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816건

  1. 2013.10.06 그 많던 종이비행기는 어떻게 다 날았을까 (8)
  2. 2013.09.29 GRE Physics 문제
  3. 2013.09.20 볼츠만 분포
  4. 2013.08.30 라이트 형제와 비행안정성
  5. 2013.08.29 행운의 여신은 뒷머리가 없다?
  6. 2013.08.21 Cyanide 흡수스펙트럼
  7. 2013.08.20 기승전결 버스
  8. 2013.08.13 Stars
  9. 2013.07.27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하여
  10. 2013.07.07 학사졸업논문 - 자기 단극자
  11. 2013.05.18 518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청소년의 현실
  12. 2013.03.24 part2까지 단상 정리.『공부하는 인간』
  13. 2013.03.13 구글을 하나의 점으로 보기에는 조금 크지 않은가 싶은데
  14. 2013.03.11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문명
  15. 2013.03.08 [BBC] '게이 프로파간다' 법안으로 러시아 분열
  16. 2013.03.06 [TED] 생각보다 단순한 세계 - James B. Glattfelder: Who controls the world?
  17. 2013.03.04 [BBC] 왜 영어를 사용하면 은퇴할 때 가난해지는가?
  18. 2013.03.02 [TED] 사랑이 뭘까 - Leslie Morgan Steiner: Why domestic violence victims don't leave
  19. 2013.02.28 [BBC] 채식주의가 이색적인 질병인 곳
  20. 2013.02.26 [BBC] 스위스식으로 총과 살기

'과학과 기술 글쓰기' 수업 과제. 초고 제출한지 한 서너주 되었으니 블로그에 올려 본다. 다음주까지 수정본 제출인데 수정본은 천천히 올리게 될 듯. 쓰고 나서 비평을 맡은 조원들에게 왜 이렇게 길게 쓰냐고 욕먹었다(...). 그런데 내용에 빈 틈이 없게 하려다 보니 이렇게 길어져 버렸(...) 오히려 비평 받은 다음에 내용을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려서 문제인데, 면담 가면 어떻게 고쳐야 할 지 방향이 잡히지 않을까.


설마 블로그에 올렸다고 카피처리하지는 않겠지?(김광식 교수님 이거 제 블로그입니다 =_=;;)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벌판을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벌판 한 가운데 사나운 겨울바람에 맞서며 거대한 구조물을 계속 손보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가문비나무 막대를 복잡하게 얽고 그 위에 얇고 질긴 면직물을 덮어씌운 구조물에 형제는 직접 깎은 프로펠러와 체인으로 연결된 가볍지만 강력한 엔진을 얹었지요. 형제는 세세한 주의사항 모두를 꼼꼼하게 점검하였습니다. 마침내 점검이 끝났습니다. 동생은 그 구조물 안에 탔고, 엔진 시동음이 바람 사이로 퍼져나갔습니다. 구조물은 맞바람을 받으며 달려나갔습니다.


1903년, 12월 17일, 10시 35분. 노스캐롤라이나의 키티 호크. 라이트 형제는 플라이어 1호를 타고 첫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heavier-than-air)에 성공하였습니다.


비행기는 우리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여객기와 화물기는 빠른 운송 수단으로 이 곳과 해외 사이에 가로놓인 높은 장벽을 낮추어 주는 역할을 하며, 전투기는 끔찍했던 전쟁 이후 강력한 전쟁억지의 수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렇게 비행기 한 번 탄 적 없는 사람이라도 비행기가 가져온 세계의 변화에 휩쓸리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닿을 수 없는 자유의 상징으로만 여겨졌던 하늘은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밤하늘의 별이 아니게 되었지요. 비록 기계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요.


비행기는 어떻게 날까요? 실제 비행기를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볼 수는 없으니 더 싸고 더 쉽게 볼 수 있는 대용품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가장 간단한 대용품은 아무래도 종이비행기겠지요. 만들어지는 재질과 크기에서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종이비행기가 잘 날기 위해서 가져야 할 조건은 비행기가 날기 위해서 가져야 할 조건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종이비행기가 잘 날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한 단어가 있지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설 제목과 영화 제목으로도 사용된 말인데, 이 말에는 얼핏 보아서는 못 보기 쉬운 삼단논법이 숨어있지요.


가. 추락하기 위해서는 날아올라야 합니다.

나. 그리고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날개가 있어야 합니다.

다. 그렇기 때문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날기 위해서는 날개가 있어야만 할까요? 확실히 흔히 볼 수 있는 날짐승들을 살펴보면 모두 날개가 있습니다. 참새, 잠자리, 메뚜기, 쏙독새, 비둘기에 이르기까지(비둘기는 다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모두 날개를 갖고 있지요. 날려면 날개가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비행 연구는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날개가 어떻게 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지에 대한 설명은 이미 많은 좋은 글이 나와 있으니, 여기서는 날개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겠습니다. 날려면 날개가 있어야 하는데, 반대로 날개가 있기만 하면 날 수 있을까요? 날개가 있지만 뛰어다닐 뿐 날지는 못하는 타조와 같은 새가 있는 것을 떠올려보면 날개가 있다고 무조건 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실험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겠지요. 그러면 다음 그림처럼 비행기를 접어봅시다.




종이비행기를 많이 접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런 형태로 접은 비행기는 날지 못합니다. 종이비행기를 접어 본 적이 없는 분들은 이 종이를 접어 바로 실험해보시면 되겠지요(대신 다시 읽을 수 있도록 땅바닥이 더러운 곳에서 실험하는 것은 피해주세요). 분명히 날개가 있는데 왜 날지를 못할까요? 그러면 다음과 같이 종이비행기를 접어봅시다.



이렇게 접은 비행기는 자주 보셨겠지요. 실제로 날려보면 이렇게 접은 비행기는 아주 잘 날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날개만 만들어주었던 그 전의 종이비행기보다는 비행기같이 행동합니다(이 종이로 실험하시는 분들은 너무 멀리 날아가지 않게 조심해주세요). 날기 위해서 날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분명히 날개가 클수록 더 잘 날아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날개의 크기가 줄어든 두 번째 종이비행기가 훨씬 잘 날지요.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날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날개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태 날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날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현상은 다소 이해하기가 힘들지요.


물리학자들은 한 어려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좀 더 잘 아는 다른 현상에 견주어보고 그 사이의 공통점을 이끌어내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버릇으로 전기와 자기가 하나의 힘이라는 것과, 더 나아가서는 수많은 자연현상들이 단 네 가지 힘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지요. 그러면 이 글에서도 물리학자들의 버릇을 따라 잠깐 동안 종이비행기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하지만 이해하기는 더 쉬운 예시를 끌어들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넓은 공원이나 뜰에 나가면 부메랑이나 원반던지기를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원반을 던질 때, 던지는 방향과 어떤 모양을 이루도록 던지나요? 보통은 원반을 날아가는 방향과 평행하도록 맞추어 던지지 날아가는 방향과 원반의 면이 수직이 되도록 던지지는 않습니다. 왜 수직으로 던지지는 않는 것일까요? 실험해보면 평행하게 던진 원반은 잘 날지만 수직으로 던진 원반은 꽤 큰 저항이 느껴지며 평행하게 던진 원반보다 잘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큰 저항이 원반이 날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면 더 금방 지치는 것처럼, 원반도 더 큰 저항에 더 빨리 날아갈 에너지를 잃는 것이지요.


종이비행기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첫 번째의 날개만 있는 종이비행기는 날릴 경우 조금 나아가다가 머리가 수직으로 들려버리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원반에 비유하자면, 평행하게 던진 원반이 갑자기 수직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 상태를 실속(stall)이라고 부릅니다. 실속 상태에서는 날개가 비행기가 날기 위해 필요한 힘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고 커다란 저항만 일으키게 되며, 때문에 비행기에서는 실속이 일어나면 추락할 위험이 매우 높아집니다. 비행기 사고가 가장 일어날 확률이 높은 때가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실속이 간신히 일어나지 않을 정도의 한계에서 비행하기 때문이지요. 한편 두 번째 비행기는 머리를 들기는 하지만 그렇게 높이 들지는 않습니다. 날아가는 도중에 자세가 흐트러질 법도 한데, 절대 실속이 일어나지는 않도록 잘만 자세를 유지합니다. 두 번째 비행기는 어떻게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번에도 물리학자들의 버릇을 따라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다른 예를 보겠습니다. 약수터의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종목 중 하나로 배드민턴이 있습니다. 배드민턴은 셔틀콕이라는 특이한 공을 사용하는데, 코르크에 거위 깃털을 고르게 꽃아 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셔틀콕이 날아가는 것을 잘 보면 특이한 점을 하나 알 수 있습니다. 편의상 셔틀콕의 코르크 부위를 앞, 깃털이 꼽힌 부위를 뒤라고 부른다면, 셔틀콕은 항상 앞으로 날아간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종이비행기도 한 방향으로만 나는데(실제로 충분히 강한 힘으로 종이비행기를 뒤쪽으로 날려 보면 어느새 방향을 바꾸어 바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셔틀콕과 두 번째 종이비행기는 둘 다 앞쪽은 날렵하고 뒤쪽은 부피가 크며 둔하게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람 부는 날에 바람에 떠밀려 본 분은 아시겠지만, 공기는 물체에게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힘을 압력이라고 부르는데요, 압력은 물체의 모든 표면에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그 총합을 직접 계산하기는 매우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물리를 하는 사람들은 이 힘이 한 점에 집중되어 있다고 가정하여 계산을 단순화한 뒤 현상을 설명하고는 하는데, 이 점을 압력중심이라고 부릅니다. 압력중심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그 세기, 그리고 물체의 모양에 영향을 받아 그 정확한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부피가 큰 쪽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앞쪽 보다는 뒤쪽이 부피가 크고 둔하게 생긴 물체는 앞쪽보다는 뒤쪽에 압력중심이 위치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압력중심은 어떻게 자세를 유지하는 역할을 할까요? 이제는 이 표현이 식상해지려고 하지만, ‘물리학자들의 버릇을 따라’, 조금 더 생각하기 쉬운 예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원래 자세로 돌아가려고 하는 물체 중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진자입니다. 진자는 살짝 건드리면 한 점을 중심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에는 건드리기 전의 원래 위치로 돌아옵니다. 진자와 종이비행기의 압력중심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진자는 고정된 축과 추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도록 만들어진 진자의 추에 작용하는 중력은 진자를 원래 자세로 돌아가게 합니다. 진자의 비유에서 추와 중력은 압력중심과 압력에 대응합니다. 그러면 진자의 비유에서 고정된 축에 대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답부터 말하자면 비행기의 질량중심이 고정된 축의 역할을 합니다. 질량중심이란 압력중심과 마찬가지로 한 점에 한 물체의 모든 질량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 점입니다. 좀 더 많은 질량을 가진 쪽에 위치하며, 압력중심과 같이 물리학자들이 계산을 좀 더 편리하게 해 보자는 의도에서 생각해내었지요. 두 번째 종이비행기의 경우 앞 쪽을 접어주었기 때문에 더 많은 질량이 앞쪽에 몰려 질량중심이 보다 앞 쪽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질량중심은 어떻게 축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물리학이라는 학문(혹자는 과학이라는 학문 체계라고도 하더군요)의 개척자인 아이작 뉴턴은 처음으로 물리학이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책 『프린키피아Principia』에서 세 가지 법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관성의 법칙’입니다. 관성의 법칙이란 쉽게 말한다면 (외부에서 힘을 주지 않는 한) 움직이던 물체는 움직이던 그대로 움직이려 하고, 멈춰있던 물체는 멈춰있는 그대로 있으려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한 물체를 던지고 그 물체를 따라가면서 본다면, 그 물체는 상대적으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연필만 던져보아도 던져진 물체는 회전까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회전하는 던진 물체를 따라가면서 볼 때, 그 물체는 어떻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까요? 아무래도 물체는 가만히 있고 한 축을 중심으로 계속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이 축이 지나는 점이 질량중심입니다. 질량중심은 한 물체의 질량 전부를 대표하는 점이어야 하기 때문에 관성의 법칙을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따라서 던진 물체를 따라가면서 보는 동안 질량중심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여야만 합니다. 고정된 축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다시 잘 나는 두 번째 종이비행기로 돌아와서, 날린 종이비행기를 날아가는 속도 그대로 따라가면서 본다면 종이비행기의 한 점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점은 위에서 설명한 질량중심이 되지요. 그리고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압력중심은 종이비행기의 뒤쪽에 위치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질량중심보다도 뒤에 위치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종이비행기는 날아가는 동안 공기가 날아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힘을 줍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어보신 분들이라면 앞으로 내달릴 때 바람이 얼마나 세게 더 이상 못 달리게 하려는지 경험으로 알고 계시겠지요. 전체적인 그림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면, 흔히 보는 진자를 옆으로 뉘어놓은 구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력이 진자를 원래 자세로 되돌리려는 것처럼, 공기의 압력이 종이비행기를 원래 자세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 비유는 첫 번째의 못 나는 종이비행기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의 종이비행기는 날개만 접어주었기 때문에 질량중심이 종이비행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합니다. 압력중심 또한 특별히 부푼 부분이 없기 때문에 종이비행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지요. 회전의 중심이 되는 점과 되돌리려는 힘을 받는 점이 일치하게 된 것인데, 이는 진자의 축을 고정하는 축에 다는 것과 같습니다. 추의 정중앙에 못을 꿰어 벽에 박아놓으면 아무리 돌려보아도 원래 자세로 돌아오려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첫 번째 종이비행기는 처음 날린 자세 그대로 돌아오려 하지 않습니다. 조금 날다가 머리를 들어 그대로 실속을 맞이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글에서 종이비행기처럼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아주 사소한 물건에도 복잡한 물리법칙이 작용해서 균형을 이루도록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갖가지 비유를 통해 이 물리법칙들은 매우 달라 보이는 원반, 셔틀콕, 진자에게도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 글을 읽고 잘 나는 종이비행기를 접는 법을 익힌다고 해도 라이트 형제처럼 내가 타고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이 물리학이 어떤 학문이고 얼마나 보편적으로 작용하는지 엿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물리학이 어렵기만 한 학문이 아니라 실제로는 매우 재미있고 아름다운 학문이라는 것을 느끼신다면 그것만큼 큰 보람은 없겠지요.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실제로는 공기에 의해 힘을 받기 때문에 뉴턴의 제1 법칙은 완벽하게 적용되지 아니하나, 그 힘이 상대적으로 작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논의를 그대로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실제 항공기 설계에서는 압력중심보다는 공력중심(aerodynamic centre)라 부르는 점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공력중심은 과도하게 논의가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어 압력중심으로 글을 이끌어간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hmmm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weistern's에서 타고타고 넘어와 여기 처음 본것도 중학생때였던거 같은데 저도 대학교 2학년생이군요
    제대하셨나보네요 잘 지내시나요?

