 뜸을 들이고 대답해주었다.

"그냥, 그렇게 대답하면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아리송한 표정의 재현이를 남겨두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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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10점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이다미디어

에릭 호퍼라는 사람을 제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 문구에서였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The opposite of the religious fanatic is not the fanatical atheist but the gentle cynic who cares not whether there is a god or not.

---

광신도의 반대는 광적인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에 무심한 회의주의자이다.

-Eric Hoffer, The True Believer


결국 이 출전을 샀고, 아직 첫 두어페이지만 읽은 상태로 책장 어딘가에 방치해두고 있다. 200여쪽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책인데도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는, 고급 어휘를 신나게 구사하고 있어서... 그래도 서평을 써 볼까 했던 흔적은 블로그에 방치된 서평 원고로 남아있다.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해 서평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반쯤 쓰다 방치해두었다.

이 책은 에릭 호퍼의 자서전이다. 원제는 Truth Imagined. 직역하면 "상상한 진실" 정도 되겠지만, 출판사에서 붙인 이름이 더 어울린다. 책에 막 관심이 커질 때 즈음 시력을 잃고, 다시 그 시력을 회복하자마자 미친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생을 거의 노숙자에 가깝게 살아왔다고 덤덤히 회상하는데 마치 중세 은유시인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면 그 옆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모여앉아 귀 기울이는 꼬마 아이들처럼 정신없이 읽었다. 글을 묘사하는데 우리나라 정서에는 좀 동떨어진 중세 유럽이라는 배경을 끌고 온 것은 박학하고 대재(多才)한 떠돌이라는 그의 인상을 가장 잘 묘사하는 단어가 음유시인이라 생각되어서다. 그가 남기고 간 시는 민요가 되었고 그의 조언에 농장을 괴롭히던질병은 수그러들었다.[각주:1] 어떻게 보면 한국 민담의 '지나가던 승려'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서전을 읽으며 놀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탐독했다는 것이다. 자서전 사이 사이에 끼어 있는 잠언(aphorism)을 읽다 보면 그 예리한 날에 흠짓 놀라게 된다. 그 예리한 날은 다독이라는 단단한 숫돌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 예전에 독서를 강권하는 글에서 말하기를 "읽은 시간이 생기면 책을 읽겠다는 사람은 영원히 책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다"라 했는데 그에 걸맞는 예라 하겠다. 요즘 들어 책을 많이 읽고는 있지만 그래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 투덜거리곤 하는데, 살짝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날이다.

오늘 한 번 방랑자의 방랑길을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10점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이다미디어
 
  1. 전자는 11장의 내용이고 후자는 14장의 내용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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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9. 16:59 Daily lives

근황

1.
조금 있으면 입대 1주년입니다. 상병 달았지만 군번이 꼬여서 한동안 막내일은 계속할듯...

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58kg에서 4키로가 빠졌다가 10키로 불고 다시 3키로를 여차여차 빼서 결과적으로는 +3이 되었지만(엉엉) 이상하게 팔의 근육은 더 갈라졌습니다. 어쩌면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복근 갈라짐도 현실이 될지도...(물론 빛의 힘을 잘 사용하면 얼핏 갈라진게 보이긴 합니다만...) 대신 기분 좋았던 헐렁한 28인치 청바지는 안드로메다행인듯 싶습니다. 이런.

1키로 뛰는것도 힘들어했던 사람이 3키로를 13분 안으로 뛰는 괴물이 되었고(혹자가 말했던 군대 2년이면 모두가 터미네이터이다는 사실입니다. 노력만 한다면.) 통계역학 책 정독을 끝냈으며(물론 콩나물 물 주듯이 남은 수식은 없습니다) 지금은 장론 책을 보고 있습니다. 필요했던 부분은 전자기장의 해밀토니안과 푸아송 괄호 값이었는데 다른 것까지 공부하려니 할게 많네요.(이상한 단어들이 보이신다고요? 외계어니까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부대 안밖으로도 사고가 많고 나도 친 사고가 좀 되고 해서 다이나믹한 군 생활 하고 있습니다. 보안상(이라 쓰고 이미지 관리라 읽는다?) 사고들에 대해서는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막 제초시즌이 되어 제초기를 들고 신나게 풀을 베어넘기고 있으니 아침부터 영하 20도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던 작년 겨울이 생각나는군요. 당시에는 무슨 배짱으로 내복 하나 안 입고 버텼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내복은 안 입을 거지만...


2.
블로그 수식이 많이 깨져있습니다. 안 것은 꽤 오래 전이지만 군인의 휴가는 황금보다도 소중한지라(?) 실제로 고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듯 싶습니다. 임시방편은 공지사항에 올려놓았지만 공지사항의 빠른 시간은 중국집에서 주문한 짜장면이 출발하는 빠른 시간과 동의어라는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물리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된다면 지금 보고 있는 란다우 장론 책에 대한 주석이 될 가능성이 높겠네요. 이 인간이 워낙 천재인지라 설명같은거 상세하게 하지는 않는 편이라 수식이 개판인 것이 꽤 많아 보입니다. indice 위아래를 마음대로 바꾸질 않나, 순서가 중요한데 무시하질 않나, 오타가 심심하면 튀어나오질 않나...

