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알라딘 행사로 싸게 풀린 라미 사파리 만년필을 쓰다가 좀 더 좋아보이는걸로(남자의 생명은 간지다...-_-;;) 갈아타보자 해서 이것 저것 알아보고 있었다. 마침 학교에서 라미 할인행사를 하길레 라미 위주로 알아보던 중 찾은게 이것.

 

 

행사장에 찾아가보니 같은 계열 샤프와 수성펜만 있었고, 원가가 110,000이니 30% 할인행사로 77,000에 판매하겠다고 했다. 샤프를 조금 만지작 해 보니까 만년필은 확실히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일단 재고를 넣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독서실로 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인터넷 최저가 검색을 실행. 찾아보니 제일 싼 것은 6만원 후반대, 무려 만원 가까이 차이나는 가격이었다. 좌절 한번 해 주고 (하던 공부 마저 하고) 다음 날 직접 보고 좀 더 깎아달라고 해 보자 생각하고는 집에 가 씼고 잤다. 만원이면 밥 네끼 = 이틀치 밥값이니까 수입이랄 것이 없는 학생 입장에서는 꽤 큰 돈이다.

 

다음날 수업을 듣고 실험을 기다리던 중 입고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실험까지는 1시간이 남은 상태. 갔다오기에는 너무 멀어서 좀 있다가 갈테니 언제 영업 종료하냐고 물어봤다. 6시에 닫는단다. 그런데 실험도 6시에 끝나는걸 어떡하지 -_-;; 다음 날까지 내 멘탈이 기다려줄 수 있을까?

 

다행히 실험은 5시에 종료. 바로 갔더니 5시 반이었다. 인사를 하고 실물을 만져봤는데 확실히 좋았다. 슬림하고 고풍스런 무광택 블랙이 지갑을 열라고 유혹. 아 안돼... 내 밥값이... 조금이라도 값을 깎아야 해...

 

혹시 펜촉을 바꾸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블랙 크롬 도금된 것으로. 된다고 하더니 바로 바꿔주었다. 돈? 손은 이미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있었다. 카드를 긁고 나니 가격 좀 더 깎아 줄 수 없냐고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이런...-_-;; 뭐 아무리 싸도 12,000원은 하는 검은 펜촉으로 바꾸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어떻게 보면 인터넷보다 싸게 산 편이다.

 

오늘 화보는 새로 오신 CP1님과 모닝글로리 수첩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옷도 블랙으로 입고 다니는 나는 어둠의 자식

 

남들 다 이렇게 찍길레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다. 펜촉 끝에 묻은 잉크는 라미 진청색 잉크인데 오늘 처음 써봤다. 이전에 쓰던 몽블랑 블랙보다는 파란빛이 많이 돌고(진청색이니까 당연하지 -_-;;) 연하다. 눈은 진청색이 더 편안한듯.

 

글은 끄적끄적 펜촉은 사각사각

 

매우 얇은 편이라(거의 플러스펜 수준) 잡기 좋다. 내가 손발이 엄청 작은 편이라(얼마 전 신발을 사는데 남성화 최저사이즈가 커서 여성화를 사야 했던 비극이 있다 ㅠㅠ) 이건 사람 취향을 탈 듯. 얇긴 하지만 금속 재질이라 그런지 묵직한데, 스테들러 샤프 중 금속으로 된 것과 얼추 비슷한 무게감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이미 흑색으로 하던 노트 필기는 사파리로 그대로 하고, 연습장에 필기하던 과목은 이젠 CP1을 사용할 듯 싶다. 삼각형 그립이 없어 쓰기 불편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불편함은 전혀 없어서 다행이다.

 

나를 위한 복학 선물은 이정도면 되었고, 이젠 열심히 공부해야지.

지름신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건 잊어버리자




결국 각인까지 해버리고 말았습니다.(결국 구입가는 \82,000) 미니멀리스트라면 각인은 보이지 않는 곳에->클립 위에 해 버렸습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각인을 요청한 글이 Lucet stella non videndi causa[각주:1]였는데 각인된 글이 Lucet stella non videndi cause더군요. 뚜껑 표면에 했으면 금색으로 오타가 딱! 생각만 해도 악몽입니다. 마지막 e의 오른쪽을 칼끝으로 파서(지못미 내 커터칼) a로 만들어 버리고 손으로 판 선이 좀 이상해 보였는지라 지나가던 돌(?) 하나 주워서 클립 위를 살짝 살짝 문질러 주었습니다. 덕분에 산지 한달이 안된 만년필의 급작스런 빈티지화(...) 성공, 나만의 만년필이 완성되었습니다. 각인된 글씨도 반 정도 날아가서 진짜 빈티지처럼 되어버렸지요.


주말동안 만년필 세척을 한번 해 주고 펜촉에 잉크가 남아있는 제일 위 사진이 마음에 걸렸던지라 새로 찍었습니다.


이번에도 수고해주신 CP1님과 모닝글로리 수첩님


원래 쓰던 푸딩카메라 앱보다 옵티머스 LTE2 기본카메라 어플이 초점을 더 잘 잡네요 -_-;; 화질은 매우 밀리지만 그래도 초정이 배는 잘 잡히는지라 기본어플로 찍어봤습니다.


약 일주일 정도 사용한 소감은 잉크가 조금 잘 마르는 것 같다(...)입니다. 펜 꺼내놓고 멍때리는 일이 많아서인지 잠시 멈추고 쓰기 시작하려면 잉크가 멈추는 경우가 간혹 있네요. 다만 펜촉 자체가 검은색인지라 잉크가 묻어도 신경이 덜 쓰인다는건 장점입니다. 사파리를 쓸 때 펜에 조금만 충격이 가도 잉크가 은백색의 펜촉 위에 흩뿌려진 충격적인(?) 장면을 자주 봤는데 그런건 없는게 참 좋네요.


요즘은 금촉이 참 땡깁니다. 아아... 내 지갑이... ㅠㅠ

  1. 뜻은 '별은 보이려고 빛나지 않는다' 정도? 번역기보다 못한 라틴어를 손봐 주신 성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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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2012. 9. 9. 09:00 Writer/Short

忘生舞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착한 농부 하나가 살았어요. 농부의 아내는 일찍이 하늘로 떠나버렸지만 농부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 딸은 고운 마음씨와 아름다운 용모로 소문이 자자했어요.

 

시간이 흘러 딸이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이 때만 노리던 수많은 청년들이 백리 밖에서도 모여들었지만, 그 누구도 농부의 눈에는 부족해 보이기만 했지요. 결국 그 청년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원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시무시한 가뭄이 찾아왔어요. 논은 자라 등껍질처럼 갈라졌고 산의 나무들조차 넘치는 햇님의 축복으로 누렇게 시들어 버렸답니다. 가뭄은 끝나고 가을이 왔지만, 논에는 벼가 남아있지 않았어요. 농부는 겨울나기가 막막해 논 언저리에 걸터 앉아 한숨만 쉬곤 했답니다.

 

그렇게 하늘을 원망하던 농부에게 한 부자가 찾아왔어요. 부자는 농부에게 쌀을 빌려줄테니 내년에 동등한 양으로 갚으라고 말했어요. 농부는 망설였답니다. 그 부자에게는 나쁜 소문만 가득했거든요. 하지만 농부에게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답니다. 쌀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밖에 없었거든요.


그리고 다음 해가 되었습니다. 하늘은 작년에 지독했던 가뭄을 가져다 준 것이 미안했었는지 이번에는 엄청난 풍년을 이끌고 돌아왔어요. 농부는 신이 났답니다. 부자에게 빌린 쌀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신이 나 부자에게 갔던 농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부자는 작년에 빌린 쌀이 있었기에 올해 수확을 할 수 있었으니 올해 수확한 쌀을 전부 가져오라고 했어요.

 

농부는 부자의 마당 한 가운데에 멍하니 무너져 내려 있었습니다. 부자는 농부를 잠시 바라보았어요. 그러더니 부자는 마음을 바꾸었는지 이런 제안을 했답니다. 빚을 반으로 줄여줄테니 딸과 결혼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지요. 부자는 이제 땅마져도 꺼지는 것 같았지요.

 

절망한 농부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마음씨 고운 딸은 어두운 얼굴의 아버지를 그냥 둘 수 없었답니다. 딸은 농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어요. 계속되는 질문에 농부는 부자가 한 말을 전해주곤 한숨만 쉬었어요. 올해 걷은 쌀을 모두 부자에게 주면 겨울동안 먹을 것이 없었으니까요.


딸은 잠시 생각하더니 단호히 말했어요. 결혼을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딸을 농부는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답니다. 결국 결혼식을 하는 날이 되어 딸은 시집을 가 버렸고, 농부는 매일 매일을 눈물만 흘리며 보냈답니다. 이웃이 매일 와서 밥을 해 주며 같이 먹어주지 않았더라면 농부는 굶어 죽고 말았을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농부 집 마당 한 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가 자랐어요. 농부는 눈물을 마시며 자라난 나무를 보며 딸을 닮은 목상 하나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어요. 아직 농부는 딸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었지요.


시간이 흘렀어요. 부자는 딸 말고 다른 여자에게 더 눈길이 가기 시작하자 딸을 쫓아버렸답니다. 갈 곳이 없어진 딸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어요. 묘하게 가슴뛰게 만드는 농부의 집 마당을 지나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선 딸은 그대로 굳어버렸어요. 거기에는 자신의 모습을 꼭 닮은 목상이 있었고 그 발치에는 끌을 쥐고 쓰러진 농부가 있었거든요. 딸은 급히 농부를 끌어안았지만 아직 따스한 농부의 몸은 숨이 없었어요. 딸은 울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도록 울고 난 딸은 목상에 입을 맞추곤 농부처럼 쓰러져 버렸지요.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밥을 해 주러 온 이웃의 눈에는 차갑게 식은 농부가 보였어요. 그리고 농부가 만들던 목상도 보았고요. 목상은 아름다웠습니다.