    2013.10.13 01:17
  2. hmmm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전 중고딩 때 꿈을 잃은거 같았는데 오랜만에 예전에 보던 블로그들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대학와서 실망한 부분도 많았는데 제 공부는 제가 하는 거란 걸 새삼 배워갑니다

    2013.10.13 01:41
  3. 이대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모로 종이비행기접어도 앞쪽에 무개만 있으면 잘 나는데요...

    2013.12.19 15:39
  4. BlogIcon 성현석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이 비행기의 꼬리날개로 방향을 조절하수있다는데 그렇게되는 과학적 원리를 자세히 말해주실수 있나요?

    2015.11.28 16:03
    • Favicon of https://dexterstory.tistory.com BlogIcon 덱스터 2015.12.10 2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건 비행동역학을 알아야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데, 배운지 오래라 간략하게만 설명하겠습니다.

      비행기의 머리를 멀어지는 방향으로, 그러니까 시선 방향과 비행기의 방향을 일치시킨 상태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꼬리날개의 뒤쪽(방향키-rudder라 부릅니다)을 왼쪽으로 꺾으면 꼬리날개는 오른쪽으로 양력을 받습니다. 비행기가 시선 방향으로부터 왼쪽으로 꺾이는 방향으로 돌림힘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비행기가 왼쪽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 비행기의 주날개(일반적으로 뒤쪽으로 쳐져 있지요) 양쪽을 비교해보면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상대적으로 더 넓게 바람을 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 날개에 더 많은 양력이 걸리는 셈이지요. 따라서 비행기는 오른쪽이 뜨고 왼쪽이 가라앉는 모양새를 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양력이 위쪽 방향뿐만 아니라 왼쪽 방향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에, 비행기는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움직이는 힘을 받습니다.

      보통 종이비행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조정할 때 보조날개(aileron)도 같이 조정하는 이유는 방향키 말고 보조날개도 비행기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비행기가 선회하는 힘은 결국 선회하는 방향으로 양력이 만들어져서 나오는 힘이므로, 방향키만 조정하는 것보다는 보조날개까지 조정해야 더 효과적으로 선회할 수 있겠죠.

GRE Physics 문제

Physics 2013.09.29 17:32

검색하면 다 나와요. 그래도 귀찮아하는 사람 있을까봐 올려드립니다.



exam_GR0177.pdf


exam_GR0877.pdf


exam_GR9677.pdf



8677, 9277도 있는데 용량제한에 걸리네요. 앞쪽 두 숫자는 년도입니다. 86-92-96-01-08 순서대로 최신 기출문제. 얼마 전 GRE Physics를 신청하셨다면 0877은 우편으로 왔을 거구요.


실험 기법과 관련된 문제나(푸아송 분포를 이용해 오차범위를 1%로 줄이라는 문제가 있더군요.) 화학자들이 쓰는 기호법이 튀어나오는 문제는 좀 힘들겠지만 다른 건 (학부 수준 공부를 제대로 하셨다는 가정 하에) 쉽게 푸실 수 있을겁니다. 8677이 유난히 어려웠던 것 같은데(990 기준치가 가장 낮고 990 받은 사람도 2%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나머지는 뭐 그냥...


참고로 전체 GRE Physics 응시자 중 990을 받는 사람은 6%정도 된다는 듯 합니다.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서울 안국역 4번출구) 에서 봤는데 답안지에 수험번호 안 적을 뻔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뭐 그럭저럭 잘 본 것 같습니다. 뚜껑을 열어봐야 뭐가 나올지 알겠지만요.

'Physic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확정성 원리와 상대성이론  (2) 2014.12.22
네 귀중한 교훈들 - 스티븐 와인버그  (8) 2014.02.23
GRE Physics 문제  (0) 2013.09.29
양자장론 참고자료  (0) 2013.01.05
전자기학 교재(?)  (0) 2010.01.28
측정의 평균  (2) 2009.12.24

댓글을 달아 주세요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하신 설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처음부터 재구성. canonical ensemble을 이용한다. 다른 말로 계와 주변부(environment) 사이에 에너지 교환만 일어난다는 의미.


계와 주변부의 에너지가 특정 비율로 분배될 확률은 그 분배법이 얼마나 많은 가능한 상태의 수를 갖는가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사실, 그 확률은 이 상태의 수에만 비례한다는 것이 통계역학의 기본 공리중 하나이다(postulate of equal a priori probability). 총 에너지를 E, 계의 에너지를 \varepsilon이라 하면 그 상태에 있을 확률은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P(\varepsilon)\propto \Omega_{e}(E-\varepsilon)\Omega_{s}(\varepsilon)


여기서 \Omega_s는 에너지에 따른 계의 경우의 수, \Omega_e는 주변부의 경우의 수. 그런데 이 식은 쓰기 매우 불편하다. 실제로 다루는 물리량이 \Omega가 아니기 때문. 열역학에서 다루는 물리량은 보통 두가지로 나뉘는데,[각주:1]


1. 강성적 성질(intensive property): 계의 크기와는 독립적인 물리량. 압력, 온도, 밀도 따위. 계의 질량과는 독립적인 성질이라고도 설명한다.[각주:2]


2. 종량적 성질(extensive property): 계의 크기에 직접적으로 비례하는 물리량. 부피, 엔트로피 따위. 계의 질량에 직접적으로 비례하는 성질이라고도 설명한다.


\Omega는 이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않는다. 계의 크기가 두배가 되면 \Omega는 제곱이 되기 때문. 따라서 좀 더 사용하기 용이한 물리량은 \Omega의 로그값이 된다.[각주:3] 물리적으로는 다음 식이 더 유용하다는 것.


\ln P(\varepsilon) = \ln\Omega_{e}(E-\varepsilon)+\ln\Omega_{s}(\varepsilon)+c


그런데 이러면 사용하기 너무 복잡하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 이용하는 것이 주변부의 크기는 매우 크기 때문에 선형으로 근사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로그를 테일러 전개를 사용해 1차식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미분량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바로 \beta


\\\ln P(\varepsilon) = \ln\Omega_{e}(E-\varepsilon)+\ln\Omega_{s}(\varepsilon)+c\\=\ln\Omega_{e}(E)-\frac{\partial\ln\Omega_e(E)}{\partial E}\varepsilon+\ln\Omega_{s}(\varepsilon)+c\\=\ln\Omega_{e}(E)-\beta\varepsilon+\ln\Omega_{s}(\varepsilon)+c


따라서 원래대로 확률을 구하기 위해 지수를 취해주면


\therefore P(\varepsilon)=\exp(\ln\Omega_{e}(E)-\beta\varepsilon+\ln\Omega_{s}(\varepsilon)+c)


또는


P(\varepsilon)\propto\Omega_s(\varepsilon)\exp(-\beta\varepsilon)


를 얻는다. 바로 심심하면 보이는 볼츠만 분포.

  1. 노승탁, 『공업열역학』, 4판, 문운당 을 참고하고 내용 추가. [본문으로]
  2. 이 설명으로부터 뉴턴의 세계관에서는 질량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유추할 수 있다. '질량은 계의 현신'이랄까. [본문으로]
  3. Reif책이 이런 방식으로 서술한다고 기억하는 중. 어쨌든 재미있는 논증이다. [본문으로]

'Physics > Concep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mputation and Heat  (2) 2014.06.23
Dirac Equation(1)  (4) 2013.12.15
볼츠만 분포  (0) 2013.09.20
열역학 제 2 법칙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3) 2010.11.22
엔트로피 - 고전적인 정의  (7) 2010.08.03
Hamiltonian formulation(1)  (4) 2010.07.14

댓글을 달아 주세요

Robert C. Nelson의 Flight Stability and Automatic Control, 2nd Ed에서 가져옵니다. (p.35-39)

본문은 출처의 재정리이니 자세한 것은 본문을 확인하세요. 본문은 비행안정성(Flight stability -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라이트 형제와 관련된 부분만 잘라내었습니다.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는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과 미국의 옥타브 샤누트(Octave Chanute), 사뮤엘 피어퐁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 이하 세 사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토 릴리엔탈은 2000번이 넘는 글라이더 비행을 통해 굽었거나 캠버(camber-날개가 위쪽으로 굽어있는 것을 말합니다)가 있는 날개의 성질을 연구하였다. 릴리엔탈이 사용했던 글라이더 모델들은 정적안정성(static stability - 날아가던 자세에서 흐트러졌을 때 원 자세로 돌아오려는 성질)을 가졌으나 조종능력이 극히 떨어졌으며, 조종은 글라이더에 탑승한 자신의 신체를 이동시켜 무게중심을 바꾸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 단점은 후에 치명적인 것으로 드러나는데, 글라이더가 실속(stall-날개를 너무 들어서 양력발생능력을 상실한 상태)하여 50피트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릴리엔탈은 사고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이튿날 사망했다.