The Classical Theory of Fields (4 Revised, Paperback)
Landau, L. D./Butterworth-Heinemann

그래도 이론물리학적인 설명이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깔끔하도록 단순한 수식에서 모든 지저분한방정식을 이끌어내는 책의 진행 방식은 일품. 물론 현실은 이론과 거리가 멀죠. 실제 발견도 지저분한 방정식에서 단순한 수식의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지만. 덕분에 이 책을 공부하면서 얻은 깨달음은, 나중에 연구하게 되거든 책상에 벡터 미적분학의 주요 수식을 덕지덕지 붙여놓고 해야겠다는 것.


3.
그럭저럭 괜찮은 군 생활을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생각하고 있던 한 가지는 아직 실행을 못 하고 있습니다. 소설 쓰기. 일단 표현하는 법을 다듬고는 있지만 실제로 소설을 쓰기까지는 좀 더 걸리겠지요. 아웃라인만 잡아놨는데 내용은 언제 채울지 모르겠습니다. 분야는 SF가 될 듯 싶습니다. 물리광이 SF를 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줄 그런 소설을 쓸 생각인데 그게 마음처럼 될지는 의문이네요. 누구나 자신의 개그는 그 상황에서 최고의 개그라고 착각하는 법이니까요. 설마 혼자 개그치고 혼자 웃어본 적이 없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시겠죠?

조금 느리게 흐르긴 해도 아직 고인 물은 아닙니다. 몇주 전 외박나갔을때만 해도 잘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었는데 근육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성격도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양입니다. 우울하시다고요? 일단 엎어져서 팔굽혀펴기 50개만 실시하겠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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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는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심심하기도 하니 기초적인 논리학 책이나 하나 뒤적거려 볼까 하고 질렀다.(BGM: DJ. DOC - 나 이런사람이야)

논리적 추론과 증명 - 6점
이병덕 지음/이제이북스

그래, 난 여가 때 교재를 보는 사람이다.

책은 그냥 심심하게 읽었다. 집합론이 끌어들여지면서 형식논리학이 도입되는 부분은 이전에 집합론을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수강했던 <집합과 수리논리>과목에서 어느정도 기본기를 갖추어 두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다른 부분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읽은 편.

논리학 과목을 수강해본 적이 없으니 나에게는 이 교재가 얼마나 좋은지 평가할 잣대가 없지만, 그래도 심심풀이 정도로 읽어보기에는 딱 적절한 난이도의 무난한 책이라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내가 원했던 '비형식적 오류들'은 아주 짧게 마지막 장에만 나왔다는 것. 실제 생활에서 말을 하며 나오는 온갖 오류들은 비형식적인 경우가 많은데, 거기에 대한 감각을 길러주기에는 양이 좀 부족한 것 같다. 그냥 비판적 사고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볼까?

논리적 추론과 증명 - 6점
이병덕 지음/이제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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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시간은 미래로부터 흘러와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간다고 한다.

1.
오랜만에 고등학교에 친구들과 함께 갔다. 건물이 새로 들어서고, 실험실은 바뀌었고, 운동장엔 잔디가 깔려있었다. 졸업한지 3년은 넘어서 그런지 날 가르치셨던 선생님들은 반만 남아 계셨다. 이제 내가 이 학교에 올 일은 2년 내로 사라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걸어온 과거를 확인하는 건, 과거는 이미 죽었다고 확인하기 위해 그 관을 뜯어보고 과거의 시신이 남겨져 있음을 확인한 뒤 안도감 속에 관에 다시 못을 박는 작업인 것일까. 한편으로는 좋은 감정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운 감정이 남았다. 장인이 자신의 걸작을 떠나보낼 때 이런 기분이 들겠지.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른 고등학교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누구는 인턴을 한다더라, 누구는 교환학생을 간다더라, 누구는 대학원에 진학했다더라, 누구는, 누구는, 누구는.... 내 생활신조는 후회될 일은 하지 마라였건만 이럴 때마다 조금씩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들 앞으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데 난 여기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성은 나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외치지만 감정은 이성을 압도한다. 감정은 소나기로 얼룩진 여름날의 대기와 같아서 무덥다가도 시원해지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건 그 날씨에 익숙해지는 것 뿐이다.

대화를 하다 보니 학교도 도마에 올랐다. 고등학교가 이름을 바꾼다고 난리인데 동문에서는 반대하고 있단다. 솔직히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무언가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이름을 바꾼다면 얻을만한 건 정부 지원이려나? 간단하게 말한다면 밥그릇 싸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번 더 바뀐 학교를 돌아보고, 교문 밖을 나섰다.