이웃은 농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는 목상을 가지고 장터에 갔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목상을 누군가는 살 테고, 오랜만에 집에서 쌀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확실히 목상을 들고 다닐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한번씩 돌아 볼 정도로 목상은 아름다웠어요. 이웃은 장터 한 가운데에 목상을 내려놓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목상을 두번 두드렸답니다. 장터의 모든 사람들이 돌아보았어요.


목상은 갈라졌어요. 그러더니 갈라진 표면을 따라 나무가 뱀의 허물처럼 허물어 내렸어요. 허물어 내리고 난 목상은 아름다웠어요. 그 찬란한 색에 모든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했답니다.


목상은 눈을 떴어요. 그러고는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어요. 그리고 나서 목상은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춤이었어요. 너무도 아름다운 춤이었기에 사람들은 숨 쉬는 것을 잊어버렸지요. 사람들만 홀린 것이 아니었어요. 지나가던 동물들도 그 춤에 홀려 버렸답니다. 심장들은 뛰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뿌리들은 마시는 것을 잊어버렸지요. 모든 것이 고요했습니다.


춤은 부자의 집까지 계속되었어요. 춤이 지나간 자리에는 정적만 남았습니다. 언젠가는 그 정적들도 잊혀지겠지요.


그리고 춤은 영원히 이승을 헤메고 있답니다.




'아름다움이 살인무기가 될 수는 없을까'라는 망상에서 탄생한 설화(?). 미인계와 같이 아름다움이 파탄을 이끄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움 그 자체로 살인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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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마땅한 번역본을 잘 모르겠어서 손 대기 어려웠던 『장자』를 드디어 읽기 위해 구했다. 교수신문에서 발행하는 번역본 비평 칼럼 모음집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각주:1]에서도 추천한 오강남 해설 버전으로. 그리고 제목에 쓴 것과 같이 내용이 비어있는 책이기에(비어있다는 말은 문장 사이가 드넓다는 의미이다. 문단과 문단 사이마다 사막과 바다와 밀림이 있어 길 헤매기 딱 좋다고 표현하겠다.) 길잡이로 쓸 책도 하나 구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도 『장자』를 다루는 것들이 있어 다시 읽어보았고. 이 책이 이번에 구한 책이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 8점
강신주 지음/그린비


하나의 키워드로 『장자』를 관통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이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하여 어떻게 남과 상호작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으로 수렴한다.


이 문제의식이란건 다음과 같다. 이전에 한번 회자된 적이 있었던 『오래된 미래』[각주:2]라는 책이 있었다. 아직 세계화의 손길이 닿지 않은 라다크의 삶을 소개하는 책인데, 여기서 책의 제목 '오래된 미래'란 갈수록 공허해지는 도시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직 도시화되지 않은, 그러니까 과거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책에는 다음의 일화가 나온다.


언젠가 나는 열 시간 동안이나 계속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너무 지치고 스트레스가 쌓여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그날 저녁, 내가 머물던 집 식구들에게 너무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도고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웃고 말았다. 내가 농담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책상 앞에 편안하게 앉아서 종이 위에 펜으로 글씨를 썼던 것뿐이었다. 이마에 땀이 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것은 일이 아니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서구사회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스트레스나 지루함, 좌절감 같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후략]


-『오래된 미래』, p.188


사무실에서 문서작업을 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퇴근해 본 사람, 아니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쓰느라 곤혹을 치러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는 것이 일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다크 사람들에게 글을 쓰는 것은 단순한 취미에 불과했다. 그들은 글을 쓰는 것이 일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바탕이 되는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서로 경험하는 것도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에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슴아픈 이별을 겪은 사람들이 간혹 하는 "나는 널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라는 말이 이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꽃을 피우고 있고, 노트북으로 이 졸문을 두드리고 있는 타자가 있으며, 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으니 우리는 "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남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주제가 『장자』의 중심이 됨이 이 책을 쓴 해설자의 생각이다. 남을 이해하기 위해 내면화된 선판단을[각주:3] 최대한 비워내야 하며, 이를 돕기 위해 일부러 정합적인 논리를 분쇄하는 형식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책 자체는 즐겁게 읽었으나 『장자』를 이해하는데 그렇게 많은 다양한 철학자들의 말이 필요했는지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말이란 것은 떼어놓기에 따라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필수적이지 않다면 굳이 이렇게 많은 말들을 끌어올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철학적인 논의에서는 말로 그 핵심을 전달하기 힘드므로 하나의 주제가 다양한 변주로 연주되며 응당 그래야 마땅하지만 소개하지도 않을 다양한 철학자들의 글을 인용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딱 니체나 비트겐슈타인, 데리다 정도로만 소개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버렸다. 제 아무리 비슷한 음악이라도 한 음악의 일부를 다른 음악에 중첩시켜 버리면 불협화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도 부록의 『장자』 연구 동향에 대해 다룬 부분은 좋았다.


다음은 이전에 구했던 책들 중 『장자』를 다룬 또 다른 책이다.


장자 교양강의 - 4점
푸페이룽 지음, 심의용 옮김/돌베개


책의 『장자』 접근은 상당히 파편화되어 있다. 그 점에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라 하겠지만, 그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이다.[각주:4]


강의 - 10점
신영복 지음/돌베개


이 책은 『장자』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의 한 장에서 해설하고 있기에 포함시켰다.(평점은 책 전체에 대한 것이다.) 이 책 역시 하나의 키워드, '반성'으로 『장자』를 꿰뚫고 있다.


'반성'이라는 핵심어가 선택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 대부분을 사 읽는 사람으로 평한다면 그 분의 주제의식은 '관계의 회복'에 있다. 모든 글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아닌 사회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런 그에게 개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 『장자』는 하나의 온전한 주제라기보다는 반동으로 읽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인 사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회를 해체시켜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도록 만들자는 것을 주제의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자』는 성경과 같이 따라야 할 책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앞서 소개한 『오래된 미래』와 같이 돌아보도록 만드는 책으로 그려진다.




얼마 전 우화를 하나 올렸었다. 바벨의 반역가. 영역하면 Rebel of Babel이, 살짝 잘못 읽으면 바벨의 번역가가 된다. 신이 바벨의 사람들을 다른 언어로 흩어 버렸으니 다른 언어들을 이어주는 이들은 반역가일 터이다.


이전에 '창조적 오독'이라는 구를 듣고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다. 칸트의 말이 이렇느니 저렇느니 언쟁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 영향인지, 필자는 책은 저자와 독립된 개체로 분류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 권의 책이라도 그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주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책은 저자의 주제의식을 그대로 전달할 의무가 없다. 장자도 언급했듯, 책은 성인(聖人)이 남긴 찌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독일의 훔볼트대학Humboldt Universität zu Berlin의 본관에는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Die Pilosophen haben die Welt nur verschieden interpretiert; es kommt aber darauf an, sie zu verändern.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세계)를 바꾸는 것 다음의 일이다.[각주:5]


칼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Thesen über Feuerbach의 마지막 테제이다. 괜찮은 『장자』 번역본을 구하던 중 간혹 "장자가 실제 말한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라며 그 책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경우를 보았다. 내 생각은 그렇다. 중요한 것은 장자가 하고자 했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장자의 말로부터 무엇을 얻을 것인가라고. 장자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매달린다면, 성인이 남긴 찌거기에 매달리는 것과 다른 것이 무어란 말인가.

  1. 나에겐 읽는 책이라기보다는 자료집의 성격이 더 강한 편이다. [본문으로]
  2. '아이들은 자라기를 희구하고 어른들은 어릴적을 회구한다'는 제목으로 서평을 쓰다가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도 산업혁명 이후 등장하는 이른바 '자연예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느꼈던지라. 읽을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될 책은 아니나 세계화와 거대도시화에 대한 반발에서 쓰인 책임은 분명하다. [본문으로]
  3.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뜻에 오염된 '선입견'이라는 단어 대신 사용하였다. 책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4. 이 책 역시 서평을 쓰다 말았다. 필자가 신영복 선생님의 영향을 꽤 많이 받은지라 이것 저것 쓰기는 많이 썼는데, 정작 중요한 책 설명이 없어서 아직 비공개이다. 책 자체는 일독을 권한다. [본문으로]
  5. 돌아다니는 번역이 조금씩 마음에 안 들어서 각각을 참고해가며 직접 번역해 보았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2012. 8. 30. 23:46 Writer/Short

바벨의 반역가

하늘을 오르려던 사람들이 흩어지고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흔적만 남은 탑 앞에는 한 남자의 터전이 있는데, 이 남자의 눈은 길을 지나간 그림자의 흔적을 알아볼 정도로 날카로왔다.


어느 날 아라지의 한 연금술사가 남자를 찾아왔다. 이 연금술사는 작은 에메랄드 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뱀들이 줄을 이루어 꼬리를 물며 춤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에메랄드 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에메랄드 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아비두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금술사는 남자의 거처에 해가 다섯번 질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금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연금술사는 작은 금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연금술사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자이번의 한 뱃사람이 남자를 찾아왔다. 이 뱃사람은 작은 금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자그마한 사람과 새들의 그림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뱃사람은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금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금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아라지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뱃사람은 남자의 거처에 안식일이 다섯번 지날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은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뱃사람은 방패만한 은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뱃사람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기탈저의 한 사냥꾼이 남자를 찾아왔다. 이 사냥꾼은 방패만한 은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부러진 막대기들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사냥꾼은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은판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은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자이번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냥꾼은 남자의 거처에 달이 다섯번 날개짓을 할 동안 머무르며 같이 가져간 동으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사냥꾼은 손가락만큼의 동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사냥꾼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지 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아비두의 한 현자가 남자를 찾아왔다. 이 현자는 손가락만큼의 동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동판들 위에는 자그마한 원과 세모들이 가득히 새겨져 있었다. 현자는 자신의 목숨만큼 귀하게 여기는 동판들을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남자는 동판들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것이 기탈저 사람이 새긴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현자는 남자의 거처에 해가 다섯번 돌아올 동안 머무르며 돌로 된 판 위에 그림을 그렸다. 현자는 다섯사람의 손가락만큼의 돌판을 들고 원래 살던 땅으로 돌아갔다.


