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지우개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이에 대해 찬반논쟁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그냥 생각해봤다. '낙태에 대해서 이렇게 그린다면, 소나 돼지에 대해서도 이런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반발을 보면서 예전에 떠올리고 기억의 모퉁이에 버려둔 것이 다시 떠올라 끄적거려 본다.

기본적으로 저기서 핵심은 '무엇을 인간으로 볼 것인가'라는, 선긋기의 문제이다. 결국 대부분의 존재는 배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데[각주:1] 지금은 그 문제를 보류하기로 하고(왜냐하면 도대체 '무엇이 인간이길레!'라는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 시절부터 이어내려온 질문에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살짝 빗겨난 의문을 가져보려고 한다. '왜 생명체는 존재하려면 다른 존재를 해쳐야만 할까?'

생명의 일반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첫 째, 에너지대사를 할 것. 둘 째,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항상성을 유지할 것. 셋 째, 자기복제를 할 것. 쉽게 말하면 첫 조건은 무언가를 먹고 배설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 째 조건은 누군가 건드리면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것, 셋째 조건은 후손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체는 정의와는 다른 특징을 더 많이 갖는데, 진화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과 다른 생명체와 배타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등이 있다. 여기서 내가 의문이 드는 부분이 왜 생명체는 전부 배타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는 부분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왜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의 시체를 넘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가?

상처를 소독하는 것도 결국 박테리아를 죽이는 것이며, 연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먹게 되면 이제는 살해의 범위가 눈에 보일 정도로 큰 대상으로 옮겨지게 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공생이라고 부르는 두 종 이상의 생명체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현상을 가져다가 모든 생명체가 그렇지는 않다는 말을 하려고 할 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공생 또한 '더욱 강한 배타성을 가지기 위해 연대하는 것'일 뿐이다. 거기다가 식물은 보이지만 않을 뿐 매우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 식물이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각종 화학물질들, 햇빛을 잘 받기 위해 다른 식물을 견제하는 현상[각주:2] 등을 안다면 결코 식물이 배타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어떤 생명체든 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다른 생명체가 죽게 되어있는 것이다.

자연 자체가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레드오션이기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공격적인 생명체 집단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무기와 관련된 과학이 발달했다면서 인류를 공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만약 수많은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과 비교하더라도 그다지 공격적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비배타적인 생명체들, 즉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자들'에 대한 동경은 보편적인 것 같다. 가끔씩 가다 보면 광합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헛소리도 나오고, 충분한 수련을 거친 사람은 신선이 되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수십 수백년간 살며 세상을 떠돈다는 이야기들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 게임과 같은 곳에서는 우호적이고 기술력이 수십만배는 앞서는 외계문명의 구성원들이 먹지 않아도 되어 입이 퇴화했다는 설정이 간혹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각주:3] 이런 꿈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컴퓨터에 정신만 남아서 돌아다니는 세계가 오면 더이상 다른 생명체의 시체를 넘지 않아도 될까? 물론 컴퓨터의 용량한계를 생각해본다면 거기서는 한 바이트를 더 얻기 위해 다른 정신체의 시체를 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짜 '평화'라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기분밖에 안 든다. 물론 예외적인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것은 아니지만.[각주:4]

딱히 결론을 내리기 위해 쓴 글은 아니라서 결말이 이상해도 이해하길 바란다.
  1.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난다. 존재 중심적인 가치관에서 관계 중심적인 가치관으로 옮겨가야 된다는 어조의 서문이 인상깊게 남은 것일듯 하다. 사실 난 관계론은 완전한 대체는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관계도 존재를 바탕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메타존재론으로 관계론을 말한다면 모를까 존재론의 대립적인 입장으로 관계론을 파악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책에서 '대비는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신영복 교수님은 이 부분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다. [본문으로]
  2. 실제로는 이것 때문에 숲에도 나이가 존재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끼가 땅을 풍화하고, 이후에 작은 풀들이 풍화를 가속한 뒤 많은 햇빛 아래에서 잘 자라는 양수들로 구성된 양수림이 형성되고 이후에는 양수림의 그늘 사이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음수들이 숲을 넘겨받아 음수림이 된다. [본문으로]
  3.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사실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 이야기이다. [본문으로]
  4. 당신을 존재하게 하는 원자들의 배열 방식도 예외적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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