 

옥타브 샤누트는 릴리엔탈의 글라이더 디자인을 개선하여 자신만의 설계를 내놓았다. 그의 디자인은 두 쌍 혹은 그 이상의 날개를 가졌으며 조종간으로 평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수직날개를 달아 조타가 가능하여 단일 날개만 가졌던 릴리엔탈의 디자인에서 진일보하였다. 샤누트는 이후 키티 호크(Kitty Hawk)를 방문하여 라이트 형제에게 비법을 전수하기도 하였다.

 

스미소니안 재단(Smithsonian Institution)의 서기였던 사뮤엘 피어퐁트 랭글리는 비행역학에 관한 자료를 요청했던 라이트 형제에게 당대의 선구자들의 작업을 보내주었다. 물론 이는 라이트 형제에게 매우 도움이 되었다. 랭글리는 1890년대 즈음 비행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비행 관련 데이터를 모으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이 자료를 공부하고 자신만의 실험을 한 끝에 그는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heavier-than-air flight)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었으며 동력이 있는 무인글라이더를 완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모형은 1896년 5월 6일 1분 반 동안 3/4 마일을 비행하였으며 이로서 기계를 이용한 비행(mechanical flight)의 상용화 가능성이 열렸다. 모형의 성공에 관심을 가진 육군성(War Dpartment)은 랭글리에게 접근했고 그는 의회로부터 5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그의 조수 찰스 맨리(Charles Manley)와 독자적인 디자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 타이드워터(Tidewater) 근처의 포토막(Potomac) 강에서 배에 고정된 사출기를 통해 시도한 2회의 (1903년 9월 7일과 12월 8일) 비행은 실패로 끝났다. 사출기를 사용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였으며 이후 20년 뒤 수정된 그의 비행기는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쳤다.

 

1903년 12월 17일[각주:1] 북 캐롤라이나 키티 호크에서 라이트 형제들은 그들의 역사적인 비행을 실현하였다. 첫 비행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가 탑승하였고 12초간 125피트를 날았다. 번갈아가며 비행기를 조종한 형제는 그날 세번 더 비행하였으며 마지막 비행은 59초간 시속 20마일의 맞바람을 맞으며 852피트의 거리를 이동하였다. 항공기의 착륙용 활주부(skid)가 지면에 닿는 순간 비행이 멈추는 방식으로 착륙하였으며, 형제는 예전의 글라이더보다 반응성이 뛰어난 동력비행기를 조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라이트 형제는 동시대의 실험 데이터들을 검토한 후 성공적인 비행을 위해서는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풍동(wind-tunnel)과 비행(flight-test)을 이용한 실험에 착수하였다. 형제는 작은 풍동을 설계하고 제작하여 굽은 날개(airfoil)의[각주:2] 공역학적 특성을 알아내기 위해 수천개의 모델을 실험하였으며, 수천개의 글라이더 비행 실험을 통해 비행기를 발전시켰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형제는 동력비행(powered flight)에 성공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충분하지 못한 조종성이라고 확신하였으며, 글라이더의 조종성을 개선하는데 대부분의 노력을 들였다.

 

라이트 형제의 접근은 급진적이었다.당대 비행 선구자들의 설계는 근본적으로 안정적인(inherently stable) 비행기와 글라이더를 제작하는데 주력하였으며, 이런 항공기들은 대기가 조금만 불안정해도 위험했다. 하지만 정적안정성이 없는(statically unstable) 대신 조종성을 개선한 라이트 형제의 항공기는 안정성이 없어 조종이 까다로웠지만 형제는 글라이더 실험을 통해 불안정한 항공기를 어떻게 제어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라이트 형제의 주요 업적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공역학 실험을 위해 풍동과 평형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제작하였으며 이로부터 체계적인 날개의 공역학적 특징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2. 적절한 조종성을 가진 완전한 비행 조종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3. 저중량 기관과 효율적인 프로펠러를 설계했다.

4. 동력비행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동력대무게(strength-to-weight ratio)를 가진 비행기를 설계하였다.

 


 

세줄 정리

 

1. 실험을 중시하였다.

2. 안정적이지만 조종성이 떨어지는 디자인을 제끼고 조종성이 좋지만 불안정한 디자인으로 갈아탔다. 불안정한건 조종으로 땜빵.

3. 얻을 수 있는 자료란 자료는 전부 검토하였다.

 

스터디 하면서 '한 분야에서 업적을 이루려면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된다'는 주제에 대해 라이트 형제를 사례로 들고 오셨던 분이 있었는데 확인해보니까 정 반대네요...

  1. 랭글리의 두 번째 비행과 일주일 조금 넘게 차이나는 것을 알 수 있죠. 랭글리가 비행기를 좀 더 단단한 재질을 써서 사출기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었더라면 역사는 다른 이름을 기억했을 것이란 말을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본문으로]
  2. 정식 명칭은 에어포일입니다만 그렇게 깊게 들어가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해 날개로 통일합니다.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발단은 트위터의 이 트윗.



이 트윗을 보고 뜬금없이 '행운의 여신은 뒷머리가 없다'는 서구 어느 나라의 속담이 생각나 뒤져보았습니다. 원래는 '뒤통수가 없다' + 스페인으로 생각했지만 무시합시다. 검색 결과마다 단순히 외국 속담으로 기재하거나 이태리라는 구체적인 지명을 들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영문으로 검색하는게 더 낫지 않은가 싶어 구글 영문으로 검색해 보았습니다. 제일 첫 항목으로는 영문위키백과가 걸리는군요.


http://en.wikipedia.org/wiki/Caerus


'독자연구'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일단 구느님이 가장 신뢰성 있는 자료로 뽑아주었으니 이 글을 따라가도록 합시다. 여기에 따르면 카이로스(Καιρός)는 그리스 행운의 신으로 제우스의 가장 어린 자녀이며, 로마의 오카시오(Occasio)나 템푸스(Tempus)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뭐라구요?


이제 왜 이 항목이 가장 관련성이 높은 항목으로 지목되었는지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카이로스가 다가올 때는 얼굴 앞으로 내려오는 머리를 쥐는 것으로 쉽게 잡을 수 있지만, 일단 지나가고 나면 뒷머리는 대머리이기 때문에 절대로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행운의 여신에게 뒷머리가 없다는 속담(?)이 비슷한 이유를 갖고있었죠. 아무래도 와전된 모양입니다.


뤼시포스(Λύσιππος)라는 조각가가 만든 황동상에는 포이시디포스(Ποσείδιππος)라는 시인의 말을 새겼다고 합니다. 같은 출처에서 인용해보죠.


"Who and whence was the sculptor? From Sikyon.

어디서 온 누가 만들었지? 시퀴온에서 왔지.


And his name? Lysippos.

이름은? 뤼시포스.


And who are you? Time who subdues all things.

너는 누구? 만물을 제압하는 시간이지.


Why do you stand on tip-toe? I am ever running.

왜 까치발을 들었니? 계속 달리거든.


And why you have a pair of wings on your feet? I fly with the wind.

발에 날개는 왜 달린거야? 바람과 함께 날아서.


And why do you hold a razor in your right hand? As a sign to men that I am sharper than any sharp edge.

오른손의 면도날은 뭐야? 어떤 모서리보다도 날카롭다고 알리려고.


And why does your hair hang over your face? For him who meets me to take me by the forelock.

머리는 왜 얼굴 위에 늘어졌어? 만나는 사람이 그걸로 날 잡으라고.


And why, in Heaven's name, is the back of your head bald? Because none whom I have once raced by on my winged feet will now, though he wishes it sore, take hold of me from behind.

그리고 도대체 왜 뒤통수가 대머리인거야? 내가 날개달린 다리로 지나친 그 누구도 뼈저리게 후회한들 날 뒤에서 잡을 수 없도록.


Why did the artist fashion you? For your sake, stranger, and he set me up in the porch as a lesson."

조각가는 왜 널 만들었니? 너를 위해서야. 교훈으로 삼으라고 현관에 세워두었지.


'행운의 여신에게 뒷머리는 없다'가 가히 충격적인 말이긴 합니다만, 원문은 발견이 되질 않는군요. 아무래도 누군가 행운의 신이라고 말한 것을 여신으로 잘못 기억해 와전된 모양입니다. 행운의 여신은 죽었어! 이제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 그보다 확실히 와전된 속담의 괴기함 때문인지 그 원형이 되는 말의 빛이 많이 바랜 느낌입니다.


카이로스의 머리는 이런 느낌일까요?


한줄결론: 행운의 여신은 뒷머리가 없다? 뻥카친거 누구야?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달빛이 밝다. 햇볕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일부러 햇볕이 잘 드는 방으로 자리를 잡았더니 어두워야 할 밤에도 햇볕이 든다. 달이 비추어준 빛은 달빛으로 부르는 전통이 있기는 하나 그 빛의 뿌리를 파고들다 보면 태양이 쏘아낸 빛에 도달하니 햇볕이라 불러도 (과학적으로는) 오류가 없을 것이다.

며칠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 하다. 와인버그의 『태초의 3분』에는 시안(cyanide: CN)의 흡수 스펙트럼의 얇은 갈라짐으로부터 우주의 온도를 예측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그 작은 차이가 내 눈을 끌었다. 계산해보면 밀리전자볼트 단위의 아주 작은 에너지 차이인데, 이것을 어떻게 물리적 지식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처음 든 생각은 C-N 결합을 수소원자 모형으로 단순화시켜 이 차이를 fine splitting이나 hyperfine splitting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세구조상수 계산에 전자의 질량이 사용되고, 여기서는 전자의 질량이 양성자의 질량으로 바뀌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 설명은 너무 작은 숫자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가설은 깔끔하게 포기하였다.

다음 가설은 회전운동에너지가 양자화된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고전역학적으로 각운동량은 회전관성과 각속도의 곱으로 나타나며, 회전운동에너지는 회전관성과 각속도의 제곱의 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양자의 영역에서는 각운동량이 양자화되므로, 각운동량의 최소단위인 플랑크 상수를 시안 분자의 회전관성으로 나누면 각속도를 얻을 수 있으며, 이로부터 최소 단위의 회전운동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으리란 추론이었다.

지식을 총동원해보기로 했다. 플랑크 상수는 197MeV-fm이고 양성자의 질량은 938MeV, 분자 단위의 길이는 대략 Å정도의 차수이다. 환원질량(reduced mass)으로 취급하면 회전관성은 대략 6GeV-Å^2이고 전자볼트-제곱미터 단위로 나타내면 대략 -11승 정도, 플랑크 상수는 전자볼트-미터 단위로 나타내면 -7승 정도 된다. 따라서 플랑크 상수의 제곱을 회전관성으로 나누어주면 -3승 정도의 전자볼트 단위, 즉 밀리전자볼트 단위의 에너지가 남는다. 시안의 흡수스펙트럼의 미세한 갈라짐의 원인을 찾은 셈이다.

달빛이 밝으니 오랜만에 밝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기승전결 버스

Writer 2013.08.20 21:33
정신줄을 놓아봅시다...



"덜커덕 덜커덕."

아, 아니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의 정지』를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의성어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그 책은 살 생각이 없었는데 이벤트로 주는 상품이 끌려서 장바구니에 넣었던 책이지만(충동구매 한 적 없는 자 돈을 던져라) 예상 외로 인상적이었다. 다시 시작해 보자.

"버스의 흔들거림이 귓가에 전해져 왔다. 평소처럼 멍하니 먼 곳을 주시한다. 에어컨을 틀었는지 바람이 흘러나온다만 시원함과는 거리가 멀다. 원래 에어컨 바람을 직격으로 맞으면 시원하다 못해 추운 법인데, 정부의 절전 시책이 기름으로 돌아가는 버스의 에어컨에도 손길을 뻗친 모양이다. 아니면 단순한 착각이거나.