현자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자 남자는 한숨을 쉬고는 흔적만 남은 탑을 올랐다. 남자의 한숨은 폭풍이 되어 탑의 남은 흔적을 지워버렸고, 그 이후 그 남자를 본 사람이 없었다.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년이란 시간을 잘만 써 놓고 이상한 시간 단위 고안해 내느라 고생했다.


자이번의 뱃사람과 기탈저의 사냥꾼이 익숙하다면 기분탓일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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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얼마 전부터 보기 시작한 입자물리 기초서에 페르미 황금률 2번(Fermi's Golden rule 2)이 나오길레 한번 증명해볼까 하다가 계속 한 부분에서 막히길레 Sakurai의 Modern QM을 봤다. 증명 없이 나오는 등식(?) 하나가 있길레 증명해봤다.


$$\int_{-\infty}^\infty \frac{\sin^2(xt)}{x^2} dx=\pi t$$


방법은 당연하게도(?) 복소변수를 이용. 양자물리 시간에 대충 배우고 공학수학 시간에 조금 더 배운 것 밖에 없는데 어떻게든 써 먹고 있다. 복소변수함수론을 한번 듣긴 들어야 할텐데...


먼저 sine 함수를 지수로 바꾼다. 그 유명한(?) 오일러 공식이 필요하다.


$$\sin y = \frac1{2i}\left(e^{iy}-e^{-iy}\right)$$


이러면 대충 다음 값이 나온다.


$$\frac{\sin^2(xt)}{x^2}= \frac{(1-e^{2ixt})+(1-e^{-2ixt})}{4x^2}$$


괄호는 편의상 친 것. 저 괄호를 이용해 분수를 둘로 나눈다. 적분 contour가 서로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작정 나누어도 되는지를 모르겠네. 어쨌든 이러면 답이 나오기는 한다.


$$\frac{\sin^2(xt)}{x^2}= \frac{1-e^{2ixt}}{4x^2}+\frac{1-e^{-2ixt}}{4x^2}$$


x를 z로 바꾸고, 앞의 것은 위쪽으로 닫힌 반원으로, 뒤의 것은 아래로 닫힌 반원으로 적분한다. residue는 원점에 있으니 이 부분은 포함시킨다. 앞의 항을 로랑전개(Laurent series)해보면 residue를 쉽게 구할 수 있다.


$$1-e^{2izt}=-2izt+2z^2t^2+\cdots \\ \therefore \frac{1-e^{2izt}}{4z^2}=-\frac{it}{2z}+\cdots$$


제대로 써 봅시다. C+는 위쪽 반원 반시계 방향, C-는 아래쪽 반원 시계방향.


$$\int_{-\infty}^\infty \frac{\sin^2(xt)}{x^2} dx=\int_{-\infty}^\infty \frac{1-e^{2ixt}}{4x^2}+\frac{1-e^{-2ixt}}{4x^2} dx \\=\int_{\mathbf{C}^+}\frac{1-e^{2izt}}{4z^2}dz+\int_{\mathbf{C}^-}\frac{1-e^{-2izt}}{4z^2} dz\\=2\pi i\left(\frac{-it}2\right) -2\pi i\left(\frac{it}2\right)=2\pi t$$


마지막 줄의 괄호 안은 원점에서의 residue. 값이 두배가 나왔는데 이건 특이점이 적분하는 구간 위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실제 값은 위 값의 절반.[각주:1] QED!


Sakurai 책에서는 맨 처음의 식이 이렇게 나와있다.


$$\lim_{t \to \infty} \frac{\sin^2(xt)}{\pi t x^2}=\delta(x)$$




2012.08.24 수정

찾아보니 절반으로 나누는 이유는 평균내려는 것이 아니라 '반원'을 따라 적분하기 때문. 복소함수 교재 찾아봤더니 조금 다른 이유로 절반으로 만들더라. 그리고 그 책에서는 함수(sine)를 나누기보다는 부분적인 함수(exp.)를 가지고 와서 원래 함수로 만들었다.




  1. 반으로 나누는 것은 특이점을 포함하는 contour와 특이점이 없는 contour 두 적분을 합쳐 평균내기 때문에 그렇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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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그렇게 난, 들어버렸다.


"그래"

눈물이 나왔다.

다시 들려주더니 뒤돈다.

라디오 램프의 루즈한 리듬에

마치 마법처럼 모든 만상이 멈춘다.

부슬이는 비는 바람에 비명이고

서서히 식어가던 사랑은

이별이 이었다.

조용히.


그렇게 난, 들어버렸다.



말장난 말장난 -_-ㅋ

Posted by 덱스터

깨어 꿈을 꾼 기억이 있는가?


간혹 게으름에 굴복해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깨어서 꿈을 꾸게 된다. 정신은 더 없이 멀쩡하지만 육신은 꿈 속을 헤맨다. 육신을 원래의 세계로 돌려놓는 것은 핸드폰 알람이거나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독촉 정도. 그러고 보니 요즘 너무 게을러졌군.[각주:1]


뜬금없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아직은 꼬리가 없는 이 소설이 그와 닮았기 때문이다. '부활의 왼손'이라는 별칭의 신비한 능력을 가진 레이즈와 그와 얽히게 된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면이 점차 융해되어 사라지는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가슴은 그 기묘한 감정의 여운에 한동안 헤맨다.


소설의 독특한 구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는 3장 사전이다. 이미 말한 적 있듯 본인은 구상하기만 하는 소설이 꽤 많다. 그 중 하나가 「어느 역사학자의 책상」이라는 제목을 붙일 예정이었던 글인데, 이 글은 신문기사 스크랩과 녹취록 등 짧은 독립적인 글들로부터 구현되는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만 했었다. 가제처럼 어느 역사학자의 책상을 훔쳐보는 듯 한 느낌을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갑각 나비』의 3장은 사전의 독립적인 항목들을 첫 장부터 끝까지 읽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필자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글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꽤 커다란 충격이었다.


3장의 경우 그 실험적인 구성으로 소설의 기묘함이 더욱 두드러지나 이 글의 기묘함은 그 구성보다는 그 주제로부터 기인한다고 본다. 『갑각 나비』의 주제는 원, 정확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소설의 각 장은 크건 작건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각 장에서 그리던 호가 처음 시작한 위치로 돌아올 때가 되었을 때, 그 호는 뒤집혀 원점과 결합한다. 예컨데 이런 것이다. 첫 장에서 알드레는 잃어버린 왼손을 다시 얻으며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온 원점에서 그는 '솟는 것이 있으면 가라앉는 것도 있다'는 말처럼 무언가 다른 것을 잃어버렸다. 다른 원들은 독자께서 직접 읽으며 찾으시길 바란다.


본인은 이전에 짧은 단상을 적으며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해 말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 아는가? 옛 사람들은 원을 완벽한 도형, 즉 가장 아름다운 도형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원의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 소설은 13장까지 나와 있다. 12장과 13장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어서인지 분위기가 다소 다른데, 13장은 설명이 늘어진다는 느낌이다. 13장이 압도적으로 길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그 늘어지는 설명이 그 어떤 장들보다도 더욱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었다. 작가의 10년 전의 글을 더럽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은 기우로 치부해도 좋을 것이다.


http://www.drwk.com/serial/frame.php?idx=12908&bidx=1000024

  1. 물론 헛소리다. 자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개운하게 깨는 것일 뿐.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2012. 8. 10. 08:00 Interests/Music

한판의 circus!

얼마 전 구글링을 하다 이 동영상을 발견했다.




슈스케 3 화제의 인물 김예림 양의 노래. 아직 군 복무중이던 때 일이라 생활관을 왔다갔다 하면서 가끔 봤는데 사이렌이 실존했다면 이런 목소리 아니었을까 싶은 마성의 목소리를 참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는 원곡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런지 그 당시에 느꼈던 '마성'은 느끼기가 힘드네. 원곡은 W&Whale의 최신 앨범인 EP - Circussss(20110706)에 포함된 노래.[각주:1]


더블유 앤 웨일 (W & Whale) - CIRCUSSSS [EP]
더블유 앤 웨일 (W&Whale) 노래/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개인의 취향차인지는 모르겠는데 원곡이 좀 더 밑으로 깔리면서 빨아들이는 느낌이 더 강한 것 같다. 김예림양이 부른 버전은 무언가 보컬이 뜨는 느낌.


이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가 좋다.

피할 수 없다면 그저 즐길 뿐

언젠가 끝없이 떨어진다 해도

그래. 인생이란 한판의 Circus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우주 속 작은 티끌 위에서 아둥바둥 살고 있는거다. 조금은 힘을 빼고, 조금은 더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한판의 circus처럼.

  1. 이제 1년 지났으니 한 2년은 기다려야 새 앨범 나오려나 ㅠ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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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이전에 꽤나 우울하게 지내던 때가 있었다. 그 때를 묘사하는데 썼던 표현이 "벚꽃이 흩날리는 무채색의 풍경"이었으니 봄이었나 보다. 세상이 그처럼 대채로울 수 없을 때이지만 이상하게도 흑백영화 속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괴로워했던 시절이었다. 그 때 추천받은 책이 니체였고, 그 이후로 니체 의 책을 자주 찾아 읽게 되었다. 세계에 빛이 돌아온 것은 물론이다.