2.
서울에 갔다. 다른 친구들도 한번 볼까 해서 학교를 가 보았다. 대학도 많이 변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휴학할 때까지만 해도 짓고 있었던 건물은 어느새 완공되어 있었고, 못 보던 건물도 들어서 있었고, 잘만 있던 건물은 나 공사중이오 광고하듯 철골과 천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중앙도서관만 그 조용한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친구와 같이 밥을 먹고 무언가 마시자며 처음 보는 건물로 들어섰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생각해보면 미안한 기분도 든다. 그렇지 않아도 한창 바쁠 때인데 친구라는 놈이 보고싶다고 연락해서 어렵게 시간내게나 하고. 미안한 감정 때문인지 잠깐 잠깐씩 흐르는 침묵이 나 돌아가고 싶다는 묵언시위처럼만 느껴진다. 친구가 침묵을 부수는 일이 더 많으니 시위하는 것은 아닐 텐데. 얼음이 떠 있는 아메리카노가 밑바닥을 보이자 자리를 정리하고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가 헤어졌다.

도서관 열람실 입구에서 멀어져 가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걸음의 관성 때문에 몇 발자국 더 나아가 뒤돌아보았다. 고등학교 친구가 멍하니 담배를 물고 앉아 있었다. 다니던 학교 때려 치고 여기로 왔다더니 사실이었네. 잠깐 앉아 몇 마디 나누었다. 3학년이나 다녀 놓고 다시 새로 입학했으니 삼수한 건가. 얘도 열심히 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담배 한 가치가 재로 사라지자 대화는 끝났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전화가 걸려온 것은 2분 정도 걷고 난 뒤였다. 나중에 만나기로 했던 녀석이었는데 학교라고 하니 본부 한번 가보랜다. 얼마 전부터 꽤 큰 사건이 터졌으니 한번 가 볼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 전화가 오기 전에는 자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 친구의 조언을 따라 학교 본부로 발걸음을 돌렸다.

기묘함. 학교 본부에 가까워지면서, 본부 건물 주변을 걸으면서, 그리고 건물 벽에 붙은 포스터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더욱 진해져만 가는 감정이었다. 한 쪽에는 과격한 표어들이 내 적개심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흩어져 시위하고, 다른 쪽에는 인터넷의 온갖 개그들이 패러디되어 장난스런 실프에 흔들렸다. 전쟁터의 표어들과 축제의 즐거움이 부조화스럽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난 즐거움을 느꼈다. 본부 건물 안까지 들어갔더라면 더 즐거웠을 텐데, 아쉽게도 학생증을 놓고 와서 기묘한 즐거움은 거기에서 끝을 맺기로 했다. 학교도 변했구나. 건물만 변한 것이 아니라 안에 사는 사람들도.

3.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다들 식사는 한 상태였기 때문에, 맥주나 마시러 갔다. 집 근처에 셀프로 운영되는 맥주 바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로 갔다. 내가 일단 소주를 못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려니 무언가 아쉬워서 과자 조금이랑 캔맥주를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시간은 자정을 넘겨 한시가 되었다. 새벽은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서로 더 깊은 곳의 이야기를 꺼내오게 되었다.

깊은 곳일수록 어둡기 마련이다.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데로 시작해 놓고서는 말하면서 눈물이 살짝 고이는 이야기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 충격이었던 이야기 하나는, 내 목표는 너였다는 친구의 고백이었다. 내가 그런 놈이었나. 나는 따라갈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를 따라오는 사람도 있었구나. 남들 따라가기에도 벅차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나를 따라가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4.
두 발이 땅을 딛지 못하고 있더라도, 무릎이 발바닥과 함께 땅에 기대 있더라도 멈추어 있다고 단언하지는 못할 것 같다. 꿈틀거리는 한은 앞으로든 뒤로든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멈추어 있다고 포기하지 않는 이상 꿈틀거리기라도 할 테니까.

잠깐 앉아 신발끈을 고쳐 매어야 할 시간인가 보다.

0'.
시간은 미래로부터 흘러와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간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은 내가 과거로부터 흘러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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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트위터를 간간히 하던 시절에(요즘도 간간히 한다. 간간히의 주기가 길어서 그렇지) 했던 트윗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찾아보니 최신 글이네.

물리학자란 자연의 아름다움을 수학으로 노래하는 시인들이다. (요즘 판타지를 너무 많이 읽었구나.)
-5월 2일 Tweet 

간간히의 주기가 1달 남짓이라는 신발견은 일단 제쳐두고(ABC마트 만세!), 난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알기를 원하고 자기가 얻은 앎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에서 말했던 적도 있고. 물론 자신 내부로 침잠해 들어가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 위대한 천체여, 네 빛을 받을 내가 없었더라면 네 빛이 무슨 소용이리"(여튼 비슷한 소리를 『차라투스트라』에서 했다) 명상은 결국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 점에서 개운하게 읽은 책 한 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 10점
로버트 P. 크리즈 지음, 김명남 옮김/지호

실험. 이론을 아름답게 여기는 부류에 더 가까운 나에겐 껄끄러운 존재이다. 학점이 잘 안 나온다는 것은 넘어가더라도,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이론을 한방에 산산조각내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니지 않았던가. 실험은 항상 이론을 뒤엎을 준비만 하며 눈을 번뜩거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실험은 이론과 친할 수 밖에 없다. "무엇을 실험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이론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론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움을 실험에서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질문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실험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울 수 있다면, 아름다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래서 저자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꼽은 실험들을 모으기로 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그 실험들이 왜 아름다운지 설명해주며 그 아름다움에 동참하기를 주문한다.