청각에게 관심을 달라 보채던 흔들거림은 촉각으로 눈을 돌린 모양이다. 그리 많은 사람이 탄 버스가 아닌데도 흔들림에 따라 옆 사람의 어깨가 살짝 살짝 부딪쳐 온다. 미지근하게 퍼지는 바람과 있는 듯 없는 듯 간간히 존재를 알려오는 옆의 어깨.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 든다. 이런걸 데자부라 하던가. 영화 <집으로>에서 보았던 시골길 위의 버스가 이런 느낌일까? 80년대에 버스를 탔으면 비슷한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30년을 뛰어넘어 같은 감성에 젖다니 시간여행자란 별명이라도 붙여줘야 하나.

흩어진 초점으로 계속 전방을 주시한다. 생각이 멈춘 것일까 아니면 생각이 흐르는 것일까. 무념의 흐름에 마음을 띄워 본다. 아마도 이 글을 기승전결이 있는 방식으로 끝내긴 힘들겠지. 뭐, 우리 대부분의 삶도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는 아닐꺼다. 흐르고 흐르다 종착점에서 그래도 재미있게 살았구나 돌아보면 된 것 아닐까. 물은 강이 거기에 있기에 흐르고, 사람은 숨결이 거기에 있기에 사는 것 아니겠나 싶다.

생각은 도약을 거듭하고, 버스엔 철학자가 탄생한다. 버스 철학자라니 골방 철학자에 약간의 사회성을 섞어 대충 버무린 겉절이같은 느낌의 조어이다. 계속되는 도약은 도약을 도약한다. 생각의 도약에 대한 생각. 메타도약이라고 하면 되려나.

생각은 뱀이 머리부터 꼬리까지 일자로 이어지듯 논리적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경우가 드물다. 이렇게 도약이 있는 생각을 비선형적 사고라 부르는 모양인데, 아는 건 줏어먹은 단어밖에 없어 이 말의 신뢰성은 보장하지 못하겠다. 인터넷의 하이퍼링크 구조가 이런 식이라고 한다. 하이퍼링크로 서로 도약하는 인터넷 페이지들은 이전의 단선율로 흐르던 책이나 신문과 같은 매채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책은 기승전결이 있다. 비록 주석이나 각주를 통해 그 갑갑한 일방통행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여전히 우리는 책에 대해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갖기를 요구한다. 아무리 그 형식을 탈피한 책이라고 해도 변주까지만 허용할 뿐이다. 관계 없는 글을 포함한 책에겐 난잡하다며 편집의 칼날을 들이댄다. 사서삼경의 사서인 『대학』은 이렇게 탄생했다. 『예기』의 다른 내용들은 통편집에서 살아남질 못했다.

허나 글은 정보혁명 시대로 오게 되자 더 이상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게 되었다. 마치 우리의 생각처럼 말이다. 멘탈붕괴는 정확히 말하자면 두 가지로 나누어야 한다. 논리적 사고능력이 붕괴하여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와 논리적 사고능력에 도약이 너무 넓어져 생각간의 연결고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 후자는 정신능력의 과다발현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약을 빨았다'는 흔한 표현은 후자가 비교적 약해서 청자가 어떻게든 화자의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약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글을 잇기 난감해져 여기서 마친다. 기전승결에 대해 말하는 기전승결이 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보니 멘붕에 대한 부분에서 멘붕해 버렸고, 약빤 소리에 대한 부분은 약한 소리로 마쳐버렸다. 하지만 최고의 찬사는 그것 자체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마디 더 덧붙이면 쓸모없는 결이 만들어질테니 무시하기로 한다. 버스를 타러 갈 시간이다.



'Writ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고] 그들에게도 입을 열 자유를 주어라  (0) 2013.12.17
올바른 판단을 하고 싶다면  (0) 2013.12.16
기승전결 버스  (0) 2013.08.20
Stars  (0) 2013.08.13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하여  (0) 2013.07.27
518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청소년의 현실  (0) 2013.05.18

댓글을 달아 주세요

Stars

Writer 2013.08.13 21:04

어제 별똥별을 보고 싶었으나 방충망을 열다 철제틀이 10여미터 가량 자유낙하하며 위대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온 몸으로 보여주길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크게 당황. 결국 주섬주섬 줏어입고 주워왔다. 지금은 어떻게든 다시 달아놓았는데 내 다시는 여나 봐라...


새벽 세시가 되어가도록 광공해로 가득찬 서울밤하늘이 별 깨끗한 순결함을 자랑하길레 (한 두셋 본듯) 빡쳐서 개소리 좀 하려다가 '허세를 부리려면 제대로 부려야지'하는 생각에 영어로 끼적끼적 해봤다. 원래는 더 길게 쓰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The renowned Immanuel Kant for this works on ethics is known to have praised the stars and the inner principles of the human mind. Although I must admit that the simile had been used to consecrate his thesis on conscience, the phrase itself is quite cool, so I'll adduce it.


Two things fill the mind with ever-increasing wonder and awe, the more often and the more intensely the mind of thought is drawn to them: the starry heavens above me and the moral law within me.

-Taken from Critique of Practical Reason


Though his views on moral principles are not as cogent as they were when I first encountered them, I do assimilate with his awe-filled eyes reflecting starlight. Sympathy of stargazers separated by several millennia! (for now forget that it's only a couple of hundred years. Millennia sounds much cooler than centuries) What could be more captivating than such a congruence? I am absolutely confident that this sentiment is absolutely ubiquitous; for the past myriad generations and the future millennia that follows, the sidereal lights were and will be an undiminishing luminescence that shed light onto our minute corporeal beings; sometimes showing serendipitous aisles for tyros in heed, and another time giving hearted warmth to those in need. To put it brief, stars have always enthralled me, and I'm sure that it's the same for you.


P.S.1 가끔 무언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듯 한 느낌이 들기는 했는데 진짜 본건지 아니면 기분탓인지는 모르겠다.


P.S.2 내 방 창은 남향인데 북동쪽을 보아야 했다는 것을 듣고는 좌절했다.




오늘 Facebook에 올린 허세글. 원래는 글을 더 길게 쓰고 (군대 이야기가 들어갈 예정이었음) 한글로 적은 내용을 전부 영어로 쓸 계획까지 있었는데 귀찮아서 때려치웠다. GRE 공부하다 보니 좀 더 허세끼있게 쓰는데 도움이 되는듯. 물론 허세의 완성은 어설픈 문법이지만 글쓰기 연습도 하고 있어서 문법의 파괴까지는 차마 하질 못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예전에 자주 다니는 커뮤니티에서 괴기스런 만화를 올린 게시글이 인기글로 오른 적이 있었다. 그 게시글의 댓글에는 누가 더 괴기스런 만화를 가져오나 대결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사람들은 참 겨루길 좋아한다) 온갖 괴기만화로 가득한 게시글이 되어 버렸는데,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한 만화가 있다. 지금은 아무리 검색해도 찾질 못하겠어서 내가 기억하는 그 만화가 실존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만화는 슬프면서도 괴기함이 갖는 그 불편함이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림체는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사이의 그 애매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흰 도화지에 4B연필로 만화를 그린다면 쓸 법한,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유아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아마 에반게리온의 아스카의 내면을 표현할 때 사용된 것 같다- 그림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취미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편집하면 남는 그림의 어색한 흰 공백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영미권의 만화를 가져온 모양이다. 내용은 지나치리만큼 단순하다. 한 남자아이가 있다. 조용조용한 그 아이는 한 여자아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많은 조용한 아이가 그렇듯 그 아이는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넘어져 무릎에 생채기가 났다(아마 그럴 것이다. 기억은 불완전하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은 그 아이를 걱정해주었다. 어디서 다쳤니, 아프진 않니, 소독해야지 등등. 선생님이 신경쓰자 반의 모든 아이는 선생님의 눈길을 따라 그 아이에게 집중하게 되었고, 그 아이가 좋아했던 여자아이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 아이를 보았다. 남자아이는 기뻐했다.


남자아이는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니! 남자아이는 좋아하는 아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아이는 더 큰 상처를 안고 등교하였다. 선생님은 역시 걱정하였고, 여자아이도 잠시뿐이긴 했지만 다친 아이를 걱정해주었다.


날이 지날수록 아이에게는 넘어지거나 계단에서 구른 것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상처가 늘어갔다. 그러나 특이한 일도 반복되면 일상이 되어버리는 법. 선생님의 우려는 깊어 갔지만 여자아이의 관심은 희미해져 갔다. 어느 날, 더 이상 여자아이가 관심을 갖지 않자 남자아이는 마지막 결심을 한다. 아마도 이 일이 끝나면 여자아이는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그 관심어린 눈길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만화는 남자아이의 책상에 놓인 국화꽃으로 결말을 맞는다.


『한비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여자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미고 선비는 뜻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당시와 지금의 시대상이 다르기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말에는 지금도 통용되는 진실이 담겨 있다. 누구든 자신을 보아주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록 그것이 자신의 목숨일지라도, 버릴 수 있다. 그 사람이 실존하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예술 작품은 미래의 인류라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져 희생하는 행위를 거의 항상 칭송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가상의 존재가 가져 줄 관심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우울한 이야기이다. 뒷산의 나무들은 그 누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라나며 다른 생명들에게 그늘과 열매를 베푸는데, 왜 우리는 관심이 없으면 비틀어지도록 태어났을까. 과학자의 본능대로 진화심리학을 끌어들여 썰을 풀어 볼 수는 있겠으나 그걸로 이 우울한 기분을 풀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의 박탈당한 권익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한 단체의 대표가 사고로 사망하였다. 난 사실 남성연대의 목표의식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 대표가 속 시원한 말을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좋아했다고 말할수는 없다.


혹자는 성재기 대표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했던 전태일 열사와 동일시한다. 물론 급이 같을 수 없는 사람을 비교하는게 가당키냐 하냐는 반론에는 동의하나, 그 감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성 대표의 행위가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며 어떤 가치를 지키려 했던 성스러운 자기희생일 것이다. 아무리 우습더라도 누군가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 대표와 전 열사의 비유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그걸 굳이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이 사건을 언급하려면 일간베스트(이하 일베)를 빼고 넘어갈 수는 없다. 많은 사람과는 달리 근래 문제가 되었던 호두과자 판매자의 조악한 노무현 전 대통령 비판이[각주:1] 잘못되었다고 (조악함과 잘못됨은 분명 다른 영역이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인, 특히 대통령이라는 책임져야 할 위치를 지낸 사람에 대해 비판은 자유롭게 보장되어야 하는 법이다. 내가 그 비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비판하는 행위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일베 이용자들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사람들에게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반 쯤 풀린 눈의 병사가 얇은 나뭇가지로 적군의 사체를 헤집으며 짓는 괴기한 미소를 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장난감이 되는 현장은 언제 봐도 적응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그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를 제 3자의 눈으로 볼 기회가 생기게 되었으니 앞으로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현실은 기대에 못 미치겠지만.


성 대표에게는, 원한이 있었다면 툴툴 털어버리고 자유로와지길 기원한다. 내가 어릴 적부터 누가 되었든 구천을 떠도는 귀신을 보게 된다면 하고 싶어했던 말이기도 하다.





P.S.0 아직 사망은 확인되지 않았군요. 사망 추정 기사를 보고 착각한 모양입니다. 일단은 글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P.S. 전두환에 대해 '죽어도 싸다'는 태도(이전에는 뼈를 갈아마셔도 시원찮다는 다소 극단적인 말도 했던 적이 있다)를 조금은 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선 사형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씨에 대한 추가적인 처벌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감정적인 반응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난 518의 직간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P.S.2 이와는 별개로 이 사건 이후 돈을 목표로 자해공갈협박하는 일은 없어졌으면 한다.

