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른 사람과 대화할때면 자주 정신줄을 놓는 편이다. 귀도 그리 밝은 편은 아니라(작은 소리는 잘 듣는데 사람 목소리를 언어로 번역해주는 장치가 살짝 맛이 갔다)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으면 대화는 이미 저 멀리 산으로...(문제는 딴생각은 내 취미이자 특기라는 거다)

오늘 동아리 면접을 봤다. 아, 물론 면접관으로(훗 -_-+). 사실 인생 자체가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흘러흘러 바다로 가세 이런 타입이라 질문을 잘 안하는 편인데(사람에 대한 평가도 지나치게 후한 편이다) 오늘 만난 한 면접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역시나 다른 분들이 질문하고 난 정신줄 놓고 듣고 있었는데, 무언가 많이 유창하게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쪽에서 계속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나 보다.(정신줄...) 형태는 화려하지만, 속은 텅텅 비어있는 조각만 잘 된 보석함같은 대답이었나 보다.(아니면 엄청나게 거대하지만 내부는 다 썩어들어간 플라타너스라던지...[각주:1])

뭐 그래서 생각해 보는데,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라는 책에서 나왔던 어떤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한비자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그런데 찾아보니 한비자는 아닌 것 같다. 그 유명한 공자님 말씀이려나...[각주:2]), 한비자는 굉장히 말을 더듬거리며 했다고 한다. 이런 한비자가 한 시대를 풍미(?)한 법가사상의 정수였다는데, 여기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란 단순히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말에 내용을 잘 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형식이 화려해도 내용이 별거 없으면 승하다고 공자님께서 그러셨다는데, 내용 없이 마구 말을 쏟아내는 것은 확실히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심리학개론에서 배운 두가지 언어장애가 생각난다.(역시나 안드로메다로 가는...) 하나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의 언어장애, 그러니까 언어는 전부 알아듣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뇌의 어느 부분이 손상되면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데 전공자가 아닌 이상 잊어버려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조금 관계있는 것인데, 이 언어장애에서는 '말은 하지만' 그 말에 아무런 내용도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다람쥐가 버섯에 들어가 주전자를 먹는다' 따위? 아마 음성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과 언어인식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따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나왔던 것 같은데, 별로 상관은 없어 보인다. 아니지, 잠시 내가 언어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지도...
  1. 여담이지만, (만약 이 나무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나무가 맞다면) 처음 북미 대륙에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을 때 50m를 넘는 플라타너스로 뒤덮인 숲이 있었는데, 아직도 이 숲이 살아남은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 한다. 목재로 쓸 수 없어서..... 한편으로는 굶주린 뱃속으로 빨려들어가 살아진 버팔로가 불쌍하기도 하다. 나에게의 쓸모는 그대에게의 위험이구나... [본문으로]
  2. 책에서는 분명히 '더듬거리며 말하는 것이 최고의 말솜씨입니다.'라는 부분이 있었다. 첫째, 신뢰감을 심어주기 때문이고, 둘째, 더듬이며 말하면서 생각할 시간을 벌기 때문에 더 좋은 내용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Daily liv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찝적대고 있는 책들  (2) 2009.09.26
우와아  (2) 2009.09.23
별 볼일 없는 화술(話術) 이야기  (0) 2009.09.22
아 화나  (2) 2009.09.18
그냥 생각난 무서운(?) 이야기  (0) 2009.09.17
학기초 잉여로운 삶  (2) 2009.09.11
TAG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 125 126 127 128 129 130 131 132 133 ··· 369 

글 보관함

카운터

Total : 654,471 / Today : 1 / Yesterday : 45
get rss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