절대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실험으로 꼽혔던 단 하나의 실험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아래의 실험이다. 전자는 양자역학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간섭무늬를 만든다. 하지만 전자가 간섭무늬를 만드는 것은 여러 개의 전자가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날아가면서 전자들끼리 서로 부딛치며 간섭 무늬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를 하나씩 날려보낸다면 어떨까? 결과는 아래와 같다.


점차 점들이 밝아온다. 하나 둘 무작위로 쌓이던 점들은, 시간이 지나고 지날수록 스크린을 메우기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무작위하게만 보이던 점들이 점차 모습을 갖추어간다. 마치 전자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빛이 하나 둘 밝아오는 은하의 별들처럼 조금씩 흩뿌려진 점들이 구조를 이루어 종대를 이룬다. 아름다움을 못 느끼더라도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할 수 있겠는가. 자의식조차 없는 미립자들이 무대에 하나 하나 들어서며 점차 군무를 완성해가는 발레리나들처럼 움직이는데, 누가 이 경이로움을 못 느낀단 말인가.

저자가 책을 구성한 방식은 흥미롭다. 실험을 한 가지씩 나열하면서 그 실험이 어떻게 모습을 갖추어 갔으며 왜, 어떻게 아름다운가를 설명한다. 저자가 캐번디시가 자신의 실험을 설계하고 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오류의 원인들에 집착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을 보노라면 마치 수학의 증명에서 느끼는듯한 엄격함에 소름이 돋는다. 이론과 간결한 수식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캐번디시의 편집증적인 엄격함에서 경외를 느낄 것이다. 하나의 실험에 대해 설명이 끝난 다음에는 간주라는 부분으로 넘어간다. 간주에서 저자는 실험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한다. 실험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어째서 사람들이 실험에게서 비인간적인 것만 보는 것이 부당한지를 설명하고, 실험과 함께 살아가며 그 고된 작업을 마친 실험자들에게 바치는 찬가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 실험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주변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도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 10점
로버트 P. 크리즈 지음, 김명남 옮김/지호
 
Posted by 덱스터

2011. 6. 4. 21:25 Writer

Luna venator

한번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단편은 가끔 써 보긴 했는데 역시 목표는 장편.

장편 소설에 가끔 등장시키려고 써본 신화. A4 두장 정도의 분량.



먼 옛날, 그러니까 해는 춤추고 달은 노래하며 그 깃들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한 작은 마을에 또래보다 유독 작은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의 가슴 속에는 어느 다른 소년보다도 거대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바로 '욕망'이었다.

이윽고 소년은 자라 자신만의 활을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활은 자신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 물건이어서, 그 주인이 될 사람이 그 활의 첫 희생물의 피로 활에게 이름을 하사해야 비로소 그 주인을 받아들인다. 활은 이름을 선사받는 순간부터 그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 맹약은 자신의 이름을 전해 준 그 희생물의 나이까지 절대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을에서는 오래된 활을 들고 다니는 사냥꾼들이 존경받고는 했다.

그 마을에서 자신의 첫 활은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의 피로 이름을 내려주는게 보통이었고, 간혹 욕심이 있는 자들은 표범을 잡곤 했다. 하지만 소년의 마음은 표범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소년은 남들이 아직 잡아보지 못한 사냥감을 사냥하기로 했다. 그 어떤 새보다도 높이 나는 새, 그 어떤 새보다도 화려하게 날갯짓하는 새, 그 어떤 새보다도 맑게 노래하는 새, 달을.

소년은 달을 같이 좇을 활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소년은 다른 또래들처럼 나무들을 찾아갔다. 나무들에게 찾아간 소년은 같이 달을 좇을 것인지 물었고, 나무들은 만조(萬鳥)의 여왕을 좇겠다는 소년의 말에 기겁하였다. 나무들은 어찌 천상의 여왕을 범할 생각을 하냐며 소년을 나무라며, 자신들은 그런 불경스런 일에 가담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소년의 욕망은 나무들의 거부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소년은 나무의 팔을 취해 자신의 활로 삼았다. 나무들은 고통에 떨며 앞으로는 자신들의 눈물만을 내어주리라 저주를 내렸고, 이후 사람들은 나무의 살은 먹지 못하고 눈물만 먹게 되었다. 눈물만 먹게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하게 되었다.