  1. 물론 단순한 비난에 가까워 보이긴 한다.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진짜 오랜만의(...) 물리 이야기. 군대 복무하면서부터 구상했던 논문 주제가 결국 논문으로 나왔고, 발표도 했고, 학점도(...) 나왔다. 그리 잘 쓴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떻게 생각이 이어지는지 log를 남겨두면 도움을 받을 법 한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최종 결과물과 거기에 다다르는데 있었던 생각의 도약들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학점이 B+인건 아무래도 '선행연구 검토를 제대로 안해서'가 이유인듯 싶다. 사실 발표 한달 전 쯤(그러니까 논문 완성하기 3주 전 쯤) 구글스칼라를 돌면서 선행연구가 있는지 검토했었는데 전무했지만 발표하면서 기억이 안 나서 '기억상에는 없습니다'라고 불확실한 대답을 해버린지라...=_=;; 교수님이 연구 결과물보다는 연구 과정을 충실히 이행했는가를 중점으로 평가하시는 분이셔서 어쩔 수 없다.

주제는 '자기단극자의 무질량 극한에 대한 탐구'. 영문으로 쓰면서 좀 아쉬웠던 부분은 두 번 나오는 unfortunately 중 하나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지 못한 것. 하나는 fortunately와 대구로 쓰였으니 상관없는데 다른건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초록에 나왔다시피 '에너지가 유한한 경우로는 존재할 수 없음'이 결론이다. 사실 좀 더 중요한 결론은 '유한한 에너지를 갖는 광속으로 이동하는 soliton은 존재하지 않는다'인 듯 싶지만.

thesis.pdf


아쉬운 점이라면 발표 후에 깨달은 논문상의 부호 문제(...). metric을 반대로 사용해서 정의할 때 부호를 반대로 썼어야 하는 식이 몇몇 있는데다가, 중간에 Stress-energy 텐서의 부호도 잘못 썼다. 어차피 각 항이 0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인지라 결론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왜 리뷰를 봐 주신 교수님들 중 아무도 이걸 지적하지 않은걸까(...).


Kinematic Angular Momentum의 양자화는 사실 자기장이 0인 조건에서만 성립하는데 그 부분도 생략했다. 뭐, 어차피 상관없겠지.


이상민 교수님께서 리뷰하신 후 "실력도 되는데 좀 더 큰 주제를 잡지 그랬냐"는 식으로 코멘트를 달아주셨는데 워낙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주제라 그냥 썼습니다(...).


Soliton을 다루는 건 이수종 교수님을 찾아갔더니 주제를 말씀드리자 Rubakov 책을 쿨하게 던저주셔서 시작. 그걸 한 학기 내내 거의 혼자서 팠다. 올해 봄학기동안 한 일의 70%는 저거였는듯.[각주:1] 그래서 봄학기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던 과목이 생각보다 학점이 안 좋아서 한동안 푹 꺼져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발표할 때 실수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Soliton의 경우는 논문에서 사용한 좌표계에서 운동방정식을 만족하는 해를 찾으려 3주동안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이면지를 써보았는데도(주로 내가 계산을 제대로 했는가 검산한거긴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가정해(ansatz)가 해를 주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와서 그냥 뒤집어서 '해가 아예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볼까?'를 시도한거다. 결과는 성공. 특정 형식을 갖는 Lagrangian들의 경우 finite energy&speed of light를 갖는 Soliton solution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다 일반적인 결론이다.


다음은 이수종 교수님을 만나서 신세계의 문(...)을 열기 전까지의 기록. 잘못 계산한 결과에서 도약했다는 것은 log 중간에 나온다. 흑역사도 잘 마무리하면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한 사례가 되기를(...) 희망한다. '>>'로 표시된 것은 차후에 덧붙이는 주석.




2010/01/01 - 자기 단극자, Dirac String, 기타 등등


이런 글이 있었다. 아직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라 자기 단극자라는 개념에 대한 회의가 주된 고민거리이다.

처음에는 자기 단극자의 Lagrangian이나 Action Integral을 구하려고 했다. 문제는 그 형식이 어떨지 아예 감이 안 잡힌다는 것.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벡터 포텐셜 A를 이용하면 문제가 생기나 봤더니, 벡터 포텐셜을 사용하게 되면 gauge symmetry는 당연하다는 결론만 얻게 되었다.

한창 보고 있는 책이 장론인지라 벡터 포텐셜을 이용해서 자기 단극자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운동방정식을 텐서 형식으로 구하려고 했는데, 그것 마져도 실패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것이, 자기 단극자는 속도가 광속보다 매우 작은 경우에조차 갈릴레이 변환을 만족할 수 없는 운동방정식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자기 단극자의 운동방정식은 전혀 다른 형식, 그러니까 질량이 없어서 광속보다 매우 작은 속도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라는 결론에 도착했다. 그래서 지금은 질량없는 전하의 운동방정식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다. 아무래도 전하가 자기 단극자보다는 다루기 쉬우니까 말이다.

시작은 Aharanov-Bohm 효과를 자기 단극자에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다였는데[각주:2], 어느 순간 자기 단극자의 질량은 없다로 흘러가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magneton보다는 magnetino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 2011.10.02

Magnetino가 유도하는 전자기장 방정식을 구했다. 로렌츠 변환 대칭성을 이용해 운동 방향에 수직한 평면에만 전자기장이 존재하도록 하면(델타함수를 이용해 자하량을 만족시킨다) 운동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의 로렌츠 변환에도 변하지 않는 전자기장을 만들 수 있다.(델타함수를 재규격화하는 것이 델타함수 이외의 항에서 나타나는 상수를 상쇄시킨다.) 문제는 벡터 포텐셜. 델타함수의 역미분이 애매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구한 벡터 포텐셜이 전하와 상호작용할 경우 필연적으로 뜬금없이 각운동량이 생성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각운동량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자하나 전하 자체에 내재된 각운동량, 즉 스핀 뿐이라는 것. 스핀은 양자화되어있기 때문에 각운동량 또한 양자화되어 있어야 하고, 따라서 전하와 자하의 곱이 양자화되어야 한다. 우연인지 항상 생성되는 각운동량 또한 전하와 자하 사이의 수직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Dirac 양자화 조건과 조금 다른 듯 싶지만 비슷한 결론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졸업논문을 쓰게 되면 이걸로 쓰면 되겠네.

-2012.03.01

Magnetic charge에 Lorentz invariance를 구현하는 방법은 없나? 현재까지 시도 결과는 없다는 결론만 나온다. 정말 답이 없는걸까? photon이 실존하는 particle(그러니까 고전적인 의미의 입자)이라 가정했을 때 얻는 energy-momentum tensor의 00항과 같은 transform을 갖는 것으로 보이긴 하는데...

>>00항과 같은 이유는 전자기장을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Classical limit에서의 equation of motion은 알려진 대칭적인 방정식 말고는 존재할 수 없음을 반쯤 증명했다. 서로에 대해 움직이는 magnetic charge와 electric charge가 상호작용하면서 서로에게 가하는 힘에서 운동에 linear한 term을 구할 수 있고 small loop current와 magnetic charge가 서로에 대해 정지해 있는 경우에 가해지는 힘에서 자기장에 선형적인 항을 구할 수 있다. 자기장과 운동에 선형적인 항은 없는지 의문.

>>간단하게 말하면 자기단극자의 운동방정식을 수학적으로 유도했던 시도다.

-2012.04.21

Magnetic charge에 걸리는 Lorentz force가 사실은 Lorentz invariant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전혀 틀린 가정에서 재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낸 셈. 이제 문제는 magnetic charge가 conjugate field를 생성한다고 할 때 equation of motion을 구할 수 있는가이다. 물론 Lagrangian을 이용해서.

>>여기서 conjugate field는 curl이 전기장이 되는 four-vector를 말한다.

-2012.05.04

자기단극에 가해지는 힘 중 자기장과 운동에 전부 선형적인 항은 존재할 수 없음은 자기단극 두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자기모멘트와 작은 loop의 자기모멘트가 구분할 수 없다는 가정을 이용하면 구할 수 있다. 만약 그런 항이 존재한다면 자기장에서 자기모멘트가 움직일 때 토크가 있어야 하는데 loop의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Field theory적으로 접근해볼까 고민중. 그런데 가상광자가 각운동량도 전달할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각운동량 보존은 어디서 구해와야 하나...

>>간단하게 말하면 자기단극자의 운동방정식을 수학적으로 유도했던 시도다.

-2012.6.2

젠장.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quantisation을 완료한 논문이 European Journal of Physics에 실렸었다(2003). 그래서 이번에는 오히려 upper bound를 줄 생각. Dirac theory에 따르면 J_z가 보존되는 양이니까 가능할거란 생각이 든다. 문제는 Hamiltonian이 time independent할 경우에만 해당되는 내용이냐는 거지만. vacuum fluctuation과의 order of magnitude를 비교해봐야겠다.

>>해당 논문(2003 Eur. J. Phys. 24 111)의 링크: http://iopscience.iop.org/0143-0807/24/2/351/ 해당 논문에서는 vector potential을 사용하지 않기에 다른 내용이기는 하지만 내용이 겹치기는 한다.

-2012.11.13
... 


글을 공개로 바꾸면서 log를 다시 보니 난 수학에서나 요구할 법 한 논리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별로 좋지 않은 버릇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감한 일반화가 물리의 미덕인데...

  1. 필요에 의해서 9장까지만 연습문제를 전부 풀어봤는데, 슬슬 나머지 장의 연습문제도 풀기 시작해야겠다. [본문으로]
  2. A-B 효과에서 자기장을 전기장으로 바꾸어주면 전기장 부분에서만 scalar potential을 요구하고 나머지에서는 모든 potential이 0이 되는 gauge를 취할 수 있다.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0. 날도 날이니만큼 이것 저것으로 바쁘더라도 글은 하나 대충 던져놓고 가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시작해 보죠.


1.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흔히들 말하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에서 나타나는 온갖 혐오정서 등이 사회가 불안정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2차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자신의 기반세력을 다진 반석이 유대인에 대한 혐오정서이기도 했고, 최근의 사례를 보자면 재정이 미숫가루보다 더 곱게 갈려버린 그리스의 경우 사회 혼란을 등에 업고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등 혐오정서의 보편화가 사회혼란에서 유래하는 것이라 볼 만한 근거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꽤나 인상적으로 읽었던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The True Believer』에서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심리상태를 자신의 삶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각주:1]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해줄 더 큰 대의에 삶을 바친다고 분석했는데 이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있다.[각주:2] 경제는 불안하고 일자리는 없으니 내 망가진 삶의 원인으로 지목할 피의자가 필요했던 것이라 생각했었다. 얼마 전 진중권씨가 일베 이용자들과 설전을 벌이며 국가에 슈퍼에고를 투영한다는 말을 했는데,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다음 글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http://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21158135


고소를 하겠다 하니 바로 장난이었다고 꼬리를 내리는 반성문인데, 만약 '내 삶을 바쳐 추구할만한 대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꼬리를 금방 내리지는 않았을 터. 내 가설에도 큰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면 일베 이용자의 대다수가 10대라는 것이 또 다른 문제 아니던가. 벌써 10대가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는다니, 학원에서 듣기 싫은 수업을 감기는 눈과 싸우며 공부하고 있는 청소년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아니면 우리나라에 내가 알지 못하는 아동노동착취가 벌어지고 있거나. 그런데 내가 믿는 대한민국은 아동노동착취는 없는 나라이기에, 아무래도 내 가설을 뒤집어야 할 것 같다.


2.

대선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일베충의 일기'라는 만화가 있었다. 꽤나 감상적인 만화로 기억하는데-'남들이 다 예라고 할때 아니오라고 했다가 인간 이하로 취급받은 사람들이 뭉친 것이다'였나?- 그 만화의 내용 하나 하나를 잘 곱씹어보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어디 한 곳에 발 붙이고 소속감을 누리고 싶어하는, 보통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긴 사람이 달라 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러나 비극은 이 소속감을 일베에서 찾으며 시작된다.


3.