글을 오래 안 쓴 블로그에 다시 활기를 넣기 위해 내가 읽었던 니체와 관련된 책들에 대한 비교글을 작성하기로 했다. 이미 쓰던 글은 많이 있지만(쓰지 않은 서평이 특히 많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속담과 이 상황이 무슨 상관인지는 제쳐 두고, 책의 바다로 떠나보자.


1.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이진우 지음/책세상


이 책은 니체의 사상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여행기에 가깝다. 니체가 살았던 곳들을 여행하며 니체의 사상이 어떻게 자라났을까 따라가보는 책인데, 니체의 사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깊은 설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담 없이 읽기에 좋다.


2. 『명랑철학』

명랑철학
이수영 지음/동녘


이런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덮어버렸다. 저자가 니체의 사상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설명하고 있는지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책을 표지로 평가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토록 우상을 찾아 헤매는 인간을 비판했던 니체가 이 책에서 우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불편한 느낌 때문에 몇 장을 읽다가 덮어버리고 말았다.


3.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 지음/그린비


이 글을 쓸 동기를 마련해준 책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니체의 사상에 제일 가깝기도 하고, 또 책 자체가 매우 쉽게 쓰여진 편이기 때문에 니체를 한번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은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 싶다. 제목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의 새로운 번역본같다는 생각이 들어 구입을 망설였지만 알고 보니 번역본이 아닌 니체 사상 해설집이었다. 잘 모르고 있던 부분에 대한 설명도 있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내용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해설해 주어서 책 값이 아깝지 않았다.[각주:1]


위의 세 가지가 내가 읽은 책들이다. 사실 책방에 나와 있는 책들 중 니체의 사상에 대해 다룬 책들은 매우 다양하고, 내가 읽은 니체와 관련된 책들은 니체 저작의 번역본을 포함한다 할지라도 매우 소수이다. 니체에 대한 접근은 다들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니체를 반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니체를 민주주의적이었다고 옹호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니체가 실제로 했던 생각을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어디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모두들 그의 책을 어느 정도 오독하고 있다. 그리고 책이 저자의 펜 끝을 떠난 순간 독립적인 삶을 맞이한다고 믿는지라 그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기로 했으면, 어느 사상을 비판하는 책을 읽기보다는 옹호하는 것을 읽어서 자기의 생각을 다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1. 정정. 나는 원래 책 값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아니니 나무가 아깝지 않았다고 해야 맞는듯.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필!승!

신!고!합니다.

병장 김정욱은 2012년 8월 2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전역한지 좀 되었습니다. 무려 사흘이나 되었네요. 이제 군에 있어서 버려두었던 블로그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할 듯 싶습니다. 그런데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인터넷이 많이 변했는지 블로그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네요. 단타로 치고 빠지는 그런 글들에 길들여진 모양입니다. 군대에서 시간은 생명인 것이랑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년간 한 것들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체중은 거의 그대로(훈련소때 빠졌다가 엄청 쪘다가[각주:1] 원래대로 돌아왔네요)이지만 근육이 많이 붙었습니다. 요즘은 팔굽혀펴기를 한손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체력이 좋아진 것을 느낍니다. 공부는 많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Reif의 Fundamentals of Statistical and Thermal Physics를 간단하게 정독했고, Landau의 Classical Field Theory의 일부분만 공부한 정도였으니까요. 전자기학에서 파동과 방사에 관련된 부분은 못 봤고(결국 입대 전 공부한 것을 복습한 정도), 일반상대론 부분은 빡세게 보긴 했지만 전자기학에서 안 본 파동과 방사 부분 때문에 완전히 보진 못했습니다. 다만 일반상대론 공부하면서 갖가지 전개를 이용해서 수치적으로 풀어보거나 물리량을 직접 미분하여 해답을 구하는 노가다를 해 본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노트 두 권이 이 책 공부하는 동안 빽빽하게 채워졌었네요. 아, 물론 양자장론을 조금 보기는 했지만 그건 강의노트만 본 것이라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기는 힘들죠.


단편소설도 두어 편 정도 써 보고, 장편을 기획해놓은 것이 있기는 한데 이 녀석은 좀 더 놔둘 생각입니다. 지금 구상한 것은 하늘치 유적처럼 군데군데 빈 부분이 많거든요. 단편은 언젠가 공개한다고 단언을 했던 것 같은데 아직도 귀찮음 때문에 어디 굴러다니는 공책에서 발효되고 있는 듯 싶습니다. 제목은 「인큐베이터」로 뫼비우스의 띠에서 영감을 얻은 것과 「플랑크의 상자」로 양자역학의 해석과 관련된 것입니다. 전자는 확실히 쓰긴 했는데 블로그에 옮겨적으며 교정을 보다가 중간에 그만둔 경우이고, 후자는 90% 완성되었는데 쓰다가 말았네요. 어차피 복학할 때 까지 남는게 시간일듯 싶으니 어떻게든 해 보려 합니다.


참, 그러고보니 졸업논문에 쓸 만한 간단한 문제와 해답까지 완성해 놓았네요.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 자기단극자에 관련된 문제인데,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영제국의 대통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것과 차이가 거의 없는 것 같거든요.


제대하고 나니 언젠가 에릭 호퍼의 글에서 읽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나치를 지지했던 청년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하네요. "자유로부터 자유를". 자유가 얹어주는 짐을 견딜 수 없었던 옛 청년들의 절규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흔히 전역을 영원한 휴가라 부르던데, 영원하다는 말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이니까요.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든 스스로 짊어져야만 하겠지요.


자유는 날개입니다. 그것이 비상하는 매의 날개냐, 아니면 달리는 타조의 짐짝이냐는 두고 봐야겠지요.

  1. 자대 전입한 직후 스트레스 때문인지 폭식 좀 했더라지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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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자랑은 아니지만 필기구에 민감한 편이다. 볼펜은 부드럽지 못하게 넘어가는 특징 때문에 노트 필기시 기피하는 편. 물론 부대 안에서는 펜 여러개를 들고 다니느니 다색펜 하나가 더 편하기 때문에 일반상대론 공부할 때에는 zebra clip-on 4색으로 했었다. 샤프는 uni 알파겔. zebra airfit보다 부드러운 손잡이 때문에 좋아한다. 좀 많이 쓰다보면 사람 피부처럼 부들부들(..)해지며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샤프심은 거의 항상 2B를 쓴다. HB만 되어도 너무 딱딱해서 안 좋아한다. 예전에 2H심은 어떻게 썼었는지 미스테리일 정도.


훈련소에서 교육우등으로 만년필을 받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Parker의 벡터인데다가 F촉이라서 이전에 쓰던 펜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두꺼워 좌절했다. 그래서 한 일주일 쓰고 그대로 봉인. 어느 정도로 두꺼운가 하면, 0.7mm 잉크펜으로 쓰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봉인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1주일밖에 안 쓴 카트리지의 잉크가 전부 말라버렸다. OTL


물론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 붉은 계열 색상이라는 것도 안 쓴데 한 몫 했을듯.

"증 기술학교장 교육우등"은 자랑일까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던 라미 만년필이 알라딘 특가로 싸게 올라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 결재완료. 특가는 29,900이었지만 이리저리 하다 보니 결국 결재가는 27,460.


Lamy Safari Special edition 2012 애플그린 만년필(한정판)
/Lamy


그래서 오늘 도착한 펜. 자주 쓰던 펜들과 비교해 봤다.


맨 위는 시그노. 예전엔 제일 선호하는 펜이었지만 근래엔 마하펜을 제일 많이 썼다.

마지막은 이번에 받은 라미 사파리. 악필은 죄송합니다 ㅠㅠ


집에 굴러다니던 A4용지 하나를 집고 자주 쓰던 펜들을 써 봤다. 맨 위는 Uniball 시그노. 개인적으로는 하이텤보다 시그노를 선호하는데, 하이텤은 촉이 너무 약한데다가 무언가 긁히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다. 하지만 시그노는 가격이 비슷하면서 양이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 함정(...) 중고등학교때와 대학 1학년때 까지는 시그노를 제일 많이 썼던 것 같다. 아직도 극세필이 필요하면 시그노를 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러스트를 펜으로 마무리할 때. 그래서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중간에 있는 것은 모닝글로리의 희대의 역작 마하펜. 최신기종인 Mach 3. 필기감이 엄청 부드러워서 좋아한다. 두께는 물론 시그노보다 두껍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펜. 가격도 싸고 용량도 많아서 좋다. 다만 물에 취약하다는 것이 단점. 필기하다가 잠깐 정줄놓 상태로 있으면 잉크가 번지는 것도 단점이다. 대학 2학년 때 튜터링을 하면서 강의노트 만들 때 이 펜을 자주 썼었다. 노트필기할 때에는 그림그려야 할 일이 많아서 계속 시그노를 쓴 듯(...). 물론 과목에 따라 연습문제를 풀거나 할 때는 얄짤없이 마하펜.


마지막은 라미 사파리. 2012 특별판인 녹색으로 샀다. 이제 명함주머니에 차고 다니면 되겠네(주로 무채색 계열 셔츠를 입으니까 포인트 악세사리가 되는건가) 일단은 들어있던 파란 잉크 카트리지를 박아보았다. 파란색이라 좀 연하게 나오는게 아쉽지만 EF(Extra Fine)촉이라 제법 얇다. 바로 위의 마하펜과 비슷한 수준. 강의노트 만들 일 있으면 많이 쓸 듯. 만년필이 대체적으로 두꺼운 편이라고는 하는데 EF정도 되면 얇은 잉크펜 수준으로 쓸 수 있는 모양이다. 첫 만년필 치고는 만족.