소년은 달을 좇을 활을 구했지만 그 활에 실을 화살은 구하지 못하였다. 달을 좇을 화살을 찾아 헤메이던 소년에게 기꺼이 화살이 되어 주겠다고 나선 것은 흙이었다. 자신에게 난 모든 것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왔지만 그를 거부했던 두 새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흙은 그 오만한 두 새를 떨어뜨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소년은 흙에게 너는 무슨 재주가 있냐며 조롱하였고, 흙은 모욕에 치를 떨며 소년을 방해하겠다 맹세하였다. 소년은 빛에 대한 욕심이 강해 주변에 빛 조각이 있으면 끌어당기는, 하지만 그 자신은 그 탐식으로 검게 물든 돌이 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들어 알고 있었고, 달의 피를 마실 화살로 그 돌을 선택하였다. 소년은 빛 조각을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그 돌이 달의 피를 다 마시고 피를 잃은 달이 금방 잡히리라 여겼다.

활과 화살을 구한 소년은 활을 들어 달을 보았다. 달이 그 날개를 활짝 피었을 때, 소년은 천천히 활을 당겨 달을 겨냥하였다. 이윽고 소년이 활의 시위를 놓는 순간, 흙이 몸을 비틀며 소년의 사냥을 방해하였고, 소년이 활에 실어 날려보낸 화살은 빗나가 저 멀리 남녘으로 사라져 버렸다. 빛 조각을 끌어당기는 돌은 지평선 너머로 멀어져 가면서 하늘에 가득하던 빛나는 깃들을 같이 끌고 가 버렸고, 이후 깃들은 사람이 두려워 말을 걸지 않았다. 소년은 흙에게 네가 왜 나를 방해하느냐 화를 내었다. 흙은 너는 나를 욕되게 했다고 하면서 네가 나를 딛고 활을 당길 때마다 나는 내 몸을 비틀어 너를 방해하리라 맹세했다고 말했다. 소년은 이를 무시하고 다시 시위를 당기어 달을 겨냥했으나 흙이 몸을 다시 비틀었고, 몇번 더 활을 들었던 소년은 망각을 모르는 흙이 자신을 계속 방해할 것을 깨닫고는 물을 딛고 달을 좇아야만 했다.

물은 딛을 때마다 일렁였고, 물에 익숙하지 않던 나무의 팔은 끊어지고 말았다. 소년은 물을 버티지 못한 그 팔을 욕하며 집어던지고 다른 활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모두들 소년의 활이 되기를 거부하였다. 소년이 강제로 나무의 팔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고, 그 팔이 돌아갈 때 조차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이 되어 줄 것이 없었지만 소년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욕망은 더욱 거대하게 자라났고, 욕망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 저항하지 않는 빛나는 깃들을 그의 활과 화살로 삼으라 부추겼다. 소년은 해와 달의 깃으로 활과 화살을 짰지만 하늘에 올려둔 활과 화살은 매번 남녘으로 날아간 돌이 가져가 버렸다. 소년은 다른 탐식에 물들은 돌을 구하여 북녘에 두었고, 깃들은 두 돌들이 서로 끌어당겨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소년은 새로운 활과 화살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소년은 다시 달을 좇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깃에 좇기기 전까지 위험을 모르던 만조의 여왕은 겁을 먹고는 노래하기를 그만두었고, 만조의 왕은 자신도 자신의 깃에 좇기지 않을까 걱정하다 춤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소년은 계속 달을 좇았으나, 물을 디딘 탓에 그 화살은 매번 빗나가곤 했다. 그러나 소년이 화살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때마다 달은 숨어 화살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화살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나와 도망을 계속하였다. 간혹 소년이 잘못 쏜 활이 해를 좇는 경우도 있었지만 걱정하느라 춤마저 잊어버린 왕은 그 때마다 달처럼 숨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소년의 추적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소년은 늙어갔고, 소년이 잡히지 않는 달을 좇다가 노쇠하여 힘을 잃어버리자 욕망은 소년의 몸까지도 집어삼켰다. 욕망은 소년이 짠 활과 화살에 입혀 사냥을 계속하였다. 간혹 욕망은 흙이 방해하는 것을 잊어버렸을까 싶어 흙에 기대 날카로운 시위를 당겨보곤 했으나 망각을 모르는 흙은 항상 온 몸을 비틀어대었다.

욕망은 지금까지도 만조의 여왕을 좇아 헤매인다. 욕망이 그 헤맴을 멈추게 되면 그가 남겨놓던 발자국보다도 더 강하게 세계를 잠식할 것이고, 그 때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리라.

- 뉴먼 로스(Numon Rothe), 『흩어진 전설들의 모음집』, 제 5장 中



이야기 진행에 방해되기 때문에 빼 놓은 건데, 소년이 짠 활은 별자리가 되었고 쏘아진 화살들이 별똥별이며 땅이 방해해서 지진이 생기고 가끔씩 숨기 때문에 일식과 월식이 생기며 북녘과 남녘에 던져진 돌 때문에 나침반이 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영도를 읽던 사람은 알겠지만, 눈물에 대한 오마주. 아무래도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지만 그냥 놔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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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10점
이영도 지음/황금가지

처음 작가 이영도를 접하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온 뒤 어떤 친구가 텍스트 파일이 들어있는 압축 파일을 메신저로 보내준 것이었다. 요즘은 내가 여건이 안 되어서 연락이 잘 안 닿는 친구이기는 한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말할 일이 생기리라 믿어두자.