공동체로서 하나됨을 느끼는 것에는 중독성이 있다. 축제와 각종 종교적 의식은 이런 하나된 느낌을 제공하기에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말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남들과 내가 하나로 묶여있다는 공동체의식은 강한 희열을 가져온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미치지 않은 사람이 미친 것이라는 시를 쓴 사람도[각주:3] 있지 않던가. 심지어 08년의 광우병 사태의 원인을 '축제의 부재'에서 찾은 보수논객도 있었다고 기억한다. 너와 내가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정은 그만큼 강렬하다.


그리고 하나로 뭉치는 데는 처단해야 할 가상의 악을 하나 만들어두고 거기에 대해 전투적으로 반응하는 것 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여기에는 좌우 할 것 없이 모두 포함된다. 625 이후 빨치산들을 색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국군이나 군부통치 이후 민주화운동에 목숨을 걸었던 대학생들이나[각주:4] 한국 여자를 싸잡아 이상화된 악마로 그려내는 일베 이용자들이나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를 뭉뚱그려 생각없이 사는 잉여인간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나 백인을 제외한 타인종 외국인들을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짐승으로 여기는 인터넷 하위문화 정서나 그 대상이 다를 뿐 본질적인 논리는 동일하다. 호퍼의 말처럼, 광신도의 대척점에는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아니라 신의 존재에 무관심한 회의주의자가 있을 뿐이다. 『맹신자들』에는 나치가 척결대상으로 보았던 공산주의자들을 잠재적인 협력자로 여겼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문장을 이해했다면 이 문단을 오독할 일은 없을 것이다.[각주:5]


4.

일베는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추천을 많이 받은 유머게시물들을 보관하던 게시판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현재도 제일 질 좋은(?) 유머자료가 올라오고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사용하는 게시판은 학교커뮤니티와 SNS정도라 확인할 방법은 없다.(굳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이 유머자료들 때문에 똥통이라 생각하면서도 일베에 들어가는 인터넷 사용자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일베 이용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난 그들이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사회적 평판에 금이 가는 선택을 할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 자유를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그 짐은 짊어지는게 세상의 이치인데.


이렇게 유머게시물을 보면서 간간히 보는 정치적인 게시물들에서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그 게시물에 익숙해지게 되면 더 이상 문제의식을 못 느끼게 된다. 문화충격은 그 문화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에나 겪지 그 문화권에 적응하면 문화충격은 문화의 차이로 수렴하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어쩌다가 비슷한 글을 썼을 때 추천이 한가득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동화되어 간다.


4.1.

바로 위 문단의 결론은 순수한 픽션이다. 일단 내가 일베를 하지 않으며, 주변에서 일베를 한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공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누군가 일베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위 가설을 검증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는 한데, 경험상 '나는 일베를 한다'고 자랑스럽게 육성으로 말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검증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5.

초점을 약간 당겨 보면 지난 대선기간에 활동했다는 국정원의 댓글 관련 사건들과 최근의 초청강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518과 자신의 정체성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의 한 층을 구성하기 때문이겠지 싶다. 누구도 내가 나쁜 놈이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 법이다. 자신의 정체성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떨까. 돈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런다고 하면 뭐 대충 수긍은 간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이권이 걸려있지 않은 사람들은?


조금은 성급하기는 하지만, 소속됨 혹은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 것 아닐까.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 다 하니 나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아니면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소속감을 온라인상의 댓글로부터 찾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6.

소속감은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내가 하는 것이 남에게 공감받는 것. 인명(人命)을 벌레 목숨처럼 여기는 것에서 문제점을 못 느낀다는 것은 물론 문제이지만, 그런 곳에서나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닐까.[각주:6] 가정과 학교에서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일개 인터넷 사이트에서야 겨우 느낀다는 것인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


보통 학생들이 학부모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시험지에 적힌 숫자뿐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 숫자로 매겨지는 등수이다. 교사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기분도 별로 다르지 않은 잣대가 이용된다. 그런데 댓글 한 줄 쓰는 것으로 비슷한 인정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경제학적 인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7.

교육백년지대계라 했다.


흔히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실생활에서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을 쓰는 경우는 다른 비슷한 사례로부터 얼마든지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갈수록 경쟁이 거세다 못해 전쟁처럼 변해가는 현대 산업은 온갖 역사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기에, 굳이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보다는 이런 곳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더 금방 와 닿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역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사의 역할은 정통성 확립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명시되었듯 419혁명의 이념을 계승한 자유민주주의국가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여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난, 근현대사를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걸어온 발자국 위에 놓여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 따라 더 답답한 것이련지도 모르겠다.



p.s.

글을 쓰다 보니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Getting more』의 한 꼭지가 떠올라 글을 갈아엎을까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꼭지인데, 반미적 근본주의자들을 고사시키는 방법은 그 근본주의자들을 떠받치는 일반 대중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떠올리고 나니 이처럼 상대방을 훈계하는 어조의 글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나 팔아먹는 글일 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결과적으로는 있으나마나 한 글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일단 적었으니 부족하더라도 내보내고 보자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 공개하기로 한다.


  1. 현재 책이 없어 정확한 인용은 뒤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2. 이 책이 내가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의 90% 이상을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영향을 많이 받은 책이다. [본문으로]
  3. 피천득 선생님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4.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화세력을 두고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평가는 더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5. 변희재씨는 한때 변이희재라는 이름을 쓰던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6.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의 두번째 경우를 염두에 두고 쓴 문단임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첫번째 경우에는 그냥 역사교육의 부재이기 때문에 어쨌든 교육이 까여야 합니다. 7번에서 계속. [본문으로]
TAG 518, 광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예담


사실은 별로 땡기지는 않았던 책이지만 알라딘 2013 양장노트에 눈이 멀어(...) 질러버린 책.[각주:1] 그나마 있던 책들 중 가장 관심사가 일치해 보이는 것으로 골랐는데 웬걸, 생각보다 괜찮다. 그리고 나는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수님들께 인생은 마라톤이니 롱런하려면 스프린트 하듯 뛰어나가지 말라는 조언을 듣기는 했지만, 급할 때는 뛰어야지 뭐 별 수 있겠는가.[각주:2]


part1에서는 각국의 공부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을, part2에서는 동양과 서양에서 공부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동양에서는 못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언급이 상당히 재미있다. 『생각의 지도』이래로[각주:3] 동서양의 사고방식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그 근거들은 흥미롭다. 서양에서는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이 나뉘어 있다고 보는 반면, 동양에서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


또한 동양에서 도입된 과거제도라는 혁신적인 관리선출방식이 공부의 목표를 출세로 바꾸었고, 따라서 지식의 확장이라는 희열에서 싹튼 자연과학이 발전할 수 없었다는 지적은[각주:4] 예상하기는 했지만 무심코 넘어갈 수만은 없는 부분. 결국 공부의 목표는 직접적으로 사회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이다. 때문에 자연과학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나 자연과학은 인간에서 한 발 떨어진 대상을 다루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나라의 국가 권력상에서 사회과학의 지위를 넘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이번 계절학기때 김월회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던, 문과 출신 총리는 많지만 이과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과기부 장관뿐이라는 사실도 생각나고. 결론: 대한민국에서 과학자로 성공하려면 인문학자와 인문학으로 배틀떠도 이길 정도로 내공을 갖추어야 합니다.뭐라고요?


그리고 다시 서양과 동양에서 노력에 대한 관념의 차이로 돌아와 보면 이 차이가 어떻게 보면 조금은 모순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직업관은 영단어 vocation에 잘 드러난다. voca로 시작하는 수많은 단어책들을 보셨을 여러분들이라면 눈치채셨겠지만, vocation이란 '신의 부름'을 의미한다.[각주:5] 따라서 개개인마다 신께서 마련해 주신 직업이 존재하므로 나에게 맞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며, 이 직업을 찾아 나서는 것이 사람이 할 일이 된다. 노력해야 할 것이 따로 있으니 아닌 것 같으면 바로 패를 접으라는 것. 포커든 고스톱이든 돈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전략 '딸때 많이 따고 잃을때 적게 잃자'를 인생에 적용한 것이다.[각주:6]


한편 동양에서는 과거라는 제도가 분명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노력하면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 + 주변에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러면 결론은 노력하면 된다는 것.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정서에는 그릇에 물을 채워 달을 담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되읊으며 초월적 존재에 기원하는 이야기들이 서양에는 없다시피 하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온다.[각주:7] 더군다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지른 한 마디 탄식, '신이시여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맞나?)는 일단 신께서 힘을 실어 주신 다음에 그 힘을 거두어 갈 때나 할 수 있는 말 아니던가. 아르크 지방의 잔 이야기도 사실은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고.[각주:8]


물론 여기까지는 책의 내용을 조금 더 넓혀 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이 흔적이 종교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따로 정해져 있으니 안 되면 다른 것을 찾아 떠나라는 말은 결국 '사람은 모두 맞는 무언가가 따로 있다'는 초월적 존재의 흔적이 지워진 믿음으로 남은 모양인데, 이를 종교관에 적용해보면 '신께서 날 만나주지 않는다면 결국 난 신과 만날 운명이 아닌 것이다' 또는 '신께서 날 만나주시지 않으니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각주:9] 유럽에서 바닥을 기는 종교인 비율을 이 영향으로 설명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한편 '노력하면 된다'라는 믿음의 우리나라에서 절대자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신을 만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야'라는 자책으로 이어지게 되고, 결과물이 길거리의 넘쳐나는 피켓으로 구현된다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흥미롭지 않은가? 절대자가 있었던 세계관은 결국 그 세계관 때문에 절대자를 버리게 되었고, 절대자가 없었던 세계관은 그 세계관으로 절대자를 맹목적으로 쫓게 되었다는 것이. 호프스테더가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에서 지성의 근원으로 지목한 그 이상한 고리(strange loop)의 발현이 되겠다.


다만 문제는 이 가설을 검증해볼 방법이 있냐는 것. 아무래도 과학에 좀 깊이 발 담근 사람이다 보니 이 문제가 가장 먼저 들어온다.난 어차피 검증할 방법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론물리 분야로 흘러들어갈 것 같으니 미리부터 검증불가능한 이론에 익숙해지는 셈 치고 막 던져볼까?


p.s. 수업 대비로 읽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인데 나는 왜 이런 것을 읽고 있는가...

  1.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앨리스로 골랐다. [본문으로]
  2. 그런데 이건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에서 정확하게 깐 그 내용이다(...). 그러니까 알라딘 님들 저 『시간의 향기』 저자사인본 한부만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굽신굽신 [본문으로]
  3. 생각해보니 군대에서 번역본 읽고 원서를 사두었는데 원서는 집안 서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렇게 나의 책 수집벽이 드러나는구나...(먼산) [본문으로]
  4. 과거제도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부터 대강 비슷한 가설을 세워두었는데, 책의 다음 장에서 바로 그 결론이 등장했다. 책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중간까지 읽은 내용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세웠는데 그 결론을 확인하는 것이다. [본문으로]
  5. voc는 '부르다'라는 의미를 갖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어원이다. vocabulary, provoke, evoke 등의 영단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본문으로]
  6. 신영복 선생님의 『고스톱 ABC』와 같은 책에서도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씀이 와 닿는 순간. [본문으로]
  7. 그런데 이건 한국만의 특성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 [본문으로]
  8. 주기도문이나 사도행전처럼 초월적 존재에게 기대려는 시도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설화의 범주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서양 희곡이든 설화든 누군가가 운명에게 힘을 받아 그것만 믿고 설치다가 운명이 그 힘을 다시 가져가며 몰락하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 기사도 문학은 약간 다른 구성이긴 한데, 걔네들은 어차피 '용맹스러움을 과시하며 절대자에게 영광을 돌리세' 이런 부류가 대부분 아니던가. [본문으로]
  9. 내가 교회를 안 다니지는 않지만 불가지론자에 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께서 절 버리셨군요'라는 일종의 트라우마인 셈. 한동안 바뀔 일은 없을 듯 싶다.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탁월함의 딜레마: ‘단일 고장점’ 구글 (슬로우뉴스)


구글에 너무 많은 서비스가 집중되면 구글이 기능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전 사회가 마비되는 위험이 생길 수 있다고.