집을 뒤적뒤적 하다 보니 몽블랑(!)도 발견했는데[각주:1], 몽블랑은 아무래도 두껍게 나오는 편이라고 하니 내가 쓸 일은 없을 듯 싶다. 그것보다 학생한테 몽블랑은 사치라고.

  1. 아버지께서 선물받은 것이라고 한다. 마이스터튁이긴 한데 정확한 모델명은 모르겠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말년휴가중 심심해서 언어나 배워볼까 합니다. 라틴어는 일단 교재를 사긴 했는데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들고(feedback이 전무하니) 해서 다른 방법은 없나 하다가 얼마 전에 본 이 동영상이 생각났죠.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회원가입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글자를 읽어주세요"를 어떻게 하면 좀 더 건설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해서 단어 두개를 올리고 하나는 확인용, 하나는 고서 디지털화용으로 바꾸었다는 강연자. 그의 또 다른 프로젝트입니다.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두개의 언어"로 번역하면 될 듯한 프로젝트의 제목은 doulingo입니다. 언어를 가르치면서 번역을 해 보자는 것이죠.


홈페이지: http://doulingo.com


애석하게도 현재는 스페인어와 독일어만 지원합니다. 영어로 배워야 하고요. 베타로 프랑스어가 대기중이네요. 심심풀이로 언어 하나 배워보시겠어요?


오늘부터 라틴어는 버리고 독일어 공부 시작합니다 -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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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디랙해Dirac sea를 항해하는 히치하이커들. 그들은 겔만의 팔정도Eightfold way를 가슴에 품고 파인만 도표Feynman diagram를 지도삼아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odinger's cat와 함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Heisenberg's uncertainty principle을 극복하며 나아간다.[각주:1] 그들을 위한 항해의 안내서를 공개하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Second Creation
The Second Creation (Reprint, Paperback)
Crease, Robert P./Rutgers Univ Pr
현대 물리학이라고 하면 대부분 초끈이론을 떠올리지만 실세는 표준모형이다. 아직 초끈이론이 이론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표준모형은 쏟아지는 새로운 물리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고 물리 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실험적으로 검증된" 이론이다. 하지만 표준모형에 대한 교양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몇 안 되는 표준모형의 역사를 다루는 책인 Second Creation은 표준모형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항상 계산을 틀리고는 했다는 맨하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오펜하이머J. R. Oppenheimer, 말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디랙P. A. M. Dirac, 봉고를 치고 다니며 직관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파인만R. Feynman, 돈 벌어 먹고 살만한게 없어 물리를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겔만M. Gell-Mann 등 표준모형이라는 건축물의 주춧돌을 깎아냈던 개성 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의 시간을 흡입하는 마력이 있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배우는 톰슨J. J. Thomson의 푸딩모형과 우리가 현재 원자력을 하면 떠올리는 원자핵이 가운데에 있고 전자가 그 주위를 도는 그림의 원인을 제공한 러더퍼드E. Rutherford의 실험들의 비화 또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방사능의 위험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에 고도로 농축된 방사성 물질으로부터 화상을 입어 가면서 새 물리학의 기둥을 새웠던 실험가들의 이야기와 양자역학을 태동시킨 보어N. Bohr,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 슈뢰딩거E. Schrodinger의 일화는 물리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깊게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덴마크 사람인 보어가 영국으로 유학가서 지냈던 불행한 시절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상대적으로 오래 된 책(80년대면 현대물리학에서는 근대이다)인지라 표준모형에 아직 3세대 입자, 그러니까 Top, Bottom 쿼크와 타우 입자Tauon가 도입되기 전까지의 역사까지만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론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과거와는 다르다고 해서 과거의 이해와 해석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닌 것처럼, 누락된 역사는 이 책의 아쉬운 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오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 엘러건트 유니버스

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승산
초끈이론의 전도사라 할 수 있는 그린B. Greene의 초기작이다. 후속작이었던 『우주의 구조』는 어려워서 읽다가 중도에 포기했는데(106페이지였을 것이다) 이 책은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중학생이 소화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일까?

"현대물리학이란 초끈이론이구나"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낸 장본인(그리고 미드 빅뱅이론은 이 편견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기 쉽게 잘 쓰여진 책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괜찮은 책. 다만 현재 서점에 쏟아지는 책들이 죄다 초끈이론에 그 기반을 둔 책들인지라 새로운 관점을 원한다면 다른 책이 더 나을 것이다.


3. Concepts of Space
공간개념
막스 야머 지음, 이경직 옮김/나남출판
(원서가 없어 번역본으로 대체)
어렵다.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도 참고한다고 하니(칸트까지만 하더라도 시공간은 철학의 일부였다.) 그 난이도가 짐작이 가리라. 더군다나 책 중반 이후부터는 원문을 수록하는데 읽은 책이 영어였으니 수록된 원문은 불어와 독일어 등. 덕분에 인용문은 하나도 못 읽었다. 순전히 독자의 능력 부족이기는 하다만.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옛 사람들의 생각부터 현대의 생각까지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다. 옛 희랍 시절의 사람들이 기발한 논리로 공간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유대인의 카발라Cabala가 어떻게 기독교 세계관에 영향을 주었는지, 뉴턴의 공간에 대한 가설에 대한 당대 신학자들이 어떻게 비판하였는지 등에 대해서도 담고 있어 물리학 교양서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다. 더군다나 후반으로 갈 수록 현대물리학의 입김이 반영된 "시공간은 어떠한가"에 대한 답변은 관련 전공의 전공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진다. 불가해한 것으로 여겨졌던 문장들이 일반상대론을 조금 공부하고 나니 깨우쳐진다면 교양서로서는 낙제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이라면 서양쪽의 역사에 치우쳐 동양에서 공간의 개념은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나오지 않는다. 다만 현대의 시공간에 대한 관념은 거의 서양 사상이 원류가 되니 동양의 역사가 도입되면 오히려 책의 통일성만 방해할 위험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지.


4. Three Roads to Quantum Gravity
Three Roads to Quantum Gravity (Reprint, Paperback)
Smolin, Lee/Perseus Books Group
(번역본도 나와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론들에 대한 책은 대부분 초끈이론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끈이론은 미국에서 대단히 흥행하고 있는 이론이고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물리학의 거장들이 활동하고 있는 다른 지역으로 렌즈를 돌리면 어떤 그림이 나오게 될까?

2차대전 이전에는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A. Einstein, 슈뢰딩거 등 독일이 당대 물리학의 최전선에 서 있었고 2차대전 이후에는 그 사람들이 나치를 피해 건너간 미국에서 파인만, 겔만, 와인버그S. Weinberg 등이 현대물리학의 초석을 닦았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의 거장들이 그들만 있던가. 뉴턴경Sir I. Newton의 역사를 물려받은 영국에는 펜로즈R. Penrose와 휠체어 위의 지성 호킹S. Hawking박사가 있다.

특이하게도 셋 다 중력에 대한 연구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중력의 양자화에 대한 전반적인 접근을 다루는 책이 영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은 제목에서처럼 중력을 양자화하는 접근법들에 대한 책이다.

중력을 양자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잘 알다시피, 전하는 연속적인 분포를 갖지 않는다. 전자가 가지고 있는 전하량이 일정하고 이 전하량이 기본 단위가 되어 전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치 158,259.82원짜리 핸드폰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실제 현금으로 이 핸드폰을 살 때에는 158,250원이나 158,260원으로밖에 거래를 못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식으로 물리 법칙에 근본적인 비연속성을 도입해주는 것을 양자화된 이론이라고 부른다. 플랑크M. Plank는 빛의 에너지에 비연속성을 도입해서 흑체복사black body radiation를 성공적으로 설명했고, 보어는 원자 궤도에 양자성을 도입해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하는데 성공했다. 디랙과 파인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전자기력의 상호작용까지 양자화하는데 성공하는데, 이것을 두고 양자전자기학Quantum ElectroDynamics, 혹은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이라고 한다. 다만 아직 양자화가 완전하지 못한 힘이 있는데, 바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설명되는 중력이다.

중력에 양자성을 부여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끈이론이 있고, 다른 하나는 약간은 생소한 루프 양자중력 이론이다. 둘의 접근방법은 약간 다른데, 초끈이론이 힘을 매개하는 입자들(보존boson이라고 부른다)의 존재에 뿌리를 둔다면 루프 양자중력 이론은 반대로 시공간이 양자화되어있을 경우 만족할 방정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마지막 한 가지 접근법은 아예 백지 상태로부터 출발해 물리 이론을 쌓아 나가는 것으로(예컨데 시공간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지 않고 이론의 중간 과정으로 시공간을 정의하는 방식이다) 펜로즈의 트위스터 이론이 여기에 해당하나 다른 이론들도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앞서 서술한 이 세가지 이론들을 서로 비교하며 중력을 양자화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시공간의 다양한 측면들을 파헤친다. 초끈이론 말고 다른 현대물리학의 이론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이 궁극적인 중력의 양자이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저자는 현재 알려진 중력에 양자성을 부여하는 이론들은 결국 진짜 이론의 한 단면일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코끼리의 코를 만졌던 장님과 귀를 만졌던 장님의 대답이 달랐던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들은 맞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현실과 아예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수십년 이내에 중력의 양자적 성질이 전부 밝혀질 것인지 기대해 보자.

5. Programming the Universe
Programming the Universe (Reprint, Paperback)
Lloyd, Seth/Random House
(번역본도 나와 있습니다)
이미 한 번 서평을 쓴 적이 있는 책(2008/12/24 - [자연과학] 세스 로이드, 프로그래밍 유니버스)이지만 조금 부족한 것이 있다 싶어 부연설명을 단다.