그의 소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눈물을 마시는 새』이다. 일반적인 환상문학(사실 판타지라고 부르는 편이 속 편하다)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설정이 두드러지기 때문인데, 그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는 무언가 정이 안 간다. 내용이 꼬여 있어서 그러려나. 그래도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라면 역시 『드래곤 라자』이다. DR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연계작으로 『퓨처 워커』가 있다. FW라고도 부르는 연계작은 뒤로 갈수록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어서 글자가 한 눈으로 들어가 한 눈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그림자 자국』은 근래에 출시된 DR의 연계작이다. 그 사이에 머리가 굵어진 것인지 아니면 소설 자체가 좀 더 쉽게 쓰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데 서너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다. 그렇다고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택한 소재는 '그림자 지우개'라는 물건인데, 어떤 대상의 존재를 비워 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그 물건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돌아가고, 그 허공을 다른 인과관계들이 채우도록 한다. 때문에 잘 짜여진 인과관계의 거미줄은 허물어지고, 수십 마리의 벌레를 잡아두느라 이곳 저곳 때운 곳이 많아진 거미줄처럼 소설의 흐름도 매끄럽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소설에는 읽기 쉽도록 특이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일러두기를 보고 나서 소설을 읽으면 알겠지만, 문단에 붙어 있는 숫자와 그 그림은 조금씩 변화한다. 어떤 존재가 나타나고 사라지느냐에 따라 그림이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것인데, 힌트를 주자면 맨 왼쪽은 예언자의 존재, 중간 그림은 프로타이스의 존재, 우측은 시에프리너의 존재를 상징한다. 이 표시를 생각해 가면서 소설을 읽으면 여러 개의 세계가 평행하게 진행되는 소설의 중후반부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매번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그의 소설에는 매력이 있다. 가볍게 흐르는 문체와 무겁게 흐르는 내용의 이질적인 조화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와 같은 느낌을 준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DR을 접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생소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을 자세한 설명 없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DR을 읽어보지 않고서도 이야기 자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읽지도 않은 책 때문에 이해의 깊이가 얕아진다면 억울한 일 아니겠는가.
 
그림자 자국 - 10점
이영도 지음/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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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심심하면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데, 그냥 펑펑 터지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고른 선택지. 조조로를 끊었으니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원 값 주고 봤으면 별 하나 내렸을 테지만...

월드 인베이젼 - 8점
조나단 리브스만

대부분의 전쟁영화가[각주:1] 그렇듯이, 줄거리는 간단하다.

외계인 침공 → 귀신잡는 해병대가 간다! → 얼라 밀리네
                 → 적 기지다 우왕ㅋ굳ㅋ → 폭격 → 승리!

펑펑 터지는 폭탄과 불꽃, 폭음이나 구경하려고 고른 선택지였는데 제대로 골랐다. 흔히들 외계인은 빔 무기처럼 좀 화려한(?) 무장을 하고 나타나리라고 생각하는데 총을 들고 나온 것은 의외.

조금 아쉬웠던 것이라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으로 표현된 마이클 낸츠 하사가 거기에 휘둘리는 듯한 묘사가 없었다는 것. 하긴 "미군 킹왕짱" 이러는 영화에서 그런 묘사를 할 리가 없지...
  1. 영화가 바로 옆에서 일어난 폭발에 휘말린 병사의 시점으로 진행할 때 갑자기 나타나는 정적과 그 정적이 서서히 사라지는 묘사는 전형적인 전쟁영화의 기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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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ack Swan (Paperback, 영국판) - 10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Penguin Books

꽤 예전 일인데, 밥을 먹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난 사기꾼이 될 거야."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난 이렇게 말했더랬다. "일단 내 특성상 무언가 만들어내는 일은 못 하겠고, 다른거를 포장하거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은데 그게 없는 것 가지고 만들어내는건데 그게 사기치는거지 뭐야." 거기에 덧붙인 말은 "그리고 대부분의 직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니까 전부 다 사기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당시에 염두를 두고 있던 일은 소설가(말 그대로 거짓말을 팔아 먹고 사는 사람)와 이론물리학자(역시 물리적 실체가 없는 것을 팔아 먹고 산다), 정 안되면 금융공학자(설명이 필요한지?) 정도였다. 그리고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마지막 예시가 정말로 사기꾼-그것도 자기 자신마저 속인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블랙 스완, 혹은 검은 백조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사건을 상징한다. "여태까지 발견된 백조는 흰 색이었다 → 그러므로 모든 백조는 흴 것이다"라는 명제를 호주에서 발견된 흑색 백조가 갈아엎어 버린 사건에서 끌어 온 상징으로, 저자는 이 검은 백조가 왜 만들어지는지 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마치 이야기를 해 주듯 설명한다. 저자는 차가운 논리를 이용해서는 가슴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형식을 취했다고 설명하는데, 더 없이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많은 내용을 차가운 논리로만 설명하려 했다면 그렇지 않아도 내용이 어려운 책이 더 읽기 어려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저자는 어째서 사람들이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들을 제시한다. 첫째, 사람들은 과거의 정보로부터 미래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귀납의 오류를 저지르고, 둘째로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을 합리화하는데는 똑똑하지만 그 똑똑함은 미래에 대해 완전히 무능하며, 셋째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론에 맞는 증거들만 모으려는 성향이 있고, 넷째로 사람들이 현재를 분석할 때 쓰는 창은 심각하게 치우쳐있는 것이다.[각주:1]