예전에도 비슷한 논지의 글을 읽은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기반으로 돌아가는 환경이 취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군용 컴퓨터의 대다수가 윈도우 기반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주장하는 바처럼 산업다양성(?)이 있으면 일부 산업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산업에서 받쳐주는 방식으로 버틸 수 있으니 좋기는 좋다. 생태 하는 사람들이 종다양성(biodiversity)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하고. 하지만 구글에는 조금 적용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게 자연독점과 비슷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만큼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충분한 덩치가 있어야 한다고 해야 하나. 보안솔루션과 같은 산업기반(?)에 들어가는 기본투자금이 높고 사이즈를 늘리는 데 들어가는 추가투자금이 매우 적은 경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상당히 큰 덩치가 되어야 할 텐데 그 산업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크지 않으면 시장에 진입할수가 없다.


그리고 구글처럼 덩치가 매우 커진 경우는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우회로를 만들어 두는데, 그 모든 우회로가 하나의 취약점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구글이 무너질 가능성은 매우 낮으니 말이다.(그리고 우회로 설계의 핵심은 최대한 공통취약점이 없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고.) 덩치가 작은 기업은 이렇게 많은 우회로를 만드는 것부터 벅차서 이 경우는 오히려 덩치가 큰 편이 안정적일수도 있다. 그래서 구글을 하나의 취약점으로 보는 것은 무언가 너무 큰 것을 한번에 뭉뚱그려 버린 느낌이다. 미국과의 전쟁 상황이라던가(...)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엔 구글 그 자체가 취약점일수 있기는 하지만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해보면 이건 사실 비현실적인 경우.


사실 나는 구글이 취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보다는 구글이 이처럼 거대해지면 국가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민주주의 하 정부는 마음에 안 들면 갈아엎을 방법이 있지만 기업은 그럴 방법이 없다. 소비자운동이라는 방법이 있긴 해도 그건 그 기업을 소비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면 공염불일 뿐이다. 물론 기업이 그 영향력을 드러나게 행사하려 하지는 않겠지만 그게 더 무서운거다. 노장계열의 정치사상인 무위자연이 사실은 이런 방식의 통치철학이다. '너는 네 맘대로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네 착각이고'. 도덕경에 제왕론이라는 평가가 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푸코와 같은 구조주의 철학도 이쪽이라고 알고 있는데 자세한 건 철학과 친구 하나 잡아서 물어보세요.(그런데 칸트만 읽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공학윤리 강좌에서 배웠던 전문화와 전문화가 가져오는 산업의 복잡성 증가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예측불가능성과 사고발생가능성의 증대 등등이 떠오르긴 했는데 무관하다 생각되어 뺀다.




오늘 페북에 올린 글. 논문때문에 연구계획서 쓰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끄적끄적 거려본다.


댓글에 보면 실제로 구글이 멈추었을때 일어난 일련의 사건사고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런 문제는 '통합'이 가져오는 놀라운 효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리스크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휴대폰이 MP3와 네비게이션 e북리더 전자사전 등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스마트폰만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결국 휴대폰이 완전방전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아닌가. 대신에 이 위험을 쌩으로 마주하기엔 아무래도 부담이 되니 우회로로 예비배터리나 충전케이블을 들고 다니는 것이고, 위험 자체를 줄이기 위해 휴대폰 케이스를  설치하는 것 아니겠는가.


마지막에 뺀 내용이 이것과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싶다. 요지는 이것이다. 전문화는 효율을 가져오고 그 효율은 복잡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복잡한 시스템은 그 복잡성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한 성질이 증가하게 되는데, 때문에 한 사고가 나면 어디에서 그 사고가 기인한 것인지 찾기 힘들다는 것이 강의의 핵심 내용이었다. 갈수록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사람이다 보니 갈수록 사고의 원인은 찾기 힘들어진다는 교수님의 우울한 전망이 인상적이었다. 이걸 피하려면 단순하지만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사용하면 된다는 말을 하시긴 하셨다만, 글쎄...


난 사실 기술개발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쪽인데(그 기술을 사회에 도입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내가 기술만능주의자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할까?[각주:1] 몇몇에게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되돌아오지 못하는 강이라는 스튁스 강이 생각난다.

  1. 그리고 '안락한 자연'이라는 환상만큼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자연이 아름답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경외에 가깝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삶'이란 도시에 살면서 문명의 치부까지 다 들추어보았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한 동경일 뿐이라는 것이다. 루미나리에와 같은 아름다운 야경도 낮에 보면 전선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흉물스런 구조물이 된다.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겨울학기에 쓴 중간 및 기말 레포트 공개. 복붙은 반대하지만 참고는 환영합니다.


학점이 A-가 나온 것으로 봐서는 역시 글 주제를 이상하게 잡아서 점수가 까인듯 싶다. 문장에 비문은 없도록 빡세게 교정했으니...(물론 하루 날림으로 글을 썼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만...) 아니면 기말레포트에 엉뚱한 문단을 덧붙인 후폭풍이라던가. 내가 봐도 기말레포트의 마지막 두 문단은 어거지로 끼어넣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써놓고 아쉬워서 덧붙였을 뿐. 버리는 것도 중요한 미덕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걸 실천하는건 어려우니 문제.


 중간레포트.pdf

기말레포트.pdf


중간레포트의 주제는 '문명은 생물의 일종이다'라는 명제의 정당화이고 기말레포트의 주제는 '문명이 생물의 일종이라면 문명의 성(性)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문단은 본 주제에서 벗어나는데, '과연 완벽한 문명이란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블로그에 붙여넣으려 했더니 편집이 힘들어서 일단은 보류.

댓글을 달아 주세요

'Gay propaganda' bill proves divisive in Russia


러시아에서 게이 차별법안 초안이 통과되었다고. 법안 옹호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게이는 "일하지 않고, 게으르며, 수상한 예술 공연으로 수입을 얻"고 소아성애자로 취급하는 정치인들도 있다고 한다. 전통적인 가정을 무너뜨린다가 주된 반대 논거인듯 싶다.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핫한(?) 유언비어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푼다" 였다지? 사회가 혼란스러우면 책임을 물 대상을 물색하는 건 보편적인 현상이긴 하다. 가장 잘 알려진 예가 1933년 나치 독일과 아우슈비츠이고, 먼 과거의 왕(제사장도 겸하던 시절-단군왕검이라는 이름이 그 시절을 반영한다.)이라는 존재도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견해도 있다. 큰 가뭄이 내리거나 큰 홍수에 많은 재산이 떠내려가면 하늘의 뜻을 거스른 책임을 제사장에게 물어 그의 피를 바쳤다고.


한편으로는 그 적대할 대상에 이상한 죄목까지 덧붙여지는 것을 보면 악마의 준전지전능함이 연상된다. 괴테의 역작 『파우스트』(그런데 난 청소년을 위한 문학전집으로 심각하게 압축된 판본으로만 읽어본 것 같다)에 등장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능력은 신에 한없이 다다르지 않던가. 물론 신과 대적해야 하는 악마가 신에 비해 너무 비실비실하면 그 약한 악마가 가장 큰 적인 신의 위엄이 살지 않는 것도 이유겠지만 그 한 대상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자기의 책임은 회피하려는 동기도 분명 존재한다. 내 실수와 실패는 저 전지전능에 한없이 가까운 악마의 계략이라는 것. 음모론의 느낌이 들지만 중세의 마녀사냥과(진짜 별의 별 죄목이 다 나온다) 은나라의 주왕을 보면 (『논어』에도 은나라의 주왕의 죄목이 말이 안될 정도로 심하다는 구절이 있다)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있었던 현상인 셈이다.


그리고 여태 들어온 예시들을 잘 보면 모두 사회가 혼란하고 불확실성이 가득했던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어떤 사이트의 이상하리만큼 심한 적대감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지.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하나의 적을 만들어놓고 나면 사람들이 뭉치게 되며 (그것이 옳은 처방이든 그른 처방이든간에) 위기의 타개책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 "외부의 큰 불길이 꺼지면 내부의 작은 불길이 드러난다"와 비슷한 말이 나오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걸 뒤집으면 내부의 작은 불길을 가리려면 외부에 큰 불길을 내면 된다는 뜻. 영화 <왓치맨Watchmen>은 외계인의 침공을 구심점으로 삼아 인류평화를 이룬다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난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고있는거지?) 정확히 들어맞는 예시 아닌가. 참고로 우리의 반일감정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전'을 붙이니 무언가 생소하다...-.-;;)이 독도에 방문하며 일본에 대놓고 디스를 걸었을 때 지지율이 폭등했지 않던가.(군부독재 시절의 학생운동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다양한 정치관으로 갈라선 사람들이 그 방증이다. 대표적으로 보수로 여겨지는 조갑제씨는 원래 좌빨 기자였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무언가라도 해서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특성 때문에 모든 문명이 버릴 수 없는 성질(광기라고 하기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성질이라고 썼다. 하지만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쳤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하니 광기라고 표현해야 하나?)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돌이켜보면 르 봉이 그렇게 군중심리를 깐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치던, 파쇼던, 매카시즘이던, 근본주의던 다 넓게 보면 군중심리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역으로 말하면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집단지성이 발휘된다는 뜻이겠지. 찾아보면 『대중의 지혜』라는 책에서 제임스 서로위키는 구성원 사이의 독립성을 집단지성의 조건으로 들고 있다.


그리고 잡담: 푸코의 『광기의 역사』나 한번 읽어볼까. 시간이 되련지는 모르겠다만.




2월 27일에 Facebook에 올린 글.


『광기의 역사』는 포기해야할듯...ㅠㅠ 너무 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간단한 법칙으로부터 복잡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창발Emergence이라는 현상을 창으로 삼아 현실의 기업간 얽혀있는 경제구조를 살펴보았다고. 이번 경제민주화의 주요 척결대상이었던 순환출자가 대한민국만의 현상은 아닌 듯 싶다.[각주:1] 이 생각하느라 강연자가 마지막에 덧붙인 두 문장을 못 들었는데 댓글에서 지적했길레 다시 들어보니까 그 부분은 좀 그렇긴 하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밥그릇 다툼하느라 정작 일은 안한다'는 보편적인 정치인 비판. 좌우 논쟁이 이데올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논조의 발언인데 실제로는 이데올로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단서를 마련해주는 것 아니던가.[각주:2] 너무 이데올로기에 매몰되면 칸트의 정언명령이 갖는 한계를 겪게 되기는 하지만.


댓글에서 언급된 theRSAorg의 강연 동영상도 첨부. 여기서는 그 간단한 법칙을 '이기주의'로 정리한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자기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정치사회적인 투자-로비-를 하고 그것이 더 많은 수입으로 이어진다는 것.



댓글에 자본주의가 인간의 물질적인 욕망을 동력원으로 삼는 사회체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본주의를 허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간간히 보이는데, 글쎄올시다. 물질적인 욕망을 동력원으로 삼는다는 그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자본주의를 전복할수는 없다. 애초에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롱런하게 된 이유가 이 물질적인 욕망을 동력원 삼아 더 많은 풍요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갈아엎자고? 무언가 니체스러운 말이긴 한데, 언제까지나 자본주의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지 투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를 대안을 말하려면 자본주의가 가진 장점을 그대로 가져 갈 방안도 생각해두어야 한다는 말이다.[각주:3] 아직 난 그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간단한 법칙으로 복잡한 구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세포 자동자Cellular automaton 이론을 들 수 있겠다. 링크를 타고 위키백과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비교적 간단한 법칙으로도 상당히 복잡하고 화려한 현상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간단한 방정식과 적절한 초기조건을 가지고 호랑이의 무늬와 같은 복잡한 현상을 재현해낼 수 있는데, 이건 과학동아에서 확인하시길.