다른 교양서적과는 다르게 이 책은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는 책은 아니다. 단지 "새로운 해석"을 소개하는 것일 뿐. 초끈이론이 세계를 "고차원의 끈들이 공명하는 무대"로 묘사했다면 이 책에서는 우주가 "0과 1들이 벌이는 축제"로 치환된다. 이 책에서는 세계가 숫자들의 잔치라는 그림으로 그려지더라도 그 세계를 설명하는 수식들은 이전의 물리학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몬드리안P. Mondrian의 추상화에서 누구는 냉혹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구는 이성의 차가움을 느낀다는 것이 비슷한 비유이려나.

관측하는 순간 그 물체는 그 상태로 붕괴한다는 고전적인 코펜하겐 해석, 양자역학적으로 주어진 다양한 가능성들은 각기 그 가능성대로 발현한다는 다세계해석 말고 제 삼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될 것이다.


6. 생각의 기차
생각의 기차 1
이상하 지음/궁리
생각의 기차 2
이상하 지음/궁리
벤젠고리는 꿈에서 등장한 자기 꼬리를 문 뱀의 형상을 통해 유명해졌고, 페니실린은 열악한 연구실 환경에서 곰팡이가 잘못 자란 덕분에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비슷한 많은 사례들 때문인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행운(serendipity)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간혹 있게 되는데, 실제 발견의 현장은 그러할까? 새로운 발견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일까?

과학적 발견이라 하면 과학이 내딛는 걸음 하나 하나를 말한다. 지금 이 시대의 과학은 다각형과 사원소설로 우주 만물의 움직임을 설명하던 요람에서 보이지 않는 미립자들을 관측하고 수많은 괴질들을 정복하는 먼 길을 걸어왔다. 그 먼 길을 걷는 동안 남겨 놓은 발자국들이 모두 앞선 예제들처럼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지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과학이 남은 발자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저자는 총 열 두가지 분류로 발자국들을 분류하고 그 분류를 따라 발자국들을 되짚는다. 그 발자취에는 과학이 발달하던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의 한계도 드러나고 새로이 발견된 현상들에 대한 과학자들의 대담한 가설과 보수적인 견해가 서로 배치되며 나타나기도 한다. 이 긴 여정 속에서 점차 분명해지는 것은, 으레 믿는 '과학은 천재들의 거대한 도약으로 쌓아올린 상아탑'이라는 신화가 과학이라는 빙산의 왜곡된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과학이라는 길을 걷고자 하나 자신의 능력에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과학을 둘러싼 경외의 환상을 벋겨내고 자신감 있게 길을 내딛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7. Feynman's Rainbow

Feynman's Rainbow (Reprint, Paperback)
Mlodinow, Leonard/Grand Central Pub
(번역본도 나와 있습니다)[각주:2]
서점의 과학 코너에 들어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수많은 책들로 이름을 널리 알리는 파인만씨.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저자는 박사과정을 막 마친 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물리학계의 전설 파인만과 겔만이 있는 칼텍으로 오게 된다. 낯선 환경, 잘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만난 파인만. 이 책은 당시 항암 치료로 고생하며 젊음을 잃어버린 후년의 파인만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공자와 그 제자들 사이의 대화를 적은 『논어』에서 공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천재라는 베일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았던 파인만의 삶과 사상이 드러난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화를 옮겨 본다.

"And what do you think was the salient feature of the rainbow that inspired Descartes's mathematical analysis?" he asked.
"I give up. What would you say inspired his theory?":
"I would say his inspiration was that he thought rainbows were beautiful..."
 
"그리고 데카르트가 수학적으로 분석하도록 한 무지개의 본질적인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해?" 그가 물었다.
"모르겠는데요. 데카르트의 이론에 불을 지핀게 무어라 하시겠습니까?"
"나는 데카르트가 무지개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서라 하겠어..."
p.s. 신판본도 있어 링크를 걸어둔다.
Feynman's Rainbow (Paperback)
Mlodinow, Leonard/Random House Inc


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로버트 P. 크리즈 지음, 김명남 옮김/지호
우리는 왜 자연에 대해서 알기를 열망하는 것일까. 그건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에, 자연이 감추어 둔 보석을 드러내는 실험 또한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책에 대한 평가는 이전에 쓴 서평으로 대신한다.(2011/06/05 - 로버트 P. 크리즈 저 김명남 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 부연설명은 불필요하다고 믿는다.


9. 기타
스트링 코스모스
스트링 코스모스
남순건 지음/지호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국내 과학자의 초끈이론에 대한 교양서. 얇고 무난하지만 두어 번인가 오타가 있어 신경쓰였다. 이전 서평(2009/03/24 - 남순건, [스트링 코스모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츠즈키 타쿠지 지음, 김하경 옮김/더블유출판사(에이치엔비,도서출판 홍)
오역만 기억나는 교양서. 소설의 형식을 차용해서 그런지 NNT의 블랙 스완이 연상되는 부분도 있다.[각주:3] 이전 서평(2009/04/14 - 츠즈키 타쿠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과학 철학
과학 철학
이상하 지음/철학과현실사
어렵기도 하고(후반부는 머리에 우겨넣는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과학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전혀 상관없는 책이다. 과학철학이 쿤의 패러다임과 포퍼의 반증가능성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한테는 다른 견해들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에너지와 운동량에 대한 생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서평이 아직도 쓰다 만 채 보관고에서 숙성되는 모양이다.

싸우는 물리학자
싸우는 물리학자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박재현 옮김, 전영석 감수/시공사
연예인 x파일이라는 것이 한창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물리학자 x파일이다. 물리학 교재에서 간간히 보이는 이름들의 인간적인(?) 부분을 볼 수 있다. 이전 서평(2009/03/14 - 다케루치 가오루, [싸우는 물리학자])

밤의 물리학
밤의 물리학
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꿈꾸는과학 옮김/사이언스북스
"밤의"이라는 수식어는 무림식으로 쓴다면 사파(邪派), 역사식으로 쓴다면 야사(野史). 물리학 전체 커뮤니티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가설들과 이론들을 다루는 책인데 워낙 이쪽 구석구석을 다 쑤시고 다니는지라 새로운 것은 없었다. 이전 서평(2009/01/07 - 다케우치 가오루, [밤의 물리학])



  1. 재미없는 말장난이다. [본문으로]
  2. 만 품절로 Fail [본문으로]
  3. 논리보다는 이야기가 더욱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런 구성을 취한다고 했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심심하니 라디오나 만들까 해서(...) 예전에 보아둔 적 있던 대인의 과학 시리즈를 찾아보던 중 신규제품으로 Theo Jansen(네덜란드어라 원어 발음은 테오 얀슨에 가깝다[각주:1])의 Kinetic Sculpture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산 것은 아래 모델인데 대인의 과학 매거진 30번보다는 호외(?)로 나온 이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든다.

大人の科學マガジン別冊 テオ·ヤンセンのミニ·リノセロス (學硏ムック大人の科學マガジンシリ-ズ) (ムック)
/學習硏究社
Mini Rhinoceros. 이런 것도 판매하다니 알라딘은 역시 위대하다

처음 이 사람의 작품을 알게 된 것은 로봇 설계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조사에서였다. 사다리에 거꾸로 매달려서 앞뒤로 오가는 로봇을 제작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바퀴를 사용할 수 없도록 간격을 불규칙적으로 준다고 해서 다리를 사용하는 메커니즘을 찾다가 알게 되었다. 지금도 YouTube에 올라와 있는 이 동영상이 그 때 발견한 동영상이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실제로 구현하기엔 비용이 만만치 않은 구조이다.[각주:2]

 
프로젝트때 제시되었던 여러 디자인 중 하나. 결국 버려졌다.

결국 기어에 사다리의 오차를 흡수할 수 있도록 약간의 디자인 변형을 가해 사용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 잊고 살았는데 갑자기 든 라디오 제작 생각에 이것 저것 찾다가 다시 떠올린 것. 실제 네덜란드 해안가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어다니는 녀석의 동영상을 보도록 하자.


그냥 걷는 동영상일 뿐인데 한 번 정도는 끝까지 보게 된다

찾아보다 알게 된 사실이 첫 세대는 밀어주면 걸어가는 수준이었는데 갈수록 발전해서 바람을 먹어(?) 혼자 걸어다니기 시작하더니 등에 달린 날개(...)로 바람을 모아 바람이 없어도 저장해둔 바람을 이용해 걸어다니고 요즘에는 센서까지 달려서 물을 감지하면 방향을 바꾸고 그걸 기억해두는데다가 폭풍이 몰려오면 자신을 땅에 고정하는 능력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 정도면 재생산만 못 할 뿐이지 말 그대로 "신형 생명체new forms of life"이다.[각주:3] 자세한 작동 매커니즘은 제작자에게 들어보자.

얀슨의 TED 강연

버리는 PVC파이프와 자연분해성 비닐, 버리는 레모네이드 PET병에서 태어나 바닷바람을 먹으며 살아가는 해변가의 생명체Strandbeest. 자비로운 아름다움은 뼈대뿐인 기계에조차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P.S.
얀슨이 사용하는 위의 구조물처럼 막대와 축만으로 구성된 기계장치를 링키지(linkage)라고 부른다. 얀슨의 설계 말고도 걷는 행동을 모방하는 링키지로는 조 클란(Joe Klann)이 디자인한 클란 링키지가 있다. 실제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링크를 참조하라. 얀슨 링키지가 4족보행 포유류의 걷는 모습을 닮았다면 클란의 경우는 곤충의 걷는 모습을 닮았다. 두 링키지를 비교한 사이트도 있으니 확인해보자.

