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인 제목으로 글을 시작해 보았다. 원래 이 글을 쓰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글을 쓰다가 파울료 코엘료의 [연금술사]라는 책에서 구절이 필요해서였는데(에메랄드판의 간단한 글귀를 학자들이 달라붙어서 장황하게 늘어놓았다고 불평하는 부분), 참 흥미로운 글이 검색 결과창에 들어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감명깊게 본 책이라(여태 본 책중에서는 제일 많이 다시 본 책일 것이다) 전혀 감흥이 없었다는 사람의 글이 시선을 잡아 끈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읽고 나서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우리는 '희망을 보고 싶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내가 연금술사라는 책을 제일 많이 읽었던 때가 대학이라는 커다란 갈림길에 서기 직전이었다. 아니, 나는 연금술사란 책을 갈림길에 서기 직전에 주로 미친듯이 읽었었다. 나의 경험을 모든 사람의 경험으로 확장하는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이번 경우에는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든다. 그래, 희망이 말라버려서 말라버린 희망을 보고 싶어하는 시대, 그것이 지금 우리의 시대라고.

예전에 인상깊게 보았던 웹툰중 [청춘도로로]라는 만화가 있었다. 여기서 기억에 남는 글귀가 하나 있었는데, '사람은 항상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만이 물의 존재를 안다는 톨킨의 말처럼, 결핍이 필요를 낳는 법이다. 연금술사가 말하는 것은 '희망은 이루어진다' 이다. 이런 책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분명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결핍'이 그 뒤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본다는 말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이 이렇게 많이 보여진 이유는 사람들이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싶어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렇게 희망만 보고 싶어하는 것을 나쁘다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미래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내일은 내일의 오늘에 불과하다는 말은 옥중서한에나 쓸 수 있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내일은 '희망이 이루어질 시간'이다. 하지만, 누구나 본능적으로 내일 희망이 이루어질지 아니, 희망에서 한발자국 멀어지지나 않을지 걱정한다. 희망에 대한 꿈을 확신시켜주는 안정제가 없다면, 모두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모두가 희망을 잃어버린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입시 지옥이라고 불리는 대학입시, 졸업장을 받고 나와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88만원 세대,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공표하고 당선된 공정표 교육감, 경쟁으로 물든 시장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는 보수세력(물론 세계적인 추세이지 대한민국의 참된 보수는 영향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두 한치 앞 상황을 바라보기 힘들게 만드는 경쟁의 장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는 요인들이다. 물론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누구나 희망은 이루어진다는 보장을 받고 싶어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만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스테디셀러 1위라는 신화는 책 자체의 내용이 작금의 시대와 절묘하게 녹아들어가 만들어진 부끄러운 신화일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Posted by 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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