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17. 19:44 Daily lives

단상

1.

얼마전에 CGV에서 설날 특선으로 인디아나 존스를 했다. 사실상 4편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맞나?)은 못 보았던 터라 10시까지 낮잠(?)을 자다가 일어났다.

사실 태클을 걸자면 머리카락도 모자라겠지만 그런 따분한 비판은 넘어가고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소련 과학자(?)였던 사람이 폭주하는 지식에 산화하는 장면이었다. 왜 그 여성은 그토록 바라던 지식이 어느 정도 이상 들어오자 자신의 눈을 가려달라고 절규했을까. '난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겸손이지만 '난 내가 모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겸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이기는 하겠지만.

생각해보면 꽤 오래된 모티브이다. 바벨탑도 그렇고 이카루스도 그렇고 신의 영역에 도전하던 사람들은 전부 먼지로 사라져 버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니체는 노예의 도덕이라면서 깠고.

그래도 이런 생각은 든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너지기 때문이 아닐까.



2.

내 기억력은 참 독특하게 왜곡되어 있어서, 기억하고 싶은 것은 잘 기억 못하는데 그다지 기억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은 이상하도록 세밀하게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진중권이 쓴 책의 신중함에 대한 그림을 설명한 부분을 읽다가 어디서 보았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더니 이충호 작가의 무림수사대 후기에서였다.

교수대 위의 까치 
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책 자체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개인적으로는 에셔의 정신나간 그림들을 좋아하는데, 나중에 미학 오디세이를 구해서 읽어볼 생각이다.



3.

예전에 쓴 글을 읽다보면 내가 쓴 글인데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역시나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두고 글자의 한계를 말했던 어떤 철학자가 있었던 것 같다. 데리다였나... 글은 상황을 벗어나는 순간 온전히 이해할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말이다.

그리고 요즘은 글이 안 올라오는 어떤 블로그에서는 이런 틈을 파고들은 창조적인 오독이 철학의 발전을 이끌어왔다고 했었다.

결론은 좀 알아들을 수 있게 글을 써야겠다는 것.



4.

생각해보니 실수(Real number)를 제대로 배운적이 없는 것 같다. 유리수와 무리수를 배우고 무리수가 유리수를 가뿐히 능가할 정도로 많다는 것은 배웠지만 정작 무리수 그 자체는 제대로 배운적이 없다.

뜬금없이 모든 중학생들을 괴롭히는 수학 명제가 생각난다. 1.0과 0.9999...는 왜 같은 숫자인가. 구글을 적당히 돌려가면서 가볍게 공부해봤는데 이건 무리수를 정의하는 특징 때문이었다. 흔히 사용하는 정의 중 하나인 데디킨트 분할(Dedekind cut)은 모든 유리수를 두 집합으로 나누는 기준점이다. 여기서 두 집합을 A와 B라고 부른다면, A의 모든 원소는 B의 어떤 원소보다도 작아야 하고 역으로 B의 모든 원소는 A의 모든 원소보다 커야 한다. 그리고 이 두 집합의 원소를 구별하는 기준이 무리수가 된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두 실수 사이에 다른 유리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두 실수는 사실상 같은 숫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1.0과 0.9999... 사이에는 어떤 유리수도 존재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유리수를 떠나 실수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유리수는 뚝뚝 떨어진 정수에서 유래했다. 어쩌면 완전한 연속이라고 가정하는 시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수론이나 이산수학을 익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5.

예전에는 한 번에 한 권의 책만 읽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손 가는대로 읽다 보니 이것저것 뒤섞인 채로 읽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읽고 있는데, 앨리스의 이 대사가 인상적이다.

"I could tell you my adventures-beginning from this morning," said Alice a little timidly; "but it's no use going back to yesterday, because I was a different person then."
-AAIW, penguin classics, p.91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얼마나 다른 인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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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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