이전에 BBC에서 했던 고인(?)이 된 방송중 Techno games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종의 로봇 올림픽이라 보면 되는데 그 중 단거리달리기 종목이 기억이 난다. 바퀴 없이 50m를 최대한 빨리 돌파하는 것이 목표인 이 종목에서 다른 기계들이 3분씩 걸려 겨우 통과하던 50미터를 단 8초만에(!) 통과해 아직도 기억에 남는 로봇이 있다. Scuttle이라는 이 조그마한 로봇의 매커니즘은 여기에서 확인하면 된다(Scuttle in action). 주의할 것은 이미 전시대의 유물이 된 Flash4가 없으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난 리더 후렌들리한 라이터기 때문에 친절하게도 작동방식 설명 플래시의 주소를 찾아내어 삽입한다.

 
손을 움직여 작동할 수도 있고 그냥 Play를 눌러도 된다. 왼쪽의 속도조절은 덤

걷는 것을 묘사하는 장치를 만드는 법은 많지만, 일단 기억나는 것은 여기까지. 여기에 제시된 디자인 말고도 가능한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당신의 상상력을 믿겠다.

P.S.2
분명 과학과 기술은 다른 분야인데 다음 view는 과학으로 통합해놓은 것 같다. 그래서 과학으로 발행.
  1. 잘 들어보면 "테오 얀스ㅔㄴ" 보통 테오 얀센이라고 많이 쓰는 듯 싶다. [본문으로]
  2. 한 다리에 막대가 8개 사용되는데 막대 하나당 가격이 증가하기 마련이고 더군다나 부품 수가 증가할수록 어디가 문제인지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진다. 미적으론 완성되었어도 공학적으로는 영 아닌 케이스. [본문으로]
  3. 생물학적인 생명체의 정의는 1. 에너지대사를 할 것, 2. 자극에 반응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3. 재생산을 할 것이다. 에너지대사란 생명체는 에너지를 흡수하고 배출해야 한다는 것을,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은 외부 조건이 변하면 그에 맞추어 다르게 행동할 것을, 재생산이란 생식활동을 할 것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조건 중 두가지나 만족시키니 준생명체 아닌가.(컴퓨터 바이러스를 첫 조건을 제외한 나머지 조건을 만족하니 첫 인공 생명체라고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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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요즘 마사토끼의 블로그에 이미 연재가 끝난 매치스틱 트웬티의 초고(?)가 올라오고 있다. 한번 보긴 했던 웹툰이지만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다시 정주행. 잊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다시 보면 여전히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별다른 할 일이 없어서 어제 도착한 DVD를 두번 돌렸다. 한번은 영화 감상, 한번은 코멘터리.[각주:1] 이미 재미있게 봤고 이야기도 다 아는데 다시 보는 영화를 그것도 두번이나 돌리다니, 왜 그랬을까. 생각없이 영상을 틀어놓고 딴 짓을 하며 가끔 눈길을 줄 때까지만 해도 들지 않던 의문은 웹툰을 정주행하고 난 뒤에야 찾아왔다. 왜 우리는 이미 아는 이야기를 다시 듣고자 하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였던가? 옛적에 아름다움은 아는 것을 재인식하는 즐거움이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려놓고 추상적인 아름다움이라며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소 시대와 동떨어진 발언같기는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난 이 기억이 고개를 든 순간, 역으로 이야기의 재미는 아름다움을 다시 만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래, 이야기의 재미는 그 이야기의 색다름과 예측 불가능성에도 있지만, 어쩌면 그 이야기의 아름다움에 있을지도 몰라. 뻔한 이야기를 보려고 영화관 매표소에 줄을 서는 이유도,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이야기를 위해 지갑을 비우면서까지 뮤지컬을 예매하는 것도 다 이야기가 아름다워서 아닐까.


어쩌면 세계 제일의 이야기꾼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1. 이번 휴가중에 단편 마무리해서 공개한다고 했던 것은 안드로메다로...-_-;;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영화는 홀로 가서 봐야 제 맛이다.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
가이 리치

모두들 이름 한 번 정도는 들어본 전설이 된 탐정, 셜록 홈즈. 영화 2편이다. 누구는 원작과는 달리 추리가 빈약하다 다 불만이던데 나는 그냥 재미있게 봤다.[각주:1] 영화의 개연성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서.

전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순간 순간을 집어내는 영상미였는데(영화 300에서 칼이 반원을 그릴때마다 클로즈업을 이용해 공간적으로 강조해주었다면 여기서는 주먹을 뻗을 때마다 영상을 천천히 돌려서 시간적으로 강세를 넣었다) 역시 가장 큰 볼거리가 되었다. 영화관을 나서고 난 다음에 남는 기억이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화면 편집밖에 없으니 말 다했다.


1편에서의 화면 편집

동시에 개봉한 Mission: Impossible - Ghost Protocol 과 비교한다면 홈즈는 영상의 편집에, 미션은 영상의 스케일에 점수를 준다.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
브래드 버드

특히 모래폭풍이 몰려오는 장면은 압권. 홈페이지(http://www.mi4.co.kr/)에도 나와 있고. 소소한 웃음 요소가 간간히 배치되어 있어 보다가 웃고 심각해지면 몰입하고 그러다가도 유머 포인트에서 한번 더 웃고 이런 식으로 가족오락영화로는 딱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 시작의 주/조연 배우들 이름 나올 때(..)인데, 찾기 참 힘들다.



여담이지만 MI4에서는 아이큐 190이 등장하는데, 원래 IQ는 100을 평균으로 해서 표준편차를 얼마로 두느냐에 따라 지능의 척도가 달라진다. 만약 10이 표준편차라면 중앙에서 표준편차 9 밖의 사람이라는 건데, 표준편차 9가 약 4*10^18분의 1이니(지구가 600만개 있으면 그중에 한명 있을까 말까 한 사람이라는 뜻) 존재할 수 있는 IQ가 맞는지 의심스러워진다[각주:2]. 15나 20으로 한다면 그나마 나아지는데, 15인 경우에는 표준편차 6(약 5억분의 1)으로 세계에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친 정도에드는 경우이고, 20인 경우에는 표준편차 4.5(4.4가 10만분의 1이다)니까 세계 톱 7만명 정도 된다.[각주:3] 물론 IQ 기준점은 계속 상승해 왔다고 하니 만약 기준점이 오르기 전의 측정값이라면 실제로는 이만큼 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1. 하지만 소설 원작의 홈즈가 하는 괴팍한 짓은 전부 그려냈으니 아예 원작에서 동떨어진 물건이라 보기는 힘들다. 심심하면 변장하고, 이상한 실험을 하고 있고, 등등... [본문으로]
  2. 허경영은 뭐지...;; [본문으로]
  3. 7만명이라니 악당의 능력에 실망할 지 모르겠지만, 일단 평생 만나는 사람의 수가 10만명이 되는지부터 생각해보자. 내가 보기엔 한 세번 살아야 한번 볼 만한 사람인 것 같은데.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2011. 12. 31. 12:50 Daily lives

이런저런 이야기

1. 독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만 읽고 있다. 이제 겨우 Landau책 일반상대론 부분의 기초를 다진 상태. Schwarzschild 해 부분부터 시작하면 되는데 운동과 공부 병행하기가 힘드네..

읽은 책은 『양자중력의 세 길』과 『댄 애리얼리, 경제 심리학』.

Three Roads to Quantum Gravity (Reprint, Paperback) - 10점
Smolin, Lee/Perseus Books Group

트위스터 이론과 루프 양자중력이론쪽도 소개하는 상대적으로 드문 책이다.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대한민국의 학문은 미국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유럽쪽 이야기는 듣기가 상대적으로 힘들다.) 일반상대론을 기하학의 탈을 쓴 관계이론(relational theory)이라고 표현하는게 인상적이다.

이전에 누군가가 좌표 원점의 도입은 폭력이라고 했다 한다. 이런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쪽이 트위스터 이론과 루프 양자중력이론쪽이고, 이런 폭력을 사용하기는 하는 쪽이 널리 알려진 끈이론 진영이라고 한다. 다만 트위스터와 루프쪽이 부족한 부분이 중력자라는 중력을 매개할 입자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 이처럼 서로 상호 보완적인 부분을 소개하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베켄스타인 한계(Bekenstein bound)쪽에 대한 설명이 조금 이상하게 되어있어서 그 부분이 살짝 불만이다.

The Upside of Irrationality (Paperback) - 10점
댄 애리얼리 지음/HarperCollins

인간 행동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심리학과 연관된 부류의 책도 많이 읽는 편이다. 특히나 뇌의 계산적인 부분이 마비되는 상황들이 흥미를 자극하는지라 즐겁게 읽은 책. 전작과 비교하면 NNT가 블랙 스완에서 말했던 "이야기의 힘"이[각주:1] 잘 드러난다. 댄 애리얼리의 전작에 대한 서평은 없지만 TED 강연은 있으니 링크를 걸어둔다.

다음에는 The second creation을 읽어볼까 생각중. 표준모형의 형성과 관련된 책이다. 이론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은지라 재미있게 읽을듯. 양자역학의 생로병사에서 생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한 글은 이전에 올린 적이 있으니 여기 링크를 걸어둔다. 또 다른 책은 『과학, 역사, 그리고 과학사』라는 책. 역시 이론의 생로병사에 대한 책이지만 이건 과학 전반에 대한 개론에 가깝다. 인터넷에서는 품절인데 어떻게 구한 책. 딱 첫 장만 읽고 이건 사야해 해서 샀다.(나는 이런식으로 충동적으로 사는 책이 좀 많다.) Godel, Escher, Bach도 읽어야 하는데 이건 너무 두꺼워서 집기 무섭다는게 문제. 서문에서 지성의 출현에 대한 책이라고 소개하는데 글쎄...