2부에서는 흔히들 말하는 "전문가들"이 얼마나 무능력한지에 대해 설명한다. 또, 제 아무리 법칙이 간단하다고 하더라도 처음 조건에서 나타나는 작은 차이가 나중에는 얼마나 크게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흔히들 말하는 카오스 이론이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각주:4] 그렇기 때문에 예측하는 것이 일인 이른바 "전문가들"은 전문 사기꾼이라고 단언한다. 2040년의 예측 에너지 소요량과 같은 맞지도 않는 쓸데없는 예측을(만) 하기 때문이다.[각주:5]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각종 근거를 제시해가며 금융상품의 위험도를 측정할 방법이 부재한다고 확신하는 저자는 주식시장에서 벌고 싶으면 다음과 같이 투자할 것을 주문한다. 85% 정도는 절대로 잃을 수 없는 안전한 곳에, 나머지는 높은 위험도의 고수익 상품에 분배하여 전체적인 위험도를 평준화할 것. 분배하는 이유는 어떤 고수익 상품이 대박을 터뜨릴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경우도 있고 나쁜 경우도 있을테니, '검은 백조'와 맞닥드릴 확률을 높이라는 것이다.

이후 3부에서는 보통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정규분포의 문제에 대해서 다룬다. 정규분포는 일반적인 값에서 벗어나는 검은 백조들이 훨씬 적게 나타난다고 예측한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분포들은 80:20의 법칙(파레토 분포)을 따르는데 정규분포를 사용함으로서 1부에서 제시한 마지막 오류, 잘못 낸 창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삶의 주도권을 놓치지 말 것을 주문하며 책을 훈훈히 마무리한다.


앞서 말했듯이 저자는 논리보다는 이야기책처럼 많은 일화(anecdote)들로 구성해 보다 읽기 쉽도록 독자들을 배려하였다. 내용이 쉽지는 않기에 취한 조치인데, 더 없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말 그대로 책에 빨려들었던 것 같다. 물론 책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여있고 글씨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서 육체가 피로를 견디지 못했던 적은 자주 있었지만 말이다.[각주:6] 3부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별로 필요없는 내용이 되겠지만 1부와 2부의 경우에는 논리와 그 오류에 대한 내용인 만큼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누구나 경제나 그 관련 분야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 번 정도는 읽으면서 지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가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약간의 변호를 해 보자면, 원래 학문이라는 것은 이론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기에 존 박사님(Dr. John)과 같은 헛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무엇을 잴 것인지는 이론이 있어야 결정할 수 있지 않은가? 또 학문은 모든 경우에 대해 맞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므로 검은 백조들에 대해 완전히 무능력하다고 해서 모든 경제학 서적을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 검은 백조들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나, 포퍼의 반증가능성이라는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학문을 쓰레기라고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포퍼의 논리에 너무 매몰되면 책꽂이의 고전역학 책들은 초등학생의 실험만으로도 내다버려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흔히들 말하는 그 "전문가들"의 일반인과 하등 나을 것 없는 예측력은 좀 너무하긴 하다.


블랙 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동녘사이언스

번역본은 번역이 개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읽어보지 못한고로 평점은 생략하겠다.
  1. "감정에 치우쳐 현실을 제대로 못 바라보는 오류"도 존재하지만,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뺐다. 사람들은 끔찍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암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인데, 이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소식을 더 많이 듣는 것에서도 유래하지만 암보다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감정을 더욱 자극하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본문으로]
  2. 게르트 기거렌처의 책『생각이 직관에 묻다』 Gut feelings를 보면 이는 오류로 처리될 수 있는 사소한 원인들에 너무 치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소한 원인들은 나중에 오류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그래서 제대로 된 예측을 하려면 사소한 원인들까지 따지기보다는 중요한 요인들만 골라내어 거기에 기반을 둔 예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직관이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는 논리보다 유용하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기거렌처는 과도한 정보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탈렙 또한 여기에 동의한다. [본문으로]
  3. 의역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본문으로]
  4. R. Feynman이 "고전역학에서는 모든 것이 운명지워져 있다"는 명제에 대해 반대했던 이유와도 같다. 초기조건 측정의 오류는 지나는 시간에 대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p.178쪽에는 당구공의 충돌로 인한 움직임을 계산할 때 필요한 정보를 제시하고 있는데, 9번째 충돌만 되어도 당구대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중력이 고려되어야 하며, 56번째 충돌에 이르러서는 우주 끝의 전자가 미치는 영향마저 고려되어야 한다. 파인만은 고전역학이 운명론적인 패러다임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모든 것을 무한히 정확히 측정할 수 없기에 자유의지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The definitive edition vol.3, 2-9~2-10 [본문으로]
  5. 내 생각에 가장 쓸데 없는 예측은 "미래에 떠오를 유망한 직업"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직업들의 리스트는 변하지 않았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암울하다는 것은 동일하지 않은가? 오늘도 밤을 새며 생명공학의 발전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피펫을 만지는 이들을 위해 맥주를 들자. [본문으로]
  6. 좀 쉽게 말한다면, 졸았다. 하지만 책이 지루한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다가도 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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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게 '동양고전강의' 시리즈의 『맹자』를 읽고 있는데 신영복 교수님이 쓰셨던 『강의』를 다시 읽어볼까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맹자 교양강의
푸페이룽 지음, 정광훈 옮김/돌베개