진화와 생명현상도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잘 적응하는 놈이 살아남는다.' 진화론의 핵심은 이 단순한 법칙이다. 랜덤화를 거친 후 그 중 가장 잘 살아남을 수 있는 놈만 남기고 한 사이클을 마치는 것. 진화란 있을 수 없다고 공격하려면 이 주장을 공격해야 하는데 엉뚱한 주장을 세워놓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 지적설계론처럼 이 간단한 과정이 어떻게 복잡한 다세포생물을 만들어낼 수 있냐는 주장의 경우에는 흰개미와 개미집의 경우처럼 '왜 그럴 수 없는가'를 보여야 한다. 하긴 뒤집어 생각한다면 '간단한 과정으로 복잡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를 증명할 수는 있지만 그 복잡한 구조에 다세포 동물이 포함된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하는[각주:4] 생물학자들의 책임도 없지는 않겠다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환원이기는 하지만 불평등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세포 생물의 경우 특정 세포가 다른 세포보다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각주:5] 물론 이건 사실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사실명제고, 사람은 당위명제를 좇으며 살지 사실명제에 매달려 살지는 않는다.

  1.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주요 국정과제에서 탈락하면서 그 꿈은 8:45 하늘나라로...ㅠㅠ [본문으로]
  2. 뒤집어 생각해보면 실제 정치인들도 나름대로는 자기 신념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3. 여기서 내 보수적인 색채가 드러나는군...-_-;; [본문으로]
  4. 박테리아가 다세포생물이 될 정도로 긴 시간동안 실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본문으로]
  5. 인간 뇌는 무게가 2%밖에 안 되는 주제에 전체 에너지의 20%를 소모한다.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Why speaking English can make you poor when you retire


영어와 같이 미래의 일을 현재형으로 쓸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다 현실에 충실하게-다시 말하자면 보다 미래를 경시하며- 산다는 가설을 소개하는 기사. 미래의 일을 현재형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은 '내일 학교가'라고 하지 못하고 '내일 학교 갈꺼야'라고만 할 수 있다는 것. 'I go school tomorrow'라고 할 수 없고 'I will go to school tomorrow'라고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래와 현재가 분리되는 언어를 사용할 경우 미래의 나에 대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어 보다 미래에 소홀하게 된다고. 아직까지는 가설일 뿐이지만 말이다.


영어는 어떻게든 주어를 만들어 넣으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영어 사용자는 어떤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자를-혹은 희생양을- 찾는 성향이 있다는 견해가 생각난다.


사실 언어가 생각을 형성한다는 견해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이름을 짓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곤 하는데, 그 이면에는 이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놓여 있다. 이름을 말할 때 나는 소리에 특정 감정이 실릴 수 있고, 이 작은 차이가 누적되면 인생에 영향이 미친다는 것.(다만 사주에 의거하는 경우에는 이름으로 사주팔자의 비뚤어진 균형을 바로잡으려 한다. 불의 기운이 약하면 불화변을 붙인 한자를 쓰는 것이 대표적인 예. NEXT의 보컬 신해철씨의 경우에는 사주에 불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바다 해를 사용했다고 한다.) 감정이 실린다는 것은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이름이라는 표현이 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더 쉬운 예라면 살랑살랑과 설렁설렁이 만들어내는 느낌의 차이가 있다.


언어가 인간 특유의 능력으로 여겨지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렇게 언어의 영향력을 크게 평가하려는 성향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인 <혹성탈출>의 원작 소설에서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이성의 보유 여부와 연결되고, 성경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하는 요한복음이 있으며, 싯다르타는 태어나자마자 덤블링을 하고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외쳤으며, 노자가 72년간 뱃속에서 세계로 나오기를 거부하다가 나오자마자 말을 했다는 민간 설화까지 언어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일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다만 합리적 추론능력-이성은 서구철학의 개념이라서 이렇게 썼다-의 경우 주로 서구에서만 인간됨의 조건으로 여겨졌던 것은 의외.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으로 볼 수도 있을듯 싶다. 스콜라 철학이 성립되기 전에는 영지주의적인 성향이 없었던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실제 행동경제학 연구로 특정 단어를 이용하여 사람의 행동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이런 믿음이 비합리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난 왜 이런걸 알고있는걸까...-_-;;;




2월 23일 기사. 위는 Facebook에 올렸던 글.



보니 TED 강연 동영상도 있다. 아직 한글 자막은 없는듯.

댓글을 읽어보니 미래의 일을 현재형으로 쓸 수 없다기보다는 (I am going to go to school tomorrow로 쓰는 방법도 있으니) 미래의 일을 현재형으로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혹은 자주 사용되는가를 기준으로 언어를 나눈 모양이다. 통계를 낼 때 일기예보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한국어는 미래의 일을 미래형으로 나타내려는 성향을 가진 언어로 분류되어 있다. 사람들이 지적하다시피, 일기예보가 과연 언어 사용자들의 전반적인 언어 사용 양상을 대표할 수 있는가가 이 통계의 약점이다. 현실의 언어생활에 가장 가깝게 하려면 블로그나 게시판의 언어사용을 비교해야 하는데 이 또한 컴퓨터와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이라는 약점이 있고.

다른 문제점이라면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문화적인 영향. 언어가 다르다면 겪어 온 역사가 다를텐데(민족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근대국가 형성 전에는 분명히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었고 그 민족이 겪어 온 인종차별과 같은 역사적인 경험은 확실히 존재한다. 유대인을 생각해보자.) 그 영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비판은 나라 수를 9개나 잡았으니 충분히 통계적으로 처리되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덮어놓고 틀렸다고 하기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는 하고, 그렇다고 믿기에는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고. 너무 다양한 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후통계조작의 가능성이 있어서 그렇다. 재미있는 가설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모양.

그런데 이런 언어의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축하기 운동 등으로 그 영향력을 상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긴 하지만 큰 중요도를 부여하기는 애매. 결국 중요한 것은 '너님 통장엔 충분한 돈이 저축되어 있나요?' 아니겠는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Facebook에 올렸던 단평. 1월 28일.




이번에 <동양의 고전>에서 춘추시대의 감각에 대해서 들을 때와 삼년쯤 전 <물리학의 개념과 역사>에서도 지동설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말할 때도 들었으니 자주 듣는 말이다. "누군가 멍청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 왜 그런 판단을 하는지 생각해봐라. 네가 그들보다 지적으로 뛰어나다고 확신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런데 난 이게 좀 심했을 때는 내 기억조차 믿질 못해서 강의실 앞에서 제대로 찾아왔는지 시간표 꺼내가며 확인했던 적도 있었다.(당연하지만 틀린 적은 없었다-_-;;)


사랑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강연. 아마도 체호프의 말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떠오르는 말을 끄적여 본다.

"외로움이 두려워 결혼하지 말라"


난 잘 모르겠다. 다만 "멀리 가려거든 같이 가라"는 마사이 족의 속담으로 알려진 말과 "당신과 결혼하는 이유는 당신과 있어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에요"라는 출처 불분명한 말 사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높은 기대치 때문에 아직도 혼자 걷는 중인지도. 그런데 별 불편함을 못 느끼니 그것이 더 문제...-_-;;

댓글을 달아 주세요

Where vegetarianism is an exotic illness


북이태리의 에밀리야 로마냐라는 도시[각주:1] 이야기입니다. 돼지가 특산물인지라 모두가 돼지고기를 즐기느라 베간(vegan. 물고기는 먹는다네요. 여기도 스펙트럼이 넓어서 고기만 안 먹는 부류도 있고 제한에 계란과 유제품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고 물고기도 안 먹는 경우도 있고 다양합니다. 채식주의가 심한 경우엔 과일만 먹는 사람도 있죠. 과일은 나무들이 먹히라고 만들어내는 물건이니까요)인 기자가 겪는 사건들을 다루었습니다. 기자가 초콜릿에 알러지가 있다는 소녀에게 "정말?"하고 되물었을 때의 그 상황이 자신이 그 대상이 되어 반복되었다는 언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기서는 채식주의가 정신질환처럼(...) 여겨진다네요.


사실 한국은 채식주의에 좋은 나라는 아니죠. 이전에 채식주의자인 한 미국인이 비빔밥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가서 계란후라이를 빼달라고 요청했더니 쫓겨나고 식당 주인은 소금을 뿌렸다는(...) 일화가 생각나네요. 요즘은 좀 나아지긴 했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건 사실이니까요. 학교 식당만 봐도 특정 식당에서만 채식주의 식단을 구현하고 있구요.


그리고 정신질환 하니 생각난건데, 질병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측면이 강하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없던 질병이 만들어지기도 하고(우울증이 대표적이죠) 있던 질병이 사라지기도 하고요(몽정이 병리현상으로 여겨진 부족도 있었다는군요).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게 당연한 것이 남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의 재확인이었습니다. 인용한 기자의 경험에서는 초콜릿을 잘만 먹던 소위 다수의 입장에 있었던 기자가 북이태리로 오자 소수자의 입장으로 전이되었죠. 뭐 공대 전공 수업 듣다가 철학 일반교양 수업에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요.(사실 철학 일반교양 수업은 누가 들어가도 그럴 것 같긴 합니다)


오늘 당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시도하셨나요? 그 수가 적다면, 하루 하루 그 숫자를 높여가는 것도 좋은 수양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월 15일에 쓴 글.


난 채식을 하지는 않지만, 뭐 채식 하려면 해라 그런 수준의 이해만 가지고 있다. 다만 채식에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 채식은 단백질 공급이 힘들기 때문에 식단에 엄청난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걸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텐데?


물론 이유는 사후적으로 붙인 것이고, 난 그냥 누가 무언가를 강요하면 싫어하는 성격인것 같다.

  1. 친구가 로마냐는 주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이고 여기의 유명한 도시가 볼로냐라는군요. 처음에 도시라고 잘못 썼기 때문에 오류는 그대로...ㅠ [본문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

Living with gus the Swiss way


스위스도 징병제 국가이죠. 여기 예비군은 총기를 집에 보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자기방어 권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총기소지는 '국가에 대한 충성'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총알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무기고에 보관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총기소지비율이 미국에 맞먹을 정도로 높으면서도 총기사고는 매우 적은 편이라고. 캐나다도 개인총기소지가 허락된 나라이지만 여기는 총기규정이 미국과는 다르기 때문에 총기사고가 적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개인총기소유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정확히 말하면 서부약탈시대가 맞겠지만)에 집마다 방어를 위해 총기를 들여놓았던 전통 때문에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체코에서 맥주에 세금을 매기려는 시도가 국민적 저항을 받고 있다는 소식과 같이 소개한 글이었죠. 우리나라에 비유한다면 개인교습금지가 맞이할법한 저항이겠지요.


미국에 총기규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질적으로 느끼는 미국총기협회의 "소녀가 총 든 강도에 맞서려면 총을 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미국인들한테는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의 개인교습금지에 대응해본다면 "우리나라의 급격한 경제발전은 높은 학구열로 인해 축적된 인적자본으로 가능했다"가 되겠지요.


이상함을 못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인적자본은 고등교육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룬 시기의 성장회계(경제성장률을 자본축적률과 노동축적률, 기술발전률로 나누어 계산한것을 의미합니다. 기술발전에 인적자본도 해당되죠.)를 봤더니 정작 기술발전의 기여도는 20퍼센트도 안 되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11일 기사.


참고할만한 몇 가지:

역사적 맥락속의 (음주, 총기) 문화(Gatorlog) - 두번째 문단의 그 글

총기사고 원인이 게임과 드라마? 바보야, 문제는 총기 판매야! - 이 글을 쓴 다음에 올라왔었나...;;


성장회계 자료(수업시간에 쓴 ppt 슬라이드였다...)



그러나 제가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교육이 너무 협소한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거지. 이건 트위터에서 날린 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 3 4 5 6 7 ··· 41 

글 보관함

카운터

Total : 658,216 / Today : 0 / Yesterday : 53
get rss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