2. 단편
생각해보니 쓴다고 했던 단편을 안 올렸다. 초고는 다 쓰고 옮겨적기가 귀찮아서 안 한 것인데 어떻게든 업로드 할테니 기다리시길...(6주나 지났네..-_-;;)

다른 단편에 대한 아이디어도 생각해놓기는 했다. 보르헤스의 단편 『모래의 책』은 0과 1 사이의 연속체처럼 무한한 페이지로 차 있는데,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만약 어떤 무한한 페이지의 책이 있어서 그 한 페이지당 우주의 전체 상태가 대응된다면? 평행우주 이론을 약간 비튼 세계관인데 이걸로 어떻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느냐가 문제다.


3. 음악
꽤 오래 전에 신청했던 안녕바다 1집을 드디어 들어보게 되었다.

안녕바다 - 1집 City Complex - 8점
안녕바다 노래/윈드밀미디어

놀란 건 credit에 나오는 Produced by W. 내가 이쪽 취향인가보다. 얼마전에 샀던 W&Whale 2집은 그냥 그저 그랬는데(취향에서 20도 정도 벗어난 음악) 그래도 만족했으니...

더블유 앤 웨일 (W & Whale) - CIRCUSSSS [EP]8점
더블유 앤 웨일 (W&Whale) 노래/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4. 기타
흑룡의 해란다. 가랏! 붉은 눈의 흑룡(?).
신년 계획은 별거 없고 일반상대론 끝 보기, 운동 정도? 지킬 수 있는 정도만 세우고 옵션으로 소설과 논문 써보기를 달아놓자.

기계에 맞선 경주(아이추판다)를 읽으며 이전에 쓴 그 많은 뚜껑들은 누가 다 끼웠을까라는 글이 생각났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1. 정확히는 이야기의 오류(Narrative Fallacy)이지만 이 오류가 생기는 이유가 사람이 이야기에 민감하다는 것이니 별로 상관 없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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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2011. 11. 20. 23:57 Daily lives

일상의 단면

이전에 영단어 공부하면서 쓰던 책에 epitome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어원적으로는 "단면"에 해당하지만, 의미는 그 내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면, 즉 essence의 뜻에 가깝다고 한다. 그냥 생각없이 쓴 글의 제목에서 떠오른 생각인데, 어쩌면 이렇게 생각없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이 단어처럼 그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 내가 가진 능력이 특별한 것은 아니고 꽤 낯선 것들끼리 이어내는 linking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그 한 사례가 될 듯 싶다.

Word Power Made Easy (Mass Market Paperback) - 10점
Norman Lewis 지음/Pocket Books
부대에서 하루에 두 세션씩 풀었더니 두달이 채 안 되어서 끝났다.
상당히 많은 단어를 익혔는데 문제는 벌써 까먹기 시작했다는 것... 책은 좋다.

그건 그렇고, 요즘 하는 일들이나 끄적거려 보련다.

1. 물리
자기 단극자는 질량이 없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지 꽤 지났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무질량 전하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는데 아직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일단은 덮어둔 상태. 초광속 중성미자 실험과 관련된 글을 읽다가 체렌코브 복사가 진공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초광속이 가정될 경우), 그래서 체렌코브 복사 쪽에 대해서도 조금 배워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게 문제. 이런. 연속체 역학에 관련된 책이라도 봐야 하나...
일반상대론은 Landau책을 계속 보고 있는데, 이거 한 장 넘어가기가 힘들다. 다른 책을 간간히(휴가때마다를 간간히라고 하기는 너무 긴가?) 참고하면서 보는데 확실히 접근법이 일반적이지 않고 더군다나 주로 통용되는 방식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일단 잡았으니 한번 해보자 하며 붙어있는 중. 조금 더 지나면 공부에 쓸 시간이 더 생기려나...

2. 소설
SF를 구상해둔 것이 있었는데, 아직 쓰기 시작하지는 못했다. 대체적인 아웃라인부터 결말까지 모든 것을 생각해 두었지만 세세한 부분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 그려놓은 청사진대로 소설이 쓰여진다면 공각기동대에도 등장하는 전자화된 인간 의식과 니체의 우버멘쉬, 약간의 제왕학(?)에 집단심리라는 낡은 것들이 묘하게 짬뽕된 독특한 장편이 될 거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
그래도 간간히 단편은 써보고 있다. 이번에는 얼마 전에 썼던 「인큐베이터 」라는 단편을 조금 정제해서 올릴까 한다. 초고에서 순서를 조금씩 바꾸고 구멍을 채우려는 중. 노자가 쓸모는 빈 것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너무 채우려고 하면 오히려 망치는 길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3. 서평
읽은 책이 많다. 서평 적을 책도 많다. 서평을 쓰다 만 책도 많다. 그런데 의지가 없다. 시간은 뭐... 그래도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읽고 싶은 책이 사라져간다는 것. 이전에는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돈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돈도 없고 읽고픈 책도 없다. 게을러진 모양이다. 이럴 땐 쌓아둔 안 읽은 책들을 점차 줄여야겠지.
지금 가장 서평을 쓰고 싶은 책은 『오래된 미래』. 타이틀도 생각해놨다. "아이들은 자라기를 희구하고, 어른들은 어릴적을 회구한다." 내 자신이 상당히 보수적인 인물이라 그런지 나는 현 상황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비판적인 입장에서 책을 평가하게 되는 듯 싶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매번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정직한 시계는 모래시계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무리 움켜잡으려고 해도 어떻게든 손 틈을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새어나가는 시간. 이렇게 열심히 살고 싶어하면서 정작 제일 즐기는 일은 목적없이 길거리를 쏘다니는 것이라니, 무언가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사람은 편안히 자려고 불편히 깨어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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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과학자가 할 수 있는 것[http://heterosis.tistory.com/365]

잉여의 과학자들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것인가? 그들은 이 역겨운 자본주의의 수렁이 그들의 위치를 점점더 구덩이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모르는 듯 하다. 많은 과학자들은 오히려 그 자본주의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의 전통 속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저질러야만 하는 그 수렁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몬산토로, 거대제약회사로, 것도 아니면 벤쳐로, 또는 퀀트가 되어 맨하탄의 금융중심지로. 자신의 전문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이들이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데 있어서는 이다지도 무력하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멍청하다.


우울한 현실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고에너지 물리학은 현재는 되면 해 볼까 하는 수준의 선택지로 남아있다. 먼저는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전 세계를 통틀어 100명 내외라는 현실적인 이유이고, 근본적으로는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연금술사』의 어떤 할아버지처럼, 사람들에게는 이루어지기 두려운 꿈이 있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 우울한 현실이 절망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잉여의 과학자들이 있다는 것은 세계가 과학자들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말일 뿐이다. 그래서 옛적 영국의 쫓겨난 농노들처럼 기계들을 부수러 다니겠는가. 부서진 기계들의 잔해를 짓밟고 다시 땅을 경작하기를 원했던 그들은 결국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세계는 이미 변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하게 하고 싶다면 세계가 과학을 요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 물결은 너무나도 거대하게만 느껴진다. 세상이 다시 과학을 요구하도록 하기에는 과학이 너무 많이 커 버렸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과학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타락인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 몰락의 길을 선택했다. 순수한 자기만의 세계에서 세상을 향해 내려가기를 선택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순혈주의 아닐까.

물론 나도 과학에 대한 수요가 넘쳐나는 세상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세상에 발 붙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틈만 나면 아름다운 이론을 박살내려 안달이 난 현실이 탐탁지 않기는 하지만, 무엇이든 하려면 현실이라는 땅에 기반을 다져야만 한다. 조금은 무리한 예지만 패러데이는 제본 견습생이었고, 아인슈타인은 특허청 공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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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덧글에 찔려서 시작하는 백만년만의 물리 포스팅. 물리 포스팅은 수식 쓰는 시간이 길어서 조금 힘들다. 이번에는 Sakurai의 Modern Quantum Mechanics 140페이지에 등장하는 벡터 포텐셜을 구해보자.

$$\mathbf{A}=\frac{1-\cos\theta}{r\sin\theta}\hat\phi$$

시작은 curvilinear orthogonal coordinate system에서(특히 구면좌표계)의 curl에 대한 표현이다.

$$\nabla\times\mathbf{A}=\frac1{uvw}\begin{vmatrix} u\hat{x_1}&v\hat{x_2} &w\hat{x_3} \\ \partial_1&\partial_2 & \partial_3\\ uA_1&vA_2 &wA_3 \end{vmatrix}\\d\mathbf{s}=udx_1\hat{x_1}+vdx_2\hat{x_2}+wdx_3\hat{x_3}$$

구면좌표계에서는 $u=1, v=r, w=r\sin\theta$인데, 우리가 원하는 curl의 형태는 $\frac1{r^2}\hat{r}$이기 때문에 해를 구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어느 정도 단순화된 해를 가정할 수 있다.[각주:1]

$$\mathbf{A}=A_\phi \hat\phi\\r\sin\theta{A_\phi}=f(\theta)\\\partial_\theta[{r\sin\theta{A_\phi}}]=\sin\theta$$

물론 이 방정식을 풀면(적분상수 C는 남겨둔다)

$$ f(\theta)=C-\cos\theta\\\therefore{A_\phi}=\frac{C-\cos\theta}{r\sin\theta}$$


을 얻는다. C=1로 두면 위에서처럼 음의 z축에서만 폭발하는 vector potential을 만들 수 있고, 내가 구했던 경우는 C=0이었는데 이건 z축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 \mathbf{A}=-\frac1{r}\cot\theta\hat\phi $$

자기 단극자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원래 없다는 공리에서 세워진 이론 체계에서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니 어찌 재미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요즘 부대에서 하는 물리 생각의 80% 이상은 이 녀석 생각이다. 잠정적인 결론은 "자기 단극자가 있다면 질량이 없을 것이다"이지만.(그래서 광속으로 이동하는 전하의 전기장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1. 역으로 theta방향 성분만 있는 벡터 포텐셜을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생기는 문제는 특이점의 집합이 평면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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