여튼 한비자를 읽은 다음에 맹자의 입장을 철저히 옹호하는 책을 읽기 시작하니 느낌이 색다르다. 법가는 유가사상이 너무 무르다고 비판하고 유가사상은 법가에 인정이 없다고 비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책의 저자가 비판하는 양유음법(陽儒陰法)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중. 유가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구조이고 법가는 사회 구조에 책임을 돌리는 사상이다. 누군가 말했듯 제 아무리 좋은 사람만 모여있다고 해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충분히 존재 가능하다. 이 비도덕적 사회를 메꿀 방법은 법가사상 뿐. 묵가는 더욱 개인으로 회귀하는 쪽이고, 도가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 때려치고 나 혼자 살련다 이런 쪽이니 국가가 취할만한 입장이 되질 못 하니까.

한비자
송지영/홍신문화사

유가와 법가의 대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백이와 숙제 형제에 대한 평가이다. 유가에서는 의를 지킨 사람들로 떠받들지만, 법가에서는 지 좋다고 사회를 버린 사회에는 전혀 쓸모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물론 실제 사회와 실제 인간은 이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서, 어느 두 쪽도 버릴 수 없겠지. 그래서 양유음법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거다. 다 읽으면 장자나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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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알라딘 메인 페이지에 올라왔을 때 눈여겨보았다가 얼마 전 사서 하루만에 읽어치운 책.

영단어 인문학 산책 - 6점
이택광 지음/난장이

단어를 하나 던져놓고 그 단어의 어원을 캐 들어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어원을 캐 들어가면서 그와 관련된 일화들을 소개하고, 또 그 일화들이 어떻게 현대 서구 사회의(정확히는 영미권 사회이겠지만) 지형을 그려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마치 셜럭 홈즈가 "한 방울의 물방울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거대한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각주:1] 단어 하나로 문화 전체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재미있게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뒤끝이 흐려지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상대적으로 이야기를 끌어 낼 만한 단어가 그리 많지 않아서 책으로 만들 분량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단어를 우겨넣으면서 생긴 현상인지 아니면 갈수록 내 집중력이 흐려졌는지는 불명이지만, 적어도 한 단어에 할애된 페이지 수는 갈수록 점차 줄어드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단어에서는 그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기도 하다.

아쉬운 점을 좀 더 써 본다면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의 첫 이야기 『주홍빛 연구A study in scarlet』가 『주홍색에 대한 연구A study on scarlet』으로 잘못 번역되었다는 것.(206p) 주홍색은 죄악을 연상시키는 색이라고 한다. 중간 중간에 오타와 잘못된 편집이 보여 책의 완성도에는 살짝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1. 셜럭 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인 『주홍빛 연구』에 나오는 대사였던 것 같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아는 친구 하나가 방황을 좀 하는 것 같길레 갑자기 떠올라 추천해 준 책이다.

젊음의 탄생 (반양장) - 10점
이어령 지음/생각의나무

검색해보니 이전에 꿈꾸는 공대생 이라는 글에서 덧붙이는 말에 살짝 등장시켰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쓰던 때가 2008 대선 그 직전 정도 되는지라 그때 한창 불던 시대적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어 살짝 불편했던 기억이 나긴 하지만, Ant's Trace라는 부제가 붙은 3장의 내용만큼은 언제라도 청춘이라면 가슴에 담아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각주:1] 쉽게(?) 요약하자면 '제대로 방황하고, 방황에 자신감을 가져라' 정도가 된다. 방황은 특권이자 의무라고 해야 하나?

읽은지 너무 오래 되어서(한 2년은 되었다) 서평을 쓰기에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일단 추천서 목록에는 올려두려고 한다. 글 내용을 너무 상세히 기억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글이 진짜 자신의 것이 되는 길은 글이 자신의 길 속에 녹아들어 의식하지 않아도 의식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1. 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Q.
한 쌍둥이 형제가 있습니다. 그 중 형은 성격이 꼬일대로 꼬인지라 어떤 말을 들으면 그 반대로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반대로 대답합니다. 그에 반해 동생은 곧은 성격의 소유주라서 어떤 말을 들으면 거기에 대해 참으로만 대답합니다. 이 형제를 구분할 방법은 존재할까요?



각종 난감한 머리쓰는 문제를 내던 선임들을 한방에 잠재운 문제. 조금은 유명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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