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1항

민주주의. 초등학교때부터 귀에 못이 박힐 때까지 들어서 고막이 터지지는 않았나 걱정해야 할 정도로 주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입니다. 한자로는 民主主義라고 쓰고, 말 그대로 해석하면 '민중이 주인이 되는 이념'이며, '국민이 주권을 갖는 사상 혹은 체제'라고 포장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의미는 '구성원 전체가 사회의 특정 사안에 대해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투표 또는 선거의 방식으로 집계되어 사회에 반영되는 사회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원론적인 이야기였고, 이제 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민주주의는 어릴때부터 배우다시피 크게 두가지 체제로 나뉩니다.(일단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냐 자유는 쌈싸먹은 민주주의냐는[각주:1] 문제는 이 포스트에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가 그것이지요. 직접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모든 사안에 대해서 대중이 직접 간섭하도록 되어 있는 체제입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이 체제를 시행했고(대신 여기서 말한 시민은 매우 제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요.),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는 나라로는 스위스가 유명합니다. 간접민주주의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군중의 일부가 대리인이 되어서 결정을 내리도록 되어 있는 제도입니다. 대의제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지금의 우리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전통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로 여겨졌다고 합니다.[각주:2] 사실, 말만 놓고 보면 직접민주주의가 원래의 민주주의의 의미에 가장 가깝기는 하지요. 그런데 현실은 시궁창입니다(이건 저 예전의 이집트때부터 그랬지요. '어린놈들은 버릇이 없어' -_-). 한나라당이 12월 말(벌써 작년이군요)에 억지로 통과시키려고 했던 85개 법안들만 봐도 처리할 일은 많지만 시간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솔직히 말해서 전문가들을 제외한 일반인 중에서 저 85개 법안에 대해 전부 비판적으로 검토한 사람이 있을까요? 장담컨데 10만명중 한명이라도 찾기 힘들 겁니다.[각주:3] 그래서 등장한 것이 대의제입니다.

사실 대의제는 직접민주주의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채택된 것이라기보다는 한 곳으로 몰려있는 권력을 구성원이 점차 뺐어오면서 얻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각주:4] 전제군주가 지방의 의견을 조율하는데 필요로 했던 각종 자문기구에서 근대적인 의회의 기본 개념이 탄생했다고 하는군요. 이처럼 대의제는 군주라는 1인 권력체제에서 의회라는 직접 선출된 집단이 권력을 갖는 다인(多人) 권력체제로 권력자의 범위가 확대된 현상입니다.[각주:5] 다음 단계로는 이 권력이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대되어야 하겠지요. 물론, 대의제는 모든 사람에게 권력이 돌아간다고 홍보되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의문입니다.

이런 글들 덕분입니다.

일단 제가 이해하는 대의제부터 정의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대의제는 '국민이 투표로 자신의 대표자를 선택하는 정치체계'입니다. 채택된 이유는 '국민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설령 충분한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의사를 전부 반영하는데 무리가 있기 때문'이고요. 여기서 유의해야 할 단어는 '대표자'입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변호사 같은 것이란 말입니다. 일반인은 법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을 경우 법정에 설 일이 있으면 변호사를 고용합니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어떻게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조언을 받거나 자기의 의사를 변호사를 통해 잘 정제되게 실현시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지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어떻게 하면 그 국가를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이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 조언과 상담을 받고 그 의사를 실현시켜 주는 일종의 피고용자-고용주 관계라는 것입니다.

전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 모욕죄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상사가 대리에게 '보고서 이따구로 쓸래?'라고 호통치는 것이 모욕입니까?[각주:6]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 대의제는 덜 폭력적인 왕을 뽑는 것이 아닙니다.[각주:7] 언제까지나 대표자를 뽑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는 '자신이 뽑은 후보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일란성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생각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길거리에 널린 서로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이해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던 연인들이 족족 깨지는 것만 보아도 두 사람이 완전히 같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거는 '자신을 가장 잘 대표해 줄 수 있는 대표자를 선택하는 행위'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후보자에게 투표한다는 것은 그 대표자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나마 제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가장 비슷한 생각을 가졌으니까 모든 면에서 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제 손으로 뽑은 대표자라고 하더라도 자기와 생각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할 권리를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니네가 뽑은 대통령이 일을 하겠다는데 왜 반대하냐?'라는 논의는 무가치해지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한번 대통령을 뽑았으면 임기동안에는 무조건적으로 그 대통령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그나마 덜 아프게 다스려 줄 군주를 뽑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저에게(또는 저와 생각을 같이하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그나마 나은 대표자를 뽑는 행위' 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아까 위에서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묻겠습니다. 당신의 민주주의는 무엇입니까?



덧.
원래 이 글은 4대강 논란과 대운하 등등이 문제가 되었을 때 '대통령이 하겠다는데 왜 반대하느냐'라는 댓글에 대한 제 입장정리로 쓰려던 글이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한데, 어차피 이 내용은 대운하에 한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판단하여 마무리하고 올립니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또는 간단히 북한은 이쪽의 민주주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자유 없는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는가조차 의문이긴 한데...-_- [본문으로]
  2. 저도 사실 제일 이상적인 체제로 보고는 있습니다만 직접민주주의가 대한민국에 바로 도입되면 제 역할을 하겠느냐는 다른 문제군요..-_- 아직 60년입니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리려면 아직도 한참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태 많이 걸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서너배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살아온 나라들도 갈 길이 먼 것을 보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본문으로]
  3. 전 일단 언론과 관련된 법안들에 대해서 전부 반대하기 때문에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에 반대했지요. 나머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입장도 미정이고요. [본문으로]
  4. 아쉽게도 온라인 브리태니커는 유료더군요.. 다음 백과사전에 링크를 걸어두었습니다. [본문으로]
  5. 물론 군주제 전에는 귀족정이 대세였지요. 정확히 보자면 혈연에 의한 권력의 세습에서 대중의 선택에 의한 권력의 이동이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하겠네요. [본문으로]
  6. 인격적인 모독은 모욕죄가 적용 가능하지만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일 못한다고 호통치는 것이 모욕이냐는 말입니다. 당연히 자기가 고용한 사람이 일을 못하면 일 좀 열심히 하라고 닦달할 수 있지요. [본문으로]
  7. 촘스키 교수는 언론이 이런 면을 부추긴다고 한 적이 있지요. '투표 때에만 권리를 행사하고 그 이후에는 일자리로 돌아가서 조용히 일이나 하고 있어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놈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시대의창, 2002 [본문으로]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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